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환상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추리

아리본
작품등록일 :
2020.01.20 21:43
최근연재일 :
2021.06.22 22:00
연재수 :
253 회
조회수 :
7,667
추천수 :
12
글자수 :
1,725,853

작성
20.12.20 22:00
조회
21
추천
0
글자
12쪽

Episode 08. 그날의 맹세-힘의 본질(2)

DUMMY

이번 괴인이 등장한 사건은 통칭 괴인 사건으로 불리게 되었다. 시영은 그 사실을 로제와 만남으로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괴인 사건을 조사하려던 시영은 갑작스러운 로제의 호출로 혜성 고등학교에 방문하게 되었다. 불과 12시간 전에 몰래 들어왔던 장소였기에 시영은 그녀에게 혼날 것을 각오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왔어?”

혜성 고등학교에는 소수의 경찰만이 배치되어 있었다. 새벽에 수많은 괴인을 상대했던 시영으로서는 고작 이 정도의 인원만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네, 누님.”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아, 그게···”

“요즘 고민 많아 보이던데.”

“그건 괜찮아요.”

시영은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행인데, 뭐 어쨌든 도와줄 수 있니?”

“무슨 일인데요?”

“그게···”

시영은 로제의 손가락 끝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운동장으로 시영에게는 나름대로 낯이 익은 장소였다.


“최근에 괴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었잖아.”

“그렇죠. 제가 실제로 싸워보기도 했고요.”

“정말?”

“네.”

시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숨길 이유도 없었고, 숨겨서는 안 됐다.


“큰일이네···”

로제의 깊은 한숨. 영문을 모르는 시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님, 무슨 일 있으세요?”

“그게 오늘 새벽에 여기 혜성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엄청난 빛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어.”

“엄청난 빛이요?”

시영은 긴장을 삼키며 팔라딘이 힘을 사용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경찰이 도착했을 땐 빛의 진원지는 찾지 못했다고 했어. 발견한 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학생들 뿐.”

로제는 슬며시 시영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거기 동생도 있었다는데?”

“아, 네. 있었죠.”

“야근하던 우리 부서 애가 널 봤다고 했어.”

“아하, 그랬어요?”

시영은 당시 학생들을 구급차에 태우느라 정신이 없어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왜 거기 있었던 거야?”

“괴, 괴인을 상대하려고요.”

“무슨 일인지 말해줄래?”

시영은 당시 상황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특히 자신이 세계의 환상이라는 사실까지 알렸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로제는 그가 세계의 환상(포우)이라는 말은 믿지 않았다.


“진짜예요, 누님.”

“시영아, 네가 거짓말을 안 하는 건 알아. 그리고 거짓말하면 티가 나는 것도 알고.”

“진짜예요. 여기서 증명할 수 있어요.”

시영은 해방기를 꺼냈다.


“그럴 필요는 없어. 해방기를 사용해서 다른 모습이 되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믿어주시는 건가요?”

“D-Zero 때 기억나니?”

“아뇨.”

“아, 그랬었지.”

로제는 멋쩍은 표정으로 뺨을 긁적거렸다.


“그때 동생은 우리랑 같이 사람들을 구했어.”

“세계의 환상으로서요?”

“아니.”

로제는 고개를 저었다.


“오직 네 모습 그대로였어. 한 명이라도 더 빨리 구해야 한다면서 성급하게 움직이던 네가 아직도 기억나.”

“그런가요?”

“응, 웬일로 거짓말이 어색하지 않네?”

“아하하···”

시영은 억지로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진실을 말했지만, 그것은 결코 로제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동생, 아니, 시영아.”

“네, 로제 누님.”

“어쨌든 괴인을 상대했고, 학생들을 구급차로 보냈다고 생각하면 되지?”

“예, 맞는 말이에요.”

시영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걱정이네, 괴인이 또 나타났다니··· 블러드리아한테 무슨 일이 있나?”

“저, 로제 누님.”

“응? 왜 그래?”

“지금 경찰들 상황은 어때요?”

“상황이라니?”

“마석 사건 이후로, 사실 그전에도 별로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면서요?”

“그렇지.”

로제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사실 마석 사건 때문에 피해를 본 건 우리 부서지만, 전부터 경찰 사정이 좋은 건 아니었지.”

“지금도 마찬가지죠?”

“부끄럽지만, 맞아.”

로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시영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묘하게 감정 없는 듯한 표정에 그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럼 뭐, 알겠어요.”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뇨. 그냥 궁금해서요.”

“수상한데···”

로제는 그를 장난스럽게 노려보았고, 시영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이번 괴인 사건도 도와드릴게요.”

