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들개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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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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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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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22쪽

외전 3장 34화 – 상(上), 상(象), 상(相), 상(喪), 상(尙), 상(傷), 상(祥)(3)

DUMMY

푸욱-


누구냐라는 소리가 위사의 입에서 나오기도 전이었다.


여전히 사태를 파악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한 채로 꿰뚫린 제 복부를 보고, 다시금 그 얼굴을 들어 저를 습격한 이의 정체를 확인하기도 전에 또 다시 목에 깊숙한 칼날의 들쑤심이 느껴졌다.


“끄흐으으윽......”


구멍난 목구멍에서 들이치는 공기와 그에 맞물려 퍼석이며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핏물은 저 스스로도 이미 죽게 되었음을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렇게 힘없이 쓰러져 내리는 한 위사의 죽음과 함께 영제를 호종하는 이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 스, 습격이다!


- 상(上)을 지켜라!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히 뫼셔야 한다!


시커먼 복색의 이들이 세상 두려울 것 없이 달려들었고, 그에 맞선 위사들과 호위 또한 제각기 제 병장기를 뽑아들고 날랜 몸놀림으로 이를 막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눈을 빛낸 하진은 슬그머니 철퇴를 쥐고 영제의 옆에 다가가 습격에 놀란 듯 거짓된 연기를 선보이며 소리쳤다.


“감히 주제를 모르는 놈이 누구를 습격하는 것이야! 하남윤사의 이들을 뭣하는가? 모조리 쓸어내라!”


우렁찬 하진의 고함과 함께 하남윤에서 차출된 이들 또한 날렵한 몸짓으로 원진을 구성했다.


마치, 이러한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하듯, 애초에 영제의 호위로 궁 밖을 나선 이들보다 더 침착한 모습으로 만전을 기했다.


“하, 하남윤. 이, 이게 어찌된 것인가?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저놈들입니다! 저놈들이 지난날 하남윤의 속관을 죽인 이들일 것이옵니다!”


“저놈들이......, 저놈들이 왕미인의 일과 관련이 되어있다, 이건가?”


“같은 놈들인지는 알 길이 없사오나, 그 복색을 보아선 한패인 듯 싶사옵니다. 아무래도 후환이 두려워 저리 망극한 짓을 저지르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사방에서 칼부림이 벌어지는 그 와중에도 영제는 제법 의연했다.


물론, 여전히 두려움이 차오르는 와중이었지만 날랜 하진과 제 주변을 메운 호위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작게나마 그 심간에 여유가 생긴 것에 의한 영향 덕택에 침착할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이리도, 이리도 참담한 일이 있나.......”


하지만 그러한 순간에 차오르는 구역질과 함께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영제는 그 자리에서 진이 빠진 듯 휘청거렸다.


“상을 뫼셔라! 어서 빨리 상을 뫼시고 환궁해야 한다!”


눈치가 빠른 위사들 중 몇몇이 뒤로 빠졌고 그 빈자리를 원진을 구성하던 하남윤에 속한 호위들이 채워냈다.


“명적을 쏘아라, 지금 당장 이곳이 위급함을 알려 하남윤의 관병들을 모이라고 해!”


삐이이이이익-


준비된 수순을 따름인지, 그도 아니면 보다 완벽히 주어진 위기상황에 대처한 것인지 타인의 시선에선 알지 못할 철저한 움직임이 그 자리에서 드러났다.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보다 작은 활대를 끄집어낸 이가 아주 자연스럽게 살대에 살을 매겨 하늘을 향해 드높이 쏘아 올렸고, 이는 졸지에 각지에 준비되어있던 하진이 숨겨둔 병력의 출진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부우우우-


명적이 하늘을 날자 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사방에서 울리는 공명과 함께 각지에서 뿔나팔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든 거리거리 사이로 작은 불빛들이 일렁이며 솟아나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원군이다! 지원군이 온다! 상을 호위하는 이들은 지금 당장 서른 보 뒤로 물러서며 자리를 고수한다! 조금만 더 버터라! 지원군이 온다!”


혹시 모를 사안에 대비한 준비는 철저했다.


