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용사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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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듬
작품등록일 :
2020.01.2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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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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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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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침!

DUMMY

빡침!








"이거 선물이야. 빈손으로 오기 그래서 사 왔어."

"뭔 이런 걸 다 사 왔어. 잘 쓸게 고마워."


에드네는 열에게 앞치마를 건넸다. 열은 선물 받은 앞치마를 한 번 펼쳐서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곱게 접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 모습을 본 에드네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입어주지···.'


흰 고양이가 배 한가운데 박힌 검은 앞치마는 에드네가 어제 장장 2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구매를 결정한 앞치마였다. 울적한 마음을 겨우 달랜 에드네는 자신의 몫으로 챙겨온 검은 고양이가 그려진 하얀 앞치마를 챙겨 입으며 리트아를 흘겨보았다.


오른쪽 눈 주위를 덮고 있는 선명한 화상.


거실 소파 위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는 리트아는 평소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고 있었다.


"너. 가면은 왜 또 안 쓰고 있어?"

"시식을 하려면 아무래도 가면을 벗고 있어야 하지 않나?"

"너 요즘 얼굴 숨기려고 엄청 노력했잖아!"


리트아는 이것저것 밑준비를 하고 있는 열을 힐금 보곤 말했다.


"그 얼음의 탑에서 이미 다 보여버렸는데, 굳이 유난을 떠는 것도 이상하다고 본다만?"


에드네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분명 리트아는 자신을 방해하려고 열의 제안을 수락한 게 분명했으니까. 리트아가 시식하러 오라는 열의 제안을 거절했다면 좁디좁은 열의 인간관계의 현 상황으로 비춰볼 때, 분명 단둘이서 요리를 할 수 있었을 터.


좋은 생각. 좋은 생각만 하자.


에드네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저기 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있는 거로 보건대, 정말 요리는 자신과 열 단둘이 할 것 같았으니까. 괜히 기분 상해 있다가 열에게 뾰족한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계란 요리를 가르쳐 준다고 했지?"

"응. 오늘은 계란말이하고 계란찜 만드는 걸 가르쳐주려고. 흐흐흐. 내가 널 위해서 특별히 새로운 팬까지 사왔지!"


열이 에드네에게 내밀어 보인 건, 계란말이용 사각팬이었다. 정말 순수하게 웃는 그 모습에 에드네는 마음이 살짝 풀렸다. 자신을 생각해서 팬까지 사서 준비해줬다는 게 무척이나 기쁘기도 했다.


"나 열심히 배울게!"

"그건 당연히 그래야지. 자자, 일단 내가 먼저 계란말이 하나를 만드는 걸 보여줄 테니까 잘 봐봐."


열은 능숙하게 준비한 계란을 깬 다음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육수를 조금 넣고, 설탕과 소금을 살짝 덜어 뿌리며 말했다.


"원래 계란말이란 건 자기 입맛대로 이것저것 넣으면서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니까 굳이 내가 가르쳐준 방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미리 준비해둔 잘게 다진 대파와 당근을 계란에 퐁당 빠뜨렸다.


"이건 내가 너 오기 전에 미리 손질해둔 건데, 네 건 네가 직접 처음부터 손질해야 할 거야. 손질하는 방법도 가르쳐 줄 테니까 걱정하진 말고."


열은 능숙하게 계란이 든 그릇을 휘저으며 말했다.


"이러면 벌써 거의 다 만든 거야. 물론, 계란말이는 모양을 잡는 게 제일 어렵긴 하지만. 계란말이란 건 원래 그 뽀송뽀송한 식감이 제일 중요한 법이니까 모양이 조금 일그러져도 괜찮아."


치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각팬으로 흘러든 계란이 천천히 익어갔다.


"펜에 식용유 얇게 발라두는 것도 잊으면 안 돼.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불은 조금 줄여도 괜찮아. 우리가 아는 그 계란말이 모양을 잡아야 하니까. 그런데 난 조금 센 불로 해. 펜이랑 불 사이 거리를 벌렸다 줄였다 하면서 직접 조절하거든."


열이 젓가락을 이용해 능숙하게 한단 한단 접어서 예쁘게 계란말이의 모양을 만들어나갔다.


"자, 다 됐다!"


완벽하게 몽실몽실한 계란말이. 열은 계란말이를 먹기 좋게 잘라 에드네에게 내밀었다.


"'아'해봐. 한 번 먹어봐야지."


직접 먹여주다니. 에드네의 마음은 이미 살살 녹아 완전 풀어졌다.


'오늘 정말 오길 잘했어!'


