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250_재생
농담일 줄 알았다. 이제와서 하온이 자신을 놓고갈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왕눈이 괴물은 십수개의 눈알을 요란스럽게 떨면서 하온에게 달라붙는다.
"여기 남으라는건 또 뭐야? 설마 나만 여기 남겨두려고??"
"맞아요. 여기에 계셨으면 해요."
하온은 어찌 보면 냉혹하다고 느낄 만큼 딱 잘라서 그에게 말한다. 황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왕눈이 괴물의 눈빛에, 조금 놀라면서도 우스웠는지 웃음을 터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여기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켜주세요. 그건 아저씨밖에는 못할 일이예요. 저희랑은 비교도 안될 정도의 시간을 함께하셨을테니까.”
“아냐, 저 친구들은, 아니, 하지만 위급한건, 아, 아무튼 네가 더 먼저야!”
“저도 두 분 성격을 알아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생사에 초연해서, 죽건말건 둘 뿐인 이 오두막에서 뼈를 묻으실 생각이겠죠. 하지만 우린 아니잖아요? 아저씨가 가서 꼭 두 분을 데리고 피해주세요.”
그 즈음에서 왕눈이 괴물의 몸체는 발로 찬 책상 위의 푸딩처럼 격렬히 요동쳤다. 저 정도 나이를 먹었는데도 나이 20을 못넘은 꼬마의 독립선언이 무던히 충격이었나보다. 하온은 그 고대마귀의 귀여운 태도에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진짜 희생한 사람은, 사람이라고 하면 실례인가요? 괴물 아저씨잖아요. 저 하나때문에 그 먼 길을 달려와서는 아무 말 없이 함께 해주셨는데.”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아저씨의 삶으로 돌아가셔요. 아저씨에게도, 제게도 소중한 사람이 저 오두막 안에 있어요. 그만큼 큰 힘이 되주는 게 더 없을걸요.“
하온의 뜻은 견고했고, 왕눈이 괴물도 더는 그를 막지 못함은 알 수 있었다. 애초에 그의 뜻을 존중한다며 조언자의 위치를 자칭한 시점에서 이 이상 훈수를 두는 것은 그의 자주성에 대한 기만이다.
"...그래도 너는 가기로 했구나."
''미안해요. 나도 고마웠어요. 뭐라 할 말이 더 없을 정도로 아저씨에게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왕눈이 괴물을 들어올려 그 물컹한 신체를 꼬옥 끌어안은 하온은, 그를 도로 바닥에 놓아준 뒤 등을 돌려 앞으로 나아갔다.
"하온. 네 삶을 살지 못한대도 후회가 없겠니?"
그것이 왕눈이 괴물이 애써 짜낸 마지막 질문이자 훈수였다. 이전에 이 오두막에서 이뤄졌던 둘만의 담론의 주제였다.
하온은 잠시 걸음을 멈춰세우고 골똘히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몰라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녔다. 마음 속에 품은 의지를 정갈히 가다듬기 위한 성찰이었다.
"저도 똑같았습니다. 그때 그 농부와 마찬가지로 똑같아요. 수레 위의, 돌가죽을 증오했던 농부처럼. 그 날의 위치에서 그 날의 생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에 책임을 물을지는 몰라도 죄악을 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정답일지, 자기위안일지 모르는 장황한 변명을 끝으로 하온은 다시 땅을 딛고 떠나간다.
“하지만 그건 돌가죽에게도 마찬가지일거에요. 그래서 저는 계속 그들을 향하고 싶습니다. 한 종족이, 인간성을 넘어서서, 그들의 큰 고통이 내게는 너무나 안타깝게 비춰진 탓입니다. 설령 이것이 뭣도 아닌 생존본능의 부산물일지라도··· 고통의 발생은 모래바람이 지나는 것과 동일한 가치를 지닐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는 그러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기에 이보다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저는 당신이 바라지 않는 길을 가고싶습니다."
길을 좀 더 가다보니 사라와 사루비가 보였다. 사루비의 등에 올라탄 사라가 하온에게 손을 내민다. 그 손을 붙잡고, 하온도 돌가죽의 단단한 등 위로 오른다.
이번 목적지는 가깝다. 무엇보다 손에 잡힐듯이 명확하다. 사라의 눈은 명확히 적들이 향하는 곳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지금 위치조차 보이고 있다.
지면을 박차고 달리는 사루비의 다리가 부산히 움직인다. 격렬히 흔들리는 등에 메달려, 멀미도 두려움도 막을 수 없다는 듯 그들은 달린다.
두 인간과, 한 돌가죽. 마지막 결전을 향해서.
- 작가의말
감기에 걸렸을까요, 아님 요즘 대유행중인 물결에 저도 동참한걸까요. 머리가 아프고 몸이 나른합니다.
좋은 핑계가 생겨서인지, 너무 오래 쉰데다가 분량도 짧아집니다. 하지만 힘 내야합니다. 얼마 안남았으니까요.
여기까지 함께 와주신 것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벌써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음 화도, 그리고 끝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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