하늘을 등지고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방구석4평
그림/삽화
lovendpeace
작품등록일 :
2019.12.2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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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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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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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202_누벨바그(1)

DUMMY

용운의 감옥을 떠나서 돌아가는 길, 수나는 어저께 이 시간 즈음의 일을 잠시 떠올려본다.


난데없이 호풍장군을 찾으시는 나라님의 호출에 응했을 때, 그 분은 말하셨다.


“자네에게 맡기려 했던 임무··· 투르나로 원정을 가 반역자를 해치우는 것 말일세.”


“예. 본부하신 대로 만반의 준비를 다했습니다. 위치만 확정되면 곧장 달려가 일체의 방심 없이 해치울 수 있습니다.”


“그것 정말 믿음직스럽군. 훌륭한 마음가짐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말일세··· 이미 그들이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그리고 수나는 이 뜬금없는 소식이 참으로 당혹스러웠다. 용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고 기껏 준비한 것들이 죄 물거품이 되었으니, 또 그 저주받은 주둥이를 놀리려던 것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녀도 자신의 뒤틀린 유머감각이 재앙을 부른다는 것 쯤은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나라님은 오해 말라는듯이 목을 가다듬으시곤 한마디를 덧붙인다.


“허나 무슨 일이 생기고 일어났는지는 이런 편지 한장으론 확신할 수 없는 법. 더군다나 그들은 특히나 요주의 대상이다. 죽음을 확신하고 벌써부터 안주하며 축배를 들고 싶진 않아.”


여장군이 속으로 안주하며 축배를 든다는 것이 술안주에 빗댄 일종의 언어유희가 아닐까 진지하게 고민할 즈음, 나라님이 말을 끝마치며 말한 명령으로 그녀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다.


“준비해둔 병력이나 물품들은 일단 해산시키지 말고 계속 주의를 기울이게나. 굳이 반역자 처단이 아니어도 이후 언제든 쓰일 일이 있을테니 말일세.”


“명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궁 밖으로 나온 여장군은 왠지 속이 답답했다. 무슨 증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운이 허하고 좋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멀미나 골병같은 것은 아니다. 그저 답답할 뿐이다.


그들이 죽었다고? 반역자가··· 물론 그 뉴스 자체에 놀라서 이렇게 충격을 곱씹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장군은 단지 그들이 못마땅할 뿐이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 반역자란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자면 꼭 그녀의 철없던 신병 시절 모습을 보는 듯 했던 탓이다. 그 철부지 시절. 그래 척 보기에 이상적이고 말이야 바른 말이다만 결국은 다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그래, 그들의 행동 역시 의미가 없다.


책 위에서 입을 놀린들 식견을 자랑하는 이들의 유흥거리에 그치고, 장사치 앞에서 헌신을 논한다면 그만큼 우스운 일도 없다.


인간들이 모여 이게 옳네 저게 옳네 한들, 그 발전은 느리고 그마저 어느순간 쉬이 무시되어 끝내는 그런 배신자들의 웃기는 변명거리로 요긴하게 쓰여왔다.


뛰노는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썩은 진리고 보는 것은 진실된 부패니, 모든 부모된 자가 책을 던지고 회초리를 들어 이를 고친다.


우리 인간이 마주하는 첫번째 고뇌란 결국은 회초리다. 사상이며 진리며 대가리 속에 든 고매한 것들만 쏟아내는 몽상가들은 제 몸에 쏟아지는 돌덩이 하나도 멈출 수 없다.


세상을 움직이려 한다면 허상에 매몰되어선 안된다. 이상이란 쓸모는 많되 감명받아서는 안되는 종류의 것이다. 아무리 부정한들 포로의 입을 여는건 고문이고 범죄자의 악행을 끊는건 사형이다.


그런데 너희는 뭐냐? 뭘 하고자 했던가?


세상에 대항한다던 자들아. 너희가 서신을 빼앗고 창칼로부터 도주하며 나라에 맞서는 자들이냐? 너희가 하고자 했던게 대체 뭐란 말인가.


적을 쓰러트린들 목을 치는 일이 없으며,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무기를 품에 끌어안아 끝없이 도주만을 계속했다. 뭘 하고싶었는가.


