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ition :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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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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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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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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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구원(Salvation) (2-3)

DUMMY

* * * *


1988년 3월 1일 월요일 07시 09분.

서울 모처(某處), 국가안전기획부 「제9국」 회의실.


작전 준비실로 바뀐 회의실은 어지러웠다. 온갖 자료들과 함께 서류와 지도 등이 사방에 너부러져 있었다. 책상들도 시시각각 위치를 바꾼 듯, 이리저리 옮겨 다닌 흔적이 바닥에 선명했다. 한강진 국장은 회의실 한쪽에서 의자에 앉은 채 책상 위의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밤사이 몇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김다빈이 상어의 정시 연락을 받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그에 맞춘 대략적인 작전안이 결정되었다는 점이었다.


“천왕성Uranus이라...”


한강진 국장이 얼기설기한 종이 뭉치를 하나 둘 넘겨보면서 나지막이 읊조렸다. 어느 샌가 작전명을 태양계의 별 이름으로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렸다. 정은정 과장이 붙여온 이번 이름 역시, 천왕성 작전Operation Uranus이었다. 첫 페이지를 다시 넘겨보던 한강진 국장은 속으로 살짝 웃었다.


물론 별 이름을 붙이는 건 자신이 시작했다.(시작은 84년 수성 작전Operation Mercury - 탈주한 차환준 중사를 사냥한 - 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 이름들이 나치 독일을 상대하던 소련의 작전 이름이라는 걸 알면 다들 놀라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 과장. 고생했네. 선우 중사도.”

“고맙습니다.”


선우현 중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번 작전안 수립에서 군사분계선 인근 긴장 조성, 월경 및 후퇴에 대한 세부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실제로 넘어보지 않으면 모를 디테일한 자료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상어가 시간에 맞출 수 있을까요?”


상어는 현재 자신의 위치와 봉쇄망 상황, 그리고 향후 이동 계획을 담은 암호전문을 김다빈을 통해 보내왔다.(무려 일반전화를 이용한) 작전안 역시 거기에 맞춰 꽤 세부적인 시간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그러나 정은정 과장은 여전히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기를 바라야지.”


한강진 국장이 붉은 도장이 위아래로 찍힌 작전지도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곳에는 현재위치 - 곡산리 - 부터 연천군까지 상어의 이동경로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근 15km 정도를 올라간 랑데부 지점과, 남한에서부터의 이동경로도 몇 개 그려져 있었다.


작전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상어는 채휘를 데리고 오늘 밤까지 금천군(군사분계점 북방 20km 근방) 인근까지 남하하고, 거기에 호응하여 지수를 비롯한 9국 볼리셔니스트들이 그곳에서 합류하여 채휘를 남한까지 호위한다는 내용이었다.


“전 참여할 수 없습니까?”


선우현 중사가 한강진 국장에게 물었다. 한강진 국장은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투는 무리야. 다만... 맡길 일이 없는 건 아니지.”

“뭡니까?”

“북한군 진지를 좀 휘저어주게.”

“...!!”


여기서 선우현 중사는 약간 움찔했다. 하지만 금방 그 뜻을 알아차린 한강진 국장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인명피해는 안 돼. 혼란을 줄 정도면 충분해.”

“......”

“돌입을 전후해서 우리군도 움직일 거야. 긴장감이 높아지고 다들 신경이 곤두서겠지.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적들에게 「볼리셔니스트」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네. 물론... 다른 곳에서 말이지.”

“조공(助攻)으로 날뛰어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놈들의 돌입경로 추측에 혼란을 주도록.”

“혼자서 합니까?”

“다른 사람이 필요한가?”

“아뇨. 혼자가 편해서 그렇습니다.”

“좋아.”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선우현 중사가 회의실에서 나갔다. 문이 닫히는 걸 보던 정은정 과장이 말했다.


“작전안이 통과될까요?”


그녀는 작전안의 통과를 걱정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북 작전 자체를 금하는 분위기였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어제 부장은 흔쾌히 허락했다고 해도 변덕일 가능성도 있었다.


