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들개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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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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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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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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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외전 3장 28화 – 요동치기 시작한 정국, 그 바깥

DUMMY

- 통과, 입성하시오!


갈라지는 듯 하면서도 우렁찬 쇳소리를 닮은 군관의 외침과 함께 또 다시 수백에 달하는 무리들이 하남윤에 발을 들였다.


상공인 하며, 빈민들 하며, 타주로부터 배움을 위해 또 유람을 위해 사예를 찾은 이들이 그 중심지로 몰려드는 것이야 언제고 변하지 않는 하남윤의 풍경이었지만, 최소한도 오늘만큼은 그 의미가 기존과는 다른 날인 듯 했다.


“어휴, 이거 원 거지새끼들 천지도 아니고 언제고 이 하남윤에 몰려드는 것들이 왜 이리 많아?”


“쯧, 너무 아니 꼽게 보지 말게. 그래도 뭐, 이 근방에서 어디 하남윤만큼 자애로우신 분이 계시던가? 다른 윤이야 이리 맥곡을 푸는 곳이 없으니 그런 것이겠지.”


“그래도 말이야. 이건 너무하잖아? 언제부터 이 동네가 병신들이 설치는 곳이 되었나? 팔 병신에, 다리 병신에, 얼굴이 문드러진 병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눈깔 하나가 허옇게 죽어버린 저어기 멀어지는 괴이한 저 병신은 그냥 콱 죽여 버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예끼, 이 사람! 죄 없는 이를 추포하는 것도 아니고 어찌 연유도 없이 죽여? 그것도 이 훤한 대낮에 말이여.”


“아니, 건방진 자식이 감히 이 관병 나으리께서 손수 검문을 해주시는데 말이야. 어? 이쪽이 제 몸 좀 만졌다고 시펗게 죽은 눈깔로 이쪽을 노려보더라니까? 콱, 씨! 건방진 것이 말이야.”


“크흐흐흐, 뭐여? 알고 보니 저 눈깔 병신에게 쫄은 겨?”


“뭐? 누가? 어? 누가 겁을 집어먹었다고 그래?”


“흐흐흐, 겁을 집어먹을 만도 혀, 나도 무슨 겡아지 새끼도 아니고 사람 새끼도 아닌 저 징그러운 낮짝 보고 쪼까 거시기 했응께.”


“거 봐! 어, 저건 그냥 사람이 아니야. 짐승새끼지. 그것도 비루먹은 개새끼 같이 생겨가지고 그 허리도 턱하니 굽은 게 그냥......”


“병신이여, 상 병신. 신경 꺼, 아닌 말로다가 요즘에도 저런 것들 많잖여? 소작농이니, 관노니 하는 것들 보면 다들 제 상전한데 두들겨 맞아 병신이 되서 쫒겨난다던데 저놈도 그런 놈들 중 하나인가보지, 뭐. 그것보다 검문 안혀? 아직도 줄 서 있는 이들이 이리도 많은디.”


“카악, 퉤! 에이, 재수가 없으려니 괜히 엄한 이야기하느라고 시간 다 지났네. 자, 다음!”


검문을 맡은 관병들의 일과는 언제나처럼 그날에 관문을 지나친 이들에 대한 대화뿐이었다.


매번 새롭고 또 익숙한 이들이 오가는 곳이었던 만큼 그날의 주제는 사람의 안면이 아닌 개와 다를 바 없는 안면을 지닌 이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 속 당사자는 그렇게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만 갔다.


하지만.


“어서오게, 준비는 갖추었는가?”


“오늘까지 오백, 내일부로 총 칠백에 달하는 이들이 도착합니다. 내일 모레 즈음이면 일천에 달할 것이고 그리 되면 북파의 이들을 상대로 전력을 투사할 수 있게 되니, 심려를 놓으십시오.”


“고맙군, 허면 이제 당주를 만나러 가세. 이쪽 또한 가만히 놀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야.”


그 비루먹은 이가 제 위로 걸친 거적을 벗어던지고 새로이 지급받은 의복과 더불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기다란 다과극을 지급받았을 때, 그의 존재감은 이전과는 비할 바가 없이 커졌다.


숨겨진 남파의 칼, 현존하는 교의 무인들 중에서도 거진 몇 되지 않을 파재의 인정을 받은 사내.


