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ition : 1988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플나
작품등록일 :
2020.01.21 15:23
최근연재일 :
2023.04.16 10:58
연재수 :
241 회
조회수 :
17,567
추천수 :
127
글자수 :
1,352,372

작성
21.01.16 10:06
조회
45
추천
0
글자
12쪽

7화 : 귀환(Return) (1-4)

DUMMY

* * * *


이틀 후, 1988년 2월 17일 수요일 8시 23분.

서울 모(某) 병원.


지수와 지애림은 엊그제 부산을 벗어나 서울의 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지수는 피해자이긴 해도 약을 썼다는 사실에 걱정이 한 가득이었지만,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아마 한강진 국장이 손을 쓴 것 같았다.


‘그런데... 9국과 연관이 있는 병원인가?’


그때 기억한 9국 건물과 그리 멀지 않은 병원이었다. 그리고 의료진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그들을 대했다.


지수는 부상에서 대부분 회복한 상태였다. 약의 경우 투약 횟수와 양도 많지 않았기에 그리 큰 후유증은 없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잔향만이 진하게 남은 수준으로, 그럭저럭 이겨낼 만 했다. 하지만 지애림은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심리적 충격에 급속 중독과 금단 증상으로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 아요.”


지수의 물음에 지애림이 나지막한 소리로 대답했다. 병실 침대 위의 그녀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추워요...”


오한과 감각 이상에 혼란에 빠진 지애림이 모포를 뒤집어썼다. 모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작게 떨렸다. 피부 아래로 무언가 기어 다니는 가려움, 갈증을 비롯한 각종 금단증상은 그녀의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지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람 하나를 저렇게 만든 박철수를 용서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사람이 자신이 평생에 걸쳐 사랑한 사람 중 하나라면 더더욱.


“미치겠어요. 이걸, 도대체, 어떻게... 약, 약을...”


입안이 말랐는지 연신 혀를 적시는 그녀였다. 나오는 말은 중심 없이 횡설수설에 가까웠다. 지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책망했다. 동시에 자신이 느꼈던 약의 감각을 떠올리며 이를 깨물었다.


흐트러진 의지도달공간은 마치 비눗물에 기름을 푼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그 헝클어진 경계에서 들어오는 감각 - 쾌락 - 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 잠시 뒤 머리를 쥐어짜는 쾌감이 약간 사그라지자, 온몸의 털 하나하나가 예민해지면서 극도의 집중 상태가 이어졌다.


그때 얻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했다. 아프기도, 그렇지 않기도 한 느낌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잡긴 했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


의사는 적어도 일주일 이상의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금단증상이 사라지더라도 탐닉이나 플래쉬백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말도 이어졌다. 불안에 떨던 그녀가 지수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옆에... 있어줘요. 제발.”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손끝을 보자 불같은 분노가 치밀었다. 어제의 그녀는 더 이상 없다는 생각과, 그것이 자신의 판단 때문이라는 자책은 이런 분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계속 그녀의 옆에 있을 수는 없었다. 박철수 역시 곧 자신의 생존을 알게 될 터였고, 뭔가 다른 음모를 꾸밀지 몰랐다. 그러기 전에 뭔가 행동을 해야했다. 지수는 그녀를 한 번 강하게 끌어안은 후 천천히 일어섰다.


“또 올게.”

“......”


무언가를 애타게 바라는 눈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머리로는 떠날 수밖에 없는 그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를 꽉 깨물고 손을 놓은 지애림이 시선을 피했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손끝을 가까스로 여민 그녀를 보며, 지수 역시 이를 깨물었다.


의사는 지수의 퇴원을 만류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는 짐을 정리해서 병원 밖으로 나왔다. 지수는 병원비까지 다 정리해둔 한강진 국장의 꼼꼼함에 감탄하며, 수장부로 향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로 오래간만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지수는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놓인 집기류 대비해서 넓은 사무실이었다.


“수장!”


문소리에 놀란 남자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인 그는 수장부 볼리셔니스트 중 한 명인 ‘최영진’이었다. 허둥지둥 일어선 최영진이 지수를 향해 빠르게 걸어왔다.


“괜찮으세요?!”


지수는 짐을 받는 그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사무실 안쪽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별 일 없었고?”

“네. 아까 지연이가 왔다 갔어요. 수장 오시면 전해 달라고 한 게 있어요.”

“지연이가?”


최영진은 자신의 책상에서 봉투 하나를 들고 와서 그에게 내밀었다. 테이프와 도장으로 꽤 단단하게 봉인된 봉투였다. 지수는 이것이 9국에서 나온, 이번 일에 대한 보고서임을 깨달았다.


