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 들개의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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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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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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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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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5장의 서 – 서구와 봉명

DUMMY

펄럭-


수천의 병력이 사열한 단상의 아래, 바람 아래 흔들리며 금빛으로 수놓아진 자신의 위용을 드러내는 황룡의 깃발 아래 황제의 인장이 새겨진 칙서를 내리는 이와 이를 받든 이가 있었다.


“부자사 봉명은 황명을 받들라. 지난 그대의 노고는 짐이 실로 경탄을 마지 않을.......”


한 사내는 떨림이 이는 얼굴로, 다른 사내는 그저 무던한 얼굴로.


“.....때문에, 천하의 환란에 그침이 없으니 일전에 그대와 더불어 공을 세웠던 병력을 다시금 그대에게 돌려주어 짐은 천하의 안정과 안녕을 꾀하고자 한다. 하여 짐이 보낸 신임 인사가 제 직을 제수받는 그 순간 부로 그대를 지원할 것이니, 그대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해 관동 각지를 돌며 전란을 수습하고 그대의 주인을 위해 천하를 안정시켜라.”


“신 봉명......, 황상의 명을 받듭니다.”


조금은 이상한 내용이 담긴 구절조차 눈치를 채지 못한 채 이를 읽어내려간 이와 이를 인지한 채 잠시 인상을 찌푸린 이는 그렇게 서로가 해야 할 바를 모조리 끝마쳤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그렇게 모든 정해진 예식에 따라 식순이 끝나자 무겁고 답답할 것만 같은 자리 또한 끝을 맺으며 상하로 나뉘어 있던 관계 또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처음 인사 올리겠습니다, 새로이 남양 태수로 제수된 진힐(秦頡)이라 합니다.”


“만나서 반갑네. 부자사인 봉명일세.”


“실로 영광이옵니다. 이리 형주의 영웅을 뵙게 될 줄이야. 소관이 참으로 큰 복을 받은 듯.....”


“저, 하옵고. 제가 태수 자리는 처음인지라, 어떠한.......”


“그나저나 어떠한 심정이셨는지요. 저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조금 전의 지엄함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들러붙음이 뭔가 꺼려졌다.


멀쩡한 사람을 졸지에 영웅이다 뭐다 부끄럽게 만들지 않나, 형식적인 실무를 핑계로 접근한 뒤, 이것저것을 묻는다며 자신의 옆을 쭉 지키려 하지 않나.

그도 모자라 당시의 소감을 핑계로 저였다면 그 자리에서 이러한 계획을 세우고 이렇게 움직였을 것이라는 둥 아주 제 내면에 피어나는 재능과 호기심 그 모든 것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저를 향한 열광과 뒤섞여 과한 집착이자 부담스러운 추앙이 되었다.


“그.....”


“.....해서 이를 이렇게 생각해보면 제 판단이 오판에 가까웠음을 알 수 있사옵니다. 역시 부자사가 아니셨다면 이 땅은 이토록 빨리 평화를 되찾지 못하였을 것이옵니다. 또한 적장의 뛰어난 선전능력과 지모는 가히 일국의 장수이자 책사라고 봐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사옵니다. 하여 이 또한.....”


본래의 역사를 알기에, 믿음직스러운 이가 본 역사대로 이 땅에 안착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보다 마음 편히 이 땅을 뜰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현생에 제가 설 자리를 대신에 본래 신상사의 목을 베었던 이 치고는 알게 모르게 가볍다 못해 제게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은근히 거슬렸다.


언뜻 봐도 나름의 선함이나 정의를 동경하는 부류 같은데 이는 그 궁합이 서구와 잘 맞을지는 몰라도 저와는 꽝인 셈이었다.


“그 자리에 섰기에 그리된 것일세. 내가 아니라 자네가 서 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겠지.”


“허어, 어떻게 이리 겸손하시기까지. 실로 훌륭하신 관료와 장수를 넘어선 사인이 아니십니까? 저 그렇다면......”


“실무는 제법 그 설명이 길어질 터이니 내 속관 중 가장 뛰어난 하모를 붙여주겠네. 그 친구에게 이것저것 물으면 될 것이야.”