십수 년의 세월을 신상사의 수족노릇을 하며 여러 차례 공을 세운 노삭이 드디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북파의 이들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이쪽의 일에 방해된다면........, 치워내도 좋네.”


“더는 유약하지 않으시군요.”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을 생각이네.”


“제 주인만 못하지만, 그래도 뫼시는 동안만큼은 심심하지 않겠습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군. 허면 이만 가세나.”


미소를 지어보인 마원의와 함께 노삭이 도착한 곳은 꽤나 오랜 세월 저와 함께 했던 장소였다.


지금은 이곳의 주인이 제가 아닌 당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고작 1년여 만에 마주하게 되는 본교의 지부를 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것은 그만큼 그 안에 실린 애증을 비롯한 여러 감정들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끼이익-


못해도 수백은 되어 보이는 이들이 머물 것 같아 보이는 상관, 그 안으로 스스럼없이 표식을 보이며 안으로 들어선 그는 제 앞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을 보았다.


수백에 달하는 문건과 죽간, 그리고 그와 별개로 기록된 모든 것을 받아 적으며 이를 정돈하고 보고하는 이들은 꽤나 낮이 익었고, 그러한 그들의 중심에서 보고를 받는 당주를 보며 마원의는 또 다시 짖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마 방주! 방주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그러던 차에 보고를 마치던 이들 중 몇몇이 자신을 알아보고 반가움에 인사를 건네왔다.


그와 동시에 상념이 깨어진 그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성큼성큼 당주의 앞에 자리했고 말이다.


“바, 방주......, 대체 연락도 없이 어찌.......”


“그 동안 수고 많았네. 동씨와 하씨 이들 사이에서 줄타기 한다고 고생이 많았어.”


“.......!”


가벼운 인사치례이자 위로였지만 제 모든 사안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마원의의 발언에 당주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좋지 않은 예감 또한 전혀 빗나갈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자리를 다시 넘겨받아야겠네.”


“어, 어째서입니까?”


“존망(存亡)의 기로에 우리 모두가 서 있으니까.”


굳게 다물어진 입술.


불안한 듯이 떨리는 손.


제대로 상대를 마주하지 못하는 눈.


제 앞에 펼쳐진 상황에 딱히 설명을 요하진 않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본질 앞에, 당주는 무의식적인 저항을 벌였다.


“대체 무엇이 존망의 위기입니까? 가뜩이나 바쁜 지금입니다. 하운의 내린 명도 수행해야 하고 그와 별개로 하남윤께서 내리신 명도 수행해야 합니다. 헌데 별 다른 명령서도 없이 대체 이 무슨 무례냔 말입니다!”


“줄타기도 힘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일세. 양측이 잡아당기는 힘, 그 위에 버틸 수 있어야 하는 것. 헌데 지금의 자네는 어떠한가?”


“어떠하긴요? 그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지요. 제가 누굽니까? 교주님께서 직접 이 당주를 지목하셨고, 이 당주가 그 가르침을 사사받았습니다! 헌데, 그 위대한 가르침을 받은 제가 대체 어쩌고 있다는 말입니까?”


“교를 위해야 할 작자가 정작 교와 함께 휘둘리고 있으니 문제인 게지. 자네는 교의 사람인가, 태후의 사람인가 그도 아니면 하남윤의 사람인가-!”


평소의 온화한 그답지 않은 마원의의 일갈에 졸지에 주변에 자리한 이들이 절로 숨을 참으며 긴장이 역력한 기색을 띄었다.


“무의(無意)가 진의(眞意)라 했네. 가식과 거짓이 얼룩진 것이 아니라 편한 곳에서 스스럼없이 밝힌 것이 진심이라 했어. 이곳이 어디인가? 이곳에 적의 간세가 있는가? 우리가 다 같은 교인이지, 서로 다른 사상을 품고 다른 곳에 속해있는 적이던가? 헌데 어찌하여 그대는 신경 쓸 것도, 눈치 볼 것도 없는 자리에서 태후를 높이고 하남윤을 높이는가? 그리고 그대와 같은 교의 식구인 나를 보고서도 어찌하여 그리 정적을 대하듯 하는가? 불안하고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 않으며 그것도 내가 그 본론을 꺼내기 이전부터 이쪽에 대한 적의를 드러내는가?”


