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들개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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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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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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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9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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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외전 3장 31화 - 해를 삼키거나 해를 지워내야 한다

DUMMY

마원의가 밖을 나섰다.


그렇게 충격과 격동이 가시지 않은 자리에서 태후는 즐거운 듯 그 입가에 완연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부드러운 대죽은 쓸모가 많은 법이지.”


“예?”


“저, 마원의라는 놈 말이다. 유자와 다를 바 없으나 하는 짓이 귀엽구나. 청죽으로 나고 자란 놈이 저 스스로를 구부릴 줄 안다. 탄성이 있지. 하지만 본래의 파죽(破竹)은 한 번의 깨어짐에 멈춤이 없다. 스스로가 부러질지언정 또 갈라질지언정 제 고집과 형을 바꾸지 않지. 하여 물에 불리고 불에 달구는 등에 노력이 가해지고서야 갈라지고 부러진 대죽이 다듬어져 탄성을 지니고 그에 걸맞은 효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못된 성정을 품었다는 말입니까?”


“글쎄, 저걸 굳이 잘못된 성정이라 해야 할까? 저 스스로가 인지하건 그렇지 않건 스스로가 잘못됨을 느끼지 않는데 말이다. 거기다 일이 재미있게 되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상께서 이 어미와 함께 기이한 남방의 공연을 관람하신 적이 있었다. 그 때에도 우연치 않게 공연에 모습을 드러낸 상을 보며 즐거워했던 적이 있었지.”


“아, 기억이 날 것도 합니다.”


“그래, 제법 시간이 지났으니. 여하튼 그때에 그 큰 짐승이 어찌 사람을 따를까 했는데 의외로 별 것 없더구나. 기다란 대나무 장대, 흔들리는 그 하나를 쥐고 그 거대한 것을 통제했다. 본궁의 눈에는 그저 별 것 아닌 대죽이었으나 정작 그 대죽의 휘둘림에 그 거대한 것이 겁을 집어먹고 이리 저리 대죽의 이끌림대로 움직여 묘기를 부리더구나.”


태후는 마치 과거를 추억하기라도 하듯 즐거운 상념에 빠진 듯 보였다.


“예상외로, 상(象)에게 대죽이 치명적이란 말씀이 아니십니까?”


“그렇지, 허니 그 결과를 지켜봐야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느냐?”


“하오나 일이 실패했을 때를 가정하여 그에 대한 대비를......”


하운은 확실히 침착했다.


남들이 아직 보지도 않은 먼 길까지 내다보며 상황에 대한 재단을 원한다.


“남궁을 지키는 위사들 중에 실력이 으뜸인 이들을 뽑아두게. 조만간 쓰일 날이 있을 것 같으니. 그리고 우리 조카님의 직위가 지금 오관중랑장이던가?”


“마......, 마마!”


그리고 그러한 하운을 보다 노골적으로 만족시켜주는 이 또한 태후였다.


“후후훗, 이 어미가 아들이 걱정되어 벌이는 일이야.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또 보살피지 않으면 이 심간이 조여오고 안타까워 미칠 것만 같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만 있겠는가?”


“하, 하오나......”


“이보시게, 하운.”


“예, 마마.”


“제아무리 세상이 무너져도 끊어낼 수 없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는가?”


“모르겠사옵니다.”


“천륜일세.”


분명 이는 노쇠한 여인의 혓바닥에서 나온 곧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질 음파의 파동에 불과하였으나 어째서인지 하운은 그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 귓전을 맴도는 듯 했다.


“본궁은 성상의 어미야. 설사 일이 그릇된다 하더라도 그 심기가 불편하다 하더라도. 본궁은, 면책과 면죄를 받을 수가 있네. 설사, 무슨 일이 생긴다하더라도 말이야. 게다가 성상께서도 더 이상 어린 시절의 그분이 아니시지, 얼마 전 서구의 일로 다시 한 번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 어미도 잠시 그 진의를 오해하였지만, 성상께선 이 어미를 비롯한 이 어미를 따르는 이들을 보살펴주셨네. 그들의 자존심을 추켜 세워주면서 또 이쪽을 몰아세우지 않고 적절한 권력의 분배를 이끌어내셨어. 그리고 이쪽은 어차피 이쪽이 지닌 작은 권력, 그 하나를 내버리고 또 다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게야.”