“예? 아....., 허면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실망스러운 눈초리와 안타까운 기색에 절로 미안함이 느껴졌으나 더는 그에게 붙잡혀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변화하는 역사의 굴레를 두고 그나마 제 아는 선에서 이리저리 들쑤셔 놓을 바를 정리하여 제 유리한 쪽으로 굴리기 시작한 것이 이미 여럿이었다.


원치는 않았으나 제 의형인 감녕을 놓아주어야 했고 그 수습을 위해서도 또 겨우 닿은 연락 대비 기존에 익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사하며 저만의 시나리오를 정리해두어야 했다.


감녕을 복귀시키기 전까지 익주에 들어선 동주사들을 비롯해 제가 올려보냈던 괴월이 돌연 익주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까지,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은 어설픈 금범회의 이들을 반강제적으로 부리면서 유준의 존재와 동주사들의 충돌을 비롯해 기존의 역사와의 교차점, 차이점 또 그로 말미암아 벌어지게 될 여러 사건들과 그 여파가 제게 영향을 미치는 범위 내에 일들만큼은 보다 확실하게 자신의 손아귀에서 제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그리고 이는 지금이라도 크게 다르랴?


어차피 따져 물을 것도, 또 그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는 것도 다 이 땅을 뜨기 전에 해야만 하는 일이다.


저벅저벅-


“다시 나의 품으로 돌아왔구나.”


그렇기에 저는 제게 내려진 황명을 받는 자리를 빌어 연단 위로 올라섰다.


제 앞에 자리한 수천에 달하는 이들 앞에 다시금 드높은 곳에 올라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번뜩이는 창날 아래, 저를 보고 있는 시선들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는 자발적 충심이 느껴짐을 알기에 한편으론 안도하면서 또 한편으론 기뻐하면서 말이다.


- 상경한 병사들이 돌아왔다! 그것도 황상의 칙령과 더불어, 새로운 남양 태수와 더불어 돌아왔다!


그렇게 새로운 이의 안착과 더불어 돌아온 이들에 대한 풍문이 널리 퍼졌다.


번쩍이는 갑주에, 전장에 승리한 이들은 그렇게 새로운 출진에 앞선 찰나의 휴식을 인정받아 각기 자신의 집을 찾았고 이는 곧 다시금 지나온 전란의 기억들을 추억거리 삼아, 자랑거리 삼아 또 안주거리 삼아 꺼내놓게 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이는 곧 형주의 전란을 종식시켰던 가장 큰 공훈을 세운 두 사내의 이름을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형주자사인 서구와 부자사인 봉명 말이다.


쪼르르륵-


“그래, 돌아왔다고?”


“제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저들이 돌아온 것이지요.”


“그런가? 한데 어째서인지 나는 이제야말로 자네가 돌아온 것처럼 느껴지는군.”


그래서였을까? 다음 날에 마주한 서구의 얼굴은 작금의 자신이 들이키는 이 전란을 빙자해 구색만을 갖춘 박차와 다를 바 없었다.


금쪽같은 휴식을 마친 이들은 다시금 병영으로 복귀해 제 지휘를 받으며 한데 훈련을 받고 있었고 그 중심에 자리한 이 천막의 뒤로 병풍처럼 늘어진 채,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쓰고 비리며 텁텁한 것이 심히 불편해 보이십니다.”


“누구? 나 말인가?”


“공식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이 자리에서 더는 형주자사의 명을 따르는 이들은 없습니다.”


이곳 병영에 자리한 누구 하나 서구의 지휘를 받는 이들은 없었다.


애초에 선별하기를, 모든 것을 준비시켜 도성에 상경시키기까지 그 전부를 제가 관여했고, 제가 책임졌으며 제가 마무리 지었다.


조금이라도 서구의 색채가 남아있는 이들은 아예 그의 곁으로 보내 민생의 치안을 위해 갈기갈기 찢어 흩뿌려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이 복귀한 지금, 저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그 말이 더한 씁쓸함을 내게 전해주는군.”


솔직한 속내를 밝힌 제 언사에 그의 표정엔 한 차례의 수심이 드리워졌다.


아닌 체를 하고 있으나 분명, 그 안색이 굳어져 이전과 같은 평온함을 내비칠 수 없었다.