“내, 내가 언제 그리하였다 그러오? 방주답지 않으시오, 온유하고 청성하던 당주께서 언제 이리 모리배와 다를 바 없이 남을 모함하는 것이요?”


“모함?”


“그, 그렇소! 아닌 말로, 교주님의 제자인 내가 배신이라도 했다는 거요, 뭐요? 생각이란 것이 있으면 알 것이외다. 교주님의 제자인 내가 교를 배신해서 얻는 것은 무엇이오? 애초에 배신할 재목이었다면 교주님께서 나를 왜 제자로 들이셨을 것 같소? 그도 모자라 이 숭고한 의무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해야 하는 자리에 왜 이 사람을 세우셨을 것 같소?”


다급한 상황에 머리를 굴린 것 치고는 유려한 말솜씨가 쏟아져 나왔다.


정작 그 언사를 쏟아낸 당주 또한 정작 제가 떠들 당시에는 제 발언을 모르다가 이를 다 뱉어내고 나서야 제 언사가 합당함을 알았던지, 그제야 불안함 속에 당당한 눈빛으로 마원의를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설마, 고작 질투 때문에 이러는 거요? 그간 멋대로 마 방주의 자리를 빼앗았다하여 화풀이를 하는 게요? 이 자리는 나도 원하던 것이 아니었소. 하지만 내려진 교령을 어찌 거부할 수 있소?”


“어투가 달라졌구나. 어째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무엇이더냐? 어째 점점 더 남을 대하듯, 아랫것을 대하듯 하느냐?”


“그것이 본질이 아님을 아시면서 자꾸만 화두를 돌리려하지 마시오! 그대는 교의 명령도 없이 본 지부를 관장하는 이의 권한을 침해했소! 그도 모자라 본관을 모독하고, 또 음해했소! 그 책임을 어찌 지시려고 하시오, 아니! 그대는 어찌 이리 내게 무례를 저지르려 하는가! 방주도 아닌 자가, 그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형주의 촌구석으로 내려간 자가 어찌 작금의 주어진 숭고한 교령을 수행하는 이의 앞을 가로막고 초를 치는가! 나는 당주다! 세간에 인정을 받은 단 하나뿐인 교주님의 제자이며, 그 능력을 인정받아 이곳. 도성과 사예에 자리한 모든 신도들을 보살피고 관장하는 것의 나의 권한이다!”


여전히 흔들리는 눈동자는 여전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그래도 점점 힘이 실리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어느새 흘러가는 분위기에 이질감을 느낀 몇몇이 그 판단을 내리지 못하다 점차적으로 당주의 언사를 신뢰하는 표정을 지어보이기 시작했다.


펄럭-


허나 이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당주는 교령이 적인 족자를 펼쳐들었다.


“마......., 마원의가 도착하는 즉시 바, 방주의 직에 복권되는 것은 물론, 기존의 업무를 다시 총괄할 수 있도록......!”


“확실히 그 세치 혀는 인정할 법도 하다. 그래, 그 혓바닥이라면 충분히 이곳에서 자리를 잡교 교의 대계를 펼쳐나갈 자질이 있다고 봐야지. 하지만! 그 내면이 성숙지 않은 네 단점이 가장 큰 문제인 게다. 허니, 물으마. 실로 두려움이 없었느냐! 실로 하남윤사로 끌려간 네가 간세가 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더냐? 봉서를, 하운을 마주하고서도 네가 당당할 수 있었느냐? 네가 그들을 아느냐! 그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또 무서운 인물들인지 아느냐!”


“안다! 어찌하여 모르겠느냐! 나는 당주다! 당주!”


“그래, 바로 그 당주! 배움에 막힘이 없고 생각한 것을 내뱉음에 그 어떤 무리도 없는 교의 기재, 당주! 하지만 그 당주가 그간 외직을 맞지 못했던 것은 유약하리만치 나약한 심성 때문이었다. 겁이 많고 재깍재깍 주변의 눈치를 보기 일수이며, 언제고 아닌 듯 하지만 작은 것에도 고심하고 고민하다 못해 늘상 걱정과 기우를 달고 사는 유약한 당주! 바로, 이 마원의의 젊은 시절과 닮아있는 바로 그 당주!”


