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들개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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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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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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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8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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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외전 4장 16화 – 서주(西州)에 드리운 암운, 동주사라는 이름의 악(1)

DUMMY

“자, 모두 예서 걸음을 멈춘다!”


선두에 선 길잡이 하나가 비탈 위에 올라 그 아래로 펼쳐진 수풀과 굽은 오솔길을 굽어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수많은 이들이 각기 힘든 여정을 마쳤다는 듯 후련한 한숨과 더불어 제 등에 짊어진 봇짐을 내려놓고 둥글게 말아놓았던 거적을 끄집어내 하나 둘 제 몸을 뉘일 곳을 찾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또한 이 외에 칼과 도끼를 꺼내든 이들이 근처 수풀과 숲으로 들어가 나무와 마른 풀을 찾았고 그 마지막으로 바닥의 흙을 긁어내 작은 자리를 만든 뒤, 이를 그 안에 집어넣고 조그마한 모닥불들을 피워냈다.


그 위로 작은 솥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한쪽에선 돌과 진흙이 뒤섞인 화덕이 작게나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얼추 그 숫자만 해도 거진 이백은 넘을 법한 이들이 각기 제 할 일을 도맡으며 빠르게 밤을 지샐 야영의 준비와 임시로 만든 화덕으로 배를 채울 저녁 준비에 한창이었으나 그리 쉴 틈도 없이 바쁜 와중에도 이들의 안색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보글대며 끓어오르는 쌀죽을 받아 다 깨진 그릇 위로 이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와중에도, 경비를 서야 하니 먼저 밥을 받아야 한다는 병사들과 또 나랏일을 하러 간다는 관료들은 물론, 그저 사람 죽일 줄 아는 칼잡이이자 무인이라는 연유만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먼저 자신들이 만들어낸 식사를 가져가는 이들이 많아 남은 쌀죽 위로 다시금 물과 풀떼기를 넣고 이를 끓이는 와중에도 이들의 안면에는 연신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했다.


시뻘겋게 물든 하늘이 지고 있듯, 어둠이 몰려드는 이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도리어 흘러나오는 콧노래와 더불어 기운이 넘치는 움직임은 마치 밝은 날의 모습과 같았고 지는 해와 더불어 조만간 자신들이 도달하게 될 찬란한 보옥과 풍족한 재화를 품은 익주가 함께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앞에 뜨겁게 달아오르며 그 마지막을 태우는 태양의 모습은 이들에게 있어 하루를 끝마친 채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몰이 아닌, 새 시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며 내일의 하루를 만들어가는 일출이었다.


스스스슥-


그렇게 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이 땅에 걸음한 이들이 모두 자신이 자리를 잡은 곳에 거적과 모포를 둘러메고 잠을 청했다.


심지어 경계를 서고 있는 초병들마저 보다 빨리 먼 곳에 도달하고자 했던 강행군 덕에 지친 피로와 몰려드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근처 바위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잠을 청하거나 그 자리에서 제 극에 몸을 기댄 채, 꾸벅꾸벅 서서 졸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풀벌레들이 연달아 우는 소리와 더불어 사방이 우거진 수풀과 수목 위로 잠깐이나마 빛을 발하는 달빛은, 어느새 제 비추는 너른 대지 아래 마치 제가 자리한 하늘 위로 자리한 별들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내었고, 그 반짝이는 별들과도 같은 것들은 어느새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수풀과 수목의 틈 사이를 지친 기색 없이 헤집고 있었다.


스스스슥-


그렇게 마치 풀벌레들이 울고 수목이 흔들리는 것과 아주 비슷한 소리가 조금씩, 조금씩 이전보다 커져만 갔다.


내리쬐는 달빛의 아래 영롱히 빛나기는커녕 어딘가 날카롭고 번뜩이며 차가운 느낌을 주는 그 반짝임은 어느덧 저 하늘의 별들이 떨어지는 것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과도 같은 수목과 수풀을 넘어 보다 영롱한 빛을 받아들이며 그에 비견될 작은 모닥불들이 피워내고 있는 이들이 머무는 비탈 위의 평지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푸우욱-


“크허어어억........!”


쐐애애액-


“으아아악!”


“스, 습격이다!”


