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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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말록이
작품등록일 :
2020.01.13 14:57
최근연재일 :
2020.05.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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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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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개발실 (1)

DUMMY

“모두가 날 마에스트로라고 부르지♪ 나는 룸바 비트의 여왕이지♪ 내가 마라카스를 흔들면, 칙치기붐, 칙치기붐♪”


“마카라스라도 가져올 걸 그랬나?”


“괜찮아. 내가 곧 음악이야.”


니로의 지시대로 기술 개발실을 찾아 떠난 마에스트로, 코로나, 그리고 튜너는 흥겨운 노래 가락과 함께 격납고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노래나 부르고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좋은 일을 하러 가는 만큼 즐거운 노래를 불러서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이유였고, 또 다른 하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레이더망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전부 마에스트로의 의견이었다.


마에스트로가 마칭 밴드 같은 걸음걸이로 앞서감에 따라 그 뒤로 코로나와 튜너가 따라 걷는 모양새였는데, 눈이 보이지 않는 튜너는 떨어지지 않도록 코로나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튜너는 함께하는 내내 좌불안석인 지라 편히 마음 놓을 틈이 없었다.

단순히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코로나의 옷깃을 잡고 쫄래쫄래 따라붙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서도 아니었다.

두 발로 걷고 손으로 물건을 잡을 수 있다는 시점에서 튜너는 이미 행복에 겨워 있었다.


문제는 바로 분위기였다.

튜너는 정적인 생활방식에 얌전한 성격까지 타고 태어났으니 도저히 마에스트로가 만들어내는 총천연색 분위기에 따라갈 수 없었다.

하물며 두 사람이 서로를 각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도 뻔히 알고 있는 판국이었다.

괜히 자신이 끼어들어서 모처럼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다.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니로 옆에 붙어 있으려고 했던 건데...’


생각해 보면 튜너는 니로를 제외한 멤버들과 그리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

그나마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원년 멤버인 하람과 마이클 정도였을까.

하지만 그들이 니로만큼 가깝게 느껴졌을 때는, 기껏해야 테이블에 둘러앉아서 TRPG 놀이를 했을 때 정도를 포함해서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과거의 튜너는 조금 신랄하게 표현하자면 말하는 조각상이나 다름없었다.

혼자서는 화장실에 가거나 몸을 씻는 일조차 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먼저 손을 내밀어준 니로 이외에는 좀처럼 마음을 터놓을 수가 없었다.

잘 해봐야 말 몇 마디 붙이고 넘어가는 게 전부였기에 다른 멤버들처럼 서로 교감하고 끈끈하게 뭉칠 수 있을 만한 관계를 쌓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거리를 두고 관계되길 피한 것은 멤버들이 아니라 자신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차일즈 앤섬은 코로나가 빙의된 악귀를 억누르느라 광인이 되었을 때에도, 짐승이나 다름없었던 소니를 데려왔을 때에도 그들을 내치거나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갖은 어려움을 불사하고서라도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이쯤 되면 타고난 장애 같은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튜너 스스로가 또 한 번 가족과도 같은 이에게 미움 받고 버려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저도 모르게 취한 방어 기제인 것이다.

더군다나 가장 큰 결점이던 팔과 다리가 나은 지금은 더더욱 변화가 필요할 때였다.


니로가 팀원 편성을 이렇게 해놓은 데에는 능력의 시너지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을 터였다.

튜너는 니로가 말해줬던 대로 스스로에게 좀 더 자신을 가져보기로 했다.


그때 마에스트로가 문득 노래를 멈추고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한 소리가 나. 박자를 방해하고 있어.”


“이상한 소리라니? 어떤 느낌으로 이상한 소리야?”


코로나가 묻자, 마에스트로가 흠흠 하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째깍째깍.”


“째깍째깍?”


“응. 핑크 플로이드 노래에서 나오는 것 같은 소리야. 아니, 그거랑은 달라. 째깍째깍하는 소리 사이에 도르르르륵, 하는 소리가 섞여 있어. 처음 들어봐. 무슨 소리지?”


“확실히 이상하네. 혹시 모르니까 일단 확인해보자.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겠어?”


“이쪽이야.”


마에스트로가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옆에 있던 튜너의 팔을 잡아당기며 황급히 그녀의 뒤를 좇았다.