불안의 씨를 끊지도 못한 자들!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을 바랬던 자들! 종과 종 사이의 전쟁과 손익이란 모두 사이좋게 지내자는 어린애 놀음으로 만족을 부를 수가 없는 것인데, 억지를 부려 단지 도망만 치다 끝내 죽고 말았다.


너희들의 이야기를 듣자면 항상 책방에 갇혀있던 어린 여자애 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걸 모를 정도로 머리에 든 게 없었구나. 하긴 그리도 깡질기고 용렬하니 결국 그 지경까지 갔겠지. 내 말이 틀리더냐? 대답 좀 해봐라! 만일 그런게 아니라면, 너희들은···


혹시 너희들은, 그걸 알고서도 좇을만한 뭔가가 있었다는 것인가?




...다 되었다. 죽은 놈들에겐 더 볼 것도 물을 것도 없다.






***



어둑어둑한 날의 어느 커다란 나무 밑, 그곳을 그늘삼아 밑둥에 몸을 기댄 한 청년이 있다. 새근새근 잠을 자는 고운 얼굴에는 짙은 흉터가 패였고, 몸 여기저기에는 때가 가득 묻어 더럽다.


하지만 옷은 흙먼지에 더럽혀져도 그 가치가 보일만큼 품질이 좋은 비단이니, 돼지 목에 진주라 하겠다. 분수에 맞지 않은 물건을 가졌으니 빼앗겨도 할 말은 없겠지.


보아하니 돈 깨나 있던 청년같은데 이 꼴인걸 보니 사고에 휘말린 것 같고, 목숨이 아깝지 않은지 대놓고 쿨쿨 자고있으니 이건 거의 자신을 습격해달라고 애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주변을 서성이던 도적떼가 다 차려진 이 밥상을 마다할 이유도 없으니, 무수한 불한당 패거리들이 모여들어 하온의 동태를 살핀다. 너무 한가한 모습이라 뭔가 함정이라도 팠나 싶었다.


하지만 사방을 다 뒤덮을 정도로 많은 동료가 모였음에도 이상한 장치 하나 발견되지 않았으니, 정말 죽고싶어 안달난 놈이 분명하다. 고작 한 놈이래도 꽁돈이 생겼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도적들은 수풀에서 나와 살금살금 그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걸음, 두걸음, 그리고 또 세걸음—


“그 애 털 끝 하나라도 건들었다간 봐.”


그때 어디선가 낮선 목소리가 들린다. 그건 여자의 목소리였으며 도적떼로부터 들려온 것도 아니었다.


곧이어 나무 뒤쪽, 검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한 여인이 서서히 일어섰다. 이와 함께 그림자보다도 더 짙은 검은 빛 머리카락이 조금씩 찰랑인다.


“한발짝만 더 다가오면 죽여버린다.”


꽤나 순박한 얼굴에 비해 말투는 무서울 정도로 험악해서, 살인을 업으로 삼는 도적조차도 그 짙게 깐 목소리에 잠시 발을 멈췄지만, 곧 드러나는 유약한 개인의 형상에 그들은 다시 안심하고 칼을 빼들었다.


“아가씨, 우리가 장난같아? 아님 호구? 너무 나대지 마, 쑤시고 싶잖아.”


동시에 하나둘씩 낄낄대는 불량배들. 하지만 처녀는 몸을 숨기거나 도망치려는 기색은 하나 없이, 유유히 그림자 밖으로 걸어나와 자고있는 청년 앞을 가로막는다.


뭐 겁 없는거 하나는 인정해주겠지만, 체급차이부터가 확연한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만용이라니, 살인마들은 비웃기밖에 더 할 게 없다.


보다못한 도적떼의 두목이 슬슬 앞으로 걸어나가며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야~ 시X, 이젠 애새끼 하나도 우릴 X으로 본다. 야, 내가 지금—”


그 순간 그녀는 두목의 턱을 가격해서 말을 씹었다. 동시에 혀까지 씹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목에게 또 나지막히 말한다.


“조용. 잠 깰라.”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면상이 땅에 쳐박혔다.


