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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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모
작품등록일 :
2020.01.03 17:03
최근연재일 :
2021.04.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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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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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망망한 바다 (6)

DUMMY

“얘들아, 조금만 더 힘내자!”


하명이가 외쳤다.


그러자 지완이가 뒤를 돌아보더니 급하게 말했다.


“뒤에 그 짐승이 쫓아오는 것 같아.

사악한 빛이 엄청난 속도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


“그럼 선생님은?”


시영이가 지완이에게 물었다.


“나도 모르지.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

지금은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거.”


그때 시영이 품에 안겨있던 담비가 말했다.


“그래, 저놈 말이 맞아.

일단 여길 나가서 아까 갔던 곳으로 다시 가서 나뭇잎을 가져와서 선생을 구하자고.

그리고 이번에 갈 때는 반드시 조용히 가는 거 잊지 말고.”


다들 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으로선 담비 말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지완이와 하명이, 동희와 진영이는 우직이를 실은 들것을 잡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들의 얼굴과 팔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하명이가 외쳤다.


“얘들아!

앞에서 무언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아이들은 잔뜩 긴장한 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 자리에 서서 앞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때 달려오던 무언가가 그 자리에 멈췄다.


아마 우리의 존재를 그쪽에서도 이제 눈치 챈 것 같았다.


우리는 발소리를 줄인 채 천천히 상대에게 다가갔다.


숨이 막힐 듯한 적막을 뚫고 서로의 거리가 지척에 이르고 나서야, 그들은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성현아!

동연아!

태윤아!

성우야!”


“하명이 형!

지완아!

우직아!

시영아!

동희야!

예천아!

예선아!”


우리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힘껏 껴안고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기쁨도 잠시, 우리들의 뒤에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찾았다!

죽인다!”


양처럼 생긴 짐승이 눈에 피를 흘리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놈의 눈에서 나오는 섬광은 아까보다 더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하명이는 급한 마음에 성현이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성현아!

어서 들어왔던 길로 돌아가!

빨리 도망가!”


하명이의 말에 성현이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 성현이의 뒤에서 붉은 표범처럼 생긴 짐승이 일곱 개의 머리를 우리 쪽으로 내밀었다.


일곱 개의 머리에 달린 일곱 개의 눈의 일부는 아이들을 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고, 일부는 동굴 안이 답답한지 불평 가득한 얼굴로 동굴 벽을 쏘아보고 있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아이들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이 함께하는 마지막 시간임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명이와 성현이는 옆에 있는 예천이와 예선이를 꽉 안아주었다.


예천이와 예선이는 형과 오빠의 품에서 엄마 잃은 새처럼 훌쩍거렸다.


두 짐승은 아이들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양처럼 생긴 짐승은 입을 커다랗게 벌렸고, 표범처럼 생긴 짐승의 일곱 개의 머리는 아이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아이들은 눈을 감은 채 옆 사람의 손을 붙잡고 한목소리로 마지막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그 두 짐승이 아이들 앞에 다다라 이빨을 드러낸 순간,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온 땅이 심하게 뒤틀리고 흔들리더니 동굴의 천장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며 큰 구멍이 뚫렸다.


“얘들아!

괜찮니?”


아이들은 갑자기 쏟아진 빛에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다시 떴다.


동굴 위에 난 구멍 사이로 내가 목을 내밀고 있는 것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어떻게 된 거예요?”


아이들의 질문에 대답하려는 찰나, 옆에 있던 한 소녀가 아이들을 향해 가녀린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은 그 소녀의 손을 붙잡고 한 명씩 지상으로 올라왔다.


하명이가 처음으로 올라온 후 그 소녀를 보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환희야?

너 어떻게...?”


환희는 하명이의 멍한 표정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명 오빠.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친구들을 구하는 게 먼저니까요.”


환희와 내가 마지막으로 성현이를 구해내자마자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동굴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사람은 황금 문양이 아로새겨진 보라 빛깔 옷을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지팡이를 잡고 있었다.


그 지팡이에 박혀있는 오색찬란한 12개의 보석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그 사람은 기괴한 두 짐승 사이에 서서 차가운 표정으로 그것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짐승은 지금 이 상황이 몹시 화가 나는지 표정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두 짐승은 금방이라도 그 사람에게 달려들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태연한 얼굴로 금으로 된 보배합을 품속에서 꺼내어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보라색 연기가 금세 온 사방에 흩뿌려졌다.