봉투를 들고 자리로 간 지수가 가위로 봉인을 잘라냈다. 역시 예상대로 9국에서 온 문서였다. 몇 장으로 된 보고서에는 이번 일에 대한 분석 등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득 지수는 수장부 테러 이후 9국에의 의존성이 높아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상어의 폭탄 테러로 인력을 다수 잃은 수장부가 위태롭게 돌아가고 있던 것도 현실이었다.


7~8명 정도의 상주인력 중 절반을 테러로 잃었다. 그렇다고 업무 특성상 인력의 빠른 충원도 불가능했다. 결국 최근에는 수장인 자신과 예지가인 지애림, 9국에 파견 중인 박지연, 보조의 최영진 정도가 수장부의 전부였다.


이때였다. 갑자기 전화기가 울리며 두 사람의 시선을 당겼다. 외부용으로 유일하게 공개한 회선이었다. 지수는 손을 들어 전화를 받으려던 최영진을 제지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장! 수장인가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주인공은 바로 미림의 당주인 반채림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확인한 지수가 대답했다.


“반 당주. 어쩐 일입니까?!”

[절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절해 회장 명으로 수장 탄핵 격문이 돌았어요!]

“!!!!”


강(江)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의기력자 공동체 연합 협의체 강(江)」이었다. 이는 지역별로 내려오던 각 공동체를 묶는, 근세 이후로는 최초로 만들어진 연합체였다. 이를 테면 각 주(州)로 구성된 미국에 연방 정부가 있는 것과 비슷했다.(역할은 좀 달랐지만)


이러한 연합 협의체의 운영 규칙은 대부분 해외에서 들여온 것이 많았다. 주로 커뮤니티가 크게 발달했던 유럽이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필요할 경우 개별 커뮤니티가 수장 탄액안을 발의하고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규칙을 따랐던 강(江)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의를 소집했습니까?!”

[아뇨. 먼저 반응을 보려 하는 거 같아요. 내용 한 번 들어보시겠어요?]

“예. 말씀해 주시죠.”


반채림이 읽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상어에게 패배하고 전국 공동체에 피해를 입힌 것, 공동체의 동의 없이 정부 산하 볼리셔니스트와의 밀약, 자금 출처의 불확실성, 위치조차 알려지지 않은 폐쇄적인 운영, 폭거와 독단... 물론 대부분의 내용이 거짓 혹은 부풀린 것에 가까웠지만, 해명이 필요한 내용도 있었다.


바로 「그릇」과 관련된 일이었다.


상어가 그릇을 찾으러 남한으로 내려왔다는 내용과, 수장부가 그것을 숨기고 그릇을 독점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그래요.]

“......”


그렇게 지수가 긴 한숨을 끝내자, 반채림의 질문이 이어졌다.


[수장. 전 수장을 믿어요. 하지만 한 가지만 대답해 주세요. 여기 「그릇」과 관련된 내용, 정말인가요?]

“......”


지수는 공동체간 분열을 우려하여 그릇과 관련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물론 그간 상어의 침공 이유에 약간의 의문부호가 붙은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빨갱이가 쳐들어와서 난리치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겠느냐 정도의 얘기로 무마해 온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배후에 엄청난 능력을 가진 그릇이 있고, 또 그것을 수장부에서 정보를 은폐했고 독점하려 했다는 말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조건적인 해명이 필요했다.


“사실이에요.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겁니다. 변경 같겠지만, 사심이 있어 그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전국에서 난리가 났어요. 지금도 저한테 전화가 쏟아지고 있어요. 여론도 좋지 않아서... 자칫하면 진짜 탄핵될 지도 몰라요.]


지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선수를 친 건 역시 걱정대로 박철수였다. 이렇게 공동체를 혼란스럽게 만들어서 시간을 벌 속셈이겠지. 여기에 어설픈 변명은 혼란을 더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미림의 반채림만은 우군으로 유지해야 했다. 지수가 말했다.


“절해 관련해서는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네?]

“절해가 배신했어요. 박철수가 외국 세력의 의기력자들을 끌어들였죠.”

[뭐라고요?!]

“그 과정에서 애림이가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지금도 병원에 있는 상태입니다.”

[...!!]

“난 박철수에게 직접 고문당했죠. 그리고 놈은 그녀를 능욕했습니다.”

[!!!!]


침 삼키는 소리가 잡음 사이로 들려왔다. 반채림도 수장이 이런 걸로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알겠어요. 잠깐... 뭐가 또 들어왔어요.]

