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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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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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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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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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08. 그날의 맹세-정말 원하는 것(1)

DUMMY

늦은 점심시간, 강혁은 손님이 다 떠난 뒤에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요리를 만드는 중에는 춘식의 일도 이터널에게 한 실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피로함이 오늘따라 진하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열심히 일하기는 했었다. 엔트는 항상 6시에 가게 문을 열었다. 하지만 강혁은 심야 식당까지 운영했기에 많아 봐야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잘 수 있었다.


특히 오늘은 제대로 눈을 붙이지도 못했기에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충분한 수면이 더 나은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당장 내일이 스승님의 기일이었다. 강혁은 잠깐 고민했는데, 그것은 이대로 오늘 장사를 마치냐에 대해서였다.


강혁은 언제나 손님들에게 최상의 음식만을 제공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스승님의 가르침이 아닌, 그 스스로의 다짐과도 같은 일종의 소망이었다.


요 며칠 사이 고민이 많았었다. 그게 만약 요리에도 영향을 끼쳤더라면 며칠 동안 엔트에서 밥을 먹던 손님들에게 실례되는 일이었다.


스승님은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을 강조했다. 특히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강혁은 그러지 못했다.


특히 내일이 스승님의 기일이라면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푹 쉬고 내일을 기다리는 것. 어쩌면 그것이 최선일지도 몰랐다.


물론 일찍 문을 닫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루나 때문이기도 했다. 이터널의 말도 있거니와 강혁이 지금 고민하는 모든 이유는 그녀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를 탓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잘못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강혁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자신이 그렇게 여겼다. 자기 정체성도 제대로 못 정하는 자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강혁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럴수록 마음을 편하게 먹으며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려 애썼다.


“좋아, 오늘 장사는 여기서···”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한창 다짐하던 강혁은 애꿎은 눈만 깜빡거렸다. 이어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받았다.


“예, 엔트입니다.”

“강혁 군?”

“유마 교수님?”

그것은 유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 유마는 어딘가 힘겨워 보이는 목소리였다.


“지금 가장 빨리 되는 음식으로 배달 가능합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전화가 끊기고, 강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직 문을 닫은 건 아니었기에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간단한 볶음밥을 만들고는 가게를 나섰다. 출발하기 전, 가게 문 앞에 오늘 장사를 마친다는 팻말을 걸어놓았다.


“오늘만, 쉬겠습니다. 스승님.”

강혁은 엔트를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미르 코퍼레이션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강혁 군.”

유마는 그를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하지만 어딘지 힘겨워 보이는 모습은 마치 억지로 웃고 있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오늘도 일하시나요?”

“아, 오늘은 어쩌다 보니···”

이야기하자면 너무 길었다. 더욱이 유마가 연구소에서 점심을 해결할 거라는 예정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도 무리하면 몸 상해요.”

“어쩔 수 없죠. 상황이 상황인지라···”

유마는 강혁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강혁 군은 지금 강혁 군 나름대로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뭐,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

강혁은 볶음밥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건 그렇죠.”

유마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현금을 건넸다.


“그런데 정말 무슨 일 있으세요?”

강혁은 돈을 거슬러주며 입을 열었다.


“해방기를 여전히 가지고 계십니까?”

“네, 여기···”

강혁은 품속에서 해방기를 꺼냈다.


“강혁 군은 역시 진짜로군요.”

“진짜요?”

순간, 강혁은 말문이 막혔다.


“왜 그러십니까?”

“아뇨, 진짜라기에는 저는···”

순간, 자기 정체성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강혁은 유마가 말한 진짜라는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 자기 모습이 진짜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유마는 그의 마음을 읽었기에 홀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혁 군이 가짜일 리가 없잖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이야기를 조금 나눠도 괜찮겠습니까?”

“예, 그렇지 않아도 유마 교수님이 마지막 손님이세요.”

“마지막이라니··· 재료라도 떨어진 겁니까?”

“아뇨, 오늘은 여러 가지로 쉬어야 할 것 같아서요.”

“아, 그렇습니까?”

유마는 잠깐 강혁의 마음을 읽었다.


“하기야, 그동안 열심히 일하셨으니··· 재충전의 시간이 절실하겠군요.”

“네, 뭐. 그렇죠?”

강혁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유마의 안내로 자리에 앉았다.


“핫초코?”

강혁의 시선은 탁자 옆의 쓰레기통을 향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핫초코 봉지가 눈에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시선은 유마를 향했다.


“아, 하하··· 손님들이 오셨거든요. 그리고 제가 핫초코를 워낙 좋아해서···”

“그렇군요.”

강혁은 슬그머니 휴지통과 거리를 벌리며 자리에 앉았다.


“핫초코 한 잔···”

“아뇨, 단 건 별로 안 좋아해서요.”

“그렇군요. 그럼 설탕 없는 다크 초콜릿은 좋아하십니까?”

“그거 엄청 쓰지 않나요?”

“고민이 있을 때는 초콜릿이죠.”

유마는 그렇게 씁쓸한 핫초코를 강혁에게 대접했다. 씁쓸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하자 강혁은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어떠십니까?”

“맛이 깊네요.”