허나 정작 저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아있었다. 아직도 따져 물을 것이 남아있었다.


“대체 이 사람을 어찌 그리 무시할 수 있는지 그것이 참 의문이옵니다. 애초에 이 사람과 함께하기로 하셨으면서, 이 사람의 손을 들어주기로 하셨으면서. 어째서, 정작 이 사람의 목에 그리고 애먼 목줄을 채우시지 못해 안달이십니까?”


감녕을 익주로 보내고 괴월과의 연락이 닿았을 때 느껴지게 된 배신감은 실로 상상을 초월했다.


애초에 그 어떠한 행보를 허락지 않은 채 앞으로 없는 사람이자 죽은 사람으로 지내야 했던 괴량이 상경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것도 제 목을 옥죄는 청류의 정치적인 행보에 앞장선 것은 물론, 기존의 청탁으로 나뉜 두 갈래의 저울추나 다름없는 정국을 다시금 세 갈래의 세여정족의 혼란으로 몰고 가 난세의 혼란을 빌미로 그 틈바구니를 찢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 그러한 행보를 보이고 세를 모으며 도성 내의 거대한 한 축으로 자리매김한 계기가, 그 배경에, 그 모든 것을 계획한 시초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저와 한배를 타기로 마음을 먹고 제게 야견의 증표까지 받아내며 제 믿음과 환심을 산 서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제 아픈 몸을 추스르며 남군의 관항 어귀에서 제가 벌인 모든 일들을 조율하던 그 뭣도 모르던 때의 바쁘고도 여유로웠던 짧은 찰나의 모든 시간들을 정리한 채, 복귀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남은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도, 흔들리지 않을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여전히 말이 없으시군요. 허면 다시 묻지요. 왜 그랬습니까?”


물론, 그 와중에 피어나는 살심을 억지로 억누르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하루에 몇 차례씩 원영을 부르고도 그를 죽일 것을 몇 차례나 보류한 채, 이 자리에 오기까지 참고 또 참았다.


“.......”


와장창-


“형주자사-!”


그렇기에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깨진 다탁과 다기 따위 애초에 작금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겉치레이자 허울뿐인 대접에 불과했다.


“것 보게.”


“뭐?”


“예의라곤 참을성이라곤 진즉에 내던져버린 자네가 이토록 위험한데, 제 본성 외에 것을 갖추지 못해 더할 나위 엎이 짐승 같은데 내 어찌 자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나?”


“뭐라?”


“자네 같은 사람이 제일 위험하지. 능력도 있고 배포도 좋으나 제때에 제가 원하는 것을 쥐지 못하면 돌아버리는 사람. 제가 인지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이를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어 미쳐버리는 사람. 본능적 욕구의 발현과도 같이 번뜩이는 기재로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반응하여 주변에 자리한 이들을 놀라게 만들지만 정작 그것이 순전히 요행에 가까울 정도로 제 타고난 것에 의존하는 사람. 오랜 세월 수많은 고난 속에 제가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부여받은 재능 그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 어미가 없고, 아비가 없어도 언제 그리 모든 것을 익혔는지 험난한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잘 살아가는 사람. 나기 전부터 부여받은 본성인 양, 환경과 주변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갈 사람. 저 하나만으로도 세상과 대적하고 세상 속에 녹아들며 그 안에 자리한 것들을 뒤흔들 수 있는 사람. 야생의 짐승, 그것도 능히 맹수에 가까운 모습들.”


“나약하고 무능한 것들에 정반대되는 설명뿐이군.”


“짐승이니까. 그래서 자네는 나약하지 않지. 허나 일반적인 사람이란 존재는 자네와는 다르다네.”


“그 빌어먹을 아테네 같은 소리를 작작하는구나. 무능한 다수가 유능한 소수를 짓이겨 스스로의 몰락을 자처하는 주장 따위를 하는 것을 보니.”


“그 언사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몰라도 최소한 옳다는 것은 알겠네.”