시퍼렇게 날이 비려진 검을 쥔 손아귀가 보초를 서고 있는 관병의 품으로 날아들 듯 들이닥치며 그 뱃가죽을 꿰뚫어냈다.


우거진 수풀 속에 저 밤하늘에 떠있는 별들과 다를 바 없이 반짝이는 화살촉들이 이내 당겨진 만곡(彎曲)으로 말미암아 매서운 기세로 잠을 청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때아닌 습격으로 말미암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비명과 굉음 속에서도 현실을 구별 못하는 비탈 위로 제각기 흉측한 도검을 쥔 이들이 달라붙어 그들의 목과 가슴을 찌르고 베어내며 도망치는 또 다른 이의 머리채와 옷자락을 붙잡고 뼈가 없어 보다 꿰뚫기 쉬운 부위를 골라 다시금 꿰뚫기 시작했다.


서걱-


“대, 대체, 왜.......”


푸욱-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이요! 우리가 무슨 잘......, 커흡!”


“불부터 꺼라, 불부터 꺼!”


시커먼 야음을 물리치고 그나마 사람의 안면을 구분 지을 수 있는 모닥불 위로 어디에서 들이닥쳤는지 모를 이들의 흙을 걷어차는 힘찬 발길질이 들이닥쳤고 자연스레 꺼지는 불씨와 더불어 서로를 분간할 수 없는 세상 속에 스스로의 존재를 지워낸 혼령들과도 같이 어느새 하늘을 향해 짙은 미련을 남기며 피어나기 시작한 새하얀 백연들마저도 공기 중에 흩날리는 핏방울에 맞아 물들고 흩어지며 순식간에 제 형체를 잃어버리며 사라졌다.


그렇게 제 주린 배를 쥐고 잠을 청하는 짐승들마저도, 제 둥지에서 날개를 펴고 가슴을 부풀려 자신이 낳은 알과 새끼를 품은 새들마저도 순식간에 자신들을 향해 들이닥치는 피 냄새와 더불어 세상이 찢겨지고 고통받는 것과도 같은 수많은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에 놀라 긴장을 감추지 못하고 불안에 떨며 바깥을 향한 경계를 위해 고개를 내밀고 울부짖은 것은 물론, 혹시 모를 천적에 대한 위협과 경고를 위해 자신의 둥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사방에서 울부짖음이 들렸고 그 속에 자리한 모든 것이 죽어가고 죽이는 이들의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이를 나누어 가졌다.


그렇게 그곳에 자리한 사람과 사람을 넘어선 모든 것이 악몽과도 같은 밤을 지새우며 새로이 떠오른 아침 해를 맞았을 땐, 그 형체조차 온전하지 않도록 찢겨지고 꿰뚫렸으며 절단된 이들이 오만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 속에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 * *


우르릉-


쏴아아아아-


천둥이 울고 하늘이 찢겨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비와도 같은 소나기가 이 땅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이거 아주 꼴이 말이 아닙니다. 거칠다 못해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눈치인데 잘린 단면이 생각보다도 깨끗합니다.”


허나 그리 거세게 내리쬐는 빗물 속에서도 옥으로 장식된 가락지가 끼워진 사람의 잘린 팔 하나가 제게 묻은 시뻘건 핏물을 씻어내며 애먼 하늘을 향해 덜렁거리고 있었다.


철퍽-


핏물과 빗물이 얼룩진 벼랑 위의 진창을 향해 떨어져 내린 한 사내의 가죽신 뒤로, 물경 일백은 될법한 이들이 다들 떨어져 내리는 폭우 속에서도 긴장을 감추지 못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가죽으로 걸친 갑주를 착용한 이가 자신이 모시는 상관이자 핏빛으로 물든 진창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은 사내를 향해 제 손에 들려진 잘린 판을 건넸다.


“무리 중에 계집이 있었나?”


“계집이 없는 것은 아니나 대부분 가진 것 없는 이들일 뿐이고, 그와 별개로 계집의 손이 이리 두텁고 투박하진 않지요.”


눈앞에서 흔들리는 잘린 팔, 뚱뚱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있는 옥가락지.


그 격전의 와중에도 제가 박힌 손가락 마디 하나를 넘어서지 못하고 주인과 함께 그 운명을 달리한 모양이었다.


“상인의 것인가?”