"아."


두 눈을 감고 입을 벌리자, 따뜻한 계란말이가 입안으로 찾아왔다. 오물오물 계란말이를 씹자, 약간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계란말이 특유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어!"

"계란말이야 항상 맛있지. 리트아 너도 와서 먹어봐."

"그러지."


리트아는 식탁에 앉아서 계란말이를 하나 집어서 맛봤다.


"괜찮군."

"그렇지? 거기 그거 먹고 있어. 자, 에드네. 이제 네가 직접 재료 손질부터 해볼 차례야. 알겠지?"

"응!"


에드네는 팔을 걷어붙이고 자신 있게 나섰다. 사실, 어젯밤 에드네는 계란 요리에 관한 공부를 미리 했다. 계란말이는 당연히 예상 문제 중 하나였고.


'이번 기회에 새롭게 이미지를 쌓는 거야! 요리를 못한 건 단지 배우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밑손질은 순조로웠다. 열이 옆에서 이것저것 가르쳐주기도 하고, 애초에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으니까.


문제는 역시나 계란을 돌돌 마는 데서 나왔다.


에드네는 결과물을 보면서 울상을 지었다.


"눌러 붙어서 찢어졌네."

"괜찮아. 어차피 맛은 비슷하니까. 게다가 너무 한 번에 잘하려고 할 필요 없어."


열의 어화둥둥에 에드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너무 행복해서.


"잠깐만 실례할게."

"응? 뭘?"


계란을 돌돌 마는 것 세 번째쯤 실패하고 나자, 결국 보다 못한 열이 에드네의 손을 잡고 젓가락질을 도왔다.


"잘 봐. 계란은 이렇게 돌돌 마는 거야."


마음은 이미 콩밭으로 떠난 지 오래. 에드네는 열의 뒤통수를 보며 은퇴 후에 사는 집 마당엔 무슨 식물을 키울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알겠어?"

"으, 응."


당연히 열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에드네는 자꾸만 계란을 마는 걸 실패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리트아가 말했다.


"요리를 배우러 온 건 맞는 건가? 아까부터 하나도 늘지 않고 있다만."


그제야 에드네는 헤롱헤롱한 정신을 차렸다.


"나,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잘 안되는 것뿐이야!"


리트아는 탁한 회색빛 눈동자로 에드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빛에 에드네는 살짝 목을 움츠렸다.


"그러고 보니, 리트아 넌 요리 잘해?"

"못하지는 않지."

"진짜?"

"못 믿겠으면 보여주겠다."


손을 뻗은 리트아가 열이 곱게 접어 식탁에 올려둔 검은 앞치마를 펼쳐 둘렀다. 에드네가 열에게 선물한 그 앞치마를.


'저거 열이 입으라고 사온 건데!'


에드네는 무어라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열이 보고 있어서 겨우 참았다. 리트아는 능숙하게 계란을 풀고 밑손질을 한 다음 계란말이를 차근차근 만들어나갔다.


잠시 후, 예쁘장한 모양의 계란말이가 접시 위에 놓여졌다. 열은 계란말이 하나를 집어 먹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잘하네? 난 네가 요리의 '요'자도 모를 줄 알았는데."


리트아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얼굴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요리가 취미였다. 그 뒤로도 계속 혼자 살면서 틈틈이 요리를 해먹기도 했고."


열이 빙그레 웃었다.


"이렇게 된 거 다음에 도시락 싸고 어디 소풍 갈 때 실력발휘 좀 해봐. 나도 다른 사람이 해준 요리 좀 먹어보자고."

"생각은 해보지."

"괜히 또 튕긴다. 너 진짜 그럴래? 그냥 한 번에 알겠다고 하라고."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둘을 보며 에드네의 마음이 다시금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대체 리트아 저 얄미운 기지배는 왜 이리 자신과 열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는가. 자기가 열을 좋아하는 걸 뻔히 다 알면서.


"나, 나도 도시락 싸갈게!"


열은 에드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싸오면 좋지. 그럼 그전까진 연습을 조금 많이 해야겠네."


평범한 말 한마디. 에드네는 그 말 한마디가 왠지 모르게 싫었다. 방금 리트아가 멋들어지게 계란말이를 만들어 보여서 느끼는 열등감인 걸까.


"나도! 이제 계란말이 잘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한 번 봐봐!"


억지로 웃으며 계란말이를 만들었지만, 결과물은 대실패. 괜히 마음이 급했던 탓에 태워 먹기까지 해버렸다.


리트아가 탄 계란말이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발전이 없군. 그건 다 네가 설명을 제대로 안 들···."