“실종 사건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정말 괜찮겠어? 동생은 D-Zero의 진실을 알고 싶잖아. 그런데 왜 이런 상관없는 사건에···”

“상관이 없다고는···”

시영은 해방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못하겠네요.”

“그래? 나는 잘 모르겠다.”

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서로 힘내요.”

“고마워, 시영아.”

로제는 오늘도 시영에게 도움을 받았다. 예전부터 미안해하고 있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움을 받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어려울 때는 서로 돕는 거죠.”




시영은 차마 로제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알릴 수 없었다. 경찰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지만, 차마 지금 상황에서는 알려도 해결되는 건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오히려 어제 일로 혼난다고 생각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선행만이 알려졌기에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 로제 덕분에 혜성 고등학교의 조사를 훨씬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시영은 왜 이곳에서 수많은 괴인이 출몰했는지 의문을 품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조사해볼 심정이었다.


하지만 주말이었기에 학생들이 많이 없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다. 새벽에 쓰러뜨린 괴인은 모두 학생으로 돌아왔었고, 그 말대로면 이번 괴인 사건이 학생들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시영은 학생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명확하게 밝혀진 무언가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영의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은 학교를 돌아다니던 호야였다.



“뭐 하고 계셨어요?”

“학교를 조사하고 있었지.”

“괴인 사건이죠?”

“당연하지.”

호야는 뉴스로부터 새벽에 있었던 일을 확인했기에 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무슨 일 있으세요?”

“태양이가 곧 돌아가거든. 내일 오후쯤에 돌아가는데,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도 태양이 덕분이라서 아마, 오늘이 아니면 나는 더 이상 학교에서 뭘 알아낼 수는 없을 거야.”

“아.”

시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이게 고민이라는 게, 무섭긴 하더라. 일을 진행할 수가 없으니 원···”

“고민이라뇨?”

“아, 새벽에 심야 식당이라는 그런 데를 갔었는데.”

“심야 식당이라면 엔트?”

“역시 알고 있구나.”

호야는 안심하며 시영에게 엔트에서 있던 일을 알려주었다. 특히 시영은 눈치껏 자신의 구체가 무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며칠 사이 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여러 가지로 혼란스럽거든. 무형을 배우겠다는 사람도 있고, 인간과 오컬트가 가족 같은 사이···”

“아··· 네.”

공교롭게도 시영은 호야가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무형의 본질이 대체 뭐죠?”

“오컬트, 정확하게는 사악한 존재에 대항하기 위한 무술이지.”

“정말 그거예요?”

“그럼 다른 본질이 있을까?”

호야는 피식거리며 시영을 바라보았다. 시영은 잠깐 생각하고는 품속에서 대지의 메모리 스크롤을 꺼냈다.


“평화?”

“평화라니? 아.”

호야는 대지의 메모리 스크롤을 확인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뭐, 내가 바라는 거고.”

“지금 나름 평화롭잖아요?”

“그건 그렇지. 10년 전이나 8년 전에 비하면 뭐···”

호야는 한창 경기 중인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시영도 그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저는 무형의 본질이 대항하기 위한 무술이 아닌, 평화를 위한 힘이라 생각해요.”

“평화를 위한 힘?”

“결론적으로 호야 씨가 평화를 지켰잖아요?”

“뭐, 부정은 못 하겠는데···”

호야는 부끄러운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궁금한데?”

“그야 무형술사인 호야 씨가 평화를 추구했잖아요? 사악한 존재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형을 사용해야 했죠.”

“그렇지.”

“호야 씨가 사악한 존재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은 단순한 복수심 때문이었을까요?”

시영은 호야를 바라보았다.


“복수··· 그게 시작이었지.”

“하지만 복수심이 올바른 본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째서지?”

“호야 씨는 제게 스크롤을 맡기면서 평화를 위해 사용해달라고 하셨으니까요.”

시영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스크롤을 가볍게 흔들었다.


“무형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 구체가 무형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고···”

시영은 손에서 구체를 회전시켰다. 호야는 그 흔들림 없는 회전에 시선을 사로잡혔다.


‘아, 어쩌면 강혁 씨가 착각한 이유도···’

스스로 수긍하며 다시 시영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대항하기 위한 무술이었다면, 정말 평화를 지킬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음···”

호야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힘. 아마, 무형의 본질은 그것 같아요. 사악한 존재의 부활로 평화가 무너졌고, 호야 씨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무형을 사용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했구나.”

호야는 미소 지은 얼굴로 시영을 바라보았다.


“아, 물론 제가 한 말이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아무리 그대로 무형을 잘 모르는 제가 호야 씨에게 아는 듯이 말한 건···”

“아냐, 시영아. 마냥 틀린 답은 아니거든.”

