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의 EX급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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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조경해
작품등록일 :
2020.01.27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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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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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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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열기

DUMMY

부산에는 멀쩡한 것이 없었다.


아무리 한 달이 지났다고는 해도 수년간 방치되어있던 시설들이 멀쩡하게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건물을 재건축하고, 망가진 도로를 정비하고, 각종 도시 인프라를 재정비하고는 있었지만, 부산이 원래의 형태를 다시 갖추려면 10년은 걸릴 것처럼 보였다.


그 증거로 거리에는 각종 컨테이너가 집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고, 도로가 망가진 탓에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더 많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쓴 채 부산의 거리를 걷던 기남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도시가 서울보다도 더 활기를 띠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전봇대에 매달려 전선을 수리하는 전기기사도, 컨테이너를 개조해 가게를 연 상인들도, 무거운 짐을 들고 도시 곳곳을 누비는 일용직 노동자들도, 수백 명분의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이 여름 더위 속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안 귀찮은 건가? 오늘 꽤 더운 날인데, 다들 열심히 구만...’


그 역시 몇 달 전까지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몸인 만큼 잡일이 얼마나 귀찮고 힘든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충실하게 하려고 해도 무거운 물건을 드는 건 힘 빠지는 일이고, 자질구레한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골치 아픈 일이며, 사람들 상대로 계속 웃고 있는 일은 기운 빠질 수밖에 없는 감정노동이다.


그들 역시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미 무너져버린 도시를 다시 고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자,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힘냅시다! 화이팅!”


서울에서 온 자원봉사자의 격려가 거리에 퍼져나갔다.


“마! 살살 좀 해라 살살 좀! 그러다 허리 뽀사지면 니 책임이라 안 캤나?”


“아 행님아! 지금 부산에 널려 있는 게 힐러인 마당에 뭔 걱정이 그리 많노? 이때 다쳐둬야 다른 병들도 겸사~ 겸사 치료받으러 갈 수 있는 거 모르나!”


요란스럽게 티격태격하는 현장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일 끝났으면 퍼뜩 국밥 먹으러 오이소! 늦게 오면 국물도 없습니데이~!”


자원봉사자와 피난민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나눠주는 급식소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는 정겨움이 넘쳐흘렀다.


지금 부산에는 어느 것 하나 열기가 없는 것이 없었다.


거리를 걸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기남은 민하윤이 어째서 부산에 오라고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자. 밥 먹고 힘쓰는 일이나 좀 하면, 기분이 좀 풀리겠지.’


잡념이 떠오를 땐 몸을 움직이는 게 최고였다.


이는 야구를 했을 때 몸으로 배운 교훈이었다.


몸을 움직이고 있을 땐 잡념이 사라졌고, 한껏 땀을 흘리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곤 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기남은 무료 급식소를 향해 걸어갔다.


“밥 먹고 자원봉사 좀 하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기남이 그렇게 말하자 배식을 하던 아주머니는 경상도 말씨가 섞인 표준어로 대답했다.


“서울에서 오셨나 보네. 저어기, 삼거리 가면 자원봉사하러 온 사람들 많으니까, 그쪽으로 가세요~”


“감사합니다.”


그는 국밥을 받은 뒤 구석진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밥을 먹었다. 만약 여기서 정체가 들킨다면 또다시 즉석 팬미팅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식사를 하고 있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원봉사자 청년 둘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근데 요즘 번개남은 뭐 하고 지낸대?”


“모르지. EX급 던전 또 들어간다고 말했던 게 한 달 전인데, 요즘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더라.”


“하여간 사이비 종교 믿는다고 어그로 끌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사실 던전도 서창현 헌터가 다 잡아놓은 거 막타만 친 거 아냐?”


“그런 말들도 많더라. 솔직히 서창현 헌터가 희생해서 던전이 많이 약해진 것도 맞고.”