"닥쳐!"


짜증이 폭발했다. 에드네는 리트아를 보며 으르렁댔다.


"내가 다 알아서 할 거니까 닥치라고! 네가 뭔데 자꾸 가르치려 들어? 응? 그리고 왜 그렇게 사사건건 잘난 듯이 끼어 드냐고! 대체 네가 뭔데!"


정성 들여서 고른 앞치마를 벗어던졌다. 에드네의 고운 검은 눈이 분노로 일렁였다.


"진짜 짜증 나! 다 알면서 사사건건 방해하는 이유가 대체 뭔데! 응?! 내가 대체 뭘 했다고 그렇게 방해하는 거냐고! 이 나쁜 기지배야! 넌 원래 이런 일에 관심 없었잖아! 근데 왜 자꾸 이상하게 구는 거냐고!"


성큼성큼 다가가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는 리트아의 앞치마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이거 너 입으라고 내가 사온 거 아니야! 이걸 왜 네가 입어!!! 너 진짜 요즘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힘을 버티지 못한 앞치마가 찢어졌다. 에드네의 마음도 같이 찢어졌다.


에드네는 두 눈에 눈물이 잔뜩 고인 채로 찢어진 앞치마를 바라보았다.


"씨···."


다 망쳤다. 자신이 다 망쳤다. 잠깐 뾰족하게 튀어나온 마음을 붙잡지 못한 탓에 열의 앞에서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


굵은 눈물을 두 방울 떨어뜨린 에드네는 빛살처럼 문을 박차고 열의 집을 떠났다. 열은 폭풍처럼 지나간 에드네의 분노에 얼떨떨한 얼굴로 탄 계란말이를 들고 있었다.


"계란말이 잘 못 만드는 게 그렇게 서러웠나···?"


리트아는 목 부분만 남은 앞치마를 벗었다.


"아무래도 이 건은 내가 조금 실수를 한 것 같군. 나답지 않았다."

"그러게. 다음부턴 조심해. 아무래도 에드네는 요리를 못 하는 게 꽤 큰 콤플렉스인 거 같으니까. 평소에 얌전하던 애가 저렇게 화낼 정도면 얼마나 요리를 못 하는 게 마음에 걸려왔던 거야."


다음에는 좀 더 조심스럽고 친절하게 가르쳐줘야겠네. 열은 그렇게 다짐했다.


"따라가서 달래주고 오겠다."

"어디로 갔는지는 알아?"


리트아는 가면을 챙겨 쓰며 말했다.


"그건 이제부터 찾아봐야겠지."

"나도 도와줄게."


신발을 신던 리트아가 열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자신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에드네를 방해하는 건가. 이건 자신답지 않은 일이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다. 에드네를 찾으면 연락해라. 내가 직접 사과해서 달래겠다."

"그럴게."


***


에드네는 공원 벤치에 쭈그려 앉아 울적한 눈으로 공원 호수를 바라보았다.


"망했어."


다 망했어. 그런 히스테릭한 모습을 열의 앞에서 보여주다니. 여태까지 열심히 쌓아왔던 조신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 이미지가 다 망가졌을 게 분명했다.


'아니, 이젠 얼굴 보는 것조차 질색할지도.'


우울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자신을 나락으로 잡아당겼다. 첫사랑은 절대 안 이루어진다더니. 이건 뭐 직접 망쳐서 할 말도 없었다.


"왜 겨우 그걸 못 참아가지고···."


툭.


차가운 무언가가 볼에 닿았다. 소스라치게 놀란 에드네가 고개를 돌리자, 포장된 아이스크림 하나를 내밀고 서 있었다.


"이제 화 좀 풀렸어? 이거 먹어. 난 차갑고 단 거 먹으면 화가 좀 빨리 풀리더라."

"나··· 어떻게 찾았어?"

"경비 아저씨한테 네가 달려간 방향을 물어봤거든. 그래서 그 방향을 따라서 네가 있을 만한 곳을 뒤졌지."

"미안해. 갑자기 화내고 뛰쳐나가서."

"사람이 갑자기 화도 내고 그럴 수 있는 거지. 이해해."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포장을 벗기고 한입 베어 물었다. 차갑고. 달았다.


에드네의 눈을 따라 닭똥 같은 눈물이 새어 나왔다.


열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너 설마 울어? 혹시 그 아이스크림 맛이 이상해? 새 거 사올까?"


에드네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여전히 닭똥 같은 눈물을 퐁퐁 흘리면서.


"아니. 달고 맛있어. 훌쩍."


작가의말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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