튜너는 난데없는 뜀박질에 놀라 몇 번이고 넘어질 뻔하며 힘겹게 다리를 움직였다.

도중에는 아예 코로나가 튜너를 짐짝처럼 들쳐 업기까지 했다.

의도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 튜너는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에스트로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나란히 늘어선 격납고 중에서도 세 번째였다.

여기서 고개를 살짝만 돌려 밖을 본다면 헬기 이륙장이 나올 텐데, 그곳은 바로 니로가 3일 전에 소령의 헬기에 올라탄 그 장소였다.


수송 차량 십 수 대가 비닐 호루에 싸여 대기 중이었고 어째서인지 격납고와 격납고 사이를 오가는 통로가 모조리 활짝 열려있는 상태였다.

마에스트로는 격납고 제일 안쪽에 붙어있는 문 하나를 가리켰다.

정비실, 탕비실 따위의 푯말이 붙어있는 여러 개의 문들 중에서도 마에스트로가 가리킨 문은 유독 빨간색과 노란색의 스티커가 많이 붙어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스티커는 다름 아닌 「화기엄금」이었다.

문패에 쓰인 문구는 「연료 충전실」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니 발이 절로 빨라졌다.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지독한 기름 냄새가 콱, 하고 코를 찔렀다.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광등이 벌겋게 켜져 있었으며, 초록색 페인트가 두텁게 발려있는 바닥은 모종의 액체가 신발 밑창이 푹 빠질 만큼 흥건히 쌓여있었다.

벽에서 빠져나온 주유용 호스들이 모조리 밖으로 빠져나와 뱀 똬리처럼 얽혀 있었다.

벽 너머에 있는 연료 탱크와 이어진 듯했는데, 밸브가 살짝 열려 있었던 탓에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연료가 새어나오는 상태였다.


마에스트로와 코로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어리둥절했다.

이때 기묘하고도 조잡한 장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실내 양 옆으로는 몽키 스패너나 에어 호스 같은 잡동사니들을 수납하는 선반들이 층층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사이에 웬 수류탄과 달걀 모양의 부엌 타이머가 끼어 있었던 것이다.


수류탄은 핀이 뽑힌 채 안전 클립만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부엌 타이머와 벽 사이에 끼어 간신히 터지지 않고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문제의 째깍째깍 소리는 달걀 모양 부엌 타이머에서 나고 있었다.


타이머가 다 되어 몸체에 내장된 종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하면 그 진동으로 타이머가 슬금슬금 이동하기 시작할 것이고, 끼어있던 수류탄이 풀려 안전 클립이 해제될 것이다.

터진 수류탄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은 바닥을 채운 기름을 먹고 더욱 큰 폭발이 되리라.

방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격납고에 세워진 차량들까지 연쇄 폭발을 일으켜 다섯 개의 격납고가 통째로 날아갈 터다.

그 폭발의 여파를 생각하면 격납고뿐만 아니라 사단 건물 부지 전체가 위험 범위였다.


다급해진 코로나가 첨벙첨벙 수류탄을 향해 뛰쳐나갔다.

마에스트로와 튜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생각보다도 몸이 먼저 앞선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때가 너무 늦어있었다.


시간이 다한 타이머가 요란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 딸캉!

그와 동시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안전 클립이 떨어져나갔다.


코로나와 수류탄까지는 아직 다섯 걸음이나 남아있었다.

당황한 코로나는 재빨리 꽃 주머니를 꺼내어 마에스트로에게 던져 주려 했지만 바닥이 기름으로 가득한 탓에 던지는 자세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져버렸다.

마에스트로가 다급하게 비명을 지르며 코로나에게 달려가려 했다.

코로나는 그런 마에스트로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고함을 질렀다.


수류탄의 폭발 지연 시간은 안전 클립이 떨어지고부터 고작 4초에 불과하다.

코로나는 마에스트로의 접근을 막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데까지 4초를 소비하고 말았다.


“아, 안돼...!”


- 콰앙!


굉음과 함께 기어코 수류탄이 폭발해버렸다.

코로나는 뒤늦게라도 몸을 던져서 수류탄을 온 몸으로 끌어안았다.