“애석하게도 관복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중앙에서 나온 관료 같은데 이놈 말고도 저어기, 거진 여섯은 더 죽어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원한이 짙은 이들의 습격은 아니야.”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방금 전 자신이 내린 판단이 맞는 모양이었다.


하여 그 의견을 덧붙이려는데 제가 모시는 자신의 상관은 대놓고 이를 부정했다.


“아니, 어째서입니까?”


“여기 죽어 나자빠진 이들은 원체 한데 모여 움직이는 무리가 아니니까. 저기 이것저것 바닥에 흩어진 물건들이 많은 쪽이 소상들, 저 구석의 망치와 모루 등을 짊어진 게 공인들. 그 반대편에 어지간한 봇짐조차 없는 것들은 거진 가진 것 없는 민초들일 것이고 그 뒤에......”


“관병들에 뒤섞여 죽어있는 것이 관료들, 그 외에 저희와 다를 바 없이 각기 다른 무구와 더불어 죽어나간 이들이 임협과도 같은 무인들이란 말씀이시지요?”


“그렇지. 이미 십만이 넘는 이들이 마치 거대한 피난과도 같은 행렬로 움직인다고 했다. 허나 그렇다고 익주로 향하는 길이 거진 같지만은 않지. 마적들이 즐비한 옹, 량주를 피해야 하고 사례의 외진 지역 또한 비적들이 산자락과 길목을 차지하고 있으니 한데 뭉쳐 큰 무리로 다니거나 자신이 아는 샛길이나 대체적으로 알려진 길목이 아닌 곳을 통해 익주로 움직일 수밖에 없지. 거기다 모두가 한날, 한시에 움직인 것이 아니니 사례를 벗어나면서부터 많은 이들의 무리가 나뉘고 찢어졌을 게다. 그러던 차에 그 걸음과 방향이 맞는 이들끼리 다시금 한데 뭉쳐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였을 것이고......”


“또 그러던 차에 이리 후방에서 출발한 관료들의 일행에 들러붙기 시작한 작은 무리가 이곳에서 몰살을 당했다?”


스윽-


부관의 물음에 스스럼없이 무릎을 굽혀 앉은 그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검게 그을린 구덩이를 메운 흙더미를 가리켰다.


“정확히는 모두가 잠을 청한 야음을 틈타 들이친 것이지.”


철벅철벅-


어느새 눈을 빛낸 그는 다시금 자세를 바로 하고 제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을 향해 스스럼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눈치 빠른 부관이 그런 그의 뒤를 따랐다.


“재물이 없어졌을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 목적이었더라면 죽은 이들의 옷가지가 벗겨지거나 찢겨지는 등 누군가 이를 뒤진 흔적이 있어야 하고.”


“또 근방에 자리한 도적들의 짓이라 보기엔 너무나도 잘린 단면이 깔끔하니 질 좋은 무구를 쓰거나 실력이 월등하단 이야기지요?”


“그래. 해서 입협, 내지는 무예를 수련하는 향당이자 족적의 무리가 아닐까 싶다만. 이 근방에 이 정도의 학살을 자행할 이들을 보유한 무가는커녕 그러한 가문이 자리할 촌락도 없다.”


“그래도, 부유한 익주에 대한 풍문이 파다하지 않습니까? 근방에 산채가 있을 수도 있고, 멀리 원행을 나왔을 수도 있으니 어인 떡이냐 하고 달려들었을 가능성이......”


“산적이라면 최소한도 이리 모든 이들을 몰살시키지 않아, 사람도 가져다 팔면 돈이다. 거기다 저리 잔혹하게 죽이지도 않으며 애초에 별 값어치가 없는 것들이라도 최소한의 관료들이 걸친 비단 옷가지나 그 마디에 살이 쪄 빠지지도 않는 손가락의 가락지마저도 그 손가락을 잘라서라도 가져갔겠지. 무엇보다 옷가지들과 봇짐을 뒤진 흔적이 없어.”


“후우......, 허면 대체 결론이 뭡니까?”


“지워버리겠다는 게지.”


“예?”


“익주에 미리 들어서기에 앞서 제 경쟁자가 될 것들은 미리미리 치워내겠다는 소리다.”


“아니, 그럼......!”


