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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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광
작품등록일 :
2014.04.24 10:18
최근연재일 :
2014.04.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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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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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3,061

작성
14.02.27 20:5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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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글자
8쪽

죽음(2)

DUMMY

며칠 뒤, 라슈벨과 리엔은 다시 수도로 올라갔다. 벨슈포드 아카데미의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벨은 혼자 남게 되었다. 아직 입학 가능 나이인 8살도 되지 않은데다가, 검에 대한 재능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에 미친 아버지와 히스테리 어머니 사이에서 벨은 시체처럼 숨어 지냈다. 악마가 바라는 대로 무대 위엔 올라왔으니, 연기만큼은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방에 콕 틀어박혀 숨어 지내는 벨을 꾸짖거나 나무라는 이도 한 명 없었다. 유모가 사라지고 나서부터 그녀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사람이 나타나질 않으면서, 그는 계속해서 책만 읽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의 헛짓거리가 시작 되었다.


“......”

“이리로, 이리로 더 다가오너라!”

“하지만 영주님. 아무리 그래도 제겐 사랑하는 사람이......”

“네가 나와 하룻밤을 보내지 않으면 너희 둘은 영원히 결혼할 수 없다. 그래도 좋다는 거냐?”

“......알겠습니다.”

“옷, 옷부터 벗어 보아라.”

“네.”


벨은 몰래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신부의 순결을 강제로 빼앗는 초야권의 재등장. 집으로 날아온 라슈벨의 몇 통의 서신을 통해, 벨은 그것이 요리사 척과 형의 모략임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물론 우편부에게 직접 편지를 받거나, 척에게 캐내어 묻진 않았다. 그랬다간 바로 규칙에 위배되어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을 테니까. 그가 한 일은 아주 단순했다.


“어? 작은 도련님?”

“뭐야? 뭔데? 누구한테 온 거야? 형이 보냈어?”

“죄송합니다. 도련님. 라슈벨님이 보낸 건 맞으신데 번지수가 달라요. 이건 요리사 척에게 보내신 편지입니다.”

“으엥. 너무해.”

“하하. 그러지 말고 방에 가 계세요. 금방 따뜻한 빵을 조리해 올리겠습니다.”

“응. 얼른 가져와.”

“네.”


그래. 이렇게 하인과 하녀가 우편을 받으러 오면 그 우편이 누구에게 온 것이냐고 묻는 것과, 아버지의 서재에 누가 밥을 가지고 들어가는가를 지켜볼 뿐이었다. 이 정도는 확실히 인정 범위 내에 들어간다. 6살 난 아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어떤 일이든 호기심을 가진다. 그런 아이가 우연히 지나다가 누가 밥을 들고 들어가는지를 보거나, 우편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를 확인하는 건 그의 과거에서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옷을 벗어보래도!”

“하지만......!”

“악!”

“작은 도련님?”


벨은 일부러 서재의 문 앞에서 넘어졌다. 이미 누군가 다가오는 건 눈치 챈 상태였다. 그가 엎어져서 울음을 터트리자, 당황한 하인이 얼른 다가와 벨을 일으켜 세웠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어대는 벨 때문에 좋은 상황에서 분위기가 깨진 영주는 침대보로 몸을 감싼 채 고개만 살짝 내밀었다. 그는 못마땅한 눈으로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냐.”

“죄송합니다. 주인님. 도련님께서 이 주변을 돌아다니시다가 넘어지신 모양이에요.”

“쯧. 당장 방으로 데려가!”

“네.”


벨은 문에서 등을 돌린 채 일어났다. 슬쩍 하인의 얼굴을 보니 문 틈 사이로 보이는 여자를 보곤 당황하고 있었다. 빙고. 분명 누군지 확인할 시간은 충분히 있었을 거다. 옷을 툭툭 털어낸 벨이 하인의 옷을 잡아 당겼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작은 도련님.”

“누가 있었어? 안에서 여자가 막 소리도 지르고 그러던데.”

“그, 글쎄요. 아무래도 영주님의 손님 같습니다.”

“그래? 나, 책 읽고 싶어. 책 좀 갖다 줘.”

“알겠습니다. 아. 가져다드리는 김에 샌드위치도 좀 어떠세요?”

“응. 좋아.”


벨은 아무 일도 아닌 척 넘어가려는 하인을 바라보곤 씩 웃었다. 여자의 얼굴은 확인한 건 자신이 아니다. 그는 단지 하인이 그 장면을 목격하게 만든 매개체에 불과했다. 직접 본 것은 이 자고, 분명 하인과 하녀들을 중심으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하겠지. 소문은 빠르다. 그것도 좋지 않은 소문은 더더욱. 과연 어머니가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시간도 장소도 전부 알려진 상태에서, 아버지가 빠져나갈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해진다. 벨은 어깨를 으쓱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반대편에선 태풍을 불러오듯 그가 일으킨 하나의 사건들은 이제 하나, 둘 그 빛을 발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에 뛰어든 자이면서, 동시에 방관자. 앞으로 모든 일을 자기가 나서서 다룰 수 없는 불쌍한 회귀자였다.


