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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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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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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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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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구원(Salvation) (2-2)

DUMMY

같은 시간, 사이트(Site).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어느새 플라타너스 추적을 위한 전초기지가 된 이곳은, 여러 명의 사람이 오가면서 분주함을 이어갔다. 버건디는 가건물 안에서 의자에 앉은 채 그레모리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이하 영어) 사라졌다고?!/

/그렇습니다. 여왕폐하./


버건디의 물음에 그레모리가 무릎을 꿇은 채 대답했다. 버건디가 답답한 듯 물었다.


/미래를 보는 네 능력으로도 알 수 없다는 말이냐?/

/「그릇」은 미래를 바꾸는 자. 시간의 방향은 알 수 있지만, 그마저도 주변을 흔들 때만 알 수 있습니다./

/....../


선문답 같은 대답이었음에도 버건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모리는 소환 직후부터 제 역할을 해냈다. 플라타너스가 동쪽, 특히 북동쪽을 향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그녀의 손끝은 남쪽을 향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경로였다. 물론 지금까지의 행동을 바탕으로 수색 방향을 동쪽으로 이어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버건디는 일언지하에 모든 의견을 거부하고 그레모리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수색의 방향을 곧바로 남쪽으로 돌렸다. 탈주병 발생이라는 위장 사건을 만들어 인근 군경의 협조를 받았다. 물론 이것은 애쉬의 걱정처럼 향후에 ‘빚’으로 돌아오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남쪽이라는 방향이었다. 그레모리의 말이 옳다면 플라타너스는 남한으로 간다는 말이었으니까. 같은 공산권 국가 - 중공이나 소련 같은 - 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텐데, 선뜻 납득가지 않았다. 버건디는 상어의 뜻 모를 행동에 쓴 입맛을 다시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가설 무전기로 보고를 받는 애쉬가 있었다. 애쉬가 수화기를 내려놓자 버건디가 물었다.


/차량은 발견했나?/

/아직입니다./

/마젠타는?/

/치료 중입니다. 생각 외로 부상이 심한 모양입니다./

/....../


마젠타가 큰 부상을 입고, 그가 보낸 병력들의 전멸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후발대가 도착했지만 전투는 막 끝난 상태였다. 올라오는 연기와 가라앉지 않은 먼지가 그것을 대변했다. 그리고 방금 사망한 듯 피가 굳지 않은 시체 여럿이 교각 위아래에 흩어져 있었다.


6명의 볼리셔니스트은 마젠타와 같은 커뮤니티 출신으로 실력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비행기를 이용한 병력 전개도 흠잡을 데 없었다.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방적인 전투 끝에 패했다. 쌍극자임을 감안해도 플라타너스의 강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마젠타의 부상도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으스러진 골반뼈는 어지간한 의료 계열 볼리셔니스트도 치료에 며칠이 걸릴 정도였다. 플라타너스는 그저 ‘여흥’이라고 했다지만, 그는 필요한 일을 충실히 마무리했다.


숨기로 마음먹은 1급 볼리셔니스트 공작원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이때 가건물 창을 통해 낮게 들어오는 햇빛이 버건디의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해도 지겠지. 플라타너스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점은 산악지대 초입이었다. 그쪽은 이미 어둠에 휩싸였을 터.


하지만 추적을 계속할 이유는 있었다. 바로 플라타너스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동행은 9살 여자아이, 그것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분명 한 번에 멀리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어디선가 멈춰서 쉬어야 하고, 먹어야만 한다.


/젠장.../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오히려 초조함을 키웠다. 분명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라는 추정과, 쉬이 잡히지 않는 동선이 버건디의 애를 태웠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그레모리는 ‘그릇’이 흔드는 의지의 파동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재의 CEP(원형공산오차)는 10km 정도. 그랬기에 동쪽으로 향하던 추적의 방향을 남쪽으로 돌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허나 방금 전, 그레모리는 그 흔들리는 ‘의지의 파동’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마치 폭풍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듯 증발해버렸다고 했다.


/그레모리./

/네. 여왕 폐하./

/그릇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한 건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 생명이 끊어지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신호였습니다./

/... 그렇군. 이제 어떻게 하면 좋지?/

/외람되오나, 모든 힘을 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잔잔한 그레모리의 말이 끝나고 버건디는 생각에 잠겼다. 뭔가 고민하던 그녀가 애쉬에게 질문했다.


/애쉬. 남은 1개 분대는 여기 있나?/

/네. 일단 대기 중입니다./

/「D장비」는 들어왔고?/

/... 그렇습니다./


문답 과정에 생각을 정리하던 버건디는 짧은 침묵을 뒤로하고 말했다.


/D장비 챙겨서 비올레타, 바이올렛, 그레이와 함께 현장으로 나가줘. 남은 1개 분대도 데리고./

/네?/

/어차피 2개 분대로 플라타너스를 완벽히 제압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하지만 D장비까지 투입할 필요는.../

/확실하게 해야지. 이곳 CP(Command Post)는 와인에게 맡기고 지금 출발 준비해./

/... 알겠습니다./


버건디의 명령을 받은 애쉬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때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던 그레모리가 말을 시작했다.


/여왕폐하. 지금은 병력을 더 남쪽으로 옮긴 후, 주요 길목을 봉쇄하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더 남쪽으로?/

/그렇습니다. 플라타너스가 멈춘 것은 분명해 보이나, 그의 남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 좋아. 애쉬, 들었지?/


애쉬가 짧게 대답했다.


