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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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방울새
작품등록일 :
2020.02.1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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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7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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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팸 문자 1

DUMMY

1화


팰리스 백화점 8층 식당가에 위치한 희락중식당.

폐점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손님도 뜸해졌다.

인공은 혹시나 늦게 들어올 손님을 위해 그릇에 반찬을 담았다.

인공의 손놀림은 신속 정확했다. 빠른 속도로 착착 담아도 그릇에 양념 하나 묻히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이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이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까 해요.”

“다른 일자리?”

식당 홀을 살피던 김 매니저가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 위로 ‘이 새끼, 또 지랄이네’하는 표정이 지나갔다.


“네.”

“어째 오늘 조용하다 했다. 그래, 여기 일은 그만두고?”

“네.”

“왜 또 그러냐. 마, 고마해라. 힘든 건 나도 그래. 12시간 꼬박 서서 일하는 게 좀 힘드냐?”

“형은 화장실 자주 가시잖아요.”

“그게 뭐? 일하다 보면 오줌도 누고 똥도 싸고 그래야지.”


“화장실은 핑계고, 직원 몰래 휴게실에서 쉬시는 거 다 알아요.”

“뭐, 임마?”

“그걸 탓하는 거 아니에요. 다른 놈들도 다 그러니까.”

“이런 썩을 것들. 누구야? 나 몰래 농땡이 치는 게.”


김 매니저는 눈을 부라리며 홀 서빙 직원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분주하게 테이블 사이로 오가는 직원들이 김 매니저의 눈초리에 순간 흠칫했다.

때마침 식당 안으로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인공이 큰소리로 손님을 맞이했다.

“아, 시발,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김 매니저가 가슴에 손을 척 얹었다.

인공은 그런 김 매니저에게 눈길 한 번 안 주고 손님에게 다가갔다.


“아유, 저걸.”

죽일 수도 없고. 김 매니저는 인공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대체 그만두려는 이유가 뭐냐.”

다시 돌아온 인공에게 김 매니저가 따져 물었다.


인공은 장기근속 직원이다.

한 달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놈들보다 성실하다. 손도 재바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건 꾀부릴 줄 모른다는 것.

이런 놈을 놓치면 멍청한 거다.

김 매니저 외에 다른 직원들 몫까지 해내는 저런 호구, 아니 기특한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나?


“솔까 너니까 이유도 묻는 거야, 짜샤. 다른 놈들이면 어림도 없어.”

“제가 호구라서요?”

“···.”

순간 김 매니저는 뜨끔했다.


인공은 대체로 제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했다.

가끔 메뉴판에 적힌 메뉴를 뚫어져라 보는 것만 빼고.

그렇게 순진한 놈이라고 방심하고 있다가 보면 요렇게 훅 들어올 때가 있었다.


“호, 호구라니!”

“뭘 그렇게 쫄고 그래요. 다 아는 사실인데.”

“마, 어떤 놈이 그래? 당장 그 주둥아리를···.”

“관두세요.”

“뭘 관둬? 아무튼 왜 그만두는지 솔직히 말해보라니까? 너한테만은 내가 최대한 맞춰준다.”


“시급 올려주시게요?”

“마, 시급은 내 마음대로 못해. 내가 사장이었다면 진즉에 올려줬다.”

“사장한테 말도 못하면서.”

“뭐, 임마?”


부웅.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했다.


“아, 잠깐만. 뭐가 왔나봐.”

김 매니저는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인공은 그런 김 매니저를 빤히 보았다. 분명 달갑지 않은 대화에서 빠져나갈 명목이 생겨 기쁜 내색이다.


휴대폰 화면을 보던 김 매니저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뭔데 그래요?”

“스팸문자야. 참 징글징글하다.”

김 매니저는 툴툴거리며 화면 위로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잠깐만요. 어디 봐요.”

인공은 김 매니저의 손목을 붙잡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문자를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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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리 열심히 보냐?”

“뭐가 적혔나 궁금해서요.”

“참나, 별 게 다 궁금하다.”

“스팸 내용이 특이하네요. 획기적인 상품?”