“?!”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이를 받아든 것 같았다. 반채림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예상대로에요. 박철수가 공동체 회의를 소집했어요. 일시는 내일 모레 금요일 14시, 장소는... 짜증나네요. 여기서 하겠다고 적혀 있어요. 남쪽이든 북쪽이든 오가기 편하다고요.]

“거림산업에서요?!”


박철수는 회의의 일정과 장소를 멋대로 정했다.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었지만, 내용으로만 보면 모든 정리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아마 이 내용을 받아든 타 지역 공동체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이래저래 완전히 선수를 빼앗긴 지수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안 돼요. 모아놓고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부하기도 그래요. 만약 회의를 무산시키려고 하면 더 큰 반감을 살 거예요. 어쩌면 절해의 배반도, 그릇과 관련된 일이라면 묻힐 수 있어요.]

“......”


이미 일은 벌어졌다. 게다가 반채림의 말도 맞았다. 지금 와서 절해의 배신을 얘기한다고 해도, 회의는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 뻔했다. 거기에 박철수는 당연히 배신을 부정할 터였다. 증거가 있긴 하지만 이것조차 대부분의 출처가 9국인 상황. 9국 자료를 공공연하게 공개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장소를 부산이 아닌 이곳으로 정했어요. 다른 공동체는 이걸 절해가 정정당당하게 회의를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거예요.]


만약 부산을 회의 장소로 지정했다면 거부할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3의 장소를 얘기했고, 이는 미림의 예지망 안에서 ‘장난질은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박철수가 노리는 점이었다. 일단 공동체의 대표들을 모은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수장 탄핵 안건을 올린다는 것은, 결과와 관계없이 수장의 지배력을 떨어트리고 팔다리를 잘라버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하죠?]

“......”


한참을 고민하던 지수가 입을 열었다. 절박한 목소리였다.


“반 문주. 나 좀 도와주십시오.”


-2-


다음날, 1988년 2월 18일 목요일 10시 39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모처(某處).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Volition : 1988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0523] 주요 설정 Ver. 0.1 (작성중) 20.05.23 196 0 -
공지 글에 관한 간단한 내용(본문 전에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1 20.02.22 306 0 -
공지 안녕하세요. 플나.입니다. +2 20.01.21 190 0 -
241 11화 : 폭풍(Storm) (4-3) 23.04.16 16 0 19쪽
240 11화 : 폭풍(Storm) (4-2) 23.04.10 14 0 11쪽
239 11화 : 폭풍(Storm) (4-1) 23.04.02 10 0 13쪽
238 11화 : 폭풍(Storm) (3-5) 23.04.02 14 0 9쪽
237 11화 : 폭풍(Storm) (3-4) 23.03.26 14 0 11쪽
236 11화 : 폭풍(Storm) (3-3) 23.03.26 7 0 12쪽
235 11화 : 폭풍(Storm) (3-2) 23.03.19 16 0 11쪽
234 11화 : 폭풍(Storm) (3-1) 23.03.19 10 0 11쪽
233 11화 : 폭풍(Storm) (2-5) 23.03.12 13 0 12쪽
232 11화 : 폭풍(Storm) (2-4) 23.03.12 16 0 13쪽
231 11화 : 폭풍(Storm) (2-3) 22.08.27 31 0 12쪽
230 11화 : 폭풍(Storm) (2-2) 22.07.30 24 0 14쪽
229 11화 : 폭풍(Storm) (2-1) 22.07.17 24 0 16쪽
228 11화 : 폭풍(Storm) (1-3) 22.07.03 36 0 11쪽
227 11화 : 폭풍(Storm) (1-2) 22.06.26 35 0 15쪽
226 11화 : 폭풍(Storm) (1-1) 22.06.18 44 0 12쪽
225 10화 : 폭격(Bombardment) (6-5) 22.06.06 42 0 19쪽
224 10화 : 폭격(Bombardment) (6-4) 22.06.04 37 0 11쪽
223 10화 : 폭격(Bombardment) (6-3) 22.05.29 37 0 11쪽
222 10화 : 폭격(Bombardment) (6-2) 22.05.15 40 0 12쪽
221 10화 : 폭격(Bombardment) (6-1) 22.05.01 35 0 11쪽
220 10화 : 폭격(Bombardment) (5-7) 22.05.01 47 0 13쪽
219 10화 : 폭격(Bombardment) (5-6) 22.04.10 41 0 11쪽
218 10화 : 폭격(Bombardment) (5-5) 22.04.02 37 0 12쪽
217 10화 : 폭격(Bombardment) (5-4) 22.03.28 47 0 12쪽
216 10화 : 폭격(Bombardment) (5-3) 22.03.26 41 0 12쪽
215 10화 : 폭격(Bombardment) (5-2) 22.03.20 42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