“마마......”


“설령 일을 그르친다 하더라도, 실패한다 하더라도. 크게 잘못되어 누명을 뒤집어쓴다 하더라도. 고작 그 따위 일로 성상께서 이 어미를 버리실 것 같은가? 며느리를 비롯한 사가(査家)의 이들에게 핍박받는 이 불쌍하고 가련한 늙은 어미를, 성상께서 과연 내치실 것 같은가? 이 세상에 평생토록, 이 한 목숨 다할 그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줄 이 어미를 벌하실 그릇된 판단을 내리실 것 같은가?”


그 길로 하운은 태후전을 나왔다.


“핏줄은 끊어내려 해도 끊어낼 수 없는 것이다. 만인지상, 만승의 천자께서 불효와 패륜을 저지르실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이용하는 그 어미의 마음이 처절하다 못해 추악했다.”


지금의 모습은 말 그대로 막연한 기대였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현실에 기반 된 냉정한 판단을 내리던 그녀였으나 그 자식에게 만큼은 그녀도 이성적이지 못했다.


그저 막연한 믿음 그 하나를 붙잡고 물고 늘어질 뿐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태후께서도 더는 여유가 없으시다는 뜻이다. 더는 시간이 없으시다는 뜻이다. 나약해지셨기에 승부를 길게 끌 수 없고, 그 때문에라도 더 빠른 결정과 선택을 강요받으며 단숨에 모든 것을 이루어내시길 바라신다. 하지만 한 걸음에 목적지에 도달할 순 없는 법이다. 한 걸음에 땅을 접어 도착할 순 없는 법이다. 그러면 지금에 가장 가까운 발돋움은......”


이치와 진리는 깨닫지 못해도 세상사 인세에 펼쳐진 정해진 수순과 흐름 정도는 읽어낼 수 있게 된 자신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보는 미래는 확신할 수 없어도 뚜렷하고 선명했다.


“하씨와의 질긴 인연도 어쩌면, 예서 끝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장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짚어둘 것들이 있지.”


물론, 그 선명함이 언제고 긍정적인 것만을 비추지는 않았기에 이리 밑그림을 그려두는 것이지만 말이다.


“경옹의 이들을 쓰지 못하는 것도 그 정체의 발각을 걱정해서이실 것이다. 차라리 일이 실패로 돌아간다고 한들, 저들을 붙잡아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마마께서 위사들을 결집시키라는 것 또한 황상에 대한 암위(暗衛)아 주된 목적일 것이나, 여차하면 그 칼날을 저들이나 저들이 실패한 하진의 목에 찔러 넣으란 소리일 것이다.”


그렇게 태후전을 빠져나온 그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백정 하진이여, 너는 하늘에 자리하고 계신 저 달을 향해 칼을 휘두를 용기가 있느냐? 천자의 어미의 목에 비수를 찔러 넣을 용기가 있느냐? 세상만물이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며 떨어져 내리듯, 그 밑에 자리한 너와 너희의 세들은 너희보다 위에 자리한 이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그 자체가 반역이요, 모반이며 순리를 거스르는 역천의 행보이기 때문이다.”


큼지막한 전각들을 거치고, 제게 인사를 올리는 이들을 지나치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에 비해 위에서부터 내리는 것은, 순리는 옳음이자 당연한 것이다. 징벌과 징치, 위무와 교화. 선정과 미덕 그 모든 것은 하늘에 자리한 이들이 그 아래 자리한 너희와 같은 것들에게 베푸는 것이다. 허니, 이제 그만 이를 거스를 생각을 접거라. 더 이상 이 하늘에 발을 들일 생각을 말거라. 더는 마마를 괴롭히지도 말며, 그릇된 청류에게 거짓된 꿈과 희망을 심어주지도 말고, 그렇게 축 늘어져 꼬챙이에 꿰인 죽은 고깃덩이처럼 죽어라.”


명분과 함께 정의를 얻었고, 그도 모자라 저주를 퍼부었다.


끼이익-


그렇게 목적지에 도착한 그가 열어젖힌 곳엔 아주 익숙한 인영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반은. 내 보고를 듣고 알았네. 자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하진의 목이 떨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이야.”


“하남윤사의 병력들이 모조리 외부로 빠질 것이옵니다. 모든 이들의 이목이 천자의 잠행에 쏠릴 그때를 노리셔야 합니다.”


