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느끼다
반쪽이 마무리를 지으려고 하자 한 가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네요.
멸 등급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관리소장이 시설을 폭파시켰다는 거지요.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흘러 퍼스트가 부활하자 주위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군요.
건물은 부서지고 괴물들은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으며 괴물을 이송하고 있던 특수 부대의 시체가 길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답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깼어?"
'반쪽,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일이 끝나있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설마 끝난다는 게 이런 의미였어?'
"너무하네. 일어나자 하는 말이 불평이야? 나는 최선을 다했어. 이건 나도 예상 밖이었다고."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무슨... 아니, 그건 나중에 들어도 상관없겠지. 도와줘.'
"무리야."
'어째서?'
"멸 등급과 싸우느라 힘을 소모했거든. 나머지는 알아서 잘 해봐."
'그런 무책임한...'
"나는 네 엄마가 아니야. 나 자신이니까 열심히 도와주고 있지만 내가 모든 일이 해결할 수는 없잖아. 힘내보라고. 너도 조금은 강해졌을 테니까."
'내가 강해졌다고?'
"한 번 확인해봐."
퍼스트가 눈을 감고 집중하자 상당한 양의 스페셜 에너지가 느껴지는군요.
'뭐야? 나는 힘을 받아들인 기억이 없는데?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자연스럽게 우리 둘이 합쳐지고 있는 거야.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였으니까. 자연스럽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
'그런...'
"불안해할 필요 없어.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하지만 힘을 돌아오면 너는 사람들을 죽일 거잖아.'
"냉정하네. 너무 차가워. 얼어붙을 것 같아. 나는 언제나 너를 도와주고 있는데. 나를 학살자라고 생각하지 마. 나는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
'헛소리! 다시 분리하겠어.'
퍼스트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때처럼 힘이 분리되지는 않았답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누구도 도망칠 수 없어."
'젠장,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어.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지만 아직 여유는 있어.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내 대답은 언제나 한 가지뿐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막겠어.'
"어리석은 녀석. 의지는 칭찬받을만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은 어리석다고 밖에 해줄 말이 없구나."
'할 수 없는 일이 뭔데? 네가 멋대로 정하지 말라고!'
"... 앞날이 훤히 보이는군."
대화가 끝나자 퍼스트는 스페셜을 이용해 괴물들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괴물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린 것 같네요.
퍼스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부서진 건물들과 사방에 뿌려진 피와 고기, 그리고 시체뿐이었답니다.
'어디 간 거지? 그것보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야? 나랑 반쪽의 대화가 그렇게 길었었나? 멀쩡한 게 안 보이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네. 사방으로 흩어진 건가?'
퍼스트가 인상을 찡그리며 주위를 살펴보고 있자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리는군요.
퍼스트가 귀를 기울이고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자 부서진 방탄차 뒤에 영웅이 무릎을 감싸 쥐고 앉아있었답니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자 퍼스트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어요.
"괜찮아?"
'이상하네. 상태가 안 좋으면 언제나 폭주했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지?'
"퍼스트..."
영웅은 기운이 없는지 퍼스트를 봤는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답니다.
"어디 아파?"
"끔찍했어."
"응?"
"끔찍한 악몽을 꿨어."
"무슨 꿈이었는데?"
"내가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서 이상한 괴물에게 조종당했어... 이상해."
"뭐가 이상한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는데.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자고 일어나면 평소와 같은 하루가 시작됐어.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저번에 일어났던 일이 잊히지가 않아. 왜 이런 걸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이상하네. 평소와 달라. 이건 이상해."
퍼스트가 영웅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난처한 표정으로 고민하고 있자 가만히 있던 반쪽이 입을 여는군요.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첫 경험이라 당황스러운 거겠지. 지금까지는 곤란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폭주해서 기억을 지웠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폭주하는 동안에는 기억이 없었지.'
"그리고 너랑 같이 지내면서 적든 많든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아마 내 예상이지만 그게 제일 크지 않았을까?"
'그럴 리가.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같이 어울려 다녔잖아. 괴물들은 자신만의 완결된 세계를 가지고 있어. 그런데 네가 멋대로 저 아이의 세계에 들어왔잖아. 자신만이 있던 세계에 다른 존재가 등장한 거야. 존재 자체만으로 크든 작든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지."
'과언이야.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 사람도 있고 다른 괴물도 많고.'
"신경 쓰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야."
퍼스트가 생각에 잠기자 영웅이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봤답니다.
"역시 나... 이상해져 버린 걸까?"
"아니야. 금방 익숙해질 거야."
"아니, 나는 분명 이상해졌어. 확실히 봤단 말이야. 혼종으로 변했던 괴물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건물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며 뛰어노는 모습을 말이야. 나도 평소대로라면 괴수를 물리치며 즐겁게 살았을 거야. 지금처럼 우울한 모습으로 쭈그려 앉아있지 않았을 거라고."
"이건 이상한 게 아니야. 조금 특이할 뿐이야."
"괜히 위로해줄 필요 없어. 나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지금의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내가 아니야.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이상해지고 있었어. 내가 엑스트라를 신경 쓰다니. 원래대로라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영웅은 퍼스트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는군요.
"주인공은 나뿐이야. 다른 녀석을 신경 쓸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나는 다른 녀석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어... 하핫... 아하하하핫!"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자신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냉정해지겠지."
영웅의 무너질 것 같은 웃음소리는 한참 동안 이어졌답니다.
멈출 줄 모르던 웃음은 갑자기 날아온 최면 가스 덕분에 멈췄네요.
가스를 마신 영웅과 퍼스트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특수 부대가 다가오는군요.
"포획 성공. 괴물 관리 본부로 이송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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