연기가 동굴을 가득 메우자, 그 사람은 재빨리 동굴 위로 올라와 돌멩이 하나를 손에 잡았다.


그 후 금으로 된 향료 병을 꺼내서 돌멩이 위에 뿌리고 동굴 아래로 던졌다.


그러자 작았던 돌멩이가 커다란 바위로 커지더니 금세 구멍 뚫린 천장과 통로를 메꿔버렸다.


그 사람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보더니, 천천히 바닥에 든 나뭇가지를 주워들고 그 위에 향료 병에 든 향료를 조금 뿌렸다.


그러자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나뭇가지는 연주하기 적당한 크기의 악기로 변했다.


그 악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내게, 환희가 다가와 웃으며 말해주었다.


“선생님, 저 악기는 비파에요.

그리고 저분은 스바 여왕님이세요.”


스바 여왕은 비파를 능숙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비파 소리는 바람을 타고 형형색색의 색감을 남기며 공기 중에 퍼졌다.


아름다운 선율에 한없이 평안해지며 저절로 두 눈이 감겼다.


지금 이 상황이 마치 꿈 속인 듯, 평화로운 하늘과 바다가 눈앞에 그려졌다.


보고 싶은 가족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 지나가며 공허한 마음에 그리움이 채워졌다.


한참을 그렇게 몰입해있는데 주변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눈을 살짝 떠보니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의 무리가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황색 바탕에 검정 줄무늬가 온몸에 그려져 있는, 호랑이처럼 생긴 동물의 등에 타고 있었다.


동물의 등 위에는 안장이 얹혀 있었고, 안장의 앞뒤로 혹이 우뚝 솟아있었다.


안장에는 흑갈색 피부의 사람들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선 선인장처럼 강인하고 매서워 보였다.


그들 모두가 낙타털 옷을 입고 있었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매고 있었으며, 저마다 목에는 황금빛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귀에는 반짝이는 금귀걸이를 끼고 있었고 각 손가락에는 마디마다 황금빛 반지가 끼워져 있었으며, 손목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금빛 팔찌는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고, 양손에 활과 창을 잡은 채 근엄한 표정으로 대열을 지어 서있었다.


그 무리 중 머리카락이 제일 긴, 여전사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바다가 성난 파도에게 포효하는 것 같이 소리를 지르자 모두들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사람이 여왕의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내밀자, 여왕이 그 손에 향료 병 하나를 주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서 동굴 입구를 막도록!

저 저주받은 짐승들이 다시는 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솔로몬과 함께 영접했던 야훼의 자녀들을 더 이상 핍박하지 못하도록 이 동굴 속에 적어도 천년 동안 가둘 것이니...”


“네. 명령을 받들겠나이다.”


그 여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물러나서 타고 있는 동물 옆에 걸린 나팔을 잡고 허공에 불었다.


나팔 소리는 무거운 공기를 뚫고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동시에 모여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마치 꿈속의 장면처럼 등장과 퇴장, 이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었다.


넋을 놓은 채 멍하니 그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여왕의 앙칼진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뱀의 머리를 깨뜨려 야훼의 찬송을 전파하리라!”


여왕의 외침 소리에 심장이 다시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여왕을 따라 함성을 지르며 아까 보았던 큰 바위 쪽으로 함께 달려갔다.


그 괴물은 바위 위에 엎드린 채로 더없이 교만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그 괴물의 눈이 나와 마주치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폐로 걸러내지 못할 만큼 짙어지며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대신 알아듣지 못할 쇳소리와 함께 쇳내만 밀려 올라왔다.


또다시 엄습한 어둠에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괴물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조소하고는, 거미줄처럼 갈라진 차가운 눈동자를 부릅뜬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바지에 오줌을 찔끔거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자신 있게 함성을 지르며 전진했는데 이제 내 안에 두려움만이 남아있었다.


고개를 겨우 돌려 아이들을 바라보았는데, 모두들 나처럼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서 어색한 숨소리만 힘겹게 내뱉고 있었다.


오직 스바 여왕만이 오색찬란한 지팡이를 손에 쥔 채로 앞으로 내달릴 뿐이었다.


그 괴물은 그런 스바 여왕이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고는,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작정한 듯 스바 여왕을 향해 입을 벌리고 불을 뿜었다.


즉시 여왕은 품속에서 황금빛 보배합을 꺼낸 후 재빨리 열어젖혔다.