“자네도 빠진다지?”


“굳이 주변의 의심을 살 필요는 없지요. 소인 또한 해야 할 일이 있는 바, 맡은 바 충실히 이를 이행할 생각이옵니다.”


“나도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겠군.”


“무운을 빌겠나이다.”


“무운가지고 되겠는가? 하늘을 속이는 일인데, 천운을 빌어야지.”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 * *


둥- 둥- 둥- 둥-


주변을 그득히 메우는 전고의 소리를 따라 하남윤사에 속한 관병들이 관사의 대문을 열어젖히고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생안정과 치안의 확립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그 작은 빈틈 하나, 쥐새끼들이 스며들 구멍 하나 놓치는 것이 없도록 하남윤에 자리한 모든 위험요소와 제반사항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실상은 천자의 잠행에 관련한 모든 사안을 확인하기 위함이었고 그와 동시에 그간에 저를 비롯한 이들을 힘들게 했던 저 남궁의 이들을 일거에 무너트리기 위한 기계(奇計)를 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반은이 가서 일을 잘 처리할 게다. 허니 그동안 너는 내가 되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되어 나로서 말하고 움직여야 해.”


“쩝, 알고 있다니까 그러네.”


“알고 있다는 놈이 버젓이 너를 상징하는 그 무식한 철퇴를 쥐고 있더냐?”


“크흠, 내가 요놈 만들려고 천금을 들이 부은 것 아시면서도 그러오?”


“천금이 아니라 천권을 얻게 되는 일이다. 해를 집어삼키는 일이야.”


“알겠수다. 하긴 뭐, 시팔.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고. 어차피 더 밀려날 곳도 없는데, 저 영략궁에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이리 해야지.”


“그래, 바로 그것이다.”


어느새 거대한 철퇴를 제 형에게 넘긴 하묘가 하진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뭘 그리 보느냐?”


“관복은 주셨지만, 갑주도 주셔야지. 일 벌이는데 가만히 칼침 맞고 그냥 죽으라고? 자기는 속에 철편도 두르고 있으면서?”


“괜히 이쪽이 준비를 갖춰간다 다 드러낼 참이냐?”


“어차피 형님 모가지 대신 내 모가지 올리는 판이 아니요? 어중간하게 도발할 바에 확실히 하는 게 낫지. 나는 목숨 걸었수다. 왜? 형님은 아니었소?”


하묘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으나 그 눈빛은 분명 도전적이었다.


분명 이는 제 형에 대한 도발이자 하씨문중을 이끄는 이에 대한 압박이며 자격을 묻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진은 그러한 하묘를 보며 즐거워했다.


“제법 자랐구나.”


“그 잘난 가주자리 꿰차고 하씨문중을 예까지 이끌어온 형님의 공을 폄하하는 것은 아닌데, 그래도 확실히 해야겠소. 내 어릴 적 형님이 그랬지, 아마? 어차피 위로 올라서려면 올라설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야한다면서? 허니 형님도 조심하시오. 어차피 맞을 칼, 괜스레 큰 일 벌였다 엄한 놈 칼에 뒈지지 말고.”


“그래, 그리하마. 그리고 너는 오늘부터 하묘다. 허니 더는 세간에 너 스스로를 소개할 때에 주묘라 부르지 말거라.”


그리고는 제가 걸친 갑주를 벗어주고는 제가 건넨 철퇴를 쥐고 호종의 준비를 마친 이들과 함께 윤사 밖을 나섰다.


“쳇, 죽을 때가 되었나? 갑자기 친한 척하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 언사는 거칠었지만 어째서인지 하묘 또한 답답한 마음에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설사 빌어먹을 친 혈육도 아닌 형제관계라 해도 작금의 하씨 문중에 제 형의 자리를 대신할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만큼 그의 어깨에 짊어진 짐 또한 적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이미 천자의 잠행을 요청하고 엎드려 절 받기나 다름없는 성군의 치세를 추앙하는 일 또한 이미 남궁에 그 정보가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그리된다면 분명 이쪽의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해서라도 모종의 움직임을 보일 터.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치겠는 건 하진의 제 목을, 또 자신의 목을 걸었다는 것이다.


