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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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사무삼정
작품등록일 :
2019.12.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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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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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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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 2

DUMMY

한참을 훈마질주(訓馬疾走)로 달려온 이찬은 사길현과 비슷한 규모의 지역에 다다랐다.

사람이 없는 외진 곳에서 신법을 멈추니, 간단한 봇짐을 메고 여행을 하는 약관의 청년무인으로 보였다.

‘음. 너무 좋은데....’


이찬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서서히 큰길가로 걸어 나왔다.

바람과 함께 훅~ 풍기는 음식냄새가 다가왔다.


향미(香味)객잔.

이름처럼 향기로운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냄새 하나는 일품(一品)이군.”

일정에 쫓기는 것도 아니니 바쁘게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음식을 볶는 냄새에 이끌려 이찬은 객잔에 들어섰다.


“어서옵쇼~.”

점소이의 우렁찬 목소리와 미소에 이찬도 가볍게 목례를 했다.

“묵고 가려고 하오.”

“욕통이 있는 방으로 드릴깝쇼~?”


욕통이 있는 방과 없는 방은 값이 두배 정도 차이가 있었다.

잠만 자는 방을 이용할 때는, 따로 욕통만 둔 방을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었다.

은자가 없어 힘든 경우나 더운 날씨엔, 우물가 옆 판자나 대충 천으로 가려진 곳을 사용하면 됐다.


욕통이란 말에 다른 때와 달리, 오전에 혼인 후 악장군가로 가던 공주 이소민이 잠시 스쳤다.

“하하하. 그럽시다.”

“물은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음식은 무얼로 준비할깝쇼~?”

“닭고기가 들어간 요리가 먹고 싶은데....”

점소이는 궁보계정(宮保鷄丁)을 추천했고, 반시진 후에 이층의 창가 자리로 준비하겠다며 사라졌다.


욕통에 몸을 담그며 당금전장의 은자가 없어도 호사(豪奢)를 부리는 이유를 떠올렸다.

위수오살의 첫째가 바쳤던 금덩이와 전표.

청부의 댓가로 받은 돈을 이찬이 정부장과 이소민을 구하고 얻은 것이라 생각하니 떳떳했다.

돌려달라고 하는 이도 없었다.


구노인의 은자가 들어온다는 해몽(解夢)처럼.

이찬은 모양광에게 사연권이 구입한 장원과 멀지 않은 곳에, 장원을 하나 구입하도록 하고 관리를 맡기는데 아낌없이 은자를 사용했다.

또한 장아일의 사방무관 관비조로 넉넉한 은자를 보냈었고, 지금 이찬의 수중에 은자 이백냥 가까이 남아 있었다.


왕두에게 용돈이라며 은자까지 쥐어주고도 남은 돈이었다.

왕두는 이찬이 형님이 주는 거라며 받으라는 말에 발끈 했다가, 전표의 액수를 보고 ‘형님~. 고맙습니다.’란 말을 서슴없이 뱉었다.


표행을 하며 만화전장의 공금으로 객잔을 이용하던 것과 달리, 이찬의 품속에서 나가는 은자지만 아까운 생각보단 왕두의 모습까지 떠오르니, 따뜻한 수온(水溫)에 미소가 그려졌다.

친절한 점소이에게 후하게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며 인심까지 썼다.

‘돈은 죄가 없지....후후’


이찬이 혼인 후에 만화전장에서 받는 임금(賃金)은 전부 초린이 관리하고 있었다.

용돈이라며 쥐어주는 것은 쥐꼬리보다 못했지만 불평을 한번 했다가 된통 혼쭐이 났다.

표두의 체면상 가끔 표사들에게 술도 한잔 사야하는데, 초린이 내민 용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초린이 살림을 하며 이찬에게 박하게 구는 이유는, 아버지 무령 때문인 것을 이찬도 알고 있었다.

조그만 옆집을 구입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훈장을 하고 계셨는데, 받는 돈 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았다.

초린은 할아버지 풍진처럼 약초를 캐서 생기는 돈 같은, 다른 은자는 건들지 않겠다는 말로 이찬을 달랬었다.


이번 당금전장의 일로 받은 은자가 이백냥이었다.

대식구(大食口)가 이년을 사는데 부족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무령의 일을 생각하면 넉넉하다고 보기 힘들었다.

초린과 남궁수미 그리고 공손미가 있는 자리에서 삼백냥을 건네주었고, 어머니 장수련에게도 삼백냥을 드렸다.

이찬이 혼인 생활을 하며 느낀 것은 어머니와 부인들에게 똑같이 해드려야 편하다는 것이었다.


큰돈을 덥석덥석 내어놓으니 놀라면서도 돈의 출처는 묻지 않았다.

이찬은 어엿한 가장으로 어깨에 힘을 팍팍 주며 떠나왔다.

대견해하며 조심히 다녀오라면서 어깨를 두드리시던, 부모님의 모습까지 떠올리며 목욕을 마쳤다.