“닥쳐라! 마 전 방주는 어찌 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가!”


“총단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던 이들 중의 하나가 나이거늘, 어찌 내가 너를 모른다 하느냐! 내가 네놈에게 관심을 쏟은 연유가 뭔 줄 아느냐? 어찌하여 내가 네게 친절하였는지 아느냐? 너는 나를 닮아있었다. 나를 닮아 유약하고 선한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제야 알겠다. 모든 것은 일장일단(一長一短)이니, 그와 반대로 저항할 줄 모르고 두려움이 앞서 큰일을 그르치게 될 자질 또한 함께 품고 있었다.”


“이, 이......!”


자신에 대한 노골적인 힐난, 그와 함께 덩달아 앞으로 나서는 작은 체구의 마원의는 점차적으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한 나도 십수 년의 내, 외직을 겸직하며 담력을 기르고 사람을 죽인 뒤에서야 내제된 두려움을 얼추 지워내고 나서야 방주의 직에 올랐다! 헌데 그런 나도 매번 이곳에서 일을 벌이고 교의 숙주와 간세를 심을 때마다 조마조마했고 심장이 터져나가는 줄 알았다. 가히 괴물 투성이었다, 온통 포식자들 투성이었다. 백성이고, 관료고, 부호고, 지주고, 명가고 가릴 것 없이 탐하고 집어삼키다 못해 제 손아귀에서 가지고 놀다 터트리고 쥐어짜 짓이겨버리는 것을 본성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곳이 바로 이 땅이다. 하여 나는 밑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랐고, 밑바닥에서부터 자라났다. 교의 간세를 심을 때에도 교와 연을 터다 못해 연수를 맺는 이들에 한해서도 언제고 바닥에서부터 숙이고 또 상대를 안심시켜가며 그들의 턱밑에 비수를 들이댈 수 있을 때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묵직하고 엄숙한 언사가 그가 자리하고 있는 이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듯 했고.


“헌데 외방에 관한 그 어떠한 경험도 없는 네가, 하진을 상대하고 하묘를 꼬드기며 하 황후를 움직일 수 있다 하느냐? 봉서를 쥐고 하운에게 손을 뻗혀 태후를 비롯한 동씨문중의 이들을 움직일 수 있다 하느냐? 수십, 수백이 아니라 수천, 수만에 달하는 이들의 우습게 죽어나가는 것을 목적 삼아 언제고 제 자리를 공고히 하다못해, 하늘의 모든 것을 가벼이 여길 정도로 오만하고 잔혹한 성정을 지닌 조충과 장양과도 같은 이들과 당당히 마주할 수 있다 하느냐?”


그 위엄이 서린 기운 자체가 마치 자신에게 진실과 책임에 관한 무게를 덧씌우는 듯 했다.


“으으으으......”


“솔직해라. 솔직해져라, 당주! 너는 무엇이 그리 두려운 게냐! 무엇이 그리 두려워, 교를 높이지 않으며 교를 숨기고 낮추려 하느냐! 과연 내가 아무런 증좌도 없이 이곳을 찾았을 것 같으냐? 이곳에 도착한지가 언제인데 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오늘만을 기다렸을 것 같으냐? 허니 어서 답하라, 무엇 때문에, 대체 무엇 때문에-!”


“흐익......! 오, 오지마! 오지 말란 말이다!”


어느새 상석에 올라선 그의 앞에 자리한 마원의는 제 아래에 자리한 채 겁을 집어먹고 있는 당주를 내려다보았다.


헌데 어째서인지 두려움에 부들대며 주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그는 자꾸만 어느 한 곳을 향해 무의식의 시선을 건네고 있었다.


“음?”


그 옅은 시선을 따라가니 그곳에는 슬금슬금 이곳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듯 움직임을 보이는 한 인영이 있었다.


그 인영은 자신의 존재가 들켰음을 알았는지 다급히 뜀박질을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마원의의 눈동자가 커져가며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르려 했다.


“.......!”


푸욱-


“끄하아아악!”


하지만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어깨엔 길쭉한 극날이 틀어박혀 있었다.