부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도 모자라 치가 떨린다는 듯 그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들이 저 홀로 익주를 차지하겠다, 뭐 그런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육시랄, 내장을 끄집어내도 시원치 않을 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흥분하지 마라. 어쩌면 이는 예견된, 아니. 보다 정확히는 당연한 수순이다. 사례를 비롯한 중앙에 자리한 이들이라고 하나 된 것은 아니니, 각기 세력도 다르고 벼슬도 다르며 집안도 다르고 심지어 제가 부리는 수족도 다르다. 거기다 익주가 제 아무리 풍족하다고 한들 사례 전역에서 뻗어 나오는 야욕을 모조리 충족시킬 순 없음이야.”


제 흥분을 참지 못해 이를 부득부득 가는 부관이었으나 그런 그의 상관은 이를 마주하고서도 크게 흔들림이 없었다.


“그럼 저희는 뭡니까? 나리를 상전으로 뫼시고 나리의 명을 따르는 저희는 어찌되는 것입니까?”


“성공하던 실패하던 너희가 일정한 역량을 드러내고 충성을 다한다면 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되겠지.”


“허면, 나리가 잡은 줄. 그 줄은 안전하십니까?”


“안전하지 않고서 어찌 이리 일을 벌이겠느냐? 차라리 잘 되었다.”


“예?”


“부관, 아니 첨강.”


“예, 건석 나리.”


그렇게 제 본연의 복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일개 사병집단의 사병장이 걸칠 법한 가죽 갑주와 무복을 걸친 건석은 이내 자신의 앞에 불안한 기색을 떨치지 못하는 첨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일백에 달하는 칼잡이를 이끌고 그간 성공을 위해 전전했다고 했지?”


“그, 그건......”


그렇게 스멀스멀 피어나기 시작한 그의 기운이 심상치 않는 압박이자 일개 범인과는 다른 무언의 위압이자 권위에 가깝게 변하자 당혹을 금치 못한 첨강은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칠 생각을 못했다.


“아직 젊은 네가 세상에 보다 많은 것을 쥐려거든 너 또한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함을 모르지는 않을 터.”


“그야, 무, 물론 그렇습니다만. 그건......!”


“어쩌면 이 이상의 기회가 네 생에 더는 없을지도 모르지.”


“나, 나리......”


“저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혈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 속에 우리는 어찌하여야 되겠더냐?”


건석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더더욱 강렬한 시선을 건넸다.


“너와 너를 따르는 수족들이 그토록 너희가 바라며 울부짖는 성공을 위해 너희의 능력을 증명하려면 이리 서로를 잡아먹는 상황 속에 대체 어찌하여야 하겠느냐?”


보다 노골적인 그의 눈빛은 이미 자신이 정해놓은 답을 바라고 있었다.


“그, 그야 물론......”


“죽여야겠지? 이러한 촌극을 만들어놓은 저놈들처럼, 그래야 이리 피해를 입은 이들을 마주한 누군가가 또 다시 이를 깨닫고 자신들 또한 익주를 차지하기 위한 이 추악한 생존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


건석은 다시금 그를 향해 눈을 빛냈고 이를 마주한 첨강은 알게 모를 두려움 속에서 천천히 제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우리의 경쟁자는 줄어든다. 누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앞선 이들을 제한 후발주자들 또한 끊이지 않는 상황이니 모두가 이 판에 끼어들어 제가 따라잡은, 제게 걸리적거리는 이들 모두를 익주에 도달하기에 앞서 치워낸다. 또한!”


우르릉-


“이미 익주에 들어선 이들조차 제가 집어삼키기 시작한 익주의 모든 것에 대해 반발하는 모든 이들을 모조리 치워낸다! 거슬리면 죽이고, 저항하면 짓밟으며, 숨기면 들춰내고, 순응하면 그 댓가로 목숨만큼은 거두지 않는다! 허나 서주(西州)의 이들은 이를 제한 모든 것들을 내어놓아야 할 것이야. 우리 동주인(東州人)들을 위해, 우리 동주사(東州士)들을 위해! 이 땅이, 이 나라가, 저 하늘이, 저 하늘에 근접한 이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으며 갈망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아야 할 것이다!”


하늘이 울었다. 저 하늘을 검게 물들인 먹구름들이 쏟아내는 폭우는 여전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빗속에서, 천둥과 우레가 동반된 장대비 속에서 건석은 하늘을 향해 마치 이 모든 것을 예견하기라도 하듯 덤덤하면서도 우렁찬 외침을 남긴 채, 빗속을 뚫고 저를 따르는 이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다 잔혹하고 구슬프게 예견된 앞날이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익주를 또 다른 전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중이었다.


