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용사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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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듬
작품등록일 :
2020.01.21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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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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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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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업자득.

DUMMY

자업자득.







비스와 바라다는 멍한 눈으로 에드네와 리트아를 바라보았다.


그 둘이 현재 상황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은 여러 사정이 겹친 결과였다.


우선, 열은 지금 평소의 체형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전성기 시절 체형으로 돌아간 상태인 데다, 평소에 열은 비스와 바라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며 자신의 말투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고, 더욱이 지금은 마스크로 음성을 변조한 덕에 들킬 가능성이 무척이나 낮았다.


게다가 리트아와 에드네의 경우, 작전 중에 둘이 격렬하게 싸운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바라다가 아는 바로는 둘이 작전 중에 갑자기 싸운 건 정확히 두 번. 아니, 이번까지 합치면 세 번째이었다.


바라다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 하필 나랑 같이 작전할 때 싸우고 난리야 진짜."


열은 봉을 어깨에 걸친 채, 느긋하게 상황을 관망했다. 어차피 자신이야 파트라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리트아와 에드네의 싸움이 너무 격해지면 말릴 생각이었지만, 평소 에드네와 리트아를 직접 봐온 바에 의하면 그 둘은 은근히 서로를 생각해주고 있었기에 정말로 극한 상황에 치닫지는 않을 거라 믿고 있었다.


쾅!


리트아와 에드네가 다시 한 번 격렬하게 충돌하는 그 순간, 비스는 바라다에게 재빨리 속삭였다.


"저 남자는 아무래도 시간을 끄는 게 주목적인 것 같다. 네가 먼저 들어가라. 나는 시간을 끌겠다."


바라다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쾅!


또 한 번의 소음.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비스가 움직였다. 거칠게 자리를 박찬 그는 열을 향해 쇄도했다. 두 자리의 검이 달빛을 받아 청명한 빛을 머금었다. 열은 침착하게 봉을 휘둘러 비스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그 틈을 노리고 바라다가 비스의 엄호를 포기하고 내달렸다.


'잔머리를 쓰네.'


열은 재빨리 쇠구슬을 튕겼다. 하지만 쇠구슬은 바라다에게 닿지 못했다. 자신의 안위를 도외시한 비스가 몸으로 그 구슬을 막았기에. 튀어나오는 신음을 삼킨 비스가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목을 노리는 검을 살짝 뒤로 몸을 눕혀 피해낸 열이 다시 한 번 쇠구슬을 튕겼다.


"큭."


비스는 이번에도 자신의 몸을 이용해 쇠구슬을 막았다.


열은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내가 해칠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채고 이러는 건가? 그렇다면 굉장히 곤란했다. '손'을 꺼내는 건 당연히 불가능. 이대론 꼼짝없이 바라다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바라다는 비스를 힐끔 보곤 그대로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연인을 믿었다.


'큰일 났네!'


열이 최대한 은밀하게 '손'을 쓸 마음을 먹은 그 순간,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던 바라다가 전신에 가시를 가득 박힌 채로 튕겨 나왔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그녀는 바닥을 몇 바퀴 구른 후 의식을 잃은 채 축 늘어졌다.


"바라다!"


비스는 열에게 빈틈을 보이는 것도 무시한 채, 바라다를 향해 내달렸다. 열은 그 틈을 노리고 봉을 휘둘러 비스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급소에서 느껴진 강렬한 충격에 비스의 정신이 암전했다.


"바라다···."


그가 바닥에 고꾸라지자, 건물 안에서 가시덤불로 뒤덮인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파트라는 열을 보며 다소곳이 웃었다.


"놓치시면 곤란한데요."


[가만히 뒀어도 내가 알아서 막을 거였어.]


퉁명스러운 목소리. 파트라는 툴툴대는 열을 보며 더욱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아니었으면 분명 안으로 침입했을 걸요?"


[진짜 나 못 믿어? 딱 타이밍 좋게 막으려고 했다니까? 그나저나 쟤 몸에 가시가 잔뜩 박혔는데 저거 괜찮은 거 맞아?]