까드드득-


그에 뒤이어, 두터운 살점이 떨어져나가며 뼈가 긁히는 것 같은 소리가 그 공간을 그득히 메웠다.


“이거 쥐새끼가 숨어있었네?”


사람이 아닌 짐승이 지을 법한 미소, 누렇다 못해 거무튀튀한 반점들이 붙어있는 날카롭게 모난 이빨, 반쯤은 퍼렇게 죽은 눈 위로 새하얗게 굳어져버린 것 같은 한쪽 눈동자가 마치 그 속을 꿰뚫어보기라도 하듯 어깨가 찢겨진 이와 안면을 마주했다.


“흐아아아아악!”


그날의 희생을 끝으로 마원의는 낙양지부의 책임자이자 방주로서의 성공적인 복귀를 마쳤고, 그렇게 칠 주야가 흘렀다.


* * *


“뭐라? 흔적을 찾을 수 없어? 거기다 감시하라고 붙여둔 놈은 그 연락이 끊겨?”


미간을 찌푸린 반은은 아주 잠깐 동안 사고가 정지되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최근 들어 신경 쓸 일이 많은 것으로도 모자라 간간이 하남윤의 동생인 하묘를 보좌하며 그 뒤처리까지 행하는 통에 당주에 대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졸지에 그와의 관계가 붕 떠버리듯 사라져버렸다.


“그놈들 거점은? 그놈들 거점이 있으니 세수 납부나 부정행위 등을 빌미로 감찰이나 관헌 몇 명 찔러 넣으면 되는 것 아니야?”


“저, 그것이......”


“그것이, 뭐?”


“사라졌습니다.”


“뭐야? 어째서? 관병들은 뭐했여? 감찰관들을 비롯해 속관들이 널리고 널렸잖은가? 하남윤사에 자리한 예비 인력이 있을 것 아니야!”


“이리 저리 바깥을 돌며 독살범을 찾는다, 벽보와 전문을 처리하고 그릇된 풍문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주동자들을 잡는다하여 다 차출해가시지 않으셨습니까?”


“뭣......, 뭐라? 누가? 하남윤께서? 그도 아니면 내가? 그러한 보고도 들은 적이 없고 그러한 보고도 올린 적이 없는데, 대체 누가 차출을 해?”


“그, 그것이 숙달 공께서 그와 별개로 최근 들어 설치는 몇몇 청류의 이름난 이들 또한 관련자일수도 있다면서 모조리 조사해봐야 한다고 하셨기에......”


그제야 반은은 상황이 어찌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하아......, 잘못 건드렸다가 벌집 될 것을 빤히 알면서 뭘 또 조사하겠다고......, 태후를 비롯해 동씨 무서운 줄도 모르고 멧돼지마냥 들이받는 이 미친놈들을 어찌 대놓고 적으로 돌리라고! 퍽이나 저들이 암살을 했고, 음습한 이들을 수하로 두며 독수를 사용하면서 움직이리라 여겼단 말인가? 이런 답답하안-!”


우지끈-


졸지에 걷어차인 걸상이 소리를 내며 기울어졌다.


제 울분을 참지 못한 반은의 발길질에 걸상다리 하나가 그만 부러져버리고 만 것이다.


“고, 고정하십시오!”


“.......알겠다. 나가봐.”


그나마 저를 걱정하는 수하를 손짓으로 내보낸 그는 자조적인 웃음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고정을 하라고? 하하하.......”


너무나도 아까웠다.


제 손아귀에 바짝 쥐이다 못해 제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 하나를 쥐고 거대한 세력이 움직여 줄 수 있는 힘, 재화와 인력 그 모두를 투사할 수 있는 힘.


동씨가 활용할 무지막지한 패 하나를 얻어낼 수 있는 힘이었다.


잘만 쓰면 이쪽의 전력을 몇 배나 상회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


권력구도 뿐 아니라 운이 좋다면 민심과 여론까지 조작해가며 후계와 보위에까지 이용해먹을 수 있는 힘이었다.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알마냥 사라져버렸군.”


모든 인력이 투입된 와중에 하남윤 또한 더 이상의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외부 인사를 쓰기도 껄끄럽다.