그러자 그 안에서 보라색 빛이 뿜어 나오더니 괴물의 지옥 불을 반으로 갈라지게 했다.


그 괴물은 온 힘을 다해 더 강한 불을 내뿜었다.


괴물의 얼굴이 점점 붉으락푸르락 하게 변하고 있었다.


괴물이 힘이 강해짐과 동시에 여왕의 표정에 곤혹스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여왕을 막아주던 보랏빛도 이 지독한 열기를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 보랏빛은 급격히 흔들리며 빛을 잃기 시작했다.


여왕은 상황의 급박함을 깨닫곤 보배합을 급히 다시 열었다.


그러자 보배합에서 사람의 입이 나와 불을 향해 보랏빛 입김을 불었다.


입김과 불이 하늘에서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때 괴물의 머리 위에 타고 있던 붉은 눈의 사내가 갑자기 여왕을 향해 뛰어올라 달려들었다.


그자는 두 손으로 여왕의 어깨를 붙잡고는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엉덩이 부분에서 꼬리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꼬리 끝부분에서 검정 독침이 나오더니 순식간에 여왕을 찔렀다.


여왕은 갑작스러운 독침 공격에 당황하며 얼굴을 향하던 꼬리를 손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입에서 피를 토하며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꼬리의 끝부분에 있던 독침이 여왕의 손을 찌른 게 분명했다.


여왕의 손에서 검은 액체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서 여왕을 도와야만 했다.


하지만 두 다리가 전혀 말을 듣질 않았다.


그때 환희가 여왕을 향해 달려 나가더니 붉은 눈의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난 네놈이 두렵지 않아!”


환희의 그런 모습을 보자 아이들도 모두 용기가 솟아올랐는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그곳으로 달려가 환희의 앞을 막아섰다.


그런 모습에 나도 힘을 얻어 아이들 앞으로 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막아섰다.


“아이들은 내가 지킬 거야.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런 내 모습을 본 붉은 눈의 사내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조소하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네까짓 놈들이 모여 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놈은 우릴 비웃고는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놈의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

마지막 순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순간 갑자기 외마디 외침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외치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귓전을 울리자 감았던 눈이 저절로 떠졌다.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따가운 햇볕은 모두 사라지고 짙은 그늘이 하늘에 드리워져있었다.


그늘은 우리를 지나쳐 그 괴물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그림자에 그 괴물도 움찔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림자는 하늘 위를 높이 솟아올라 해를 가린 채 떠있었다.


이제야 그림자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분명 독수리의 그림자였다.


그렇다면 주리가 이곳에 와있는 게 틀림없었다.


우리는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지었다.


하명이가 주리를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앉아있는 주리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저기 봐!

여왕 뒤에 주리가 앉아있어.”


하명이의 말을 듣고 여왕이 있는 곳을 동시에 쳐다보니, 주리가 그곳에 무릎을 꿇은 채 앉아있고 무릎 위에서 여왕이 평온한 얼굴을 한 채로 누워있었다.


주리는 그런 여왕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하고는,

그곳에 여왕을 눕힌 채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우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누워있는 우직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우직이는 전혀 아팠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주 가볍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 우직이를 보며 환하게 미소 짓던 주리는 어느새 붉은 눈의 사내 앞을 막아섰다.


붉은 눈의 사내는 주리를 보고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오니 제발 날 놓아주시오.

그러면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


주리는 놈의 말을 듣더니 차가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놈이 여기에서 놓이게 되면, 이후에 더 악한 네놈 친구 일곱을 데리고 돌아올 것을 내 모를 거라 생각하는가?”


붉은 눈의 사내는 그 말에 핵심을 찔린 듯 움찔했다.


“자, 이제 심판의 시간이다!”


주리가 강한 오른팔을 들자 하늘이 금세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했다.


붉은 눈의 사내는 하늘이 변하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눈알을 이러지러 굴리더니 급히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로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붉은 눈의 사내는 주문이 끝남과 동시에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넌 이제 끝장이야. 크크.

신의 바람이여!

놈을 집어삼키소서!”


주리는 붉은 눈의 사내의 그런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하늘을 향해 말없이 오른손을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동쪽 하늘에서 강한 돌풍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하늘이 공기를 가르는 벼락과 함께 괴성을 질러댔다.