"네. 당연하죠. 저도 괜히 집행자분들한테 원한을 사고 싶지 않으니까요. 일부러 신경 써서 기습한 거예요."


파트라가 가볍게 손짓하자 바라다의 몸에 박혀있던 가시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열은 얼른 다가가서 정신을 잃은 바라다의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후, 진짜 내가 별짓을 다해보네.]


열이 투덜대며 마스크를 벗자, 파트라의 눈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얼굴이···?"

"내 얼굴이 왜?"


앳된 모습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반듯한 얼굴 위에는 수많은 상흔이 가득했다. 어린아이가 장난스럽게 그어놓은 그림 같이 난장판인 흉터들.


열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제야 자신이 아직 이 얼굴을 파트라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키득키득 웃은 열이 그녀에게 물었다.


"왜? 많이 이상해?"


슬쩍 다가온 파트라가 얼굴에 새겨진 흉터들을 매만졌다. 깊게 새겨진 흉터들은 턱을 타고 흘러 목으로 이어졌다. 분명 이 몸에도 수많은 흉터들이 새겨져 있겠지.


"평소에 그 뽀송뽀송한 모습은 전부 거짓이었나요?"

"아닌데? 그것도 내 모습 맞아. 조금 어린 시절 모습. 이 흉터들도 그냥 기념 삼아서 남겨둔 거야. 전리품 같은 개념이지."


열이 두 손을 펼쳐서 얼굴을 살짝 매만지자 얼굴의 흉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선해 보이는 인상의 미남이 나타났다. 그는 평소와 달리 어른스러운 미소를 짓고서 파트라를 바라보았다.


"어때? 이러면 좀 낫나?"


파트라는 재빨리 손가락을 떼고서 말했다.


"... 조금 낫긴 하네요. 아니, 꽤 낫긴 하네요. 당신 대체 몇 살이에요?"

"나도 모르지? 안 세어봤으니까?"

"학교 다닐 나이는 한참 지났죠?"


열의 미소 속에 장난기가 잔뜩 스며들었다. 검지를 펼쳐서 자신의 입술을 가린 열이 말했다.


"이 얼굴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로 해줘. 이젠 들키면 굉장히 쪽팔릴 거 같으니까."

"말할 생각도 없었어요. 누굴 고자질쟁이로 아시는 건가요? 애초에 저는 저 집행자 둘하고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고요."

"갑자기 말이 좀 많아졌다?"


파트라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입술을 꾹 다물고는 열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열은 그 모습을 보곤 장난스럽게 찹쌀떡같이 보들보들한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이어 앙나요···?"

"째려보지 마. 나 누가 째려보는 거 좋아하진 않으니까."

"알에 으니아 이어 아요!!!"

"응응."


파트라는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매만지며 열을 노려보려다 또 꼬집힐까 봐 재빨리 눈초리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나저나 증거는 다 치웠어?"

"예. 이제 저 둘만 말리면 돼요."


콰앙!


리트아와 에드네가 격돌하는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래. 알겠어."


열은 그 모습을 보곤 어디론가 연락을 넣었다.


***


바라다도, 비스도 이번 일에 대해서 이상함을 못 느꼈지만, 유일하게 리트아는 뭔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콰앙!


극한까지 가속된 거대한 백색 둔기와 묵빛 대검이 마주치자 거대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이상했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분명, 작전 중에 에드네와 이렇게 맞부딪히게 된 적이 있기는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전부 자신의 살인과 관련된 문제였다. 이렇게 아무런 생명이 걸리지 않은 일에서 다짜고짜 싸움이 붙은 건 처음이었다.


안 본 사이에 에드네가 더 예민해진 건가? 아니면 열과의 일을 자신이 방해한 것 때문에?


콰앙!


다시 한 번 무기가 충돌했다. 찰나의 순간 이어진 수십 차례의 충돌 속에서 리트아의 머리는 더없이 빠르게 돌아갔다.


아니. 그럴 리 없었다. 에드네는 저렇게 보여도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절대 자신의 연애사업을 방해했단 이유가지고 공적인 작전을 훼방 놓을 리 없었다.


리트아는 매번 에드네와 투닥거리긴 했지만, 그만큼 에드네에 대한 믿음도 확고했다.