“옳아? 재능있는 이들이 제때에 날개를 펴고 하늘에 오를 수 있는데 그 날개를 부여잡고 늘어지며 그 날개를 찢어버려 더는 날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 옳아? 애초에 경쟁력을 갖추지조차 못하게 저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이들은 그 자리에서 병신을 만들어 배척시키는 것이 옳아? 조막만한 것들이, 어디 세상에 나와 제대로 경쟁해보지도 못할 것들이 그 비좁은 조그만 구석에서 제 감투, 제 벼슬자리, 제 위치, 제 자리 하나 지키려 발버둥 치며 더 커질 수 있도 더 나아갈 수 있는 앞날을 틀어막고 그 미래를 스스로 닫아버리고 그 속에 곪아 썩어들어가는 것이 옳아?”


한 번 화가 치밀기 시작하니 전생의 기억마저 그 위로 덧칠해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세상은 재능있는 일부의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세. 그대와 같은 이들의 활약을 위해 존재하는 장마당 위의 무대가 아니란 소리지. 또한 사람의 본성은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우선하는바, 검증되지 않은 변혁과 되지도 않는 과도한 모험만을 중시하는 자네와 같은 이들은 주변 구성원들에게 심적인 공포와 불안을 심어주지 않은가? 그대의 삿된 언사에 이끌려 전장에 나간 이들은 죽임을 당하고 가족을 잃고 상심을 품지. 인구는 줄고, 세상은 혼란스럽네.”


“전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들을 구제해줬더니 이제와서 뭐? 은혜도 모르고 감히 그따위 소리를 해? 누가 보면 내가 저 태평교의 반란 일으킨 줄 알겠다?”


“작금의 나는 실로 그대에게 감사하고 있네. 허나 그대는 세상에 자리한 만인들이 또 이 땅을 다스리는 사인들과 족혈들이 어떠한 이들인지 몰라. 내가 대변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이네. 또한 그와 같진 않아도 내 스스로의 사고와 관념이 그대의 존재에 반발하기 때문이고. 해서 나는 자네가 이를 깨달았으면 해. 하여, 그리되기 전까지 그대라는 위협 속에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가 파놓은 구덩이에 그대라는 핏빛 웅덩이 속에 그 몸을 담그기로 결정했네.”


그럼에도 제가 예서 더 이상 막 나가지 않은 것은 솔직하게 자신의 진심과 각오를 드러낸 서구의 태도 때문이었다.


“해서? 내가 그놈들의 법칙에라도 따라야 한다는 소리인가?”


“그대의 활약은 난세에 필경 빛이네. 구원이고, 희망이지. 앞으로도 한동안은 필요할 것이야. 허나 그 너머에 대해서까진 꿈꾸지 마시게.”


“아, 그 너머? 권력, 중앙, 뭐 이런 거? 왜, 내가 이걸 쥐면 안 되나?”


“그대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이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유지시키고 다스리는 이들은 문치라는 답을 세상에 괜스레 내어놓은 것이 아닐세.”


“문치, 그래. 통치의 기본이고 뭐, 칼로 다스리면 반발과 공포만 나온다고 하니 그럴 듯 하지. 한데 그건 그 빌어먹을 통치가 잘 될 때의 이야기고. 지금은 아니잖아? 애초에 잘 했어야지? 이제와 세상 개판 만들어놓고 그 세상 정리될 분위기로 흘러가니까 점잖은 채, 나라 걱정하는 채 튀어나와서 애초에 이런저런 핑계로 제 밥그릇 뺏길까 남 지적하는 네놈들의 그 역거운 위선이 나는 토가 나와. 특히, 익주. 동주사들의 난은 내가 진짜 엄청 실망했어, 당신한테. 당신은 그러면 안 되는 사람이었고, 그럴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어.”


뼈 아픈 실책이자 스스로도 참담하게 여기는 과거가 나왔기 때문일까? 순간 그의 안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 보였다.


“그리 말해도 이는 내 의사가 아닐세. 나는 순전히 장계를 올렸을 뿐.”


“그래, 올렸지. 그래서 의도된 바는 맞지. 한데 그런 쪽으로 일이 흘러갈 줄은 몰랐던 거고, 그렇지?”


“잘 알고 있으니 더는 할 말이 없네.”