“작금의 청류야 말로 더러운 때가 묻었다. 어느 계파의 이들이 누구와 손을 잡고 있는 지 정확히 알 수 없고 또 그들의 친우가 그와 전혀 다른 집단이나 파당의 지지를 받으며 자라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지.”


태학생들을 비롯한 학당의 이들이 만들어낸 진풍경은 가히 문사들의 파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철썩이며 서로를 때리다 못해 그에 뒤이은 또 다른 파랑이 지속적으로 덮쳐온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으며 이 땅을 때리니 어디 이 하남윤이란 땅덩이가 남아날 리가 있겠는가?


해풍에도 날리는 것이 바닷가의 모래다.


그보다 더 강력한 파랑의 위용에 절로 물속으로 빨려 들어간 이들이 벌써 수십, 수백, 수천이 넘을 것이다.


누구는 저와 같은 가족들과 사상을 같이 했고, 또 누군가는 제 친우나 지인들과 입장을 같이 했다.


그리고 그 파랑의 위용 속에서도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남은 이들은 내리쬐는 햇살 아래 제 존재감을 뽐내기 위해, 저 홀로라도 빛을 발하기 위해 끝도 없이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그 눈부신 광경은 가히 아름다운 개판에 가까웠고, 파랑과 파랑이 뒤섞여 휘몰아치는 물살이 만들어질 때면 그 위로 심상치 않은 먹구름과 비바람이 생겨날까 두려워지는 것이 현실이었다.


뭐, 생각은 이리하긴 했지만 그 분위기만 보자면 온통 주변이 뜨겁게 달궈지는 것이 마치 사방에서 불길이 솟아나려는 것만 같기도 하다.


“탁류의 이들끼리도 갈라진지 오래인 정국에 청류의 이들마저 저리되었다. 헌데 그 와중에도 서로가 부딪히며 몸집을 불리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커져만 가는 저 거대한 소용돌이가 무섭다.”


저것이 뇌우가 뒤섞인 폭풍우가 될지, 불벼락에 의한 홍염의 소용돌이가 될지, 그도 아니면 세찬 태풍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하늘에 대한 자극 그 하나만은 확실할 것이다.


특히나 지금껏 북궁 밖을 나오지 않은 천자가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순전히 시간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죽하면 하남윤을 비롯한 여러 윤을 거치는 순회방문을 하는 것마저 취소한다는 말들이 연달아 나왔겠는가?


조당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을 기조삼아 연신 논의를 지속하고 있으나 정작 그 안에서는 동씨와 동씨를 제한 탁류의 이들이 벌이는 힘겨루기가 연신 지속되고 있었다.


거기다 민간으로 나오면 작금의 혼탁한 정국의 대한 비난과 힐난마저 일고 있다.


호사가들은 물론이고, 유자가 아닌 이들까지 의외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 모든 것이 유림이 나라를 다스린 기조에 의한 결과다. 유학이 나라를 망친다.”


“우리는 유학이 없이도 잘 살아왔거늘, 어째서 그 모든 불이익을 우리가 받아야 하는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하남윤에서도 이러한 목소리가 하등 다른 이들의 목소리와 비슷한 규모로 울려 퍼졌다.


물론, 이 소식을 들은 유자들이 반발하며 이에 반대되는 성명을 높이기도 하였으나 그 정체 모를 괴소문을 퍼트린 민간의 당사자들이 대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그저 애먼 백성들을 모조리 싸잡아서 욕하고 비난하는 추한 행동에 불과했다.


그 덕에 애먼 집 종놈이 매를 맞는 일도 있었고, 죄 없는 상공인들이나 여객들마저 피해를 보게 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위도, 아래도, 하물며 양 옆으로도 모조리 분리되며 갈라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싸잡아 낮추며 모독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을 떠넘기며 자신들의 죄와 실수는 죽어도 언급하지 않는다. 이 모든 원흉은 제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있고 그 때문에 제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 더 이상의 배려도, 양보도 없으며 모조리 빼앗고 무너트려야 한다. 패악질과 주먹질은 물론이고, 나라를 지탱하는 법관들마저 갈등에 휩싸여 제가 속한 집단에 이들에 대한 처벌을 면해준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의 축소판이 있다면 작금의 하남윤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반은이었다.


