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적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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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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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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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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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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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

.




DUMMY

"꽝 !!"


소총탄이 들어가자 놈이 움찔, 운동능력이 막혔다.


뒤따르던 2,3호차가 놈에게 접근해 가볍게 화염병.

정확히는 기름병을 던졌다.

아니, 놓고 갔다.


덜컹대는 차 안에서 쓰기에 '시너' 나 '화염병'은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심지 없이 휘발유에 설탕 등을 몇 가지 섞은 '기름병'을 던진 건데 효과는 충분했다.

네 개중 세 개가 놈을 직격해 몸 전체를 뒤덮었다.


되돌아온 1호 차에서 날아간 작은 불꽃에 놈의 몸이 펑, 하듯 타올랐고,

불꽃에 뒤덮인 두억시니가 지랄을 하건 분노를 하건 알 바 아니라는 듯 기름병 몇 개가 더 날아가 그에 비례해 타오르던 화염도 거세졌다.


중국인들이 축구 응원할 때마다 찌아유(加油) 라 외치는 게 아주 잘 이해 갔다.

저 새낀 전력이탈 확정.


이제 네 마리 남았다.

총탄 한 발에 한 놈이라면 수지맞는 장사다.


지프 동선에 애매하게 있던 빠가사리 한 놈을 들이받았다.


"떠텅 !!"


왜 생물을 들이받았는데 이런 소리가 나는지 모르겠다.

빠가사리 한 마리가 스텐 범퍼와 지프 그릴에 연달아 부딪히고선 바닥을 굴렀는데,

놈에게 우리 명함을 줄 필요도,

보험사에 전화할 필요도 없다는 게 즐거웠다.




2호 차가 근접할 때마다 '사랑의 밧데리'가 들려왔다.

저 미친년은 대체 볼륨을 얼마나 올린 거야.

전투 중에 왜 뽕짝을 듣고 있냐고.


'치잇... 1호 차에서 통신 보냅니다. 2호 차, 뒤지고 싶지 않으면 음악 끄라고 하십니다."


"치잇... 2호차, 뒤지고 싶지 않습니다. 음악 끄겠습니다."




제유와 세현은 스트라이커 역할이다.

지근거리에서 권총탄을 머리나 가슴에 박고 이탈.

가끔 놈들이 차량의 진행 방향을 예상해 달려들기도 했지만 지프 속도를 따라잡기엔 무리였다.

설령 막아선다 하더라도 들이받아 버리면 그만이고.

이런 경우를 대비해 에어백은 아예 빼버렸다.

전투 중에 에어백이 터져 시야를 가리기라도 하면 그게 더 좆되는 상황이니까.


30여 분만에 놈들이 대충 정리됐다.

총탄 아홉 발과 화염병으로 다섯 두억시니를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고 빠가사리의 절반은 땅에 구르고 있다.

이젠 천천히 두억시니에 화공을 지속하면서 보이는 빠가사리를 밟아 죽이면 된다.


"쩌걱 !!" 하고 밟히는 소리가 섬득하긴 하지만,

혹시라도 타이어와 차체에 데미지가 쌓일까 신경도 쓰이지만,

놈들이 한둘도 아닌데 섣불리 차에서 내릴 생각은 없었고,

위급상황이 아니니 빠가사리 따위에 총탄을 써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북쪽에서 집결한 놈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드론이 멀어서 자세한 전력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두억시니 7마리 이상. 빠가사리 40마리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새 좀 늘었네. 예정 시각은?"


"20분 후에 조우할 것 같습니다."


"시간 충분하네. 신참들 오기 전에 얘네랑 더 놀아주자."


그때 무전이 들어왔다.


"치익.. 2호 차입니다. 수석 기사가 이제 음악 틀어도 되냐고 합니다."


"... 볼륨은 줄이라고 해."


"치익.. 1호 차입니다. 볼륨 줄여서 듣는 건 괜찮답니다."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착하고 순한 애들이 생명체를 죽이는,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니고 태워 죽이고 뭉개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트라우마가 쌓이고 있을 거다.

적당히 스트레스 높아지지 않게끔 봐주는 것도 필요하겠지.

무전기 소리와 주위 소음을 판별할 정도의 볼륨이라면..




"치익..!! 감사합니다!! 볼륨 10 이하로 맞추겠습니다 !!"


무전기 소리에 벌써 음악이 섞여 들렸다.


쿵자라작작 쿵작작짝. 쿵자라작작 쿵작작짝. 나를 사랑으로 채워줘요. 사랑의 뻣데리가...


미치겠네.

마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루에서 듣는 크루나 후크송은 너무 강력하다.




10분 후,

더는 서 있는 놈들이 없어졌다.

곧 새로운 예쁜이들이 수청 들러 올 테니 미리 차에서 내릴 건 없겠지.