먹구름의 인도를 받은 세찬 비가 포효하며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잿빛 구름 속에선 바람을 타고 온 하얀 얼음덩어리가 광활한 대지를 향해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칠흑의 어둠 속에서 얼음 결정을 만난 모든 것들이 고통 섞인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붉은 눈의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하늘을 바라보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 순간 눈보라처럼 새하얀 얼음 결정들이 붉은 눈의 사내와 괴물에게 행렬을 이루어 돌진했다.


얼음 결정이 두 놈의 몸에 닿자마자, 붉은 눈의 사내와 그 괴물은 치명적인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 순간, 주리가 감았던 눈을 뜨니 칠흑처럼 어두웠던 눈동자가 얼음처럼 차가운 파란 눈동자로 변했다.


주변의 후텁지근했던 공기도 주리의 눈동자처럼 차갑고 무거워졌다.


너무 급격한 기온 변화에 몸이 추워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윗니와 아랫니가 만나고 헤어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주리는 전혀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차가운 표정으로 붉은 눈의 사내에게 말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말이 끝나자마자 천지가 번쩍하며 우렛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다.


동시에 강한 섬광이 붉은 눈의 사내의 몸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강한 불빛 속에서 붉은 눈의 사내의 온몸이 녹아내리며 먼지가 되어 공기 중에 흩뿌려졌다.


그 순간 단말마의 비명이 천지에 메아리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괴물은 주인의 최후를 보고 겁먹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커다란 얼음 결정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다를 향해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괴물은 깊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어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주리는 그 괴물이 도망치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주리가 본 하늘 위에서는 거대한 독수리가 신비한 울음소리를 내며 원을 그리듯이 주변을 날고 있었다.


독수리는 주리의 시선을 알아차린 듯 곧장 주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두 날개를 접으며 땅에 엎드렸다.


주리는 독수리의 등에 올라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독수리는 매우 빠른 속도로 먹구름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찰나 후에 독수리가 먹구름을 뚫고 다시 하늘 위에 나타났다.


다시 나타난 주리의 손엔 강렬한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것은 번개를 빚어 만든 칼처럼 매우 견고하고 날카로워 보였다.


주리는 독수리 위에 서서 그 칼을 든 채 외쳤다.


“바다여!

나누어져라!”


주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다가 반으로 갈라졌다.


양옆으로 갈라진 바다 사이에 커다란 길이 생겨났다.


그 길 위에서 괴물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괴물은 방금 전까지 무서운 꿈을 꾼 아이처럼, 몹시 불안한 듯 날개 속에 얼굴을 파묻은 채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순간 괴물이 떠는 모습이 몹시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주리는 그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엎드려 떨고 있는 괴물을 향해 독수리를 타고 날아가더니, 손에 들고 있던 칼로 괴물의 두 머리를 단 번에 베어버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리가 날아오르자마자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이 약속한 듯 얼음 결정을 괴물에게 동시에 뿜어댔다.


얼음 결정들은 순식간에 베여진 괴물의 머리를 깨뜨리고 몸을 잘게 부숴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그제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갑자기 스바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뭇가지로 비파를 만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십자가 군병들아'라는 찬송의 곡조가 사방에 힘 있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곡조의 향기가 주변에 울려 퍼지자 여왕의 수하들이 다시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윽고 그들은 괴물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 벌떼처럼 달려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괴물의 살점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마구 먹어치웠다.


그들이 그렇게 만찬을 끝내자, 때마침 불어온 모래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을 삼켜버렸다.