“뻔하지. 불법대출이잖아.”


“모험을 떠날 준비 어쩌고 하는 걸 보면 게임 광고 같은데요?”

“불법대출이라니까.”

“어째서요?”

“봐봐? 불법으로 대출받으면 인생이 아주 좆같이 휘황찬란한 모험이 될 겁니다.”

“아.”


“이제 알겠냐? 이리 내. 이런 건 싹 다 신고해줘야 한다고.”

김 매니저는 인공의 손에 들린 제 휴대폰을 가져갔다.

“신고가 3,742건이나 된다. 하여튼 이것들은 인생 참 사기적으로 산다, 그치?”

그러고는 야무지게 스팸 문자를 신고 삭제했다.


“열심히 사는 거죠, 뭐.”

“아무튼 계속 하는 거지? 열심히 살아야 하니까.”

김 매니저는 휴대폰을 바지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


“아아, 새끼, 안 넘어가네. 야, 시급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라니까? 사장이 얼마나 깐깐한데.”

“됐고요. 시급 올려준대도 어차피 그만둘 거예요.”

“좋아, 중간에 30분 쉬게 해줄게, 됐지? 이 이상은 나도 양보 못해.”

김 매니저는 어려운 협상을 끝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안 쉬어도 되는데요.”

“그럼 대체 뭐가 불만이야! 힘들어서도 아니고, 시급 때문도 아니고! 이유가 뭐냐고, 임마!”

김 매니저는 차마 소리는 못 지르고 인공 앞에서 침만 튀겼다.

인공은 눈썹을 찌푸리며 얼굴에 튄 침을 닦았다.


띵동.

막 도착했던 손님이 호출 버튼을 눌렀다.

“네, 손님!”

인공은 김 매니저를 한 번 흘겼다가 냉큼 테이블로 달려갔다. 주문을 받고 주방에 주문서를 건네며 바쁘게 움직였다.


김 매니저는 콧김을 뿜으며 짜증을 삼켰다.

“마, 서빙은 딴 놈들한테 맡기고 얘기나 마저 해. 왜 그만두겠다는 건데?”

“읽을 게 없어서요.”

인공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임마?”

“여기는 읽을 게 없다고요.”

“나는 네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김 매니저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멍청한 얼굴을 했다.


“메뉴판밖에 읽을 게 없어서 심심하다고요.”

“···.”

“그동안 읽을 게 없어서 잠수 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

“지금도 뛰쳐나가고 싶어요.”

“···.”

“어쩌면 내일 말없이 안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러기 전에 미리 말해두는 거예요.”


“너, 어디 아프냐?”

“아뇨.”

“아니면 그 뭐냐, 어디서 들었는데 활자중독··· 뭐, 그런 거냐?”

“그런 것 같아요.”

“그렇구나. 활자중독. 여기는 메뉴판에 적힌 글자밖에 없지.”

김 매니저는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동안 메뉴판을 반복해서 들여다보곤 하던 인공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스팸문자를 그리 열심히 들여다보던 것도.


***


식당을 나선 시간은 저녁 9시 30분.

마감 때보다 30분이나 이른 퇴근이었다.

충격을 받은 김 매니저가 오늘은 일찍 들어가라며 선심을 쓴 덕이다.

오늘 들은 얘기는 없던 걸로 하자는 말과 함께.


인공은 인적 없는 거리를 타박타박 걸었다. 추운 겨울바람이 등을 자꾸 떠밀었다.

인공은 어깨를 부르르 떨며 횡단보도 앞에 섰다.


까똑, 까똑, 까똑.

휴대폰 알림음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일은 안 하고 웬 카톡질이야.”

말은 퉁명스레 뱉으면서도 화면을 터치해 창을 띄웠다.


-진성: 이게 무슨 일이야 ㅠㅠ 혀어어엉 ㅠㅠ

-윤호: 혀엉, 정말 그만둘 거예요?

