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많은데 재벌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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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오십
작품등록일 :
2020.01.17 15:47
최근연재일 :
2020.02.08 14: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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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56
추천수 :
224
글자수 :
108,586

작성
20.01.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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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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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9쪽

악당

DUMMY

"올린다. 올린다."

"빨리 올려."


고향집 근처 PC방. 하성과 기창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게 정말 효과 있을까?"

"있어. 100% 있어."

"야. 그래도 너무 말이 안되잖아."


기창은 차마 마지막 클릭을 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늙은 아비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들이 작성한 글의 제목이다. 내용인 즉슨.


1980년대 한창 중동 건설 붐이 일어나던 시대. 한 20대 남자가 중동에 건설 역군으로 파견되었다. 그는 여우 같은 마누라를 고향땅에 남겨 두고 비지땀 흘리며 열심히 외화 벌이를 했다. 하지만, 사막 한 가운데에서 수로 공사를 하던 중 갑자기 불어온 모래 폭풍에 그만 실종되고 만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남자는 극적으로 현지인들에게 구조 되었다. 완전히 빈털터리. 그가 도착한 나라는 사막 한가운데 한 중소 왕국이다. 한국 사람은 커녕 대사관 조차 없는 그 곳에서 그는 특유의 끈기와 노력으로 아둥바둥 살아 남았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그 나라의 공주를 만나게 되고, 첫 눈에 반한 둘은 주변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이후 공주를 도와 그녀의 조국을 위해 헌신하던 그때 아무 쓸모 없었던 사막에서 석유가 터지고, 왕실의 일족이 된 남자도 엄청난 부를 쌓게 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죽을날이 다가 오자 자신이 애써 잊고 지내던 한국의 가족이 생각났다. 수소문 끝에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이미 아내는 죽었고, 낳은 줄도 모르고 있던 그의 자식만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구구절절한 한 남자의 넋두리. 모래 폭풍을 만나고, 아랍의 공주와 혼인하고, 그 땅에서는 마침 석유가 터져 거부가 된다. 글피아 삼류 웹소설가 지망생 머리에서나 나올 법한 수준 낮은 스토리다. 하지만, 이 글의 포인트는 스토리가 아니지. 진짜는 마지막에 있다.


[제가 죽일 놈이라는 건 잘 압니다. 그렇기에 지금 제 자식 앞에 도저히 나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식에게 사죄하고 싶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어 여러분께 무릎 꿇고 부탁드립니다. 조그만 식당 하나 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제 아들 식당 한번씩 들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방문만 해주시면 식사는 제가 사겠습니다. 주소는 XX시 XX동 산천 곤드레]


그저 마지막 공짜밥을 언급하려만든 막장 개연성의 스토리. 하성은 글의 흥행을 자신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공짜 좋아하잖아."

"에이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은 기창이 버튼을 클릭한다.


***


[늙은 아비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조회수 10


하성과 기창의 표정이 안좋다.


"반응이 왜 이러냐."

"그러게, 어그로가 너무 안끌리는데."


사실 하성은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그에게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신문, TV의 역할이지 소통의 창구가 아니다.


기창은 그나마 나으리라 여기고 글을 부탁했는데. 도찐개찐이다. 창작의 영역에는 영 소질이 없는 두 사람이다.


[거짓말을 해도 좀 정성껏 해라. 이건 상상력이 너무 빈곤하잖아.]

[감동도 없고, 유머도 없고]

[님들 어느 포인트에서 웃어야 되는거임?]


간혹 달려 있는 댓글 반응은 더욱 별로다.


"하성아. 우리 완전 망했다."


세상 다 산것 같은 표정의 기창.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디가게?"

"어짜피 망한거 여기 있어서 뭐 하냐. 나가서 전단이라도 돌리자."


태세 전환이 빠르다. 역시 결단력이 돋보이는 기창이다.


"기다려봐. 아직 시간 얼마 안지났잖아."


아무리 글이 형편없고, 내용이 어이 없어도 최소한의 반응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공짠데.'


양잿물도 마시게 한다는 마법의 단어. 하지만, 사람들이 아예 조회 자체를 하지 않으니 공짜든 뭐든 방법이 없다.


'정말 이대로 계속 간다면 새로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플랜 C까지 가야 되나.


하성이 속으로 투덜거리며 새로고침을 누른다.


[늙은 아비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조회수 175


"어? 하성아 이것 봐. 조회수가 팍 튀는데."

"그러게?"


조회수 269

조회수 582

조회수 1,025


새로고침을 누를때마다 조회수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내가 꼭 진짠지 확인한다. 딱 기다려라.]

[여기가 원문 이야?]

[진짜네? 진짜 이런 글이 있어.]

[기사 보고 왔습니다.]


갑자기 뜻 모를 댓글들이 마구 올라온다.


"기사? 하성아. 어떻게 된거야?"

