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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소영주가 이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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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0.01.12 16:01
최근연재일 :
2020.02.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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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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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UMMY

지옥같은 시간이 지나고 날이 어두워졌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불침번을 정했다. 아직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잠이 왔다.


“.......없을 겁니다.”

“......걱정···세요.”


희미한 말소리에 정신이 조금씩 또렷해졌다. 실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니 일행 대부분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일부는 코까지 골아가며 자고 있었다. 단, 두 명. 짙은 갈색 머리의 피에르 경과 소영주만이 깬 채로 있었다. 그리고 소영주 혼자 뒤뚱거리며 동굴 쪽, 정확히 고블린 소굴로 걸어가고 있었다. 피에르는 그런 소영주의 뒷모습을 보느라 내가 깬 걸 모르고 있었다.


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고민을 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했다는 걸 잊을 정도로 빠르게 결론 지었다.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모든 신님. 제발.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를 올리고 편안한 잠에 다시 빠져 들었다.


이 세계에 신관은 분명 존재한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성자와 성녀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신의 힘으로 일어나는 온갖 기적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나 발롱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드보아 발롱은 단언한다. 신은 없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실제로 있더라도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무의미 하기 때문이다.


“모두 죽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이미 토벌을 한 모양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멀쩡한 소영주를 보고, 난 새삼 신의 존재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는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고블린 소굴로 돌입 했다. 어제 정한 대로 프리드 경과 병사들 중 일부가 들어 갔고, 난 밖에 남아 소영주를 호위했다. 프리드 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소굴을 나왔다.


“아무래도 얼마 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참 묘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뒤늦게 조사하러간 사냥꾼도 아무래도 고블린들이 간밤에 당한 것 같다는 말을 해 일행의 의구심이 한껏 짙어졌다.


“고블린들이 토벌 되었다면 좋은 일 아닌가요? 이만 돌아가죠.”


소영주는 눈에 띌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나와 프리드 경 뿐만 아니라 병사들, 사냥꾼 까지 그걸 묘하게 바라봤지만, 감히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다 문득 소영주의 왼쪽 팔목에 눈이 갔다. 처음 본 밋밋한 은색 팔찌가 보였다. 소영주가 저런걸 차고 있었나?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물어 볼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우리는 사냥꾼의 안내를 받으며 북서쪽으로 이동했다. 이대로 가면 저녁 쯤에는 호른에 속한 마을에 도착 할거라던 사냥꾼의 말과 달리 우리는 점시나절에 마을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마차의 창문을 열고 주변을 둘러보던 소영주는 나와 프리드 경 뿐만 아니라 모든 일행이 심각한 표정을 짓자 멈칫 하더니 피에르에게 상황을 듣고 있었다. 그와 별개로 나와 프리드 경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제가 알기로는 이곳에 마을이 없는 걸로 아는데 혹시 아십니까?”

“저도 모릅니다.”


우리는 사냥꾼을 불러 마을에 대해 물었고, 사냥꾼은 대답하지 못했다. 프리드 경은 종자에게 정찰을 명령했다. 잠시 후에 돌아온 프리드 경의 종자는 유랑민들이라는 의견을 냈다.


유랑민 혹은 화전민등 다양하게 불리긴 하지만 그 본질을 보자면 그냥 도적무리에 불과했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땅의 주인인 영주의 것이었으며, 이를 허가 없이 사용하는 것은 반역에 준하는 행위였다. 여기는 즈베른의 영역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위치였지만 상관 없었다. 즈베른 남작령은 호른 백작령에 속해있었고, 즈베른 남작은 호른 백작의 봉신이자 재무관으로 호른성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즈베른에 속한 기사이자 가병인 이상 반드시 토벌해야만 했다.


“모두 여기 남고 경과 저만 가도록 하죠.”

“예.”


내키지는 않았지만 프리드 경의 제안을 거부 할 수는 없었다.


“잠깐.”


돌격 준비를 하던 나와 프리드 경을 소영주가 불러 세웠다.


“절대 안됩니다.”


그리고 얼굴을 한껏 일그러트리며 우리를 노려봤다. 나는 힐끔 창문 너머 피에르를 쳐다봤다. 그는 내 시선을 외면한채 고개를 반대로 돌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소영주님.”

“이건 명령입니다.”


프리드 경이 반박하려 했지만 소영주는 단호하게 대답하며 노려봤다.


“저는 즈베른의 기사로, 제 주군은 오직 즈베른 남작님 뿐입니다.”