* * *


쾅쾅쾅-


“열어라! 어서 성문을 열어!”


“서주인들은 당장 관문을 열어라! 이리 수많은 백성들이 찾아왔는데 어찌 문을 열지 않느냐!”


와아아아아-


“제기랄! 이게 무슨 말도 아니 되는 상황이야!”


수천이 넘는 민중이 험한 산세와 비좁은 촉도를 건너 드디어 익주에 발을 들였다.


그들 중 다수가 포수를 건너 기곡을 통과한 것은 물론, 낙곡도를 거쳐 흥세산을 통해 적판에 들어선 이들의 수도 적지 않았으며 이 외에도 사례로부터 가장 가까운 자오도와 욕곡도를 건너온 무리들만 벌써 일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관주는 어서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어라! 어서 빨리 열어라!”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였다.


그것도 예고도 없이 찾아든 수천이 넘는 동주인들의 이주와 더불어 이들의 뒤편으로 끊이지 않을 규모를 자랑하는 관병들과 관료들 거기다 임협을 비롯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칼잡이 무인들은 물론, 공통된 복색과 무구를 갖춘 제법 이름난 가문의 사병으로 보이는 이들까지 줄줄이 통관을 허락지 않는 관문의 앞에 흉험한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저들의 입성을 허락할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은 그 어떠한 연락을 받은 것이 없을뿐더러 눈앞의 무리가 백성인지 도적인지 그도 아니면 외적인지 아예 구분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 맞을 것이다.


무의식에 잠식된 본능은 자신들의 앞에 자리한 수천, 수만에 달하는 무리를 이미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고 그 덕에 애초에 멀쩡한 관문을 오가던 서주인들이 도리어 관문 안으로 쫓기거나 도망쳐 들어오는 광경까지 목격하게 되니, 때 아닌 생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이 기이한 위기에 관문을 지키는 관군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외적을 상대하는 태세를 갖추며 다급히 성벽의 빈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어디 이 나라의 백성이란 말이냐? 저건 그냥 도적이야! 외적이나 다름이 없단 말이다!”


“하지만 관주님, 저 뒤에 자리한 이들의 복색은 분명 조당에서 내려 보낸 관료의 복색이 맞사옵니다. 거기다 한둘이 아닌 듯 보이는데 어서 성문을 여는 것이......!”


콰직-


“뭐야!”


그렇게 모두가 혼란과 두려움에 생존에 가까운 본능을 쥐고 수성의 자세를 취할 찰나, 이미 그 인내심이 끊어진 성 밖의 이들 중 하나가 낡아빠진 청동으로 된 괭이 하나를 쥐고 성문을 거세게 때려냈다.


허나 금속 철편도 덮여 있지 않은 생나무로만 이루어진 성문은 보다 쉽게 이를 허락하고야 말았다.


“이, 이놈들이 지금 미쳤나? 어느 안전이라고 나라의 관문을 공격.....!”


타앙-, 탕-


한 사람이 그리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니 어느덧 그 옆에 자리한 이들 두엇이 나와 이제는 제 망치와 도리깨를 들고는 온 힘을 다해 성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무가 우그러진다! 성문이 약하다!”


“이.....!”


와아아아아-


그렇게 흥분한 폭도로 돌변해버린 백성들은 이미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제 손에 잡히는 것은 뭐든 쥐어 들고 관문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도 모자라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관문 대신 그 좌우로 펼쳐진 낮은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관병들이 다급히 성벽에 들러붙어 흉흉한 기세로 성벽을 타고 올라오려는 이들을 뜯어말리며 어쩔 줄 모르고 창대로 겨우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익주 놈들이 금은보화와 흘러넘치는 미곡을 저 홀로 차지하려 한다! 저 무도한 것들의 우리의 재화와 우리의 곡식을 멋대로 독점하려 한다!”


“빨리 도끼부터 가져와! 초부이신 분들은 앞으로 나서시오! 여러분! 성문이라고, 어차피 두터운 나무판에 불과하니 어서 빨리 성문을 부숩시다! 성문을 부수고 어서 익주로 들어갑시다!”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장인들과 공인들은 근처의 대죽으로 사다리를 만들자!”