만약, 에드네가 이번 작전을 일부러 방해하는 거라면 이번 작전의 목표물이 자신의 기준에선 죄이지만, 에드네가 보기엔 전혀 죄가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


쾅!


새하얀 갑옷으로 뒤덮인 발이 리트아의 복부를 강타했다. 충격으로 리트아의 머릿속의 새하얘졌다. 몸이 허공을 날아 벽 속에 처박혔다.


방금의 일격은 에드네가 내지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대지 위에 선 에드네가 빙그레 웃었다.


"왜? 놀랐어?"


리트아는 입에 고인 핏물을 뱉어내고서 에드네를 마주 보았다.


"'달인'에 도달했나?"

"응. 최근에. 왜? 평생 너만 '달인'일 거 같았어?"

"정말 진심으로 해야겠군."


리트아의 몸 위로 검은 갑각질이 뒤덮어갔다. 드러난 거대한 독침 꼬리. 특이적성 '전갈'의 발현이었다.


순간, 리트아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에드네는 침착하게 손에든 둔기를 휘둘렀다.


쾅!


한층 더 무거워진 충격에 에드네는 이를 앙다물었다.


살아있는 뱀처럼 파고든 독침 꼬리가 에드네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에드네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에드네가 챙겨온 통신기가 박살 났다. 막, 열이 연락을 넣었던 통신기가.


"쿨럭."

"미안하지만, 너와 난 달인으로 지낸 시간이 다르다. 아직 미숙하군."


'달인'의 힘은 곧 의지의 힘. 자신의 의지를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닥쳐!"


수십 가닥의 빛의 광선이 허공을 할퀴며 리트아를 향해 나아갔다. 그녀는 침착하게 대검을 휘둘렀다. '베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서.


허공에 그어지는 수십 가닥의 선. 극한까지 가속된 리트아의 참격이 에드네의 모든 공격을 베어냈다.


에드네는 그 틈을 노리고 리트아에게 파고들었다.


가속하고 또 가속한다. 거기에 증폭의 힘을 극한까지 담았다. 새하얀 생체 갑옷이 발끝으로 모여들었다. 둔기의 형태를 갖춘 발을 최대한 힘을 압축해 휘둘렀다.


검은 가면 너머로 탁한 회색빛 눈동자에 정광이 감돌았다. 리트아는 그저 천천히 대검을 내질렀다.


"끝이다. 에드네."


에드네는 패배를 직감했다. 기어코 따라잡았다고 생각한 리트아는 생각보다 더 먼 곳까지 나아간 뒤였다.


"빌어먹을. 이래서 천재들은···."


그래도 에드네는 휘두르는 발을 멈추지 않았다. 패배를 직감했지만, 아직 정말로 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은 이 일격을 끝까지 내질러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지난 세월 갈고 닦은 노력의 전부가 이 일격에 담겨 있었기에. 적어도 나만은 나의 노력을 부정해선 안 된다. 에드네는 그렇게 생각했다.


에드네가 크게 다칠 게 분명한 상황. 리트아 또한 물러설 수 없었다. 이 공격을 멈추었다간 자신이 도리어 크게 다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리트아는 손에서 힘을 천천히 뺐다.


점차 느려지는 대검.


에드네가 일갈했다.


"개 같은 배려는 필요 없으니까! 최선을 다해! 이 나쁜 기지배야!!!"


그제야 리트아는 비틀린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대검에 힘을 더했다.


에드네는 느리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할 그 일격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앞서나간 자에 대한 경의도 살짝 담아서.


충돌 직전.


"아니, 둘이 대체 어디까지 하려고! 이거 진짜로 다치잖아!"


보랏빛 갑옷으로 뒤덮인 네 개의 손이 대검과 둔기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두 공격을 동시에 맞고 찌그러졌다.


대검에 베인 열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남겨진 몸통은 에드네의 발차기에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채 바닥을 굴렀다.


에드네와 리트아는 경악 속에서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열!!!"

"열!!!"


간신히 머리만 재생해낸 열이 바닥에 처박혀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너무 아파서 울고 싶네···."


작가의말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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