프리드 경은 강경하게 나섰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와 프리드 경, 그리고 소영주를 제외하더라도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소문이 퍼진다면 즈베른 남작님은 어떤식으로든 피해를 입게 된다. 그리고 이 많은 입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소영주는 마차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놀랍도록 재빠른 움직임으로 프리드 경의 말 고삐를 붙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꼭 붙들고는 프리드 경을 죽일듯이 노려봤다. 소영주의 눈에서는 의외의 박력과 살기마저 느껴졌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어떤식으로든 결단을 내려야 겠군요. 모두 전투 준비.”


내 말에 병사들은 급히 무기를 꺼내고 소영주와 프리드 경을 둘러쌓았다. 난 그 둘을 무시하고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20명 정도로 보이는 남자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난 앞에 오는 사람들을 경계 하면서 소영주와 프리드 경의 대치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어떤 결정을 하든 책임을 지는건 즈베른 남작님과 소영주의 몫이었다. 아마 이 사실을 프리드 경도 당연히 알고 있을테고. 지금의 모습은 일종의 쇼였다. 호위 책임자이자 기사로서 소영주에게 책임을 완전히 전가시키기 위한 쇼. 내 예상대로 프리드 경은 마지못한 듯 검을 집어넣었고, 눈치를 보던 나와 병사들도 무기를 집어넣었다.


그 때서야 소영주는 말고삐를 놓았다.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덜덜 떨리던 손에서 힘을 뺐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안가는지 왼손으로는 끝까지 프리드 경의 말고삐를 쥐고 있었다. 확실히 소영주는 좀 많이 멍청했다.


다가오던 놈들도 그런 기색을 느꼈는지 조금씩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나와 프리드 경은 입을 다물었다.


“안녕하세요? 좋은 날이네요.”


소영주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20여명의 남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하나 둘 한 남자에게 시선이 쏠렸다. 185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구릿빛 피부에 근육이 도드라진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나와 프리드 경을 보더니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기사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아는 자 같았다. 그리고 주변에 신호를 보내자 남자들은 들고 있는 무기를 살그머니 내렸다. 칼을 찬 사람도 소수 있었지만, 대부분 농기구를 들고 있었다.


소영주는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꺼냈다. 근육질 남자도 그에 호응하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두 눈으로는 나와 프리드 경의 행동을 감시했다. 그런 기색을 느낀건지 다른 남자들도 나와 프리드 경을 부릅뜬 눈으로 째려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레이디도 아니고 후줄그레한 남자들의 뜨거운 시선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잠자코 참기로 했다. 굳이 나서서 소영주의 불만을 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쾌할 한 척 어색하게 떠들고 다른 일행은 서로 째려보는 묘한 일행은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하하. 마을이 참 좋네요. 하.하.하...아.”


아마 미리 생각해 뒀던 말인가보다. 일단 뱉고 나서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변하는 걸 보니. 그만큼 소영주도 긴장한 걸로 보였다.


그리고 농담으로라도 마을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아니, 마을이라고 할 수나 있을까. 언뜻 집처럼 보였던 건물들은 대부분 천막이나 나무와 짚으로 엉성하게 만든 모양새였다. 어제 노숙했던 우리 야영지가 고급 여관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그래도 마을처럼 보이는 건 5명의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쩍 마른 모습이 볼 품 없어 보이긴 했지만.


마을을 둘러보다 느낀건 아무래도 리더로 보이던 남자는 뒤늦게 합류 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환경에서 그런 몸을 유지 할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힘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수탈 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아이들과 사람들이 보내는 시선을 보니 그건 아닌거 같고.


그리고 돌발적으로 소영주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우리 일행과 상대 일행이 동시에 움찔 했지만, 다행이 칼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이쪽은 소영주가, 상대는 아이들이 중요할테니까.


그리고 소영주는 다섯명의 아이들과 제법 잘 어울렸다.


“식량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길 가까이 접근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식량을 구해야 했으니까요. 식량만 구한다면 바로 호른을 떠나겠습니다.”


근육질의 남자는 제법 의젓하게 소영주를 향해 외쳤다. 소영주는 남자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아이들과 어울렸다.


“어?”


그러다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들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밝은 은색 머리에 에메랄드 빛이 나는 눈을 빛내며 소영주의 질문에 밝게 대답하고 있었다. 낡은 옷과 더럽게 때가 여기저기 낀 것을 제외하면, 제법 귀엽게 보였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프리드 경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 기준에서야 귀여운 모습이지만 아이의 영양 상태를 고려했을 때 생각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몰랐다.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눠 본 것도 아니고, 모든 대화를 일일이 들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확신 할 수는 없지만, 대비 할 필요는 있었다.