/네./


책상 위의 지도를 보던 버건디가 지도를 들고 애쉬에게로 왔다. 그리고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여기를 봉쇄하고 근처에서 대기하도록.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근처 군부대에 더 손을 빌려./

/....../


애쉬는 표정을 숨기고 그냥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리고 곁눈질로 그레모리를 조심스럽게 한 번 쳐다보고는, 가건물 문을 향해 걸어갔다. 저 그레모리라는 여자의 말에 좌지우지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더구나 D장비에 비올레타 - 그릇 - 까지 동원하라니.


버건디가 말한 「D장비」란 「반(返) 의지도달공간 방어역장 발생기기(Anti-Volitional Field Defence Field Generator, AFDFG, 약칭 “D" Equipment)」를 칭하는 단어였다. 보통은 ‘그릇’의 능력 폭주시 발생하는 반(返) 의지도달공간 - 볼리셔니스트의 의지도달공간을 「녹여버리는」 - 을 막기 위한 물건이었다.


이 장비는 일전 Obyekt(Object) 667(남채휘) 확보를 위한 전투에서 실전을 거친 바 있었다. 아슬아슬했지만 Obyekt(Object) 667를 폭주시켜 발생한 반(返) 의지도달공간을 효과적으로 방어했고, 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경험에서 볼 때 버건디의 의도는 분명했다. 플라타너스 주변에서 비올레타를 폭주, 반(返) 의지도달공간을 발생시켜 그를 무력화시키라는 뜻이었다. 문제는 비올레타의 반(返) 의지도달공간 발생 범위였다. 끽해야 50m 정도에 지나지 않는 범위를 고려하면 상어에게 영향을 주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검은색 나무 유일의 그릇과 예지가를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 더 위험해 보였다.


/‘그레모리...’/


그러나 버건디의 명령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가건물을 나온 애쉬가 손을 들어 뭔가를 지시했다. 그러자 볼리셔니스트 하나가 강하게 봉인된 나무박스 하나를 트럭에서 내렸다.


/열어 봐./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볼리셔니스트가 쇠지레를 꺼내 나무박스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충격흡수용 스펀지에 쌓인채 나란히 놓인 은색의 쇠막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량은 열 개 정도였다. 내용물을 확인한 애쉬가 말했다.


/이제 출발할 대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도록. 그리고 바이올렛과 비올레타를 불러 와./


잠시 뒤, 애쉬와 그레이, 비올레타와 바이올렛, 그리고 6명의 볼리셔니스트들을 태운 트럭이 출발했다. 이미 12명의 볼리셔니스트들이 출발한 상황에서 가용한 마지막 전력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조수석의 애쉬는 시끄러운 트럭 엔진 소리를 들으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레모리가 나타나면서 갑자기 권력관계가 이상해져버렸다. 버건디는 비현실적인 광경 속에서 나타난 상대를 완전히 믿고 있었다. 게다가 그레모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체스판의 말처럼 다뤄지기 시작했다. 흡사 아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낙하산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뭐 하나 이해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애쉬가 왼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애쉬의 왼손바닥에는 원형의 어떤 마법진과 복잡한 문자가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릇’과 접촉할 경우 그 능력을 폭주시켜 반(返) 의지도달공간을 만들어내는 마법진이었다.


사실 이것 역시 버건디에게서 받은 능력이었다. 버건디는 어떤 특수한 시술로 자신에게 이것을 제공했다. 그저 반신반의하던 능력을 확인한 것은, 전술기화(化) 중이었던 「Obyekt(Object) 663(한수민)」을 제압하는 과정에서였다.


의지도달공간 융합세동(Volitional Field Fusion Fibrillation : 그릇이 의지도달공간을 합치는 과정에서 발생한 어떤 불규칙한 파동으로 의지도달공간 자체가 무너지는 현상.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발생시 주변 볼리셔니스트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이 일어난 상황에서, 애쉬는 자포자기 하듯 Obyekt(Object) 663의 능력을 고의로 폭주시켰다. 일순간 볼리셔니스트들은 자신의 의지도달공간을 잃었다. 그러나 융합세동을 멈출 수 있었고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았다.


/흥.../


애쉬가 왼손을 꽉 쥐었다. 마뜩치 않았지만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이 방법으로 플라타너스를 제압하고 그릇을 재확보 할 수 있다면, 그레모리의 입지도 조금은 약화시킬 수 있겠지. 어쨌든 현장에서 플라타너스를 상대할 사람은 자신이니까.


한편, 상어는 일단 기다려보기로 결심을 굳혔다. 아까 전 ‘바람이 잦아든’ 이후, 적들의 모습이 어수선해졌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었지만 움직임이 흐트러진 건 분명했다.


“조금씩 멀어지는 거 같아요.”

“남쪽으로?”

“예.”


단안경을 눈에서 뗀 상어가 조심스럽게 커튼에서 손을 거두었다. 채휘의 말 역시 자신의 판단과 비슷했다. 적들은 자신의 진로와 동일하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어떤 목표를 놓친 것이 분명했다. 상어가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17시 54분. 이미 주변은 해가 떨어져 밤과 다름없었다.


아마 적들은 더 남쪽에 진을 칠 셈으로 보였다. 자신들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더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봉쇄는 더욱 옅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제대로 한 번만 돌파할 수 있다면 무주공산도 꿈은 아니었다.


그렇게 상어는 그 옅어질 봉쇄망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했다. 대신 이곳의 안전이 확보된 이상, 좀 더 편하게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 * * *


1988년 3월 1일 월요일 07시 09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회의실.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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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10화 : 폭격(Bombardment) (6-3) 22.05.29 38 0 11쪽
222 10화 : 폭격(Bombardment) (6-2) 22.05.15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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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10화 : 폭격(Bombardment) (5-4) 22.03.28 47 0 12쪽
216 10화 : 폭격(Bombardment) (5-3) 22.03.26 41 0 12쪽
215 10화 : 폭격(Bombardment) (5-2) 22.03.20 4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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