그 후속명령까지 가히 완벽에 가까우니, 그렇게 두 부류의 무리가 급작스럽게 거리를 벌리며 순식간에 멀어져버렸다.


모든 것이 기대했던 대로 움직였고, 생각보다 피해도 적었다.


얼추 시간이 지나 습격한 이들의 숫자가 거진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을 땐, 이미 흩날리는 횃불들과 함께 한 무리의 관병들이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헌데.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던 것이 문제였다.


이 모든 것을 관장한 하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보다 찰나에 가까웠다.


“저기다! 저곳에 하남윤이 계신......!”


푸화아악-


괴의한 괴성과 함께 눈앞의 지원군을 지휘하던 군관 하나의 머리통이 피분수를 내뿜으며 저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기백에 달하는 이들이 골목에서 쏟아져 나오며, 이쪽을 향해 달려들던 지원군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저놈들은 또 무에야! 저런 이야긴 없었잖아?”


순식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그 어떠한 사전의 협의도 없었던 내용이었다.


그렇다고 이 땅에 불안한 움직임이 준동하였느냐 하면 그도 아니었다.


“뭐야? 일이 어떻게 된 게야? 저것들은 뭐냔 말이야!”


영제를 뒤편으로 밀어내고 전방에서 지휘를 하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제 옆에 자리한 군관 하나의 멱살을 틀어쥐고 이를 물어보는 것뿐이었다.


“하, 하남윤! 이 손 좀 놓고 말씀을 해주시면......, 수, 숨이......”


“합당한 답을 들려주면 놓아주지. 그러니까 말해봐. 일이 왜 이리 되었는지? 반은이랑 준비할 때로 이러한 경우는 없었잖아?”


“아무래도 동생 분께서 들, 들통 나신 것이 아닐까......, 커헉!”


솥뚜껑만한 하진의 손아귀에서 내던져진 군관이 바닥을 굴렀다.


“병신 같은 새끼가 그래도 가족이라고 대해주었더니......, 과분한 것에게 괜한 믿음을 주어 일을 그르쳤구나. 쯧, 그것도 크게 그르쳤어.”


어차피 제 목을 노리는 일이 가능성은 전혀 없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해서 기회를 만들어주었고 이쪽의 일이 조용히 흘러가기에 제 포석이 맞아 들어선 줄 알았다.


헌데 막상 하남윤사와의 거리도 제법 먼 이곳까지 저들이 제 목을 노리기 위해 찾아왔다?


결국, 그 답은 둘 중 하나였다.


일이 실패한 뒤, 저를 찾아왔거나 애초부터 이쪽의 움직임까지 예상했거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리나온다는 것은 문제다.


“태후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폐하께서 자리하고 계신 마당에 저리 나오다니.”


동씨가 태평교의 이들을 수하로 둔 것을 몰랐다면 모를까?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내려지는 답은 그 하나였다.


“역모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는 한이 있더라도 이 하진을 잡고 싶다, 이 말이지? 그래도 쥐었다 생각해서 기회를 주었더니, 이 하남윤에 발을 들인 것조차도 애초에 나를 옭아매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 말이지? 오냐, 내 기필코 살아남아서 이 모든 것을 모조리 이용해주마.”


하진의 손에 쥔 철퇴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허나 이내 그 떨림은 멎어들었고 그와 동시에 하진은 제 손에 날아간 군관을 다시금 일으켜 세워 그와 눈을 맞추었다.


“지금부터 하남윤사의 호위들은 폐하를 모시고 낙양성의 동문으로 향한다. 하여, 그 패를 둘로 나누어 폐하의 호위에 만전을 기하며 적들에 도발에도 대처할 것이다. 또한 다른 지원병들이 도착하는 즉시, 적도들을 토벌하라 이르라. 알겠느냐?”


“예, 예!”


“대업이다. 이번 일만 무사히 지나가면 세상이 뒤집힐 것이다. 허니, 만일 네가 눈앞에 저들을 토벌하고 저 지원군을 잡아먹는 싯누런 역도들을 토벌한다면 교위의 자리를 내릴 것이다. 또한 그 공을 치하하여 상금을 내리겠다.”