펄펄 끓는 용암을 심장에 쑤셔 박기라도 한 것 같은 막대한 열기가 오감을 태워나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코로나가 어안이 벙벙해서 움찔거리고 있자 마에스트로가 그의 옷깃을 힘껏 잡아끌었다.

그리곤 그의 품 안에 얼굴을 묻고 숨 막히는 소리로 흐느꼈다.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수류탄이 있는 쪽을 돌아보니, 수류탄은 공중에 떠오른 채 쩍쩍 갈라진 표면 사이로 흰색 섬광을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괴기하면서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내 혼이 빠질 지경으로 당황한 튜너가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이야? 뭐가 일어난 거야? 일단은 혹시 몰라서 시간을 멈춰 두긴 했는데, 괜한 짓을 한 건 아니지? 코로나? 마에스트로? 두 사람 다 괜찮아?”


꼼짝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던 코로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아니야, 튜너. 네 덕에 살았어. 정말 고마워.”


“아... 그래? 무사하다니 다행이야.”


마에스트로가 코로나의 품에서 벗어나 튜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도 고마워. 나중에 효도할게.”


“하하하... 이럴 땐 보답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효도가 더 대단한 말이니까 아무튼 효도 할 거야. 응!”


마에스트로와 코로나는 튜너에게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정작 본인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몰라서 정신이 없었지만 말이다.


잠시 감정을 추스른 세 사람은 일단 이 상황을 처리하고 원인 파악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튜너는 방 안의 사물들의 시간을 조금씩 거꾸로 돌려보았다.

수류탄과 부엌 타이머는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새어나온 연료들이 연료 탱크로 다시 들어갔으며, 한 시간 정도 되감았을 무렵에는 마른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 튜너. 잠깐만 멈춰 줘.”


이때 마에스트로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그렇게 말했다.

튜너는 되감던 시간을 다시 멈추었고, 마에스트로는 입구 쪽의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발자국이 있어. 엄청 커.”


마에스트로의 말대로 족히 30c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군화 자국이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먼저 들어왔던 누군가가 바닥에 쏟아진 연료를 밟고 지나가서 생긴 흔적 같았다.


튜너는 두 사람이 상황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도록 시간을 되감는 속도를 조금 더 느리게 설정해 보았다.

연료 호스의 밸브가 잠기고 벽에 박혀있던 대못에 휘감겨 정리되었다.

뽑혀나갔던 수류탄의 핀이 선반 뒤 틈새에서 나와 원래 자리로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이번에는 코로나가 되감기를 멈춰 달라고 외쳤다.

그러더니 입구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 창문으로 다가가 두 눈을 부릅떴다.

마에스트로도 코로나를 따라서 창문을 들여다보더니 윽, 하는 소리를 냈다.

튜너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야?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발견됐어?”


마에스트로의 입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폭로되었다.


“...튜너. 이 창문도 함께 시간을 되돌린 거지?”


“방 안을 대상으로 한 거니까 창문도 물론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을 거야. 혹시 지금 창문을 보고 있는 거야? 그럼 1시간 전에 비친 풍경이 보일 지도 모르겠네. 어때? 뭐가 보여?”


“나쁜 아저씨가 창문에 비치고 있어.”


“나쁜 아저씨?”


“파치.”


“뭐...?”


“이거, 그 나쁜 아저씨가 해놓은 거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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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집결 (1) 20.05.07 77 5 14쪽
195 그리고, 재회 (4) 20.05.07 68 5 12쪽
194 그리고, 재회 (3) 20.05.07 72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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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개술 개발실 (2) 20.05.07 85 4 12쪽
» 기술 개발실 (1) 20.05.07 110 4 12쪽
190 지하 벙커 (3) 20.05.07 79 4 12쪽
189 지하 벙커 (2) 20.05.07 104 5 14쪽
188 지하 벙커 (1) 20.05.07 73 5 14쪽
187 병동 (2) 20.05.07 70 4 12쪽
186 병동 (1) 20.05.07 75 4 14쪽
185 그리고, 재회 (1) 20.05.07 67 4 11쪽
184 말로 20.05.07 70 4 13쪽
183 참상 (4) 20.05.07 99 4 14쪽
182 토마토 20.05.07 90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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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참상 (2) 20.05.07 70 4 13쪽
179 참상 (1) 20.05.07 7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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