“글쎄...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바람이 분 건지 모르겠군.”


한강진 국장 역시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어쨌든 오전 중으로는 구체안에 대한 보고를 끝내고 결재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럼 최종 정리 부탁하네. 방금 내용 추가해서.”

“네. 팀장님.”


작전안 초안을 다시 받은 정은정 과장도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한강진 국장은 깍지를 낀 채 크게 스트레칭 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긴 했지만, 북쪽 작전은 대략적인 형태를 잡은 상태. 이제 다음은 남쪽 작전이었다. 박철수의 확보와 해연수산 인수 저지가 그것이었다.


새벽녘 김다빈이 찍어준 박철수의 안가는 대략 네 곳이었다. 위치는 밀양, 마산, 부산 영도, 부산 송정이었다. 의외로 넓은 분포에 한강진 국장은 가장 유력한 곳을 하나 찍어달라고 했다. 고민하던 김다빈의 손가락이 부산 영도, 태종대 근처를 향했다.


‘태종대라...’


북쪽 작전과 마찬가지로 이쪽도 계획 자체는 간단했다. 먼저 부산의 박성범, 박찬율 대리가 강(江)에서 파견된 인력과 합류한다. 그렇게 합친 인원들은 박철수의 안가를 수색하고, 강치환 수사관은 그 사이 해연수산 인수 저지를 위해 움직인다. 박철수를 확보하면 곧바로 해연수산 경영권을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그렇게 시간을 끌어 상대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고, 천왕성 작전을 끝낸 9국 볼리셔니스트를 투입하여 마무리한다.


한강진 국장은 정리 중인 작전안 표지를 바라보면서 잠깐 고민했다. 표지는 제목 없이 작성부서(9국 행정지원과)만 적혀 있었다. 그는 펜을 들어 제목을 썼다. 정성들인 「화성Mars」라는 이름이 천천히 들어갔다.


순간 떠밀리듯 수행하는 양면작전에 부아가 치밀었다. 전력을 추슬러 제대로 투입하여 화끈하게 부딪히지는 못할망정, 그저 소방수가 불 끄듯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일을 처리하고 있지 않는가.


사실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분노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반쯤 포기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러나 능동적이지 못한 일처리는 언제나 마음 한켠을 무겁게 짓누르기 마련이었다. 이런 감정은 정보조직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에 있는 사람이든 마찬가지리라.


하지만 이런 여건에서 제대로 일처리를 하는 것은 더욱 중요했다. 설령 끌려갈지언정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미래를 쥘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아무리 떠밀렸다고 해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않은가. 결국 지금의 기회를 잡은 건 우연이 아니었다. 준비의 결과였다.


‘......’


과연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까. 한강진 국장은 순간 고민했다. 미증유의 적을 앞에 두고 발버둥치는 지금, 과연 어떤 미래가 찾아올까. 올림픽은 예정대로 열릴 것이고 엄청난 의지가 의지선 위를 흐를 것이다. 놈들은 분명 이 에너지를 이용하기 위해서 발악하겠지.


기술 격차든 뭐든 간에 이제 전반적인 윤곽은 나온 셈이었다. 에너지를 이용하는 목적이라는 가장 큰 궁금증이 남았지만, 좋은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더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막아야 함이 당연했다.


하지만 적들을 막는 건 9국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대(對)테러에는 빠삭한 국내 공안과, 국내 볼리셔니스트들을 관리하는 강(江)과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얼마 전 상어의 준동까지는 9국 혼자서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성에서 시작된 ‘중간자’로의 역할은, 지금까지는 무난하게 잘 해오고 있었다. 어렵긴 했지만 재야 커뮤니티의 협력도 일부 끌어냈다. 기존 조직과의 연결고리로도 기능했다. 짧든 길든 올림픽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양측을 이어주는 중재자로써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희망도 올림픽을 무사히 끝냈을 때 가능한 것이었다. 만약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하면 그저 잠시 있었다가 사라지는 조직으로서 남고 말겠지.