“소장, 목숨을 걸고 명을 수행하겠나이다! 부디, 죄를 씻을 기회를 주시옵소서!”


죄가 아닌 제게 떨어진 부귀공명을 위해 달려드는 것이었지만, 그 안일한 부나방의 날갯짓이 필요한 것이 바로 작금이었다.


그렇게 전방에 자리한 이들을 내던져준 하진은 후방으로 향했고,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눈으로 지켜본 영제는 다급한 목소리로 하진을 찾았다.


“하남윤, 하남윤도 눈이 있다면 보아라! 저들은 태평교가 아닌가? 누런 두건을 뒤집어썼어, 필히 그놈들인 게야!”


“신이 보기에도 그렇사옵니다.”


“주제도 모르는 오만한 것들! 감히 짐이 어찌 백성을 보살폈는데 저따위 짓거리를 할 수가 있어! 감히 짐을 습격하려 했단 말이야? 무엄한지고! 참으로 간악한 것들이 아닌가!”


“폐하, 이곳은 너무 위험하옵니다. 적도들의 수가 적지 않으니 온당 도성으로 향하셔야 그 안전이 보장되실 것이옵니다.”


“그래야지, 기필코 그래야지. 가서 이 모든 책임을 물어야지! 그러고 보니, 지난날의 송사에서도 그러했어. 더러운 것들의 때가 묻은 이들이 중상시의 직함을 달고 있었어. 이 궁 안에도 그놈들의 세력이 숨어있었어. 언제부터인가? 대체 언제부터 저 밑바닥 것들이 짐이 기거하는 황궁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게야아아-!”


연달아 이어진 습격과 더불어 이전과 달리 보다 확실히 그 정체를 드러낸 태평교에 이들에 대한 영제의 분노와 배신감은 가히 참담할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송구하오나, 송사에 이름을 올렸던 봉서는 지금 태후마마의 휘하에......”


“뭐라? 그걸 왜 이야기 하는가! 아니지, 아니야.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고 해도, 그래. 그럴 리는,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 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충격을 받은 영제의 표정은 시시때때로 변해만 갔다.


멋대로 가정을 세우고 이를 부정하고 슬퍼하며 안도하고 또 기뻐하다 다시 음울해졌다.


그리고 그 다급한 와중에도 하진의 눈에 들어서는 저들의 기세는 맹렬하고 또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폐하, 지금은 시시비비를 가릴 때가 아니니, 우선 고정하시고 속히 환궁하셔야 하옵니다!”


하남윤의 곳곳에 포진시켜둔 관병들이 제 명적 소리를 들었다 하나, 매복한 위치가 각자 다르니 화답한 뿔나팔의 소리와는 다르게 모두 제 때에 도착한다는 보장 자체가 없었다.


본래는 극적인 처리를 돋보이기 위한 안배였으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그들과 가까운 쪽으로 그 방향을 돌려 그들과 합류에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하진은 영제를 붙잡고 독촉하고 또 독촉했다.


핏물이 튀고 고성과 날카로운 창극의 소리가 주변을 메운 전장이나 다를 바 없는 이 하남윤을 가장 빨리 탈출하고 낙양에 들어서는 것만이 그 안정을 보장받는 일이라 끊임없이 소리쳤다.


“폐하!”


“알, 알았네!”


- 하남윤에게 전권을 맡기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짐의 안전을 보장하라.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황명과 함께 철퇴를 다잡은 하진은 눈을 빛내며 웃었다.


“소신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명을 완수할 것입니다.”


언제고 입이란 그 속내를 감추기 위해, 제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살아만 있으면 된다, 살아만 남으면 된다.


이 모든 부정과 부패는 제 안일한 하남윤의 책임론보다도 더한 역적의 행위이자 반란의 시동이 되어 천심과 민심의 분노를 일깨울 것이다.


이것으로, 태후는 동씨는 그 책임을 피할 수가 없다.


대놓고 태평교를 산하에 두고, 또 이미 한 번 황상의 눈 밖에 났던 봉서를 감싸 않았으니 가뜩이나 유자들에게 내몰린 이 마당에 그보다 더한 지탄을 만들게 될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 모든 사실이 단 한순간에 자신의 뇌리를 스쳐지나갔기에 그래서 하진은 웃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전원, 즉시 모두 서쪽으로 향한다! 최단거리를 내달려 이쪽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관군들과 합류한 뒤, 폐하를 도성으로 뫼실 것이다!”