“대놓고 암습을 받을 자리를 마련해? 그 대신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하는 건 나고? 제기랄, 권력에 미친 짐승새끼가 아주 제 죽을 자리 거하게 마련해놓고 그 안에 나를 디밀어? 카악, 퉤! 거 시팔, 그래! 까짓 거 해보자 이거야! 어차피 누가 죽던 죽는 거고, 어? 도리어 이쪽이라고 저들의 간세가 없겠어? 일 틀어지면 습격이 저쪽으로 떨어지겠지. 야, 금일부로 비상 경계 들어선다, 다들 목숨 걸고 내 말 들어, 알겠어?”


전권을 넘겨받은 하묘의 부름에 그간 그를 따르던 이들이 긴장된 얼굴로 연신 그 고개를 끄덕였다.


“자 봤지? 이쪽은 준비 끝났어, 미친 형님 새끼야. 근데 큰 그림을 그려도 적당이 큰 그림을 그려야지. 대놓고 천자의 앞에서 암습을 받겠다고? 그래서 지난날 독수를 비롯해 살행을 저지른 살수의 이들을 비롯한 모든 꼬투리를 저쪽에 덧씌우겠다고? 그래, 너 다 해먹어라! 대신에 모조리 가져와, 아주 씻팔 모조리 긁어서 다 가져오라고! 권력도, 명분도, 충정도, 의기도! 천자 앞에 칼 맞으면서도 천자를 위한 것 마냥 온갖 위선을 떨어 최대한 빨리 북궁으로 천자를 모시면 끝나는 거야! 그러면 사는 거야! 그러면 끝나는 거야! 그러면 우리의 세상이 온다! 하씨의 세상이 온다! 우리거야, 다 우리꺼란 말이야아아아-!”


그렇게 제 앞에 더는 자리하지 않은 하진을 두고 짐승의 포효에 가까운 고함을 내지른 하묘는 그 길로 하진이 되었다.


그리고.


“폐하.”


“시간이 되었는가?”


“그러하옵니다.”


이 모든 일련의 세력들이 움직이도록 만든 결정을 내린 영제는 면류관과 용포를 벗어던진 채, 제 주변에 자리한 내관들과 궁녀들의 도움을 받아 세간에 이들과 다를 바 없는 문사의 복색을 걸쳐 입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제가 걸치던 것에 비해 밋밋하고 까칠하다 못해 불편하기만 한 그 복색에 절로 미간을 찌푸리던 그는 이내 내관들이 받아 든 용포와 면류관에 알게 모를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지금껏 나의 자리를 지켜주었지. 헌데 참으로 오랜만에 저것을 벗어던지는구나.”


“폐하. 외유가 탐탁지 않으시다면 지금이라도 잠행을 취소하시는 것이.......”


“그럴 필요가 없다. 이번 외유는 꼭 필요한 일이니 작은 불편함이라도 필요하다면 감수 해야지.”


“그렇사옵니까?”


그렇게 영제가 의복을 갈아입던 도중,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 고개를 좌우로 기웃거린 내관을 보며 영제는 장난기 서린 눈길과 함께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는 네 앞에 꼬리를 치며 배를 드러내놓은 짐승을 본적 있느냐?”


“그야, 고양이나 개와 같은 길들여진 짐승들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우리 내관이 제법 그 요체를 잘 알고 있구나. 길들여진 짐승이야, 길들여진 짐승! 지금은 오늘부로 바로 그 길들여진 짐승을 보러 가는 게야.”


“예? 하남윤에 개장수라도 있는 것이옵니까?”


“개장수라, 개장수......., 그래. 뭐, 개장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지. 헌데 짐이 그 기분이 언짢구나.”


어리석은 것이 얼마나 어리석나 싶어 가벼이 농을 던졌으나 가히 그 농 하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감히 한 나라의 지존을 개장수라 폄하했다.


“커흑! 폐, 폐ㅎ......”