그들이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본 후 우리들은 동시에 스바 여왕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스바 여왕은 우리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작가의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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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주 하나님의 큰 뜻 (38) 20.11.07 56 1 6쪽
120 주 하나님의 큰 뜻 (37) 20.11.06 38 1 11쪽
119 주 하나님의 큰 뜻 (36) 20.11.03 30 1 9쪽
118 주 하나님의 큰 뜻 (35) 20.10.30 37 1 8쪽
117 주 하나님의 큰 뜻 (34) 20.10.27 31 1 11쪽
116 주 하나님의 큰 뜻 (33) 20.10.22 30 1 5쪽
115 주 하나님의 큰 뜻 (32) 20.10.19 31 1 3쪽
114 주 하나님의 큰 뜻 (31) 20.10.17 32 1 6쪽
113 주 하나님의 큰 뜻 (30) 20.10.16 37 1 3쪽
112 주 하나님의 큰 뜻 (29) +1 20.10.14 53 2 4쪽
111 주 하나님의 큰 뜻 (28) 20.10.10 26 1 7쪽
110 주 하나님의 큰 뜻 (27) +1 20.10.08 37 2 9쪽
109 주 하나님의 큰 뜻 (26) +1 20.10.02 39 2 10쪽
108 주 하나님의 큰 뜻 (25) +1 20.09.29 60 2 7쪽
107 주 하나님의 큰 뜻 (24) 20.09.26 36 1 12쪽
106 주 하나님의 큰 뜻 (23) +1 20.09.22 38 2 4쪽
105 주 하나님의 큰 뜻 (22) 20.09.19 32 2 5쪽
104 주 하나님의 큰 뜻 (21) 20.09.12 36 2 12쪽
103 주 하나님의 큰 뜻 (20) 20.09.11 31 1 4쪽
102 주 하나님의 큰 뜻 (19) 20.09.07 32 1 10쪽
101 주 하나님의 큰 뜻 (18) 20.09.05 37 1 8쪽
100 주 하나님의 큰 뜻 (17) 20.09.03 30 1 3쪽
99 주 하나님의 큰 뜻 (16) 20.09.01 60 1 5쪽
98 주 하나님의 큰 뜻 (15) 20.08.28 33 1 8쪽
97 주 하나님의 큰 뜻 (14) 20.08.27 32 1 15쪽
96 주 하나님의 큰 뜻 (13) 20.08.25 33 1 5쪽
95 주 하나님의 큰 뜻 (12) 20.08.22 50 1 5쪽
94 주 하나님의 큰 뜻 (11) 20.08.21 34 1 11쪽
93 주 하나님의 큰 뜻 (10) 20.08.18 60 1 4쪽
92 주 하나님의 큰 뜻 (9) 20.08.14 32 1 8쪽
91 주 하나님의 큰 뜻 (8) 20.08.13 38 1 8쪽
90 주 하나님의 큰 뜻 (7) 20.08.11 33 1 17쪽
89 주 하나님의 큰 뜻 (6) 20.08.08 32 1 12쪽
88 주 하나님의 큰 뜻 (5) 20.08.07 36 1 13쪽
87 주 하나님의 큰 뜻 (4) 20.08.04 43 1 7쪽
86 주 하나님의 큰 뜻 (3) 20.07.31 29 1 11쪽
85 주 하나님의 큰 뜻 (2) 20.07.30 40 2 8쪽
84 주 하나님의 큰 뜻 (1) 20.07.28 62 1 7쪽
83 주 음성 들리니 (38) 20.07.25 52 1 8쪽
82 주 음성 들리니 (37) 20.07.24 45 1 11쪽
81 주 음성 들리니 (36) 20.07.17 37 1 4쪽
80 주 음성 들리니 (35) 20.07.11 33 1 6쪽
79 주 음성 들리니 (34) 20.07.10 38 1 9쪽
78 주 음성 들리니 (33) 20.07.03 45 1 5쪽
77 주 음성 들리니 (32) 20.06.30 38 1 13쪽
76 주 음성 들리니 (31) 20.06.27 46 1 9쪽
75 주 음성 들리니 (30) 20.06.26 32 1 11쪽
74 주 음성 들리니 (29) 20.06.24 36 1 15쪽
73 주 음성 들리니 (28) 20.06.20 61 1 10쪽
72 주 음성 들리니 (27) 20.06.19 53 2 12쪽
71 주 음성 들리니 (26) 20.06.16 38 1 6쪽
70 주 음성 들리니 (25) 20.06.13 41 1 3쪽
69 주 음성 들리니 (24) 20.06.12 31 1 7쪽
68 주 음성 들리니 (23) 20.06.09 32 1 4쪽