“그게 아니라, 마음이 조금 평온해지셨나를 묻는 겁니다.”

“조금은 그런 것 같네요.”

강혁은 핫초코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실 생각이시죠?”

“하아···”

한숨으로 운을 뗀 유마. 강혁은 묘한 느낌에 몸을 움찔거렸다.


“진짜, 가짜 이야기는 바로 가짜 해방기에 대한 겁니다.”

“가짜 해방기라뇨?”

“해방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제가 만든 게 아닌 회색 기계장치를 이르는 말입니다.”

“회색 기계장치?”

그때 강혁은 잊고 있던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그것은 루나가 가진 해방기로 강혁은 며칠 전, 그것을 유마에게 물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비롯한 갖은 고민으로 인해 가짜 해방기의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식겁해진 강혁은 식은땀을 흘렸고, 유마는 그를 지그시 바라보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가, 가짜 해방기가 어떻게 생겼죠?”

“이렇게 생겼더군요.”

유마는 숨을 길게 쉬며 가짜 해방기의 홀로그램을 보여주었다. 강혁은 혹여나 자신이 착각하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 홀로그램은 루나의 물건이 가짜 해방기임을 증명하는 수단밖에 되지 않았다.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정말 누가 만들었는지 칭찬이라고 하고 싶군요.”

유마는 이를 바득 갈았다. 강혁은 얼핏 산더미처럼 쌓은 핫초코 봉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범인을 잡으면 정말 얼굴이라도 보고 싶습니다.”

“해방기는 교수님밖에 못 만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맞습니다.”

유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말씀은···”

“해방기는 저밖에 못 만듭니다.”

유마는 꼴도 보기 싫은 가짜 해방기의 홀로그램을 멀리 치워버렸다. 그것은 쓰레기통으로 향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멸해버렸다.


“제어 장치라던지··· 후우,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겠군요.”

“아뇨, 알고 싶습니다.”

“강혁 군? 저 또한, 해방기의 원리라던지 원본이 무엇이었는지 같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 네.”

강혁은 평소와는 다른 격앙된 유마를 보며 긴장을 삼켰다.


“그럼 위험성에 대해서는···”

“위험성, 그건 확실히 알아야겠죠.”

유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혁 군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입니다. 혹시 강혁 군은 해방기를 사용해보셨나요?”

“원래 말씀하셨던 대로 이걸로 이상 세계 현상을 없애고 있습니다.”

“오, 그렇습니까?”

유마는 강혁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럼 해방기에 메모리 스크롤을 넣어본 적은···”

“몇 번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유마 교수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만 사용했습니다.”

“그렇군요.”

유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해방기를 사용하면 기억을 해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얼핏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유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짜 해방기도 비슷합니다.”

“기억을 해방하는 건가요?”

“아뇨, 그건 힘을 해방합니다.”

“힘?”

강혁은 눈을 깜빡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원리 자체가 사람을 괴인으로 만들더군요. 대체 누가 이런 정신 나간 짓을···”

“왜 하필이면···”

“제가 제작자가 아닐뿐더러, 이것저것 살펴보고는 있지만 아직은 뭔가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루나···”

강혁은 그녀의 이름을 읊조리며 긴장을 삼켰다.


“강혁 군.”

“예, 교수님.”

“혹시 시영 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마는 강혁을 보며 지그시 입꼬리를 올렸다.


“시영이라면··· 잠깐이지만 희망을 품게 해준 고마운 아이입니다.”

“잠깐의 희망?”

“무형이라고 아세요?”

“그거 무술 아닙니까?”

“알고 계시네요.”

강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심 유마 정도의 인맥이라면 오히려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뭐,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존재는 압니다.”

“시영이가 사용하는 구체, 그게 무형이더군요. 그걸 보고 나름대로 희망을 품었는데···”

“돌아가신 스승님과의 약속 말입니까?”

“역시 교수님은 뭐든 알고 있군요.”

“하하, 저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유마는 지그시 미소를 지었지만, 강혁은 단지 그것을 분위기를 풀기 위한 친절한 농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해방기를 가진 사람들은 강혁 군과 시영 군을 비롯해 여럿 있습니다.”

유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해방기 한 개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걸 가진 분들은 대체로 한 가지를 잃었더군요.”

“한 가지요? 저는 잃은 게···”

강혁은 입을 다물었다.


“만나봤고, 정리했고, 분석해보니 모두가 적어도 무언가 한 가지는 잃었습니다.”

“그렇군요.”

강혁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해방기는 어쩌다 보니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사용자로 하여 그 힘과 기억을 끌어내는 역할을 행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해방기가 아니면 기억의 힘을 사용할 수는 없겠죠.”

“기억의 힘이라면···”

“강혁 군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메모리 스크롤을···”

유마는 넌지시 강혁을 바라보았고, 강혁은 잠시 고민하더니 주머니에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메모리 스크롤을 꺼냈다.


“블랭크 상태군요.”

“예, 그렇습니다.”

“강혁 군이 시영 군처럼 기억을 잃은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예, 맞습니다.”

