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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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모
작품등록일 :
2020.01.0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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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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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음성 들리니 (4)

DUMMY

“흑흑.”


누군가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감겨있던 눈이 저절로 떠졌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이 어둠에 잠겨 있었다.


“으... 추워...”


“아저씨!

정신이 드세요?”


진영이가 추위에 덜덜 떨며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들 괜찮니?

다친 사람은?”


내 말에 진영이가 어둠이 덮인 구석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누워있었다.


“시영아!

환희야!”


시영이와 환희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얼음 알갱이 속에 파묻혀있었다.


아이들의 코에 손가락을 댄 후, 이마에 손을 올렸다.


다행히 둘 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고열과 함께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얘들아!

여기서 아이들을 보고 있어.

선생님이 나가서 나무 잎사귀를 구해올게.”


내 말에 성우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비와 성현이가 함께 갔어요.

지완이와 동하도 따라갔고요.”


“그래?”


고통 속에 누워있는 아이들도, 잎사귀를 구하러 간 아이들도 모두 걱정이 되었다.


‘우리에게 왜 이런 시련이...

가뜩이나 비행기 사고로 겨우 살아남은 아이들한테...

하늘에서 비 대신 우박이 내리다니...’


하늘이 지독히도 원망스러웠다.


그 누군가의 말대로 삶은 고통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란 실패의 연속이었다.


뭘 해도 풀리지 않는, 한 마디로 운이 더럽게도 없던 놈이었다.


지금도 매일 직장 상사들의 눈치 보기 바쁘고 고객들에겐 굽신거리는, 하루살이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불쌍하다 못해 처량해 보였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기름진 몸뚱아리와 불뚝 나온 배뿐이라니...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꿈은 잊은 지 오래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었고, 행복이나 기쁨이란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라고 자위하며 사는 삶.


친구가 교회에 오면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다는 말에 속아 교회에 나왔고, 강 권사님의 부탁을 거절 못해 어쩔 수 없이 아동부 교사를 맡았던 나.


그런 내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눈앞에 스쳐갔다.


내가 봐도 내 삶은 한심스러웠다.


이런 내가 스무 명도 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니...


날 잘 아는 친구 놈들이 보면 분명 코웃음을 칠 터였다.


‘차라리 이 지긋지긋한 생을 여기에서 포기하면 어떨까?

그러면 단 한 명이라도 내 죽음을 기억해줄까?’


거대한 좌절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상념에 빠져 양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때 담비와 함께 잎사귀를 구하러 갔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아이들의 인기척 소리는 황무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했다는 소리보다 더 기쁘게 들렸다.


“얘들아!

왜 이렇게 늦었어?

잎사귀는 구해왔어?”


내 들뜬 물음에 아이들은 전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담비가 괴로운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어찌 된 일인지 그 많던 잎사귀가 어디에서도 보이질 않아.”


난 농담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담비를 바라보았다.


담비는 그런 내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농담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순간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렸다.


아이들도, 나도, 그 누구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친 아이들을 버리고 갈 수도, 그렇다고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젠 이곳에서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할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푹 숙여지더니 긴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리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한숨 소리는 어느새 흐느낌으로 변했고, 이내 커다란 통곡 소리로 바뀌었다.


“선생님...”


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주저앉아 있던 날 불렀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향해 무거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곳엔 진영이를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아롱지어 있었다.


아이들이 눈물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파왔다.


어느새 내 눈에도 하얀 이슬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얘들아!

미안해!

선생님이 너무 나빴어.

너희들은 날 의지하고 있을 텐데...”


차마 말을 끝내지 못하고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이들도 내 옆에 다가와 나와 함께 울어주었다.


이 순간 아이들이 내 곁에 있어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그때 어딘가에서 세미한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하나님 아버지.

선생님을 낫게 해주세요.”


환희의 목소리가 틀림없었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환희를 바라보았다.


환희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어? 이상하네.

분명히 환희의 목소리였는데...’


그때 어딘가에서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팔로 눈물을 훔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놀랐죠?”


환희와 시영이가 배꼽을 붙잡으며 웃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이제 괜찮은 거야?”


환희가 손가락으로 오른쪽을 가리켰다.