명치, 얼굴에 각각 한대씩 맞아 내장이 파열되고 아구창은 돌아가서는 고꾸라진 것이다. 눈코입이 다 뭉개져서 참혹한 꼴이 되었다.


나머지 40인의 도적떼는 그 짓을 눈 앞에서 봐놓고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건지도 모른 채 당황에 쩔어, 다들 웅성거리다가 기세를 몰아 그녀를 향해 전원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지부조화라고, 이렇게 작은 체구의 여자 하나에 두목이 당했다는 것을 인정하질 못한다. 사실상 얕본 것이다. 그리고 유구한 역사 내내 방심한 자의 말로는 항상 참혹하다.


처녀의 소매에서 갑자기 은빛의 칼날과 곤봉이 길게 펼쳐진다. 백룡도와 봉황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냄과 동시에 온 사방의 겉절이들을 잘게 부수고 찌르고 후두려팬다.


그리고 무수한 비명과 박살나는 소리와 골절과 피가 터지고, 기타 등등.


비록 당한 자들 모두 동정의 여지 없는 도적떼들이라 해도, 그들이 당한 너무 참혹하고도 쪽팔리는 꼬라지에 대해서는 말을 줄이도록 하겠다.


한바탕 소란이 일고 잠잠해질 즈음엔, 땅에는 여기저기 고장난 도적떼가 한 명도 빠짐없이 쓰러져 골골대고 있었다. 전부 팔다리중 최소 하나 이상은 작살이 나서 이제 더는 제 구실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폭력의 장본인인 여인이 후 하고 말을 꺼내자, 상황파악이 너무 늦어버린 도적들은 모두 기겁을 하며 벌벌 떨기 시작했다.


“맘같아선 골통을 깨부수고 싶은걸 이 애 얼굴을 봐서 참는거야. 당장 꺼져버려.”


나름 자비를 베푼다는 듯 말하는 처녀. 똑바로 움직이는 부위를 찾기가 힘들만큼 흠씬 얻어맞은 도적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어려운 요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비를 마다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발로 기든 꿈틀대며 굴러가든 저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개떼들. 하지만 여자는 그들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하온, 혹시 깼어?"


청년에게 걱정스레 말을 거는 사라. 하지만 여전히 새근새근 잠든 하온에게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그것만으로 너무나 안심되어서, 사라는 빙긋이 웃었다. 마침내 되찾은 고요한 평온에 사라는 하온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언제까지고 은은한 눈빛으로 계속 그의 침묵만을 지켜보았다.


작가의말

참교육 완료



다음 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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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Episode275_최초의 악수 +1 22.07.25 23 2 8쪽
275 Episode274_눈물과 위안으로 22.07.21 31 2 8쪽
274 Episode273_비상 +1 22.07.12 25 2 9쪽
273 Episode272_추락 +2 22.07.04 27 3 8쪽
272 Episode271_지각과 각성(4) +2 22.06.27 30 2 7쪽
271 Episode270_지각과 각성(3) 22.06.13 34 2 7쪽
270 Episode269_지각과 각성(2) 22.06.04 26 2 7쪽
269 Episode268_지각과 각성(1) +1 22.05.31 25 2 10쪽
268 Episode267_혜성 충돌(6) +2 22.05.18 39 2 8쪽
267 Episode266_혜성 충돌(5) +2 22.05.17 41 2 10쪽
266 Episode265_혜성 충돌(4) 22.05.15 33 2 8쪽
265 Episode264_혜성 충돌(3) 22.05.10 73 2 8쪽
264 Episode263_혜성 충돌(2) 22.05.03 27 2 8쪽
263 Episode262_혜성 충돌(1) +4 22.04.22 43 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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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Episode260_미래의 아이들(2) +2 22.04.18 59 2 8쪽
260 Episode259_미래로의 일발(3) +2 22.04.15 26 4 9쪽
259 Episode258_미래로의 일발(2) 22.04.08 41 5 7쪽
258 Episode257_미래로의 일발(1) +2 22.04.05 37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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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 Episode255_최후의 전쟁(4) +2 22.03.26 52 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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