호야는 시영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세상에는 아직도 배울 게 많네.”

호야의 한숨, 시영은 그 한숨에서 묘한 후련함을 볼 수 있었다.


“뭐, 어쨌든 괴인 관련해서 뭐 알아낸 거라도 있니?”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역시 그렇지?”

호야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새벽에 제가 여기서 동료들과 함께 괴인을 상대했거든요?”

“뉴스에서 보긴 했는데, 역시 괴인과의 싸움이 있었구나?”

“엄청 많았어요. 그리고 괴인들의 정체는 모두 학생이었어요.”

“학생?”

“지금까지 제가 많은 괴인을 상대했지만, 이번 괴인 사건은 모두 학생이었거든요.”

“그렇구나.”

호야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한창 경기에 열을 올리는 학생들의 모습. 하지만 그들에게서 사악한 존재, 오컬트, 그리고 괴인의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컬트와 괴인이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겠니?”

“소인이가 그거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은 건가.”

시영은 여전히 좋아 보이지 않는 소인을 떠올렸다.


“여전히 그 일이야?”

“잘 모르겠어요. 정말 소인이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그 애들 때문이라도 빨리 이번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데···”

시영과 호야는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이유는 달랐지만, 두 사람의 뜻은 같았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명확한 무언가가 없었고, 마땅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기에 그저 벤치에 앉아 방법을 궁리하는 것만이 두 사람에게 있어 유일한 선택지였다.


“호야 님, 그리고 시영.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그런 그들에게 다가온 이터널. 시영과 호야는 그를 발견하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세계의 환상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요즘 문피아가 많이 아프네요 ㅠㅠ 21.06.23 32 0 -
공지 안녕하세요 아리본입니다. 다들 잘 지내시나요? 21.04.29 126 0 -
공지 (일부 수정)4월 말까지는 비정기적으로 연재될 것 같습니다. 21.04.15 138 0 -
공지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20.12.12 107 0 -
공지 일부 수정(2021/06/05 기준) 20.09.10 92 0 -
공지 7월 6일부터 새롭게 시작합니다. 20.07.01 67 0 -
253 Episode 14. 깨어난 용-정의의 이름으로(2) 21.06.22 30 0 12쪽
252 Episode 14. 깨어난 용-정의의 이름으로(1) 21.06.21 25 0 16쪽
251 Episode 14. 깨어난 용-미르(3) 21.06.19 21 0 14쪽
250 Episode 14. 깨어난 용-미르(2) 21.06.18 20 0 13쪽
249 Episode 14. 깨어난 용-미르(1) 21.06.17 19 0 15쪽
248 Episode 13. 굶주린 이리-아랑(3) 21.06.13 19 0 17쪽
247 Episode 13. 굶주린 이리-아랑(2) 21.06.12 21 0 18쪽
246 Episode 13. 굶주린 이리-아랑(1) 21.06.11 24 0 11쪽
245 Episode 13. 굶주린 이리-무엇을 믿어야 하는가?(2) 21.06.09 23 0 20쪽
244 Episode 13. 굶주린 이리-무엇을 믿어야 하는가?(1) 21.06.08 23 0 13쪽
243 Episode 13. 굶주린 이리-목소리(2) 21.06.06 25 0 13쪽
242 Episode 13. 굶주린 이리-목소리(1) 21.06.05 29 0 21쪽
241 Episode 13. 굶주린 이리-배틀로얄(3) 21.06.04 29 0 22쪽
240 Episode 13. 굶주린 이리-배틀로얄(2) 21.06.03 31 0 15쪽
239 Episode 13. 굶주린 이리-배틀로얄(1) 21.06.01 32 0 21쪽
238 Episode 13. 굶주린 이리-티가의 산책(3) 21.05.31 26 0 22쪽
237 Episode 13. 굶주린 이리-티가의 산책(2) 21.05.30 25 0 16쪽
236 Episode 13. 굶주린 이리-티가의 산책(1) 21.05.30 22 0 14쪽
235 Episode 13. 굶주린 이리-마술사들의 갈등(3) 21.05.29 27 0 13쪽
234 Episode 13. 굶주린 이리-마술사들의 갈등(2) 21.05.27 22 0 13쪽
233 Episode 13. 굶주린 이리-마술사들의 갈등(1) 21.05.26 25 0 14쪽
232 Episode 13. 굶주린 이리-생명의 냄새(3) +2 21.05.23 48 1 15쪽
231 Episode 13. 굶주린 이리-생명의 냄새(2) 21.05.22 27 0 13쪽
230 Episode 13. 굶주린 이리-생명의 냄새(1) 21.05.20 23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