"치익... 다들 담배 한 대 피우시랍니다."


제유와 연후는 바로 볼륨을 높이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이번 원정 들어서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 담배다.


아루에 '흡연자' 라 부를 만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기사쯤 되면 '비흡연자' 라 불러도 되는 사람 또한 거의 없다.


담배는 이들에게 엄청난 사치품이기도 했고,

흡연은 건강 문제를 떠나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았다.

살아있는 생명을 그저 인간의 기호를 위해 말려 죽인 후 태우는 건 이들의 정서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웬만큼 봐주는' 건 있다.

기사들쯤 되면 부잣집에서 자라왔으며 연봉도 일반인과 비교가 불가능하다.

제유도 집에 가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필요 없을 정도로 하녀들이 모든 걸 다 해준다.

십 대 시절부터 친구들과 담소 나누며 담배 한 개비 피우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루의 부유층에 있어 담배는 가끔 즐기는 일탈 정도다.


하지만 폐하가 가져오신 크루나 담배는 차원이 달랐다.

필터라는 게 있었음에도 맛이 더 강했다.

기분 탓인지 화약 냄새도 조금 느껴지는 거 같았고,

아루 담배와 가장 다른 점은 '괜히 또 피우고 싶어지는' 거였다.


라면도 그렇지만,

크루나에서 온 모든 것들은 무서울 만큼 중독적이었다.


폐하는 담배를 권하지 않으셨지만 딱히 말리지도 않으셨다.

언제나처럼 '그건 스스로 알아서 할 문제' 라는 입장이셨다.


원정 보급품으로 일주일에 담배 한 갑씩이 지급됐는데,

비흡연자인 스엔과 트라는 덕분에 인기 폭발.

현재 원정대 내에서 그들이 가진 크루나 담배 한 개비는 300아루나에 거래되고 있는데도 시세가 계속 오르는 추세다.


이제 두 개비밖에 안 남았는데.

다음번 보급은 사흘이나 남았는데.


'좀 참았다가 아예 오늘 전투 끝나고 피울까?'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른 채 라이터가 켜졌고 필터가 빨렸다.

이왕 불이 붙었으니 아까워하지 말고 맛있게 피워야지.




평원은 고요했고,

꿈틀거리는, 아직도 불타는 놈들을 바라보며 흘리는 담배 연기는 기분이 묘했다.

잠시 후엔 다시 피가 터지고 뼈가 씹히고 살이 타오를 거다.


"폐하께선 좀 그럴듯한 음악을 들으시던데."


제유는 연후의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사랑의 빳데리가 뭐 어때서?? 폐하께서 들으시는 건 가사를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그리고 전부 노래가 무섭고 이상해. 듣기 힘들어."


"그런데도 그게 전투할 땐 더 잘어울리지 않아요?"


"아냐. 빳데리가 최고야."


담배 연기 너머 놈들의 모습이 일렁이는 거 같았다.




"치익... 4-5분 후 전투 개시합니다. 전원 담배 소등하시고 전투 준비."


트라 언니의 무전을 듣고는 조심스레 담배 불똥을 잘라냈다.

나중에 다섯 모금은 더 빨 수 있을 거 같았다.




트라 언니는 빈이 될 거라는 소문이다.

폐하께서도 싫지 않으신 거 같고.

조금 서운한 마음은 있지만.. 내가 어쩔 방법은 없다.

지금은 내가 언니보다 좀 더 높지만 미리 말 잘 들어서 나쁠 거 없지.

그래서인지 세현 님도 트라 언니의 말은 들어주는 편인 거 같다.

선영이도 기세가 눌린 눈치고.








전투가 끝났다.


평원 여기저기에서 덜 꺼진 연기가 피어올랐고,

검은색 놈들 사체가 한가로이 뒹굴거리는 풍경은 오묘했다.


놈들의 살이 익는 냄새는 머리카락 탈 때 나는 냄새와 유사했다.

역겨웠고, 기분 탓인지 뭔가 독성이 섞인 듯한 느낌도 들었다.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두억시니는 권총으로 확인사살 한 발.

빠가사리는 대원들이 직접 벌목도를 쑤셔 넣었다.


"속이 울렁거린다. 서둘러. 어서 현장 이탈하자."


"넵!!"


대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두억시니 열한 마리와 빠가사리 예순두 마리를 죽였다.

우리측 피해는 전무하다.

아. 3호 차 헤드램프 하나가 깨졌고 실탄 스무 발 소비한 걸 피해라고 봐야 하나.



대승이었는데도 마냥 기쁘지 않았다.

마땅히 이길 놈들에게 이겨서 담담한 게 아니다.


놈들이 집결하는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러다간 수백 마리.

아니... 천 단위의 빠가사리에 둘러싸이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서대륙의 '모든' 빠가사리와 두억시니에 포위된다면,

그렇다 해도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루아드와 빠가사리는 다르다.

