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견훤, 고려는 없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어쩌다해달
작품등록일 :
2020.01.16 11:33
최근연재일 :
2020.12.15 18:00
연재수 :
66 회
조회수 :
244,476
추천수 :
5,188
글자수 :
337,053

작성
20.12.01 17:00
조회
1,772
추천
45
글자
12쪽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DUMMY

대영의 식솔들이 이주를 시작하며 완도가 분주하기 짝이 없을 무렵. 견훤은 따로 1,000명의 해군을 이끌고 진도군을 공략하던 현춘에게서 상륙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다.


견훤의 해군이 진도 근해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진도군을 지배하던 도주는 곧바로 섬 안의 모든 사병을 끌어모아 먼저 공격에 나섰다. 그런데 도주는 서남해의 다른 호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압도적인 전력을 자랑하는 견훤에게 맞설 생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정벌군의 수장이 현춘이라는 사실이 문제였다. 불과 몇 달 전 그가 주변의 군현들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도주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당시 결성되었던 수군 연합의 일원으로 현춘을 추격하다가 상당수의 배와 사병을 잃어야만 했다. 당연히 현춘에 대한 적개심이 없을 수 없었고, 그 적개심이 항복이 아닌 저항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춘이 상륙하게 된다면 자신의 섬도 이전의 다른 군처럼 약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컸던 것도 있었다. 어쨌거나 출진 이후 처음으로 대대적인 저항에 맞닥뜨린 견훤의 해군은 초반 기습에 애를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선으로 구성된 해적으로도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했던 현춘이었다. 선제공격을 당해 우왕좌왕하던 것도 잠깐, 온전히 전선으로만 이루어진 선단이 반격을 시작하자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진도의 배들은 하나둘 물속으로 잠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3할 가까운 사병들이 물고기 밥이 되는 것을 본 진도의 도주는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현춘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은 채 그들을 추격했다. 덜미를 잡힌 도주는 분노로 눈이 뒤집힌 현춘의 칼에 목숨을 잃게 되었다.


우두머리를 잃은 진도의 호족들은 앞다투어 항복했고, 그래도 저항하던 도주의 심복들은 이후 사흘 동안 벌어진 토벌전 끝에 모조리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진도를 온전히 손에 넣은 현춘은 견훤에게 보고했고, 견훤은 대영과 함께 곧바로 진도군으로 향했다.


진도로 입항한 견훤은 저간의 사정을 듣고는 진도의 민심을 수습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다른 군들과는 달리 상당한 인명피해가 있었기에, 섬 주민들 사이에서 견훤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 와중에도 현춘이 견훤의 명령은 잘 따라서, 저항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몰수한 도주의 재물을 풀기가 무섭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던 섬 주민들의 동요는 삽시간에 사그라들 수가 있었다.


물론 도주를 따르던 수하들과 그 식솔들이 가지는 적대감까지 지울 수는 없었지만, 그런 정도는 어디에나 있는 것이라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진도를 완전히 장악한 견훤의 군세는 동쪽과 남쪽에서 영암군을 포위하는 형세를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견훤은 대영에게 군사 500명을 주고 진도를 방비하게 했다. 현춘을 남기게 된다면 자신이 이곳을 떠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한 탓이었다. 또한 자신이 양무군에 상륙할 경우 남게 될 해군 일부와, 완도에 이주 중인 대영의 식솔과 도민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군사들의 정비를 마친 견훤은 자신을 따라나서지 않고 양무군에 남아 1,000명의 보군을 부리는 능환, 보성군에서 마군 300기와 보군 700명을 거느린 숭겸에게 각기 전령을 보내, 즉시 영암군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도 현춘, 애술과 함께 해군을 포함한 군사 2,000명을 이끌고 양무군 황원黃原현(전남 해남)으로 상륙을 시작했다.


숭겸은 명령서를 받자마자 현재 머물고 있던 보성군을 떠나 계수季水현(전남 장흥)을 거쳐 영암군의 북동부에 자리를 잡은 야로野老현(전남 영암)을 목표로 군사를 이동시켰다. 산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을 연이어 통과해야만 했지만,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 덕분에 출발한 지 하루 만에 야로현을 점령할 수가 있었다.