“내 처가가 되고, 내 양부가 되어 그간 내 이름과 권위를 팔며 짐과 다를 바 없는 호사를 누렸던 그들이야. 그런 그들이 드디어 주제를 알고, 현실을 깨닫다 못해 이리 제 배를 드러내고 꼬리를 치며 짐의 앞에 발라당 드러누웠다. 짐의 발 아래 엎드렸고 짐에게 복종하였다. 그 가여운 짐승들의 배를 어루만져주는 것이 짐의 일이지. 오늘의 외유는 바로 그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짐이 진정한 북궁의 주인이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를 알려주고 깨우쳐주는 자리란 말이다. 헌데! 바로 그런 짐을 두고, 그리 위험한 짐승들을 길들인 이 원대한 업적을 이룬 짐을 보고 개장수라? 개장수? 이게 나랏님을 받들어 모시는 궁인들이 할 말이야!”


순식간에 두 손으로 그 목의 울대를 움켜쥐고 죽일 듯이 내관의 목을 조르는 영제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선 광기와 살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주 환관들을 비롯해서 이 아랫것들이 주제를 넘었어! 넘어도 한참을 넘었어! 제가 조등이고, 조충이고, 장양이며 여강인가? 제가 뭐라도 되는 것 같으니까 이 용상에 자리한 짐이 두렵지도 않은가 보지? 이리 용포와 면류관을 벗어던지고 평복을 걸치고 나니, 짐이라는 존재가 보잘 것 없는 저 저자의 평인(平人)들처럼 보이기라도 하나보지? 어? 정녕, 그런 게야? 그렇기라도 한 게야? 어서 말을 해보란 말이야-!”


“끄흐으으......”


- 고, 고정하시옵소서!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그 갑작스러운 광경에 수십에 달하는 이들이 놀라 달려들어 그러한 영제를 말렸지만 이미 반쯤 눈이 뒤집힌 영제를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한 이들이 없었다.


“감히 누가 옥체에 손을 대는 것이야! 지금 이 순간부터 짐의 옷깃이라도 스쳤다간 네놈들 모조리 그 목을 베어 저자에 개먹이로 던져줄 것이야, 알겠느냐!”


또한 자꾸 저를 붙잡고 늘어지는 나인들과 내관들을 걷어차고 밀어내다 못해 그 목이 달아난다 황명이 더해진 겁박을 해대니, 이제는 어느 누구하나 그러한 영제의 광기를 말리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기, 기절했습니다.”


“하아-, 이 주제도 모르는 것이 저 죽기가 싫어 기절하는 것으로 방법을 바꿔 짐에게서 도망쳤구나. 위사들은 무엇 하느냐? 어서 짐을 능멸한 이 오만한 것의 목을 베어버리라!”


- 폐,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그 아가리들을 다 찢어놓기 전에 다들 닥치지 못할까! 위사는 뭣하는가? 어서 이 기절한 것의 목을 베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제 편한데 누워서 잠이나 쳐 자고 있어!”


누군가 칼을 뽑지 않았다간 또 다른 누군가가 죄 없이 죽어나갈 것 같은 분위기가 자리하게 되자 위사들 또한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 칼을 뽑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뭐가 이렇게 굼뜨단 말인가? 어서! 어서! 어서! 네가 하지 않으면 짐이 직접 할 것이다!”


서걱-


살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침통한 표정의 위사 하나가 굳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핏물이 솟구치며 반쯤 잘려나간 목이 덜렁이며 그 바닥을 붉게 적셨다.


“흐흐흐흑......, 끄흡! 끄윽!”


그 잔혹한 광경에 겁을 집어먹은 궁녀들이 제각기 눈물을 흘리며 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겁에 질려 부르르 떨리는 와중에도,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혹시라도 새어나간 제 신음소리 하나가 제 앞에 자리한 이 나라의 하늘이자 태양인 천자의 심기라도 건드리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고자 하는 행동이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영제는 다른 곳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보아라! 여기 개장수가 있다, 여기에 그 같잖은 짐승들을 길들여 집 지키는 개와 사냥개로 만든 그 개장수가 있느니라-! 헌데 어째서 보지 못하느냐? 어? 어째서 짐을 보지 못하느냔 말이야? 아, 그 목이 잘려 그런 게야? 허면 죽은 네 혼령이라도 짐을 보면 되지 않겠느냐?”


정신이 나간 광자마냥 이미 미동도차 없는 잘려진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그 앞에 제 얼굴을 들이밀고 웃음을 보이는 등 온갖 기행을 다보이던 영제는 그 또한 질린 모양인지 순식간에 흘러나오던 실소를 멈추고 돌연 표정을 뒤바꾸었다.


그리고는 근엄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며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정리했다.