봇짐에는 두벌의 옷이 있었다.

하나는 집에서 챙겨준 옷이었고, 하나는 기왕채의 모양광이 먼 길을 가다보면 혹시 모를 일이라며 초록색무복을 건넸다.

징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잊지 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라는 말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찬은 초록색무복을 입고 이층의 창가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점소이가 궁보계정과 주문도 하지 않은 술까지 떡하니 내놓았다.

혼자서 식사와 반주를 하는 것이 낯설었다.


이찬이 혼자 술을 따르고 있을 때, 여섯명의 인물이 이층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이층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이찬도 잠시 고개를 돌렸고 그중 한명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본 얼굴.

이찬은 술을 마시며 잠시 생각을 더듬었다.

처음 본 얼굴인데 눈이 마주친 사람은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아 벽력도군(碧力刀君) 팽무광....후후. 피는 못 속인다더니...’


한명의 인물은 벽력도군 팽무광하고 많이 닮아 있었다.

팽무광하고 닮은 인물은 팽무광의 동생 팽무성이었다.

이찬은 팽무광보다 더 무위가 뛰어나 보이는 팽무성을, 식사겸 안주로 야채를 큼직하게 깍둑썰기 하여 식감을 살린 궁보계정을, 입안에 넣으며 음미(吟味)하면서 바라보았다.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 전에 팽무성은 침을 튀기고 있었다.

“요즘 다들 붉은 실을 매달고 다니는 게 유행인가 보오.”

“그런 것 같습니다. 팽형.”

“오라버니 소리를 낮추어요.”

“왜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단 말이냐~!”


팽무성은 물론 같이 있는 인물들도 적사련(赤絲聯)의 위세에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던 적혈문이란 강남도의 문파를 주축으로, 중원 전역에 적사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찬은 팽무성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층의 손님 중 열대여섯명은 얼추 보아도 각자의 병기에 붉은 실이 매달려 있었다.

오년(五年)전은 허광대사일행 중 공손미 그리고 언소저를 향해 흉비오검이 시비를 걸어 팽무광이 발끈했었다.


장안을 넘어 처음으로 마주한 객잔에서 앞으로 갈 새로운 여정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려던 이찬이었다.

‘왠지...불안하군.’

주변의 공기가 한번만 더 찌르면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로 휩싸였다.


하얀색 도복을 입은 여인이 화제(話題)를 돌리고 있었다.

“설희야, 남궁세가 이야기 들었어?”

“네? 남궁세가요?”

남궁세가가 언급되면서 객잔의 분위기는 가라앉으며, 다들 각자의 일을 보는 척 하면서 두여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선미 언니가 작년 여름에 과부(寡婦)가 됐잖아.”

“운지언니 그건 저도 들었어요. 왜요?”

“선미 언니가 한달 전쯤 다시 남궁세가로 돌아왔는데...”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 잠시 이야기가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두여인의 이야기는 남궁선미가 처가살이 하던 남편이 병이 악화되어 사마세가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갔다가, 남편이 죽자 사마세가의 배신(背信)으로 한달 전쯤 다시 남궁세가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이찬은 남궁선미가 혼자 된 것은 알고 있었고, 그것이 남궁선미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이유였다.

정략결혼의 희생양인 남궁선미가 자신이 장안으로 표행을 오는 동안, 사마세가의 배신으로 본가로 돌아왔다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제길~! 천하의 남궁세가라더니....크크크”

이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속된말과 함께 비아냥거리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찬의 행동에 옆자리 두명의 인물이 이찬의 자리로 왔다.

“소협도 남궁세가에 맺힌게 많은가 보오.”

“형님, 그게 한둘이겠오.”

“이것도 인연인데. 소협 혼자 마시는 것보다, 남궁세가를 안주삼아 같이 술이나 합니다.”


이찬이 대답도하기전에 두명의 인물은 자신들의 음식과 술까지 이찬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우린 패력쌍웅(覇力雙熊)이라 하오.”

“....”

“나는 형인 ‘진당’이오.”

“나는 ‘진석’이라하오”


포권까지 취하며 자신을 소개하자 주변의 인물들이 이찬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찬은 순간적으로 만화전장까지 언급하려다가 멈추었다.

“용호방 출신의 이찬이라 합니다.”

“아~! 이소협 이셨구려. 하하하”


패력쌍웅은 외공을 바탕으로 도(刀)를 무기로 삼는 것 같았다.

도(刀)에는 붉은 실이 없었다.

이찬이 패력쌍웅 형제가 대답도 하기전에 자리에 앉아도 내버려둔 이유였다.

한편 남궁세가와 무슨 악연이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외호처럼 두명의 인물은 곰 같은 체격이, 산처럼 장대(壯大)한 거한(巨漢)이었다.

나이는 스물두세살처럼 보였는데, 의외로 이찬보다 어렸다.