영암군성 가장 가까운 곳에 주둔하고 있던 능환은 불과 2시진도 되지 않아 성 초입에 당도, 군사를 도열하는 등 무력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전면 공격을 하지 않는 이유는 영암군성의 방비가 상당하기도 했고, 군사들의 숫자도 엇비슷해 전면전을 벌일 경우 아군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투를 치르면서 피해를 아예 안 입을 수는 없지만, 정규군인 미다부리정이 주둔하고 있는 금산군(나주)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전력 누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견훤군의 기본 방침이었다. 따라서 불필요한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견훤의 주력군이 합류한 후 압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능환이었다.


이후 견훤이 군사를 이끌고 영암성에 도착한 것은 하루가 꼬박 지난 후였다. 견훤이 등장하며 자신들이 상대해야 할 군사들의 숫자가 3배로 불어나는 것을 본 영암성은 더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백기를 들고 성문을 열었다.


능환의 예상대로, 그리고 여태까지처럼 무혈입성을 하게 된 견훤은 야로현에 주둔하고 있던 숭겸까지 불러들이며, 영암성에서는 대영과 박영규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 회포를 풀 수가 있었다.


“해룡성을 떠나온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한 1년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게나 말이오. 그나저나 고작 한 달 만에 이렇게 영암성까지 손에 넣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거야 당연히 생시 아니겠소? 정 못 믿겠다면 내 애술 군관을 대신해서 볼이라도 꼬집어 드리리다.”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부드러운 여인의 손이라면 모를까, 굳은살 박인 사내의 손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


이번 출정을 함께하며 꽤 친해진 애술과 현춘의 장난에 ‘와’하는 폭소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그렇게 웃고 떠들고 나서야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우선 여기 계신 모든 분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애초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이곳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견훤이 그리 말하며 가볍게 묵례하자, 앉아 있던 모두가 동시에 일어서며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어찌 저희의 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온전히 장군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희는 그저 운이 좋게 한발 걸치게 된 것뿐이지요. 그러니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일동의 대표자 격인 능환이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다른 사람들도 전부 같은 생각이라는 것처럼 한마디씩 거들었다.


“능환 낭관의 소신들이 없어도 장군께서는 똑같은 성과를 거두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전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장군이 안 계셨다면 저희가 어찌 이 넓은 곳까지 나올 생각을 했겠습니까? 고작해야 동네 유지행세나 하고 있었겠지요.”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바로 앞에서 금칠하는 소리를 늘어놓자, 당사자인 견훤은 낯간지러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칭찬을 들으니 좋기는 한데···. 대놓고 그렇게 말들 하시니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여 저를 놀리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가 장군께 드리는 말은 전부가 진심입니다.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술의 말에 여기저기서 ‘그렇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칭찬 고맙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재차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도 옆에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럼 사담은 이쯤에서 하기로 하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할까요?”


잠시 분위기가 진정되기를 기다린 견훤이 주변 사람들을 한번 휘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의 장난기는 온데간데없고, 사내들이 풍기는 진중한 열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순풍에 돛단 듯 질주해온 우리입니다만, 이제부터 상황이 많이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한 달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우리의 행보에 관한 것이 주변에 많이 퍼졌을 것 역시 당연하고요. 이에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지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장군의 우려가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저희의 전력은 많이 드러났지만, 앞으로 우리가 상대해야 할 세력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 형국이지요. 당장 금산군만 하더라도 주변에 3,000명에 육박하는 미다부리정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도적 토벌을 명분으로 내세웠고, 지금까지는 잘 먹혀들었다고 하나, 더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명분이 통하는 것은 승평군 일대, 더 나아가 서남해의 해안지역 정도가 용인할 수 있는 한계치일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내륙까지 밀고 들어왔으니 치소인 무진성에서 우리를 경계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니오? 장군이나 우리들이 듣고 싶은 것은 그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앞으로 행동방침 아니겠소이까?”


“현춘 대인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전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선 이곳을 기점으로 삼아 내실을 다진 이후 다시 세력을 확장한다. 둘째 기세를 몰아 무진주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간다. 물론 고이 돌아간다는 선택지도 있긴 합니다만, 여기까지 와서 그것을 고를 리는 만무하겠지요?”


능환의 마지막 말에 좌중들 사이로 작은 웃음소리가 흘렀다 사라졌다.