"난들 아냐."


쏟아지는 반응에 하성과 기창은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일단 기사부터 봐봐."

"어, 알겠어."


댓글에 남겨 있는 주소를 클릭하자 사람들이 타고 들어왔던 기사가 보인다.


[처자식 버리고 집나간 망나니의 화려한 귀환]

최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 화제다. (후략) 과연 사실일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인턴기자 조연수


내용은 하성과 기창이 올린 글에 대한 복사 수준. 하지만 선정적인 제목 때문인지 기사의 조회수는 꽤 높았다. 덕분에 그 원문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때마침 터져준 기사 운이 좋았다.


"좋았어!"


하성과 기창이 마주보며 기분 좋게 하이파이브를 나눈다.


***


"감사합니다. 안녕히가세요!"


기창이 마지막 손님을 배웅한후 의자에 털썩 주저 앉는다.


"우아. 아버지 이거 장난 아닌데요."

"그럼! 먹고 살기가 쉬운줄 알어."


기창이 의자에 털썩 주저 앉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하루 종일 서서 왔다 갔다 하느라 온몸에 진이 다 빠진다. 벌써 보름 가까이 이 짓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홀 서빙이 안구해져서 기창이. 니가 고생이다."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좀 힘들긴 한데 그래도 나름 재미있어요."


기창이 고개를 크게 저으며 대답했다.


"하성이. 인턴이 언제까지라고 했지?"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이쪽으로 온다 했으니. 금방 올꺼에요."


인턴 합격으로 알리바이를 만든 하성. 그 인턴 장소가 가게에서 바로 200m 떨어진 커피숍이라는 건 아버지는 평생 알 길이 없을터다.


"아빠. 나왔어."


가게에 들어선 하성이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표정도 밝아진다.


"돈 많이 벌었다면서. 우리 아부지."

"하하하. 그러게 말이다. 나도 이게 무슨 조화 속인지 도통 모르겠다. 꼭 귀신에 홀린것 같고."

"돈 벌었으면 좋은거지!"


아버지의 웃는 표정을 보니 하성의 마음도 편해진다.


드르륵


가게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온다.


"아이구. 이를 어쩌나. 저희 영업 끝나고 정리 중인데."

"그래요?"


아버지의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에 아쉬움이 넘친다.


"아. 꼭 먹어보고 싶어서. 멀리서 왔는데. 어떻게 좀 안될까요?"

"그래. 아빠. 얼른 하나 해드리자. 멀리서 오셨다는데."


남자의 말에 하성이 맞장구를 친다. 그런 하성을 바라보는 기창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다.


"그럴까? 그냥 가라고 하시는 것도 맘에 좀 걸리고."

"그래. 얼른 들어가서 특별히 맛있게 하나 해드려"


하성이 주방쪽으로 아버지 등을 떠민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손님. 제가 특별히 맛있게 준비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옷이 그래서 드실 수 있겠어요? 뭐라도 튀면 세탁하기 힘드실텐데."

"네. 괜찮습니다. 걱정 마시고, 맛있게나 해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하하하"


살짝 처진 눈이 웃으니 더 밑으로 향한다. 여전히 사람 좋아보이는 웃음을 짓는 중후다.


"우리 집 소문이 벌써 거기까지 퍼졌나 봐요?"

"그러게요. 장사가 워낙 잘되야 말이죠. 보름만에 10억 가까이 팔리는 곤드레나물밥 이라니! 안 먹어 볼 수가 없잖아요?"


중후가 양 손바닥을 비빈후 수저와 숫가락을 테이블에 세팅한다. 음식을 정말 기대하고 있는 듯 하다.


"아, 난 또 이번에는 무슨 법을 들먹이시면서 태클을 거실까 기대하고 있었잖아요."

"그, 뭐였죠? 쌩쌩붕붕이 였나요?"


필생의 역작 이름이 나오자 화들짝 놀라는 기창.


"붕붕씽이"

"뭐가 됐든. 그거처럼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파는 것도 아니고, 카드깡 처럼 고객님한테 직접 돈이 가는 것도 아니고"


어라? 이 반응이 아닌데. 하성이 하려고 했던 말이 중후의 입에서 흘러 나온다.


"굳이 문제를 삼자면 특수 관계인 사업체에서 구매를 했다는 건데."


잠시 말을 끊는 중후.


"그 정도면 딱히 문제 삼을 만한 일은 없습니다. 저희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회사입니다. 비상식적인 일은 고객님 특기 아니신가요? 앞으로 적당히 좀 부탁드립니다. 저 많이 피곤합니다. 하하하"


예상치 못한 중후의 말에 오히려 하성의 말문이 막힌다. 돌솥으로 잘 지은 곤드레나물밥에 조심스레 간장 양념을 넣고 있는 중후 그를 바라보던 하성은 기분이 묘해졌다.


'이러면 꼭 내가 악당인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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