그가 업무를 마치고 돌아온 오늘의 풍경 또한 제가 묘사했던 바, 그대로의 모습을 띄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러다 사단이 나도 크게 날 것이야. 다만, 폐하께서는 필히 하남윤을 찾으셔야한다. 그래야, 그간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가족이 만남을 가지게 되며,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리게 되고, 오해를 풀 기회가 만들어지게 되며, 동씨의 주도를 벗어난 새로운 정국의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작금의 반은이 목표를 삼은 것은 그 하나였다.


아니, 반은 뿐 아니라 작금의 동씨를 제한 이들이 꿈꾸는 정국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스스럼없이 다음 대의 보위를 논하고, 변 황자의 폐위를 지속적으로 주창하며, 조금이라도 동씨에 반하는 정책을 논하거나 상소를 올리는 이를 핍박하고 그의 실권을 지워냈다. 엄밀히 보자면 청류의 이들에 대한 견제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 실상은 북궁에 자리한 중상시들을 비롯한 이쪽과 중립에 놓인 이들을 모조리 지워내려는 행동. 그도 모자라 유림의 이들까지 모독한 태후이시거늘, 아직도 그들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사실 이는, 작금의 황상이 내린 황명으로부터 크게 기인했다.


물론, 그 덕에 사예를 벗어난 곳의 유림이나 지방관들 그리고 황족들을 비롯한 명사들과 거두들은 이러한 조치에 심히 만족스러워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냈다.


자신들의 권력에 피해가 없었고, 천자 스스로가 제 힘과 실권을 대변하는 제 어미가 이끄는 외척의 고삐를 쥐고 통제하며 자신들을 보호해주겠다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천자에 대한 은근한 찬사가 퍼졌고, 덩달아 벼슬자리를 돈 주고 팔다 못해 궁 안에 장시까지 열었던 기행이 거진 그 주변에 자리한 중상시들이나 외척들이 제대로 황제를 보필하지 못한 죄로써 그들에게 덧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하남윤으로 모셨어야 했던 것인데......”


저 스스로 성군의 소리를 듣기를 원했던 작금의 황상이다.


한껏 주변의 추앙으로부터 합당한 능력을 증명한 황상이다.


그렇게 몸이 달아있는데, 저 스스로가 스스로의 능력을 인지하여 스스로에 대한 과신과 인정을 얼마나 받고 싶을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훤한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그 때문에 지난날 북궁의 중상시들의 요청에 의해 그들과 한 몸이 된 하진이 다시금 황은을 얻어낼 수 있는 기회 또한 작금이기도 하다.


하지만 천하의 민심을 대변한다는 작금의 하남윤이 개판이니 이러한 꼴을 대놓고 보여줄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이를 위해선 다른 문제로 이를 덮든가, 기존보다 더 많은 이들을 끌어들여 거짓된 민심의 부르짖음을 더 크게 키워야만 한다.


“하지만 이미 황명을 내리신 폐하께서 작금의 문제를 겉으로나마 해결하신 것이 문제다.”


이미 천자는 최선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조치가 적절했고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겨눠진 칼들을 모조리 외부로 돌려버리는데 성공했다.


대신 외부로 돌려진 그 칼들이 이제는 외부에 자리한 서로를 노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정쟁이 벌어지는 가장 큰 판이 바로 이 땅, 하남윤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찌해야, 대체 어찌해야만 하는가? 철권을 휘둘려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가? 그 반발로 일시적으로 모두의 적이 되면 어찌하는가? 천심을 얻어도 민심을 잃게 되면 어찌하는가? 유림을 향해 뻗었던 손들을 모조리 끊어내고도 하씨가 미래를 그려낼 수 있는가? 어쩌면 그릇된 판단으로 또 다시 동씨에게 역풍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닌가?”


짖게 새어나오는 한숨 속에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끼던 반은은 이내 해결되지 않는 난제를 뒤로한 채, 피로감을 느끼며 슬그머니 두 눈을 감으며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누구하나 멈추지 않는구나. 어느 누구 하나 멈추지 않아......”


연달아 맞물린 이 복잡한 관계는 어느 누구 하나가 양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내부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은연중에 직감한 것이다.


작가의말

어제 분명이 예약으로 올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이를 안 올리고 있었군요.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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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소설에 관하여 +4 20.01.30 2,839 0 -
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6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1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9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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