그렇게 메마른 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은 재앙이 시작되었다.


탐욕과 성공에 미친 이들, 그간의 고난과 긴 원행에 대한 보상은 물론, 제 꿈과 희망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게 될까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쳐버린 이들이 멋대로 저항을 택하며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가기 시작했다.


“누가, 대체 누가 익주에 금은보화가 있다고 하더냐! 어느 미친놈이 이 땅에 미곡이 흘러넘친 다는 소리를 해!”


“막아라! 허락도 없이 성벽을 타고 오르는 저것들을 막아라!”


“끓는 물......, 아니, 찬물을 가져다 부어라! 돌이 아닌 흙더미를 붓고 성문에 덧댈 나무를 가져와!”


이미 상황은 난장판이나 다름이 없었다.


더할 나위 없는 충격 속에 참담한 현실을 목도한 관주는 이미 주변을 통제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창날이 아닌 창대로 때려라! 행여라도 죽거나 피를 보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


이에 서로의 눈이 교차되자마자 그 속하의 군관들이 각기 제가 도맡은 곳으로 뛰어가며 제가 도맡은 구역을 사수하였고, 그나마 전신이 온전한 이들은 이번 사태의 최소한의 책임의 소재를 면하기 위해서도 또 그나마 온전히 남아있는 이성을 부여잡기 위해서도 더 이상의 그릇된 선택을 막고자 최선을 다했다.


허나 애초에 제아무리 높지 않은 성벽을 타고 오른다 한들, 그 높이가 어디 아이들 뛰어넘는 싸리나무 담장만 하겠으며 수많은 이들이 한데 뭉쳐 금속으로 된 날붙이를 휘두르는데 어찌 피를 본 이가 없겠는가?


맨 앞에 달려든 이는 그에 뒤이어 달려드는 이들 덕에 성문에서 떨어지지 못한 채 짓눌려 버렸고, 그 중간에 끼어있는 이들은 앞뒤로 뒤엉키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애먼 이가 휘두른 쇠꼬챙이에 머리가 깨져 피를 흘렸다.


이뿐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이들이 그 뒤로도 몰려드는 이들에게 짓밟혀 수백이 넘는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압사를 당해 죽어나갔고 이와 별개로 좌우에 펼쳐진 성벽을 오르던 이들은 관병들이 찔러대는 창대에 맞아 떨어져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를 부딪쳐 피를 토하고 게거품을 물며 발작을 일으키는 등 한눈에 보아도 절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잔혹한 실수들이 연달아 펼쳐지며 이를 목도한 모두를 흥분케 만들었다.


“관병들이 사람을 죽였다!”


“익주 놈들이, 서주의 잡놈들이 감히 동주인을, 우리 도성이 자리한 사예의 사람들을 죽였다! 우리를 죽이고 보화를 독차지할 셈이다! 우리의 출입을 막고 모든 곡식을 다 가져갈 셈이다!”


“무인들은 뭣들 하시오! 협사들은 뭣들 하시오! 저들의 잔혹한 모습을 보시오, 저들의 잔혹함이 보이지 않소?”


“나서라! 나서라! 나서라!”


이미 시뻘건 선혈에 이성을 잃어버린 이들의 광기가 폭발했다.


그간의 고생과 고난이, 일생에 모든 억울함과 억눌림이 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며 이 모든 것이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채 알량한 돌벽 위에 숨어 이쪽을 내려다보는 저 이기적인 것들로 인해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았다.


저것들만 없으면, 저것들이 저리 나오지만 않았으면, 저것들이 애초부터 더 신경을 썼더라면, 저것들이 조금이라도 자신과 같은 이들을 신경 쓰고 생각해주며 배려해줬더라면.


그렇게 제 생에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던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은 부정되었고 오직 제 일생에 힘든 것만이, 제 일생에 부당한 것만이 저를 이 세상에 가장 가련하고 불쌍하며 그 어떠한 비교대상도 없는 피해자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원흉은, 원인은, 시작은 바로 자신들과 보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저것들이었다.


애써 자신이 공감할 필요도, 공감할 여지도, 그럴 사이도 아닌 그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우선적으로 느낄 필요가 없는 저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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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들개의 머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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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5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1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8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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