전투력만 다른 게 아니다.


빠가사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생물'의 궤에서 벗어나 있다.

놈들은 두려움을 못 느끼는 거처럼 보인다.

곤충과 유사하다는 느낌은 자주 받았지만...


만약 놈들이 군집 곤충처럼 개체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우리의 도주로를 막는 데에 전력을 집중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전력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올지 모른다.


후우.


연기를 뱉고선 오른손 검지로 담배 불똥을 쳐 날렸다.

꽁초를 던지자 제유가 냉큼 달려와 집어 들었다.


"... 뭐 하는 짓이야?"


"폐하. 아직 다섯 모금은 더 빨 수 있지 않습니까 !!"


"너, 거지세요?"


"담배도 아깝고... 폐하와 입 맞추는 느낌도 나쁘지 않아서..."




어이구, 이년아.

소심하게 고백하긴.


그래도 새삼 고맙다.

크루나에 있을 땐 어느 여자가 나를 거들떠봤던가.

고대 나왔다는 말에 '오, 공부는 좀 했나 보네.' 시선을 잠시 보내는 게 끝이었다.


상위 1퍼센트의 육체 능력도,

괜찮았다 자부하던 업무 능력도,

죄다 이 엿 같은 얼굴 탓에 평가절하당하는 기분이었다.


김경철. 28세. 군필.

중견기업 주임. 연봉 3400.

부모가 안 계시며 삼촌 부부에게 빨대 꼽힌 덩치 크고 못생긴 남자.

모아둔 돈 170만 원.


.. 씨발, 결혼 정보회사에 가입할 생각조차 못 해봤다.

그나마 상식적인 회사에 다니고 괜찮은 대학 나온 게 위안거리지만,

한국에서 결혼이라는 건, 아직도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의식이 조금 있다.

하지만 내 집안이라곤 차라리 없는 게 훨씬 나은 수준.

내 현재 가치도 미래 가치도 너무 암담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처럼,

여자에게 '저랑..' 하고 말을 꺼내는 순간에 따귀를 맞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연애 한 번은 해봤으니까 뭐.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라는 개인에 꽂혀준 트라.

은근슬쩍 호감을 드러내는 선영과 제유.

모두가 크루나 기준에서도 상당한 미녀들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크루나에서의 그것과 차원이 다르다.




괜히 크루나 담배를 가져왔나.

아닌 게 아니라 무분별한 밀수는 이제 지양해야 할 거 같다.

아루인들은 크루나 문물에 직접 노출되기엔 너무 여리고 순하다.


안 그래도 크루나가 아루를 침식하는 느낌에 못마땅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내가 이미 크루나보다는 아루의 편에서 사고한다는 증거다.


이들은 이들대로.

크루나인들은 크루나인 대로.

이번 원정만 끝나면...




경철은 반쯤 남아있던 담뱃갑에서 서너 개비를 빼 제유에게 내밀었다.


"이걸 피워. 앞으로 꽁초 주워 피는 모습 보이면 죽여버릴 테니까 그런 짓 하지 말고."


환하게 웃는 제유에게 연후와 영수가 '나도 한 입만' 표정으로 다가왔다.

로마 콜로세움 광장에서 마주쳤던 집시 애새끼들도 늬들보단 덜 거지 같겠다.








"아하하하하!!!"


트라는 석돌이 깎은 손톱이 날아가는 걸 보며 깔깔거렸다.




처음엔 다들 손톱깎이를 무서워했다.

손가락 끝을 잘라버릴 것만 같았던 모양이다.


원래 일과를 마친 기사들은 목욕하고서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면 된다.

하녀들이 마사지해주고 귀와 손톱 청소를 해주니까.


하지만 원정 중엔 그래 줄 하녀가 없으니 스스로 모든 걸 알아서 해야만 했는데,

손톱깎이는 그 시간을 비약적으로 줄여주는 귀물이었다.


신통하기도 하지.

이렇게나 작은 도구가 이렇게나 편리하다니.


'또각, 또각, 또각'


서너 번만 누르면 손톱 하나가 깔끔하고도 예쁘게 정리된다.

게다가 마지막에 손톱이 튀어 나가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게 더 재미있었다.


손톱을 깎는 석돌 주위엔 너덧 명의 대원들이 몰려 손톱이 어느 방향으로 튀는지 웃고 떠들며 내기하고 있었다.


.. 뭐랄까.

다 큰 놈들이 저러고 노는 걸 보고 있자면...


처음엔 뭔가 병신같고 찌질해 보였었다.

조금 지나니 귀여워 보였고,

최근에 와선...

사실 좋아 보였다.

인간은 저렇게 살아가는 게 더 좋은지도 모른다.


크루나의 물질과 문화가 이들을 일그러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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