스스로도 이를 알기에 힘에 부치기 때문일까? 잠시 두 눈을 감은 채 부르르 떨던 그는 결국 힘겹게 자신의 고개를 끄덕였다.


“위선적인 개새끼들. 이래서 내가 너희 같은 작자들이 싫은 거야. 애초에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들이 늘 제가 꿈꾸던 장밋빛 미래 속에 세상이 돌아갈 것이란 똥 같은 생각은 대체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법칙에도 예외는 있고 변수란 놈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대저 그 많은 세수 모아놓고 내린다는 결정이라는 게, 시행한다는 법령이니 칙령이니 조치니 대책이라고 내어놓는다는 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몰라?”


“그 누구도 악의를 바라지 않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점철되어있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질리도록 유명한 말인데, 여기서는 아닌가 봐? 꼭 정의롭고 무능한 병신들은 제 오판에 일을 망쳐놓고 그딴 소리를 하더라. 이럴 줄 몰랐다고, 이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


“실제로 네가 옳은 사람이건 옳음에 포장된 사람이건 세상 네 손아귀에서 굴릴 줄 알면 그 여파가 어찌 될지 기본적으로 생각은 해야지. 사람이 일을 벌일 때 그게 기본 아니냐? 신료된 이들이라매? 허면 그 위에 자리한 저 황상이란 작자가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뭐에 미쳤는지 빤히 알 것 아니야? 그 불똥 익주로 튈 거 빤히 알면 그 주댕이 털어서 되지도 않는 분위기 조장은 말았어야지. 저 돈에 환장한 미친놈, 제 나라 제 백성 여럿 죽는 거 일도 아니란 거 그쪽도 알 거 아니야?”


“......”


“하, 또 할 말 없으니 입 닫고 가만히 있네, 이거? 왜 불리하면 입 닫고 있는 것이 정도라고 공자께서 가르치건?”


한 번도 아니고 무려 두 번이나 답이 없자 저 또한 참을성을 잃고 막 나가게 되었다.


기왕지사 속에 품고 있던 모든 것을 지금 털어내지 않으면 당장에 이 자리에서 서구의 목을 날려버릴 것만 같아 저 또한 저를 억누르던 모든 것을 놔버렸다.


“꼭 무능한 병신들이 들먹이는 게 균형과 견제지. 쓸데없는 내부적 힘의 소모, 제 살 깎아 먹기. 남들은, 다른 이들은 하나 되어 저 바깥으로 뛰쳐나가 세상과 각기 다른 나라와 다른 이들과 경쟁하고 쟁취하며 제 것을 만들어내고 얻어내며 취하기 바쁜데 그 빌어먹을 사대부 정신이 꼭 제 발목들 잡을 때만 작용하나 봐? 막상 그래 놓고서는 끝까지 정의롭던가? 어? 자신들이 아닌 누구든 세상을 쥐고 흔들어서도 안 되고 또 그럴 욕심도 부려선 안 되고 기존의 틀은 유지해야 되고. 왜? 네놈들의 통치는 정당하고 합당해야 되잖아? 그렇지? 그 와중에, 관습이 어쩌고 공감이 어쩌고 저들 반정으로 정권 잡고 위에 밀어내고 새로운 하늘 앉히는 것은 합당하고 또 막상 제가 밀려날 기미나 반발할 조짐 보이니까 아주 좋은 말, 시기적절한 지적, 인의, 사람다움, 별 똥 같은 걸로 타이르고 다독이려다 안 되니까 핑계, 변명, 정확한 답도 입장 표명도 못하고 주변을 뱅뱅 도는 딴소리만, 말만 많아.”


“할 말은 그게 끝인가?”


“아니, 한데 어째 꼭 너 같은 것들은 정작 나 같은 놈들더러 저밖에 모른다, 이기적이다, 남을 저를 위해 희생시킨다 뭐다 선동하면서 까대기 마련이더라고. 정작 제 청명, 저 좋은 놈 되려는 생각밖에 없는 놈들이 수천, 수만, 수십 만, 수백 만, 수천 만, 수 억, 수십 억에 이르기까지 힘들게 하면서 죽어 나자빠지고 고통스럽게 하면서도 그렇게 저들끼리, 자기네들끼리 자위하고 정신승리하고 아주 대단하셔들. 근데, 너넨 죽어도 선인으로 남지? 너네끼리 물고 빨고 아주 가관이 아니야. 아주 떼로 그냥....., 그냥, 역겨워.”