그렇게 하진은 저를 옥죄여 오는 두려움 속에 짜릿한 전율이 뒤섞인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영제는 제 체면마저도 내던진 채, 그에 동참했다.


그 자리에 선 모두가 그렇게 생존, 그 하나를 위한 뜀박질을 시작했다.


* * *


“도합 팔백에 달하는 무리가 찢어져 서쪽으로의 모든 길목을 막아 세웠다.”


한 편, 난전이 벌어지는 이들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한 하남윤의 외각에도 그 자리를 잡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운이 좋다면 처음에 잡힐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속적으로 몰이사냥을 당하는 짐승이 되어 사냥당할 것이다.”


부족하나마 얼기설기 대충 그어놓은 먹선으로 이루어진 지도를 두고 그 위로 조약돌을 뿌려 제각기 위치를 표시한 양중녕은, 제가 쥐고 있는 붓을 들어 보다 아래 쪽. 하남윤사가 자리하고 있는 지도의 구역들을 향해 연신 남(南)이란 글씨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장백의 보고에 따르면 그 난전 속에서도 당주가 살아 돌아갔다고 한다. 하남윤이 제법 좋은 수하를 두었다지만 이미 그 피해는 회복하기조차 힘든 상황, 거기다 예상치 못한 남파의 누가 움직여 준 덕에 이쪽이 그 수고를 덜었지.”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제 고개를 비틀어 자신의 옆에 포박된 채로 무릎 꿇려져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렇소? 마 방주.”


하진을 습격하기 위해 하남윤사로 향했던 마원의. 어찌된 일인지 하진으로 둔갑한 하묘의 뒤를 좆고 있어야 할 그가 험한 꼴이 되어 있었다.


“그 잘난 권력욕인지 그도 아니면 아직도 제 잘난 과거가 그리워 이를 놓지 못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파벌 싸움에 미친 것인지 모르겠다만, 신상사를 시켜 총단을 겁박한 그 오만함은 내 덕분에 잘 느낄 수 있었소. 한 때는 그대를 존경했는데, 이리 추해진 그대를 보니 더욱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으니, 참 인생이 무상하오, 그렇지 않소?”


“나는......,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잘난 과거 따위 애초부터 그리워하지도 않았다. 파벌에 미치지도 않았으며 교, 그 하나만을 위했다.”


“하하하하! 이거 미칠 일이로구만. 그러한 이가 남파의 독단적인 작전수립과 더불어 그 모든 포상을 얻겠다 총단에 통보하고 일을 저지르는 것은 무슨 심보이오이까? 멋대로 당주의 직위를 해제하고 교주님의 권위를 해하였으며 북파의 체면 따위 저 밑바닥보다 더한 밑바닥으로 던져 파당의 분쟁을 일으킨 연유는 대관절 무엇이오이까?”


“교의 드리워진 암운(暗雲)이다. 아무도......, 아무도 이를 거둬내려 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는 만백성을 구원코자 했다 하여 우리가 내건 태평의 가르침 아래, 경의(經義)와 정위(正位)를 품고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다.”


“그걸 아는 양반이! 어떻게 교의 대계를 송두리째 흔들려고 하오? 어째서! 단 한 사람이 사라지면 되는 일을, 그 대상을 보다 밑바닥에 자리한 이로 뒤바꿔 그 상징 무너트리려고 하시오? 감히, 저 잘난 줄만 알고 천공에 떠 있었으면, 지속적으로 저 하늘에 박혀 아예 그 바깥으로 나오질 말던가. 왜 그 바깥을 나와서 지랄인가, 지랄이!”


“이보시게, 양중녕.......”