“애초에 천공에 자리하던 짐이 이 땅에 강림하는 일이다. 본시 저 하늘에 자리한 해가 이리 땅에 가까워지면 그 광채와 열기를 견디지 못해 농작물들이나 짐승들이 피해를 입는 일들이 종종 생기는 법이니라. 하지만서도 짐이 이리 스스로의 광영과 존재를 거두었으니 도리어 예서 끝난 것이 다행인 게지. 아니, 그러하더냐?”


“그, 그러하옵니다.”


“암, 저 하늘의 해는 똑바로 쳐다볼 수도, 마주할 수 없음이야. 만일, 그리하게 되면 그 자리에서 눈이 멀어버릴 것이다. 불에 타버릴 것이다. 천벌을 받은 것이다. 짐의 옷가지 따위가 짐의 권위를 말해주지 않는다. 원대한 유씨의 혈통을 이어받은 짐은 저자에서도 그 피의 이끌림에 의하여 만승의 자리에 올랐던 몸이니, 제관(諸官)들은 이를 기억하라. 짐의 존재가 바로 짐을 증명한다.”


그렇게 겁에 질린 이들에게 억지로 답을 받고 나서야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어보인 영제는 손짓으로 죽은 시체를 가리키며 이를 치워낼 것을 명했다.


“위사들은 뭣들 하느냐? 저 목이 잘린 것을 황문으로 가져다 주거라!”


그렇게 한 차례의 혼란이 지난 뒤에야 몇 되지 않은 호위와 함께 궁 밖을 나선 영제는 때 아닌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찌하여 그러시옵니까?”


“지금쯤이면 도달하였을 게야, 그 죽은 놈의 모가지가 말이야.”


“그러하옵니까?”


“허면 내가 왜 그 놈의 목을 잘났을까?”


“예?”


“집주인이 어찌 집 지키는 개의 얼굴을 몰라? 적어도 내 기억에 없는 놈이었다. 최소한도 장양이나 조충 그도 모자라 여강의 수족도 아닌 것이 확실하지. 허면 그놈은 어디에서 왔겠느냐? 참고로 황문을 두고 있는 궁궐은 두 개 뿐이니라.”


“폐, 폐하.....!”


“그저 상(上)이라 부르는 것으로 족하니라. 다만, 짐의 모후께서 제법 관심을 보이셨던 모양인데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거지. 남궁의 이들에게 북궁이 뚫렸다, 장양을 비롯한 중상시들이 제법 그 자존심이 상할 게야. 물론, 그러라고 던진 목이지만 말이지. 흐하하하하, 그리 쳐 늙고 나니 다들 감들을 잃었어. 아주 사소한 것조차 모조리 잊고 생활한단 말이야. 한데, 영락궁에서는 어찌 이리 어벙한 것을 보냈을꼬? 도대체가 그걸 모르겠단 말이야.”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멍하니 저를 쳐다보는 위사의 어깨를 두들겨 준 영제는 여전히 묘한 미소를 얼굴에서 지워내지 않은 채, 그 길로 도성을 감싸고 있는 열두 대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저벅저벅-


그리고 그러한 그들과 그 목적지가 같은 이들 또한 어느새 하남윤의 중심부에 발을 들이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여념이 없었다.


“황경(皇京)이 어디라고?”


“예서, 저어기- 저 성문을 통과해 조금만 더 들어서면 되는 일입니다.”


“이리도 가까운 길이었던가?”


“예, 아무래도 이곳이 수도에 붙어있는 윤이다 보니......”


펄럭-


평인으로 변복을 마친 이들의 안내를 받으며 흉흉한 안광을 빛낸 사내가 품에서 부적 하나를 끄집어내 보였다.


“장 장령?”


“양중녕은 어디를 향하고 있더냐?”


“순검을 돌며 표식을 새기는 관병들의 뒤를 좆아 지리를 익히고 있습니다.”


“남파의 이들은?”


“당주의 연락이 끊어졌으나 그 수하들이 남아있어 그들과의 접촉을 성공시켰으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일각 주겠다. 교인이라고 봐주지 말고 고신을 해서라도 알아와.”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멀어져간 수하를 뒤로한 채, 사내는 제 손에 쥐여진 부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지워내야겠지? 그래야, 그 자리를 본교가 차지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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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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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6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1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8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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