묵묵히 밥을 먹던 기남은 그 청년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자 숟가락을 멈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숟가락을 움직여 밥을 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고, 일반인이랑 시비 붙어봐야 나만 손해지. 안 그래도 종교인 인식도 안 좋은데, 괜히 나대지 말자.’


프로 격투기 선수가 일반인과 싸워선 안 되는 것처럼, 헌터 역시 일반인과 싸워서는 안 됐다. 이 기본적인 원칙을 어긴다면 아무리 뛰어난 헌터일지라도 전 세계의 여론을 적으로 돌릴 각오를 해야 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남은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무시하며 밥을 먹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기남은 또다시 숟가락질을 멈춘 채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봤다.


“마! 늬들 방금 뭐라 캤나? 뭐어? 번개나암? 전기남 헌터님이 늬들 친구인 줄 아나! 어!?”


보아하니 다른 자리에서 밥을 먹던 부산 사내들이 기남을 욕하던 청년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남은 혹시나 싸움의 불씨가 자신에게 튈까 싶어서 마스크를 다시 착용한 뒤 상황을 지켜봤다.


“전기남 헌터님 아니었음 늬들은 여기 오지도 못했다! 그딴 소리 부산에서 지껄일 생각이믄 서울로 끄지라! 늬들 아니어도 사람 많다!”


“아니, 저희가 딱히 욕한 게 아니고...”


“하! 니 돌았나? 이젠 그짓말까지 하네?”


“아니, 그러니까...”


“됐고! 썩 끄지라! 확 시멘트 바닥에 쳐박아 뿔라!”


그러자 두 서울 청년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원래 자원봉사를 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서울 청년들의 체격 역시 왜소한 편은 아니었지만, 부산 사내들의 기세가 워낙 흉흉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일단락된 것을 확인한 기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릇을 다 비웠다. 그리고 식기를 반납한 뒤 밥값을 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있는 삼거리를 향해 걸어갔다.




***




“신체 강화 능력자시면 건설 현장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안 그래도 중장비가 부족하다고 많이들 말하시거든요.”


일명 노가다를 하라는 뜻이었지만, 자원봉사자의 권유에 기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가다라면 헌터가 되기 전에 몇 번 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장님한테 연락드릴 테니까 지금 출발하시면 돼요. 그런데 정말 자원봉사자 등록 안 하셔도 돼요? 나중에 세금 가면 혜택 받으실 수 있는데.”


“괜찮아요. 오래 할 생각으로 온 건 아니라서."


기남이 그렇게 말하자 자원봉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인 중에는 몰래 봉사활동을 해야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헌터도 그런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원봉사자에게 건설 현장의 위치를 전달받은 기남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 재건축현장에 도착했다. 중장비와 현장직 노동자들로 분주한 장소였다.


“아, 자원봉사 오신 헌터님이시죠? 저쪽으로 가셔서 안전모 받으시고, 작업반장님 지시받으면서 일하시면 돼요.”


헌터 중에서 가장 흔한 능력이 신체 강화 능력인 만큼, 현장에는 헌터로 보이는 인물도 몇 명 있었다.


낮은 등급에 속하는 D급과 C급 헌터도 일반인의 몇 배나 되는 무게를 들 수 있으니 건설현장에서는 큰 도움이 되는 인재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의 인부들은 신체 강화 능력을 지닌 헌터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드러냈다.


“히야~ 즤기네! 저거 완전 중장비 아이가!”


“사람이 아니라 완전 로봇이다, 로봇!”


“키야! 한 번에 시멘트 20포대를 옮기네!”


기남이 헌터로 보이는 인물이 지게에 시멘트 포대를 지고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작업반장이 말했다.


“A급 신체 강화 능력자라고 하셨죠? 혹시 중량 몇 kg까지 드실 수 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협회에서는 3대 5,000까지 측정해봤는데, 그 이상도 들 수 있어요. 저거 들어볼까요?”


기남이 가리킨 것은 한 가닥 당 무게가 1톤 정도 되는 H빔 10묶음이었다. 작업반장은 그가 3대 운동 5,000을 칠 수 말했으니 H빔 하나 정도는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저거 하나도 못 들면 A급이란 말은 허세였다는 뜻이겠지.’