환희의 오른 편엔 흑갈색의 두더지가 고개만 빼죽 내민 채, 조소 어린 표정으로 날 보며 히죽거리고 있었다.


지금 내 손에 몽둥이가 있었더라면,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날 비웃고 있는 놈의 머리를 단번에 내려치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환희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저기 있는 두더지가 저희에게 거대나무 잎사귀를 줬어요.

제가 고통 중에 주변에 있는 동물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는데, 다행히 주변에 있던 저 두더지가 저희를 도와줬어요.”


두더지는 잔뜩 뾰로통한 표정으로,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이런 곳에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다니...

내가 너희들을 찾으러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 거 같아?”


두더지는 공치사를 하려는 듯 자못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런 두더지가 마뜩잖았지만, 아이들을 살려준 것에 대해선 두 말할 나위 없이 몹시 감사했기에 영혼없는 말투로 고맙다고 말을 건넸다.


내 감사의 말을 듣고 나자, 두더지는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 기분이 좋아졌으니 굿뉴스를 하나 알려줄까?”


“그래주면 고맙지.”


사실 별로 알고 싶지 않았으나, 한껏 기분이 좋아진 두더지의 심기를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마음에 없는 대답을 했다.


“그래? 좋아.

너는 내 친구니 특별히 너에게만 알려주지.

오는 길에 네놈처럼 생긴 종자들을 보았지.”


“정말?

어디에서?

몇 명이었어?”


"한 번에 하나씩만!

난 머리 아픈 건 질색이라고.”


답답했지만 두더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더지는 달아오른 내 표정이 재미있는지 천천히 뜸을 들이며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애를 태우더니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놀이도 더 이상은 못하겠구먼.

그렇게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두더지는 갑자기 짜증을 내더니 이내 태도를 순식간에 바꾸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어이!”


난 계속된 밀당에 너무 지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두더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더지는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너 내 말을 듣고 있긴 한 거야?

그나저나 내가 아주 좋은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두더지는 말을 마치고 나서 또다시 힐끔거리며 내 눈치를 보았다.


“말해...

듣고 있어.”


두더지는 내 반응에 안도의 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내 소원을 들어주면 친구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지.”


두더지의 말에 대답할 기운도 없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약속한 거다!”


두더지는 이 말과 함께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를 바라보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구멍 위로 두더지가 고개를 다시 내밀며 소리쳤다.


“뭐 하고 있어?

당장 날 따라오라고!”


두더지의 호통에 냉큼 일어나 땅속 구멍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구멍은 사람 한 명은 충분히 들어갈 만큼 넓었다.


그제야 따라오라는 두더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은 두더지의 넓은 등을 따라 어둠에 둘러싸인 미지의 공간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작가의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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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잔잔한 시냇물 (7) 20.04.04 3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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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망망한 바다 (5) 20.02.28 39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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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망망한 바다 (2) 20.02.21 43 1 14쪽
21 망망한 바다 (1) 20.02.18 38 1 5쪽
20 밤 하늘 빛난 별 (4) 20.02.15 37 1 26쪽
19 밤 하늘 빛난 별 (3) 20.02.14 37 1 7쪽
18 밤 하늘 빛난 별 (2) 20.02.11 43 2 8쪽
17 밤 하늘 빛난 별 (1) 20.02.08 38 2 11쪽
16 아침 해와 저녁놀 (5) 20.02.07 42 2 32쪽
15 아침 해와 저녁놀 (4) 20.02.04 46 2 9쪽
14 아침 해와 저녁놀 (3) 20.02.01 39 2 14쪽
13 아침 해와 저녁놀 (2) 20.01.31 45 2 6쪽
12 아침 해와 저녁놀 (1) 20.01.28 50 2 6쪽
11 맑은 새소리 (3) 20.01.25 47 2 18쪽
10 맑은 새소리 (2) 20.01.24 53 2 25쪽
9 맑은 새소리 (1) 20.01.21 50 2 4쪽
8 고운 백합화 20.01.18 44 2 17쪽
7 솔로몬의 옷 (2) 20.01.18 80 2 12쪽
6 솔로몬의 옷 (1) 20.01.14 81 2 5쪽
5 주님의 세계 (4) +1 20.01.11 86 4 12쪽
4 주님의 세계 (3) +1 20.01.10 11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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