고개를 흔들면서 다시 작전에 집중했다. 아직 화성 작전의 보고안 작성이 남아 있었다. 망상에 빠져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잠시 뒤 간단하게 아침을 때운 한강진 국장은 「화성」 작전의 보고안을 거의 마무리했다. 시간은 어느덧 10시에 가까워진 상태. 이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정은정 과장이 들어왔다.


“팀장님. 보고안 정리했습니다.”


손 글씨 가득했던 아까 전의 종이뭉치가 깔끔한 서류모음으로 바뀌었다. 한강진 국장은 타이프로 정리된 작전안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천왕성 작전Operation Uranus」에는 총 일곱 명의 볼리셔니스트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9국은 현장지원과의 정은정 과장을 비롯하여 이성진, 서창민, 함성필, 윤민서 대리, 선우현 중사(아직 외부 교관 신분이라 직급이 나오지 않음)가, 그리고 강(江)의 수장인 김지수가 그들이었다.


박찬율 대리는 현재 부산에, 김휘승 대리는 억류 중인 지선후를 감시해야 하기에 빠지게 되었다. 한 명의 볼리셔니스트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작전 개시는 금일 23시로 잡았다. 개시 6시간 전 월경 포인트 중심 좌우 약 100km 정도의 GP와 GOP 병력 투입 형태를 바꾸고, FEBA 병력을 일시에 주둔지로 올려 긴장을 조성한다. 그렇게 포병대의 실사격 훈련과 병행한 군단급 병력의 대규모 야간 훈련으로 국경 근처 인민군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조공(助攻)인 선우현 중사가 월경 포인트 남서측 15km 지점에서 군사분계점을 넘는다. 적당히 정체를 드러내며 볼리셔니스트 목격담을 확산시킨다. 분명 이러한 볼리셔니스트의 등장은 적의 관심을 끌 것이다. 동시에 주 병력이 연천군 두현리에서 월경을 개시한다.


이러한 남한에서의 대규모 호응과 조공의 등장은 적 군부대를 묶어놓고, 볼리셔니스트 병력 역시 분산시킬 것으로 기대되었다. 여기에 군용 통신망을 쓸 수 있다는 것 역시 큰 도움이었다. 적진에 깊숙이 침투하는 이번 작전에서 장거리 무선 통신망은 필수적이었다.(9국은 아직 전용 통신망을 구축 중이었다)


다만 차량 등의 이동장비를 활용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웠다. 이동은 어디까지나 볼리셔니스트의 전술 기동에 의존해야 했다. 장거리 이동이 예상되는 만큼 의료계열 볼리셔니스트 두 명을 모두 참가시켰다. 혹시 모를 부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번 작전에 처음으로 의료계열 볼리셔니스트를 위한 응급치료 킷(Emergency Medkit)과, 기존보다 효율성이 더 개선된 피지컬 배리어와 광학위장 및 소음차폐 법칙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남쪽 작전은 이름이 뭔가요?”


정은정 과장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한강진 국장에서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화성.”

“이제 별 이름 거의 다 쓴 거 아니에요?”


그녀는 미소가 가득 담긴 얼굴로 장난스럽게 말했다. 물자준비, 외부지원 등을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간 지금, 넓은 회의실은 한산했다. 그저 두 사람이 정리된 작전안을 가지고 얘기를 나눌 뿐이었다. 점심 전에 본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곧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둘은 자투리 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직 남았지. 목성Saturn, 토성Jupiter, 해왕성Neptune이 있잖아?”

“이제 더 쓸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자연스럽게 입술이 겹쳤다. 한참동안 넓은 회의실에는 말소리 없이 원초적인 소리만이 낮게 흘렀다. 그리고 같은 시간, 회의실 문 밖에는 두통으로 머리를 붙잡는 민혜림 대리가 있었다.


‘참 타이밍 하고는...’


작가의말

읽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From PlasmaK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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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10화 : 폭격(Bombardment) (5-3) 22.03.26 4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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