-미란: 오빠가 그만두면 어떡해요 ㅠㅠ 그만두지 마요 ㅠㅠ

-진성: 시발, 형이 관두면 나도 때려 칠 거야 말리지 마

-주방실장님: 일 안하냐 다들? 그만둘 사람은 그만둬 말 나온 김에 진성 너도 그만둬라

-진성: 아이씨, 실장님은 왜 나만 갖고 그래요오오


-나: 왜들 이래 매니저 형한테 뭐 들었어?


인공은 화면에 눈을 고정시키고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진성: 형 퇴근하자마자 매니저 형이 얼마나 징징거렸는지 알아요?

-윤호: 형 없으면 어떡하냐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진성: 누가 보면 전생에 지 마누라인줄

-미란: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진성: 형 그렇게 부려먹었을 때 알아 봤어요 난. 매니저 쌤통.


애들이 한결같이 김 매니저를 성토했다.


-나: 너무 그러지들 마 매니저 형도 힘들겠지


-미란: 힘들긴 뭐가요!

-진성: 지는 맨날 화장실 간다고 하면서 우리 보고는 왜 자주 화장실 가냐고 지랄하잖아요


-나: 진성아 말조심하자 이거 매니저 형도 볼 거야


-진성: 아 몰라요 관둬야 되는 건 매니저 형이야!

-윤호: 형이 매니저가 되면 좋은데

-진성: 혀어엉 ㅠㅠㅠ 진짜 그만 둬요?


-나: 응


-진성: 혀어어어어어어ㅠㅠㅠ

-미란: 오빠아아앙

-윤호: ㅠㅠㅠ

-진성: 이 시발 매니저 형은 뭐해? 형 안 붙잡고!

-윤호: ㅠㅠㅠㅠ 혀어어유ㅠㅠㅠ


애들이 울부짖는 문자를 보고 있을 때였다.


뽀롱.

문자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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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눈에 익다.

김 매니저에게 왔었던 그 스팸문자.


우연찮게 인공에게도 같은 스팸문자가 도착했다.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되게 신기하다.”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문자를 읽었다.

짧은 문장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좀만 더 길게 적을 것이지. 요즘 스팸문자는 영 성의가 없어.”


-윤호: 형?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미란: 응만 치고 잠수 타는 거예요?

-윤호: 너무 해ㅠㅠㅠㅠ

-미란: 오빠아앙

-진성: 시발 나 일 안해

-미란: ㅠㅠㅠㅠ


단톡방에는 연신 글들이 올라왔다.

인공은 그를 무시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연결음이 울렸다.


딸깍.


“···.”

전화를 받아놓고도 상대방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지? 인공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셨으면 뭐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


뭐야, 이거.

인공은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보았다. 통화는 끊기지 않았다.


“거기 뭐하는 곳입니까? 궁금해서 전화했어요.”


여전히 묵묵부답.


인공은 어깨를 으쓱이고 통화를 종료했다.

김 매니저 말대로 불법대출과 같은 사기성 문자인 모양이었다.


“당황했겠지.”

무작위로 문자를 보낸 사람한테서 직접 전화가 올 줄은 몰랐을 테니.

피식 웃은 인공은 여전히 울부짖고 있는 단톡방에 들어가 손가락을 놀렸다.


-나: 다들 미안. 곧 그만ㄷ


뽀롱.

문자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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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은 망설임 없이 다시 통화버튼을 눌렀다.


“···.”

“말씀을 하시라고요.”


뚝. 뚜우- 뚜우-.

전화가 끊겼다.


“뭐야, 정말.”

어이가 없어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뽀롱.

다시 문자가 도착했다.

굳이 내용을 확인하지 않아도 어디서 온 건지 알았다.


인공은 휴대폰을 귀에 가져갔다.


“이봐요, 이런 식으로 해서 실적이 나오겠어요? 내가 들어줄 테니까 대출이든 보험이든···.”


뚝. 뚜우- 뚜우-.

이쪽에서 말도 다 하기 전에 끊어버린다.


“하하.”

인공은 헛웃음을 치며 시선을 들어올렸다.

때마침 신호등의 파란불이 깜박거렸다.


9, 8, 7···.


신호등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공은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못 박은 채.


3, 2··· 1


빠아앙!


그때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옆을 돌아본 순간.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인공을 덮쳤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오색방울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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