“이 땅을 업신여기고, 이 땅에 백성을 업신여긴 쓰레기들, 작금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그릇된 치정과 사리사욕과 탐관을 비롯한 부정한 사인들과 유가의 그릇된 질서와 역사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단 하나의 존재! 천자! 그 오만한 존재가 이 땅에 모든 지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며 새 시대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요. 저 오만한 것이 하늘의 아들이면 우리는, 그리고 본교는. 자랑스러운 이 땅의 아들들이요. 저 잘난 것들이 백제의 아들을 죽여 그 역사를 새로이 썼다면, 우리는 그 적제의 이들을 죽여 새로이 황제의 역사를 써내려갈 것이요, 아시겠소이까?”


“어찌 이를 모르겠는가, 허나......”


“이미 준비된 교의 대계도 반대, 그에 앞서 그 방향을 멋대로 비틀어 죄를 물어야 함이나 그나마 대현양사께서 그 자비를 베풀어 단 한 사람의 희생으로 그 모든 대업을 바로 잡을 비답을 내려주시며, 모든 사안을 종결 지으셨거늘. 어째서 그대는 그대의 고집만을 앞세우시는 것이요?”


“명분과 실리 그 모든 것을 쥐어야 하네.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고, 명분 없는 실리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포장되어 만인의 지지를 받지 못하네.”


“그 하늘에게 문제가 있다면, 지금껏 이 땅을 방치하고 괴롭히며 짓이기고 흔들고 무너트린 죄가 있다면 과연 땅은 가만히 자리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하늘을 향해 솟구칠 수 있어도, 하늘을 향해 피를 흩뿌리고 창칼을 들이밀 순 있어도 하늘은 아무렇지도 않지 않은가? 하늘의 성질은 이 땅과는 다르네.”


“......, 변했군. 그대는 언제부터 변절자가 된 게요?”


“변절자라, 아닐세. 이치를 깨달은 게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늘에 오를 수 있었네. 순리에 입각하여, 구름보다 드높이 올라 천공에 맞닿은 지금, 그 하늘마저도 우리의 손으로 움직여낼 수 있었어. 하여 모두의 암묵적 동의 속에, 그렇게 변화되어가는 새로운 흐름에 발맞추어 새로운 하늘을, 교의 하늘과 치세를 그려내야 했지. 믿음은 기적을 불러일으키고, 선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니까. 그리고 진심은 하늘에도 닿는 법일세. 그리고 이에 하늘이 화답하지.”


“그 따위 나약한 소리를 하니까 남파가 기존의 자리를 잃고 밀려난 게요. 세상천지 태평한 소리나 하고 있으니 그게 어디 개벽의 세상을 만들어갈 천명을 받은 교의 선지자가 할 소리인가? 본교는, 그에 앞장설 북파는 천하를 열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교의 가르침속에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것이고, 교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 어떠한 것도 허락지 않으이라!”


“신상사 또한 그러했지. 하지만, 믿음을 강요당하는 것만큼 부정한 세상은 없네. 세상이 그러했다면 유교의 부정에 저항하며 새로운 답을 찾으려한 우리가, 또 그런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도교의 이들이 어찌 이 땅에 모습을 들어 낼 수 있었겠나?”


“천명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이 본교에 천명이 있기 때문이야!”


“방금 전까지 내게 하늘을 운운한다 하며 변절자라 하지 않던가?”


“닥쳐라! 그런 그대야말로, 쉬운 길을 자꾸만 어렵게 가려고 하고 있으니 이게 교를 방해하는 행동이 아니고 무엇인가? 당당히 맞서지 아니하고 자꾸만 피해서, 돌아서 간다고 해도 그것이 어디 바른 길일 것 같은가?”


“작금의 천자를 죽여 얻는 것이 있다면 바로 정해지지 않은 질서를 반기는 이들 뿐일세. 하나의 자리에 두 갈래의 가능성이 있지. 하지만 그것이 천하를 가르고 백성들을 더더욱 힘들게 만들 걸세.”


“해서, 그것이 무에 다르다고? 천자가 없어진 자리에 동 태후가 손을 뻗으나 하 황후가 손을 뻗으나 본교는 어차피 태후의 손을 들어준 마당이다. 누가 되었든 이쪽에 방해되는 이를 철저히 짓밟고 죽여야 그 공포와 충격이 궁을 휩쓸 것이고 이는 비단 태후의 이들이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야. 하여 우리는 태후와 대등한 관계를 맺는다. 하나뿐인 후계의 승계 작업에 지지기반이 된다. 그대도 알고 있는 그림이다, 그래. 그 잘난 그대들 남파가 만들어낸 훌륭한 그림이다! 한데 왜 이제와 이를 반대하는가? 왜 제 스스로 이를 지워내!”