“그런데 분명 저번에는 블랭크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자기 정체성을 고민한 이후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유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혁 군만의 자기 정체성을.”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니요?”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지만··· 저는 어느 쪽도 정할 수 없었습니다.”

강혁은 고개를 숙였다.


“요리사와 격투가.”

“그걸 어떻게···”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강혁은 그제야 유마의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꼭 그중 하나를 정해야 합니까?”

“정해야 합니다.”

“대체 어째서죠?”

유마가 제시한 물음에 강혁은 딱히 대꾸할 수 없었다.


“해방기를 가진 사람들은 강한 힘을 해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잃고 얻은 힘이기에 손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유마는 가져온 해방기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시영 군으로 예를 들자면, 그는 D-Zero의 진실을 밝히길 원하지만, 정작 그 기억을 잃었습니다.”

“그렇군요.”

“강혁 군은 정확하게 무엇을 잃으셨죠?”

“저는···”

강혁은 유마를 바라보았다. 그가 정말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굳이 자신에게 물어볼 이유는 없었다. 단순하게 읽어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단순하게 묻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강혁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모르겠군요.”

무언가를 잃었다기에는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동안 많은 것을 잃었고, 정확하게 하나만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입니까?”

“루나입니다.”

강혁은 이번만큼은 즉시 대답했다.


“루나라면 그 스승님의 따님이군요.”

“그렇습니다.”

강혁은 유마를 바라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마, 제가 알기로는 강혁 군은 그녀를 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구한 겁니까?”

“그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죠?”

유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아니었다면, 루나에게는 씻을 수 없는 기억이 남고 맙니다. 경험해서는 안 되는 그런 나쁜 기억이.”

“그런 선택이었기에 결국 무언가를 포기했고, 잃을 수밖에 없었겠군요.”

“하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랬기에 루나를 지킬 수 있었으니까요.”

강혁은 작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그 행동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럼 강혁 군이 생각하는 실수는 대체 무엇입니까?”

그 순간, 강혁은 몸을 움찔거렸다.


“그녀를 구한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지만, 실수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 강혁 군의 실수는 대체 무엇입니까?”

“폭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강혁은 유마를 바라보았다.


“그런 이유라면···”

“이유가 뭐라고 해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 말대로라면 그녀를 구한 것도 실수라는 겁니까?”

유마는 강혁을 노려보았다.


“그건···”

“강혁 군의 마음은 잘 압니다. 하지만 정말 그녀를 생각한다면 실수라는 생각은 하지 않길 바랍니다.”

“교수님···”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릅니다. 강혁 군이 그녀를 구한다는 선택을 했기에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강혁 군이 후회하지 않는다면 부디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랍니다.”

어느새 그를 노려보는 유마의 시선은 누그러졌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분명 있을 겁니다. 강혁 군의 스승님이 남긴 약속은 분명 단순한 의미가 아닐 겁니다.”

“그렇겠죠. 항상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강혁은 콧바람을 내쉬며 유마를 바라보았다.


“인생은 언제나 선택이라지만, 가끔은 선택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교수님···”

“어느 때라도 강혁 군은 강혁 군이니까요.”

유마는 지그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으면···”

“어차피 선택하고 후회할 거라면, 굳이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요?”

유마의 대답, 강혁은 그 모호한 대답에 대꾸하지 못했다.


“선택할 필요?”

“어차피 강혁 군이 무엇이든 변하는 건 없습니다. 자기 정체성도 마찬가지겠죠.”

유마는 시영을 떠올리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선택한다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유마는 가짜 해방기의 홀로그램을 다시 만들고는 몇 초 만에 그것을 치워버렸다.


“후회 없는 선택···”

강혁은 가짜 해방기의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긴장을 삼켰다. 유마와의 대화로 무언가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마냥 고민만 하고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강혁은 유마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섰다. 연구소를 나설 때도, 미르 코퍼레이션을 나설 때도 여전히 무언가 떠오르는 건 없었다. 한 손으로는 해방기, 다른 한 손으로는 메모리 스크롤을 바라보며 가짜 해방기와 루나를 떠올렸다.


그래서일까, 강혁은 무형의 진실만으로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하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원하는 것. 강혁은 그것을 생각했다. 그렇게 미르 코퍼레이션을 완전히 빠져나오자 그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여기 있었군.”

그는 이터널이었다. 아침과는 달리 멀쩡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일찍 문을 닫았더군, 무슨 일 있나?”

이터널의 물음. 강혁은 그에게서 어딘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고, 자연스럽게 피식거리며 입을 열었다.


“뭐, 없을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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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Episode 14. 깨어난 용-정의의 이름으로(2) 21.06.22 30 0 12쪽
252 Episode 14. 깨어난 용-정의의 이름으로(1) 21.06.21 25 0 16쪽
251 Episode 14. 깨어난 용-미르(3) 21.06.19 21 0 14쪽
250 Episode 14. 깨어난 용-미르(2) 21.06.18 20 0 13쪽
249 Episode 14. 깨어난 용-미르(1) 21.06.17 19 0 15쪽
248 Episode 13. 굶주린 이리-아랑(3) 21.06.13 19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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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 Episode 13. 굶주린 이리-아랑(1) 21.06.11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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