“허나 그건.....”


“말 끊지 말고. 단, 하나는 확실히 하자. 세간에 널리 알려져 한데 묶여 귀속된 것은 정의와 유능이지만, 막상 내가 볼 때 정의를 부르짖는 것들은 최소한도 정의와 무능이야. 그 주댕이에 뭘 달고 사느냐에 따라 대충 보이더라고, 그러니까 짖지나 마. 옳음이 퇴색되니까, 정의가 오염되잖아. 너네 때문에.”


막상, 서구가 그렇게 무능한 이가 아님을 알면서도 본의 아니게 저들 전체를 뭉뚱그려 그 부정적인 대표 격으로 올라서게 된 것을 알았으나, 애초에 저에 대한 반발에 그럴듯한 명분도 합당한 연유도 댈 수 없이 이리 나온 것은 분명 저치의 실책이 맞았다.


거기다 이미 적이나 다름없는 이의 입장을 굳이 걱정해줄 필요도 없으니 저는 제 속풀이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이미 한마냥 응어리마냥 맺힌 모든 것을 그에게 쏟아냈다.


“위선자, 그리고 위군자. 나야 본디 정의를 이용하고도 남을 작자지만 정작 이를 신봉할 너희가 그리 썩어선 안 되지. 너희는 실로 나와 같은 이들에 대한 반발이자 반대편에 자리한 이들이며 그 마지막 시대의 양심인데 어째 그리 좋지 않은 부분들만 우리와 닮았을까? 그래놓고, 우리를 악으로 몰아 세워놓고 정작 저들은 좋은 인간, 좋은 신료, 좋은 선비로 남지. 그럼에도 세간에 미움을 받지 않고 청사에 악으로 기록되지 않고. 내겐 그런 너희가 악이야. 진정한 악, 빛 속에 녹아들어 제 더러운 본질을 숨긴 채 깨끗한 이들마냥 행동하는 포장된 악. 언제고 그 속에 자리하기에 남들이 이를 못 보도록 만들고 도리어 열광하며 숭배하도록 만드는 저열한 쓰레기들. 세상은 재능있는 일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며? 허면 그 주인이 누구인지조차 똑바로 돌이켜보기나 해. 재능있는 일부가 전체를 다스린다는 사고는 정작 내가 아닌 그쪽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니야? 엄한 곳에 명분 찾으려고 백성 운운하고 민초 들먹이지 말고 그 입에 담는 만큼 너네서부터나 잘하라고. 병신같은 것들이 대저 언제부터 제 나라 제 백성 챙겼다고 지랄인지 몰라.”


그렇게 얼추 속에 담긴 것을 비워내고 나니 억울하고 화가 치민 와중에도 조금은 후련한 마음도 들었고 말이다.


“태위 양사가 면직되고, 태복 홍농 사람인 등성이 새 태위가 되었네.”


한데 이 와중에 서구가 딴소리를 해왔다.


“사공 장제가 파직되었고 대사농 장온이 새 사공이 되었지. 이 속에도 그대가 지적한 정의와 옳음은 없었네.”


“그래서?”


“나라면 그들을 파직하지 않았겠지. 허나 내 앞서 말하였듯 나는 자네의 앞에 나만의 입장을 내세우지 않네. 자네의 위험성을 두고 자네를 묶어두기로 했으니 자네와 상충하는 모든 것을 끌어 가져다 쓸 생각이네.”


“뭐, 이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렷......!”