나와 프리드 경, 그리고 병사 뿐만 아니라 어제 합류한 사냥꾼도 알 정도로 소영주는 망나니 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13살 이라고? 혹시 고아니?”


소영주의 목소리가 커졌다. 누가 봐도 흥분 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때 에는 우리 뿐만 아니라 상대쪽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기 시작했다. 소영주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던 소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다른 남자들을 살펴봤다. 소녀의 말이 맞는지 직접 나서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리나는 제 가족입니다.”


그 때 남자들의 리더 역할을 하던 근육질 남자가 나섰다. 난 남자를 보다 리나라는 소녀를 봤고, 다시 고개를 돌려 남자를 살펴봤다. 장담하건데 두 사람은 절대 가족이 아니었다. 유괴범과 납치 당한 불쌍한 소녀라면 모를까.


“마르토프?”


그런 남자를 향해 소영주는 낯선 단어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단어가 무슨 마법을 부리기라도 한 건지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소영주와 우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리나. 마르토프 맞지?”


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양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뭐랄까. 거짓말이 서툰 것도 아니고, 정말 바보 같은 모습이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저 남자의 이름이 마르토프라는 걸 알게됐다.


“역시. 아직은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때인가.”

“?”


이어진 소영주의 말에 리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놀란 것 같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막은 입에서 옹알 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마치 입은 말하려고 하는데 손이 막는 듯한 모습 같아 괴상하게 보였다. 하지만, 난 바로 리나에게서 신경을 껐다. 마르토프의 오른손이 왼쪽 허리에 메달린 검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연스럽네 나와 프리드 경은 그런 마르토프를 신경 쓰기 시작했고, 조금씩 분위기가 험악해져갔다.


프리드 경의 종자와 병사들은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르토프 주변의 남자들은 하나 둘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 다는 걸 그들도 분명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르토프를 두고 한, 두명식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저, 저희는 상관 없습니다.”

“리나는 고아가 맞아요.”


30대로 보이는 마른 남자를 시작으로 하나 둘 떠들기 시작했다.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리나의 어머니가 얼마전 병들어 죽었다는 사실과, 그 어머니에게 들어간 약 값의 일부를 마을 사람들이 빌려줬다는 것, 그걸 받기 위해 멀리서 용병일을 하던 리나의 아버지에게 마을 사람들이 편지를 보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약 한 달 전 편지를 받고 찾아온 건 리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의 친구라고 주장하는 마르토프 였다는 것 까지.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리나를 보호하려거나 마르토프의 옆에 서서 버티는 모습이라도 보였다면, 나는 몰라도 프리드 경의 동정심을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소녀를 얻은 소영주의 기분이 생각보다 좋다면, 죽이기 보다는 노예로 삼는 자비를 베풀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에 프리드 경은 동정심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으며, 소영주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제 악마조차 한수 아래로 보는 소영주의 입에서 어떤 명령이 떨어질 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그 결정은 옳기 때문에 우리가 꺼려 할 이유 조차 없었다. 물론, 리나라는 어린 소녀의 미래에 동정심이 일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소영주의 눈에 들었다는 현실을 원망 하는 수 밖에.


“가세요.”


소영주의 말과 함께 프리드 경의 검을 뽑았다. 마르토프란 놈은 프리드 경이 맡을테니 난 가장 먼 곳에 있는 남자를 노리기로 했다. 혹시라도 놓치면 소영주의 화풀이 대상이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르토프의 크게 떠진 검은 눈을 뒤로하고, 상황 파악을 못해 우왕좌왕하고 놈들을 지나치고, 가장 멀리 떨어졌던 남자 앞에서 검을 꺼냈다.


“멈춰!”


갑작스레 들려온 소영주의 고함에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에?”


그리고 살짝 베인 목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남자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아래에서 묘한 소리와 냄새가 올라왔다. 막 검을 뽑고 마르토프에게 달려들던 프리드 경과 나는 그대로 멈춘채 소영주를 쳐다봤다.


“당신들 말고, 너희들. x발. 꺼지라고.”


그리고 이상한 행동을 했다. 도적놈들을 풀어주고, 용병 마르토프를 고용 하고, 리나를 자신의 하녀로 삼았다. 리나를 하녀로 삼아 곁에 두는 것과, 마르토프를 고용하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즈베른의 소영주이자 장차 이 땅을 보호해야 할 자가 도적들을 풀어주다니. 역시 돼지 오줌보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 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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