진당이 열아홉 진석이 열여덟이었는데, 두 살이나 많은 남궁선미에게 반해 형인 진당이 ‘청혼’을 한다고 무작정 들이댔다가 혼쭐이 났다는 것이다.


“푸하하하!”

이찬은 두형제의 이야기에 웃음이 터졌다.

“이형, 왜 웃는 것이오?”

이찬의 웃음을 보니 비웃음은 아닌데, 웃는데는 사연이 있어 보였다.


이찬이 남궁선우와 남궁선미 남매를 만나기 바로 직전의 일이었다.

남궁선우 입장에서 어린놈들이 자신의 동생을 희롱하는 것으로 여겼을 것이라 생각이 되었다.

여동생을 둔 오라비의 입장을 생각하니 이해도 되었지만, 두형제는 그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모양이었다.


“나도 비슷하오. 남궁세가에서 문전박대를 받고 쫓겨났다오.”

“이형, 동병상련인데 오늘은 취하게 마십시다.”


찌질한 남자 셋이서 술을 마시는 것으로 보여 여섯명의 일행은 이찬과 패력쌍웅의 이야기를 듣다가 관심을 끊었다.

대신 '붉은실'을 매단 인물 한명이 세명의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보아하니 세분의 젊은 용들께서 명문세가라고 위세를 떤 남궁세가에 한이 있어 보이오.”

“....”

“적사련에 들어오실 의향은 없오?”

“적혈문이라면 더 이가 갈이오. 죽어도 싫으니 그냥 가시오!”

패력쌍웅은 적혈문을 언급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패력쌍웅의 말에 적사련의 가입을 유도하던 인물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어린놈들이 대접을 해주었더니 안하무인(眼下無人)이구나!”

“숫자로 위협을 하는 것이오?”

패력쌍웅은 붉은 실을 매단 인물이 많음을 알고 반문했다.


팽무성이 패력쌍웅의 말에 동조를 했다.

“요즘 위세가 대단한 적사련이 설마 그런 비겁한 짓을 하겠오.”

무인들의 기질이 엿보이는 말이었다.

비겁하지 않은 정당한 비무면 좋은 구경을 하겠다는 의미도 담겨있었다.


팽무성의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적사련의 인물들 셋과 갑작스런 비무가 벌어지게 되었다.

얼떨결에 이찬과 패력쌍웅이 적사련의 인물 세명과 객잔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방안에 검과 주걱을 놓고 여유롭게 식사를 하던 이찬이었다.

이찬을 안내했던 점소이가 안쓰러운 눈으로 이찬을 바라보았다.

“부탁이 있소. 큼지막한 주걱 하나만 가져다주시오.”

은자까지 주었던 이찬의 부탁에 점소이가 주방을 향해 후다닥 달려가고 있었다.


작가의말

일교차가 심한 날씨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코로나 시국에 힘내시길....

휙휙~ 글적이고 갑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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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새로운 길 동행 11 ( 고향도 다녀오라고 ) +2 20.05.06 1,986 23 14쪽
80 새로운 길 동행 10 ( ‘정’ ) +2 20.05.04 1,478 21 13쪽
79 새로운 길 동행 9 (낙장불입(落張不入)) +2 20.04.29 1,438 22 13쪽
78 새로운 길 동행 8 (죽마고우(竹馬故友)) +2 20.04.27 1,477 19 10쪽
77 새로운 길 동행 7 (불꽃놀이) +2 20.04.24 1,623 22 12쪽
76 새로운 길 동행 6 (여표(旅標)) +1 20.04.22 1,669 28 11쪽
75 새로운 길 동행 5 (인연(因緣)의 서막(序幕)) +2 20.04.20 1,785 24 16쪽
74 새로운 길 동행 4 (황홀경(怳惚境)) +2 20.04.17 1,794 25 12쪽
73 새로운 길 동행 3 ( 미끼 ) +2 20.04.15 1,697 25 10쪽
72 새로운 길 동행 2 (경련(痙攣)) +2 20.04.13 1,749 23 15쪽
71 새로운 길 동행 (섭선(摺扇)) +2 20.04.10 1,731 28 13쪽
70 새로운 길 5 (동행(同行)) +2 20.04.08 1,825 29 14쪽
69 새로운 길 4 (사자후(獅子吼)) +2 20.04.06 1,828 29 11쪽
68 새로운 길 3 (삼대삼) +2 20.04.04 1,943 29 12쪽
» 새로운 길 2 +1 20.04.03 1,842 28 11쪽
66 새로운 길 +1 20.04.01 1,872 29 10쪽
65 암투(暗鬪) 2 +1 20.03.30 1,765 27 11쪽
64 암투(暗鬪) 1 +2 20.03.28 1,927 28 13쪽
63 야영지(野營地)의 손님 4 +2 20.03.26 1,838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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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야영지(野營地)의 손님 2 +2 20.03.24 1,755 30 11쪽
60 야영지(野營地)의 손님 1 +2 20.03.23 1,847 3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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