작업반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남이 자세를 잡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기남은 H빔 10묶음을 통째로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 합치면 10톤이 넘는 H빔 묶음을 지푸라기처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건 A+급 헌터 중에서도 몇 명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3대 5,000이 아니라 3대 50,000도 치시겠는데요? 정말 A급 헌터 맞으세요?”


작업반장이 그렇게 어처구니없어하자 기남은 머쓱해 하며 마스크를 만졌다.


“그냥 중장비 기사 한 명 왔다고 생각해주세요. 어쨌든 일만 잘하면 되잖아요? 좋은 일 하러 온 건데...”


그 말에 작업반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지만, 이내 기남의 말에 수긍했다.


상대가 누구든, 신분이 어떻든, 현장에서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최고였다. 부산에서는 일손이 항상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인간 중장비’로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고, 이 일은 훗날 건설 현장의 전설로서 건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



자원봉사 활동을 끝낸 기남은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난 뒤 서울로 향하는 ktx의 특석에 올라탔다. 무더위 속에서 일하느라 땀을 잔뜩 흘리긴 했지만, 그만큼 잡념을 없앨 수 있었기 때문에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특석에 앉아 몸을 기대고 있자 민하윤 이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시간에 그녀가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업무상 중요한 내용이라는 뜻이었다.


기남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조금 전에 EX급 던전 진입에 대한 협상이 끝났어요. 자세한 건 내일 회의 때 들을 수 있을 테니까 결론만 짧게 요약해서 말할게요.”


그녀는 그렇게 운을 뗀 뒤 본론을 말했다.


“우선순위는 일본이 높지만, 경제 지원은 대서양 쪽이 더 많아요. 아무리 일본이 돈이 많아도, 미국과 EU를 합친 것보다는 훨씬 적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대신 먼저 던전을 공략할 명분은 일본 쪽에 있는 걸로 결론이 났어요. 다른 두 지역은 사람이 피해갈 수 있는 지역이지만, 후쿠시마는 조금만 더 퍼지면 도쿄까지 피해가 갈 수 있으니까요. 남극 던전은 어느 쪽이든 우선순위가 낮으니, 사실상 양자택일이라고 보면 돼요.”


“지금 결정할 필요는 없는 거죠? 자세한 건 내일 회의 때 얘기한다고 했으니까.”


“맞아요. 미리 생각해 두라고 충고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참고만 해 둬요. 어느 쪽이든 결정하는 건 헌터님 몫이니까요.”


기남은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등받이에 몸을 기댄 뒤 생각에 잠겼다.


‘후쿠시마에는 명분이 있고, 대서양에는 실리가 있고, 남극은 아무것도 없다라...’


후쿠시마에 위치한 [팔백만신의 숲]

대서양에 위치한 [용왕의 성채]

남극에 위치한 [미래 연구소]


어느 쪽이든 [혈귀의 호수] 보다 위험하면 위험했지 쉬워 보이진 않은 던전들이었다.


그나마 선배 헌터들이 남긴 자료를 참고할 수 있었던 [혈귀의 호수]와는 다르게, 이 던전들의 보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은 쉬고 나서 생각하자. 자세한 건 내일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까.’


기남은 긴 휴식 기간이 끝나가는 것을 직감하며, 서울로 떠나는 ktx에 몸을 맡겼다.


작가의말

선작 수가 100을 넘겼네요.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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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최고의 헌터, 영생의 왕 +7 20.02.09 1,520 39 13쪽
16 헌터를 먹는 초롱아귀, 제2계층 +3 20.02.08 1,618 31 14쪽
15 제1계층, 피의 베네치아 +4 20.02.07 1,550 3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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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부산행 직전 +1 20.02.05 1,653 37 13쪽
12 SS급 헌터, 부산 탈환 선언 +5 20.02.04 1,760 3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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