****


하인의 목격담은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남자가 신부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초야권의 존재를 어떻게든 감추려던 신부 측 아버지가 신랑에게 매를 맞았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지금까지 영지 내에선 없었던 일. 그것은 처음에는 쉬쉬하다가 나중에야 사건이 터진 전생과는 크게 틀어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간과 장소, 눈앞에서 직접 본 하인의 증언이 너무나도 컸다. 사람들은 결혼만큼은 다른 영지 내에서 처리하도록 손을 썼고, 오히려 전부 이사를 가버리기도 했다. 벨은 마을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전에는,


‘너희 집도 당했어? 우리 집 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네.’

‘그러게.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라니. 어쩌겠는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의 양상이었다면 지금은,


‘그 집 딸이 당했대.’

‘뭐? 에구머니. 망측스럽게 그런 일을 당했대.’

‘이번이 처음이라지? 또 당하기 전에 자식들은 다른 영지로 보내버려.’

‘우리 딸도 당장 다음 달에 결혼인데 아무래도 이사를 가야 할까봐.’


라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이미 사람들이 익숙해진 것과 첫 시행은 다르다. 그것이 생활에 부적절한 것이라면 더더욱. 벨은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한 점 베어 물었다. 그는 언제나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때가 오면 항상 잘 익은 고기를 주문하곤 했다. 그것은 썰고, 씹고, 삼키는 본능적인 행위에 집중함으로서 어느덧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그만의 특단 조치였다. 결론적으로 벨 폰 발렌타인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크고 있었고, 그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변하고 있을 뿐. 과연 이 뒤엔 뭐가 기다리고 있을까. 벨은 묵묵히 냅킨을 들어 입가를 정돈했다.


"당신이 문제라고요! 어떻게 그런 추잡스러운 생각을......하물며 서재에서 그런 짓을 해 아랫것들에게 들키다니. 부끄럽지도 않아요?"

"젠장! 벨이 그 때 문 앞에서 넘어지지만 않았어도."

"지금 아들 탓을 하려는 거예요? 당장 영지민들 반발이 만만치 않은데, 대체 이걸 다 어떻게 다스릴 생각이세요?"

"......라슈벨을 불러야지. 라슈벨을."

"여보!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긋지긋한 싸움의 시작. 활짝 열어놓은 방문을 통해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벨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스테이크를 썰어 나가기 시작했다. 과연 이제 라슈벨이 수업도 포기하고 리엔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올지가 그로서도 참 기대되는 일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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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숫자하나
    작성일
    14.03.02 23:25
    No. 1

    밑에서 여섯번째 문단의 맨 끝에 '전엔'이란 말이 이어서 나와 구분하기 힘듭니다. 엔터를 써서 문단밑으로 내어 구분을 하는게 읽기도 쉽고 문장의 흐름도 자연스러워 질것 같군요.

    예를 들어,

    [벨은 마을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전엔,

    '너희 집도 당했어? 우리 집 딸도...']

    를 아래처럼...

    [벨은 마을의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전에는,

    '너희 집도 당했어? 우리 집 딸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북풍광
    작성일
    14.03.03 11:50
    No. 2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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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죽음(챕터 完) +1 14.04.25 1,381 25 12쪽
33 죽음(10) 14.04.23 1,438 22 7쪽
32 죽음(9) +2 14.04.14 1,462 28 7쪽
31 죽음(8) +1 14.04.02 1,392 31 7쪽
30 죽음(7) +2 14.03.25 1,422 30 9쪽
29 죽음(6) +1 14.03.24 1,442 33 8쪽
28 죽음(5) +2 14.03.12 1,830 43 7쪽
27 죽음(4) +4 14.03.06 1,933 44 7쪽
26 죽음(3) +4 14.03.03 2,098 47 8쪽
» 죽음(2) +2 14.02.27 1,958 46 8쪽
24 죽음 +2 14.02.27 2,630 53 6쪽
23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8) +6 14.02.25 2,348 59 7쪽
22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7) +2 14.02.24 2,663 52 7쪽
21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6) +3 14.02.23 2,189 53 9쪽
20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5) +3 14.02.22 2,367 58 11쪽
19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4) +2 14.02.22 2,339 53 7쪽
18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3) +1 14.02.22 3,232 60 9쪽
17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2) +2 14.02.20 2,402 63 8쪽
16 강의 흐름을 바꾸는데 필요한 건. +4 14.02.20 2,802 70 9쪽
15 라슈벨 폰 발렌타인(5) +4 14.02.19 2,801 69 8쪽
14 라슈벨 폰 발렌타인(4) +6 14.02.18 2,740 63 8쪽
13 라슈벨 폰 발렌타인(3) +4 14.02.18 2,990 68 10쪽
12 라슈벨 폰 발렌타인(2) +2 14.02.17 2,950 76 8쪽
11 라슈벨 폰 발렌타인 +1 14.02.17 3,153 71 9쪽
10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4) +2 14.02.16 3,303 78 7쪽
9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3) +2 14.02.15 3,373 71 8쪽
8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2) +4 14.02.15 3,874 88 9쪽
7 머리는 추악한 진실을 숨겨두는 법 +1 14.02.14 4,249 91 9쪽
6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5) +2 14.02.13 5,995 113 8쪽
5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4) +1 14.02.12 5,435 103 8쪽
4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3) +2 14.02.11 5,923 110 7쪽
3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2) +1 14.02.10 7,034 134 9쪽
2 행복해야 할 유년시절에 다른 뜻을 품다. +7 14.02.10 6,481 122 8쪽
1 최후는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7 14.02.09 7,978 137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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