“그 정도로 위험하게 느껴지네! 아니, 뭐가 되었든 우리와 같은 나약한 이들은, 집단과 체제를 신봉하고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사회를 구성하는 우리 같은 이들에겐 이게 본성일세! 이게 옳은 일이야! 우리에게 있어 외부의 일은 도리어 별것이 아니야. 나를 보게, 내 장충을 비롯한 동씨 산하의 탁류의 이들을 몰아낸 것에 미쳐 행정력과 치안에 공백을 두었지. 태수의 목이 여럿 날아갔고 그동안 자네를 비롯한 강하의 주직의 벌인 마찰은 강하와 남양을 집어삼켰지. 그럼에도 어디 내가 눈 하나 깜짝하던가? 이에 두려움을 느끼고 놀라 겁을 집어먹으며 그 판단에 후회를 하고 시대를, 시절을 이전으로 되돌리던가? 아니, 내게는 이게 더 중요해. 모두의 눈에 보이는 위협, 그 빌어먹을 내부에 그른 싹이 자라나 수확도 못할 전답을 만들어버리면 그땐 더는 손을 쓸 수도 없어. 자네와 주직 그리고 장충의 모가지를 같은 선상에 올려뒀을 때, 그 둘이 연합해 세를 갖출 최악의 상정은 막아야 했기에 가장 먼저 뿌리 뽑아야 할 쭉정이는 장충이었네. 그 뒤는 어떠했나? 금범회주, 파군악도와의 연수를 끊어냈지. 그럼에도 이제는 자네가 자라나 나의 눈에 띄는 또 다른 장충이 되어버렸네.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처음으로 듣게 되는 그의 진심이 얼핏 와닿을 것도 같았다.


허나, 결국 이는 보다 큰 흠결을 품은 하나의 사례로 말미암아 제게 와닿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와 나를 뿌리 뽑겠다?”


“그대가 권력만 쥐지 않는다면 내 이토록 근심할 일도 없네. 볏잎에 가까이 가지 말게나.”


“네 눈앞에 보인 참새가 낱알을 쪼아먹는다고 참새를 멸종시키려는 격이다. 허면 네 눈에 보이지 않는 벼 이파리 속의 메뚜기는 누가 잡을까? 장충(長蟲)이라고 하면 그리 길게 자라난 벌레부터 잡아. 애먼 참새부터 모조리 몰살시키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만 잡다 도리어 보이지 않는 것에 네가 당한다.”


“그대는 난세의 영웅으로 남을 수 있어! 어찌 이를 포기를 못하는가!”


“그렇지, 네놈들처럼 그리 살면 네놈들과 타협하면 네놈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누구처럼 포장되고 왜곡되며 선동된 가르침과 교육 속에 그대들의 서술 속에 나름의 훌륭한 인물로 남겠지. 해서 나는 해로운 샌가?”


“그대가 본성을 놓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겠지. 허나 그대가 이를 놓기만.....!”


“그렇군, 허면 나는 해로운 새야.”


실로, 실로 그보다 더한 역사적 교훈을 증명한 사례가 또 있을까?


신념에 잡아먹힌 인간이, 제 사고를 통해서만 모든 것을 판별한 인간이,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인간이 딴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렸다는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것도 물경 5천만에 달하는 인구수를 싸그리 아사자로 만들어버린 선택지가 자리한 이상 이는 제게 씨알도 먹히지 않을 변명거리이자 주장이 되어주었다.


“어디 한 번 해봐. 그렇게 천하 각지에 유능한 이들을 모조리 잡아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천하 각지의 온 누리들, 모든 황충들이 만들어내는 재앙의 구렁텅이 속으로 이 나라의 마지막을 장식시켜 봐. 이 나라의 운명을 어디 너희들의 손으로 끝장내 놓고서도 그딴 소리가 나올지 두고 보자고. 너희들의 손으로 망칠 나라. 어디 손 대는 것마다 망가지고 무너져 봐야 그제야 남은 속여도 더는 자신을 속이지 못하겠지.”


작가의말

드디어 5장입니다.

마지막 연재분이고, 그 마무리를 마쳐야 할 대목입니다.


해서 황건의 난을 기점으로 끝나게 될 텐데, 연재분이 중간까지 되어 있어 이후의 부분은 보충해서 완성시켜 마무리를 지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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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5장 34화 – 설사, 봄이 찾아와도 그것이 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2 21.11.18 388 7 20쪽
426 5장 33화 – 더는 이 땅에 봄이 찾아들 수 없게 21.11.12 165 4 17쪽
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2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6 7 30쪽
423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2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1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69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59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1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5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06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04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4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0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68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4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5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47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39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1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5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5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67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78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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