“빠른 길을 바른 길이라 역설하지 말게.”


“그래서? 그게 바른 길인가? 황제가 아닌 하진을 죽이는 것이 그게 바른 길이냔 말이다!”


“하씨의 구심점이며, 새로이 떠오르는 청류와 유림의 지지를 이끌어낸 자이지. 세력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그 우두머리가 사라져야 구심점을 잃은 이들이 두려워할 것이며, 그 두려움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멀쩡한 척을 해대기 위하며 사안의 경중과 일의 선후를 따지지 않은 채 날뛸 것이니까. 또한 새로이 구심점을 정한다 하여 그 후보로 떠오른 하묘와 하 황후가 다투게 될 테니까. 물론, 동씨라는 위협아래 함께 할 것이나 결국, 시간이 흐르며 갈라질 수밖에 없네. 언제고 상좌(上座)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니까.”

“하, 입으로야 무슨 소리든 못할까.”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아니네. 하묘는 분명, 동생이나 재혼한 집안의 장손이지. 그도 모자라 하진과 함께 자라오면서 하진의 일처리를 보았고 그런 하진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호시탐탐하진의 자리를 노렸지. 제 형도 해낸 일을, 그에 부담감을 가진다한들, 어찌 저라고 해내지 못할 것이라 여기겠는가? 제 아무리 제 누이가 황후라 해도 그 권한이 막강해도 결국, 하묘는 제 안에 지워지지 않는 하진이라는 이의 빈자리를 제가 채워내야만 하는 인물일세. 제가 그가 되어야, 그를 옭아매던 족쇄에서 저 스스로 해방이 될 게야. 그 해방감을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지, 하묘는.”


“그래도 제법 인물에 대해 안다고, 궁에서 헛짓거리는 하지 않았던 모양이로구나. 하지만, 그 또한 말도 아니 되는 소리. 하묘가 하씨문중을 쥔다고? 어찌 하 황후가 가만히 있겠는가? 황궁의 안주인이야, 천자의 씨앗을 잉태한 황자의 어미야! 어찌 권력욕이 없고, 어찌 위를 보지 않겠는가?”


“것 보게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그건......!”


“그대가 설명한 대로, 황후 또한 내제된 불만이 제법 많을 게야. 들리는 풍문에 직접적으로 아이를 지워낼 약을 먹였다고 하니, 그 성정이 보통 독한 여인이 아닐 테지. 허나 그러한 여인이 왕미인의 독살 이후, 지금까지 그 어떠한 사고도 없이 조용하게 지내고 있네. 제 분에 제가 이를 못 이길 이가 억지고 그 성정을 눌려가며 지금까지 왔다는 것은 하남윤의 존재가 그만큼 막강했기 때문이야. 그런 황후의 성정을 짓누를 수 있을 만큼, 헌데 그러한 하진이 죽는다면? 그리고 그 하진의 자리가 비어버리게 된다면? 그간, 제 친 오라비도 아닌 이 때문에 억눌리고 가만히 있어야만 했던 그 때의 그 모든 감정과 억하심정이 터져 나오게 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하진의 자리를 제 동생이 노리고 저 스스로가 또 다른 하진이 되려한다면? 그 지옥 같은 세월을, 천자마저 관심을 두지 않아 아무도 발걸음 하지 않는 그 외로운 곳에 홀로 남아 지금껏 견뎌왔던 그 모든 겁박의 세월을 다시 살라 한다면? 과연 하 황후가 가만히 있으리라 여기는가?”


마원의의 이야기를 끝으로 더 이상의 어떤 말도 양중녕의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못했다.


대신, 굳어진 얼굴의 그는 턱하니 한구석에 걸쳐둔 제 창을 잡았다.


“빠른 길이 바른 길인지, 아닌지 오늘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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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5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1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8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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