67 주 음성 들리니 (22) 20.06.06 31 1 3쪽
66 주 음성 들리니 (21) 20.06.05 36 1 5쪽
65 주 음성 들리니 (20) 20.06.02 42 1 3쪽
64 주 음성 들리니 (19) 20.05.29 35 2 4쪽
63 주 음성 들리니 (18) 20.05.26 34 2 3쪽
62 주 음성 들리니 (17) 20.05.23 37 1 5쪽
61 주 음성 들리니 (16) 20.05.22 34 1 10쪽
60 주 음성 들리니 (15) 20.05.19 34 1 2쪽
59 주 음성 들리니 (14) 20.05.16 34 1 10쪽
58 주 음성 들리니 (13) 20.05.15 32 1 4쪽
57 주 음성 들리니 (12) 20.05.12 41 1 6쪽
56 주 음성 들리니 (11) 20.05.09 28 1 6쪽
55 주 음성 들리니 (10) 20.05.08 32 1 12쪽
54 주 음성 들리니 (9) 20.05.05 58 1 10쪽
53 주 음성 들리니 (8) 20.05.02 35 1 8쪽
52 주 음성 들리니 (7) 20.05.01 33 1 3쪽
51 주 음성 들리니 (6) 20.04.28 41 1 10쪽
50 주 음성 들리니 (5) 20.04.25 34 1 5쪽
49 주 음성 들리니 (4) 20.04.24 62 1 9쪽
48 주 음성 들리니 (3) 20.04.21 67 1 4쪽
47 주 음성 들리니 (2) 20.04.18 31 1 3쪽
46 주 음성 들리니 (1) 20.04.17 43 1 5쪽
45 잔잔한 시냇물 (11) 20.04.14 39 1 6쪽
44 잔잔한 시냇물 (10) 20.04.11 42 1 9쪽
43 잔잔한 시냇물 (9) 20.04.10 37 1 2쪽
42 잔잔한 시냇물 (8) 20.04.07 41 1 10쪽
41 잔잔한 시냇물 (7) 20.04.04 33 1 10쪽
40 잔잔한 시냇물 (6) 20.04.03 33 1 15쪽
39 잔잔한 시냇물 (5) 20.03.31 34 1 6쪽
38 잔잔한 시냇물 (4) 20.03.28 38 1 2쪽
37 잔잔한 시냇물 (3) 20.03.27 35 1 14쪽
36 잔잔한 시냇물 (2) 20.03.24 37 1 7쪽
35 잔잔한 시냇물 (1) 20.03.24 48 1 3쪽
34 산에 부는 바람 (3) 20.03.24 35 1 11쪽
33 산에 부는 바람 (2) 20.03.17 32 1 11쪽
32 산에 부는 바람 (1) 20.03.14 33 1 3쪽
31 늘 푸른 봉우리 (5) 20.03.13 45 1 16쪽
30 늘 푸른 봉우리 (4) 20.03.10 39 1 13쪽
29 늘 푸른 봉우리 (3) 20.03.07 60 1 11쪽
28 늘 푸른 봉우리 (2) 20.03.06 43 1 16쪽
27 늘 푸른 봉우리 (1) 20.03.03 33 1 12쪽
» 망망한 바다 (6) 20.02.29 38 1 19쪽
25 망망한 바다 (5) 20.02.28 39 1 18쪽
24 망망한 바다 (4) 20.02.25 41 1 11쪽
23 망망한 바다 (3) 20.02.22 37 1 13쪽
22 망망한 바다 (2) 20.02.21 43 1 14쪽
21 망망한 바다 (1) 20.02.18 38 1 5쪽
20 밤 하늘 빛난 별 (4) 20.02.15 37 1 26쪽
19 밤 하늘 빛난 별 (3) 20.02.14 37 1 7쪽
18 밤 하늘 빛난 별 (2) 20.02.11 43 2 8쪽
17 밤 하늘 빛난 별 (1) 20.02.08 38 2 11쪽
16 아침 해와 저녁놀 (5) 20.02.07 42 2 32쪽
15 아침 해와 저녁놀 (4) 20.02.04 46 2 9쪽
14 아침 해와 저녁놀 (3) 20.02.01 38 2 14쪽
13 아침 해와 저녁놀 (2) 20.01.31 45 2 6쪽
12 아침 해와 저녁놀 (1) 20.01.28 50 2 6쪽
11 맑은 새소리 (3) 20.01.25 47 2 18쪽
10 맑은 새소리 (2) 20.01.24 53 2 25쪽
9 맑은 새소리 (1) 20.01.21 50 2 4쪽
8 고운 백합화 20.01.18 44 2 17쪽
7 솔로몬의 옷 (2) 20.01.18 80 2 12쪽
6 솔로몬의 옷 (1) 20.01.14 81 2 5쪽
5 주님의 세계 (4) +1 20.01.11 86 4 12쪽
4 주님의 세계 (3) +1 20.01.10 111 5 12쪽
3 주님의 세계 (2) +1 20.01.07 98 4 6쪽
2 주님의 세계 (1) +1 20.01.04 184 4 14쪽
1 프롤로그 +5 20.01.03 479 8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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