“첫번째 방법은 일견 안정적으로 보입니다만, 문제는 우리가 숨을 고르는 동안 상대 역시 힘을 정비할 시간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빨빠진 호랑이라고는 하나,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우리에게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재 무진주입니다. 뭐, 왕실이 도적들을 대하는 꼴이나, 무진주의 상황을 보면 지금 같은 구태에서 못 벗어날 공산이 크긴 합니다. 그러나 전략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짜야하는 것이니 말입니다.”


“직접 치고 올라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당장 우리에게 유리하기는 합니다. 문제는 우리도 적잖은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기면 괜찮지만, 혹여 패배하거나 이기더라도 상당한 손해를 입게 된다면 그 반향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반향이 적지 않다는 것은?”


“지금은 숨죽이고 있는 호족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위협이 될만한 자, 적대적인 자들을 제거하며 호족들을 다독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들이 순종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무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들의 눈앞에 중상을 입은 호랑이가 보인다? 그러면 이때다 싶은 자들이 가죽과 고기를 얻으려 달려들 것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저만해도 그리할 텐데 말입니다.”


실내의 공기가 확연히 무거워졌다. 다들 규모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상황을 주변에서 숱하게 봐왔으니 말이다.


현춘 같은 경우는 그런 방식으로 세력을 확장해 왔기에 더더욱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때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 당사인 능환이 손뼉을 치며 주변을 환기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이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전자의 경우는 후방을 안정시키며 세력을 키운 후, 상대를 도모할 수 있고, 후자는 제대로 대비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화근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죽상들 하지 마세요.”


병 주고 약 주는 소리, 고작 세 치 혀에 휘둘린 사내들의 표정이 냉탕에서 온탕으로 널뛰기하는 것을 본 견훤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동시에 말 몇 마디로 멀쩡한 사람을 가지고 노는 능환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 싶기도 했다.


작가의말

- 첫 등장시 한자 표기가 없는 인명은 가상인물입니다.

- 댓글을 가끔 확인합니다. 의견 있으신 분들은 그때그때 쪽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태조 견훤, 고려는 없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를 중단합니다 +16 20.12.15 1,251 0 -
공지 12.15 갱신) 후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10.08 5,140 0 -
66 적의 적은 친구 아닙니다 +2 20.12.15 996 28 12쪽
65 적이 안되는 게 우선입니다 +5 20.12.11 1,192 41 12쪽
64 처음이 어려울 뿐입니다 +4 20.12.10 1,199 39 12쪽
63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5 20.12.09 1,316 39 13쪽
62 별수 없이 내정을 돌려야 합니다 +5 20.12.08 1,447 41 12쪽
61 현웅전투 +4 20.12.07 1,412 48 12쪽
60 현웅전투 +7 20.12.04 1,584 48 12쪽
59 상대의 예상은 항상 틀려야지요 +7 20.12.03 1,680 48 12쪽
»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5 20.12.01 1,773 45 12쪽
57 어쨌든 청해진은 재건하고 봅니다 +7 20.11.30 1,730 51 13쪽
56 송년회 중입니다 +4 20.11.27 1,878 50 12쪽
55 송년회 중입니다 +5 20.11.26 1,893 50 11쪽
54 지금 신라는 +8 20.11.25 1,999 47 12쪽
53 지금 신라는 +7 20.11.23 2,121 51 12쪽
52 지금 신라는 +5 20.11.20 2,225 50 12쪽
51 지금 신라는 +8 20.11.19 2,279 58 12쪽
50 해적 넘어 왜구네요 +6 20.11.18 2,156 47 12쪽
49 해적 넘어 왜구네요 +6 20.11.17 2,246 49 12쪽
48 동남해의 패자覇者 +5 20.11.16 2,433 52 12쪽
47 동남해의 패자覇者 +4 20.10.30 2,846 69 12쪽
46 동남해의 패자覇者 +2 20.10.29 2,903 63 12쪽
45 동남해의 패자覇者 +5 20.10.28 3,121 64 12쪽
44 무슨 일에든 돈이 필요합니다 +7 20.10.27 2,914 65 11쪽
43 무슨 일에든 돈이 필요합니다 +4 20.10.26 3,091 68 12쪽
42 호족들을 어찌 할까요 +5 20.10.23 3,217 67 11쪽
41 허수아비 감사합니다 +10 20.10.22 3,254 80 12쪽
40 알아서 싸워 주세요 +7 20.10.21 3,382 72 11쪽
39 기반을 다져야 할 때지요 +3 20.10.20 3,575 8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