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팩트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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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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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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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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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2. 나는 다르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단체는 허구입니다. 설정에 따라 현실과 다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DUMMY

놀릴 구실만 찾고 있던 성열이가 이제서야 의문이 든 듯 내게 물었다.


“아, 근데 여긴 웬 일이냐? 취재 왔어?”


아, 성열이한테는 아직 말 안 했지.


“오늘부터 상주한다. 동물 연쇄살해사건 끝날 때까지만.”


아마도······? 계속 여기 있진 않겠지? 에이, 설마.


이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성열이는 반가운 표정을 환하게 지었다.

이러는 녀석의 마음도 십분 이해는 간다.

사실 나도 여기에 오면서 성열이가 있음에 마음이 든든했으니까.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끼리 같은 장소에서 부딪히며 일한다는 건 나름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야, 그럼 이럴 게 아니라 여기 소개를 좀 해줘야지. 그래야 지내면서 안 불편할 거 아냐? 연지 씨도 같이 가실래요?”


그에 앞서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그 전에 짐 좀 풀자.”


나는 커다란 백팩을 메고 양손에 쇼핑백도 들고 있었다.

이걸 들고 경찰청을 순회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아, 어쩐지 평소보다 더 꼬질꼬질하더라니. 그래. 경찰청 한 바퀴 돌려면 몸이 가벼운 게 좋지. 일단 기숙실로 가자.”


그렇게 성열이가 이끄는 대로 향했다.

경찰청에는 기자를 위한 공간이 두 군데 있다.

그 중 하나는 이미 내가 가본 적 있는 기자실이었고 또 하나는 몸을 뉘일 수 있는 기자숙직실, 일명 기숙실이었다.


“여기야.”


성열이가 문을 열자 하루만 자도 병에 걸릴 것 같은 풍경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여, 여기서 자라고······?”

“사람 사는 데가 다 그렇지. 오늘은 유독 더 깔끔하네.”

“이게 깔끔하다고······?”


깊은 의문을 느끼며 몇 번이고 확인해봤지만 진짜였다. 성열이의 말은 빨갛지 않았으니까.

나는 뒤에 얌전히 서있는 송연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연지 씨도······ 여기서 계속 지낸 거예요?”

“네. 그랬죠. 생각보다 지낼 만해요.”


그녀는 아무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응도 빠르고 소탈한 모양이다.

아, 벌써 몸에 병이 드는 것 같다. 아이고, 아이고.


“빨리 짐 풀어, 인마. 시설들 소개해줄 테니까. 이런 기회 잘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눈에 익힌다고.”

“그래, 그래야지······.”


의외로 귀하게 자란 나는 행여라도 남들의 것과 섞이지 않도록 한쪽 구석에 짐을 잘 놔둔 뒤 빠르게 기숙실을 벗어났다.

그 뒤로는 성열이를 따라 기자에게 허용된 공간은 모두 돌았다.

송연지는 이미 다 알고 있는지 성열이가 설명을 마치고 나면 부연설명을 덧붙이곤 했다.

모두 돌고 나서 느낀 것은 경찰청이란 시설이 외부에 대해 상당히 폐쇄적이라는 점이었다.

기자에게 허용된 곳이라고 해봐야 기자실과 기숙실을 제외하곤 자료실 일부와 취조실 몇 개, 홍보관과 민원실 등이 전부였다.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배운다며? 이 정도는 사수가 한 번 돌아줘도 다 외우겠다.”

“경찰이 직접 구경시켜주는 경우가 드물다는 말이었지, 인마. 거 참 빡빡하게 구시네.”


이 새끼, 한 대 때릴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송연지가 보고 있는 앞이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순회를 끝내고 다시 로비로 돌아왔을 때, 성열이는 어느새 잔망스런 표정을 모두 지워내고 한껏 진지한 얼굴을 지었다.


“저기, 연지 씨. 죄송한데 잠깐 자리 좀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진우랑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 자식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진지한 얼굴을 한 성열이를 본 송연지는 지금까지처럼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그럼 기자실에 가있을게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자리를 비켜줬는데도 성열이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답답했던 마음에 녀석을 채근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밥 하냐?”

“그런 게 아니고, 일단 약속 하나만 해라.”

“뭔 약속?”

“지금부터 들을 내용을 외부에 흘리지 않기로.”


그 말인즉, 기사로 쓰지 말라는 거겠지.


그 말만으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챌 수 있었다.


“너 막혔구나?”


역시 제대로 짚은 모양이다.


“귀신같은 새끼······. 그래. 막혔어. 어차피 더 보채봐야 뭐가 나올 것 같지도 않고. 이러다가는 진짜 붕 뜨게 생겼다.”


간절해 보이는 녀석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좋아. 대신 너도 이거 약속해.”

“뭔데?”

“수사 진척상황 공유해주고 보도할 수 있을 때 가장 먼저 알려줘. 이 정도면 괜찮은 딜 같은데?”


늘 그렇듯 나는 합리적인 제안을 했고, 그러니 성열이는 내 제안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후······. 그래. 그렇게 하자.”


역시나.

합의는 끝났으니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따라와.”


성열이는 나를 광역1계의 회의실로 데려갔다.

미리 특수팀에 언질을 해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은 비어있는 상태였다.


“너 지금 내가 가라쳐서 전문가 자격으로 들어와 있는 거야. 이거 걸리면 나 죽어.”


나라고는 언질을 하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래. 이 전문가께서 뭘 해주면 되냐?”


내 말에 성열이가 분주하게 움직여 회의실 스크린에 화면을 띄웠다.

그곳엔 용의자의 이름과 나이 등을 포함한 신상과 온갖 이력이 적혀있었다.

성열이는 대학교 수업에서 발표할 때처럼 앞에 서서 나에게 브리핑을 시작했다.


“박재석, 33세. 무직이고 사는 곳은 암사동. 사건이 일어난 곳과는 거리가 꽤 있어. 동물살해는 처음이래. 그래서 어디서 이런 걸 알게 됐고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일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니까······.”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화면이 바뀌었다.


“네가 말했던 대로 커뮤니티를 언급했더니 결국 시인하더라고. 근데 이 자식이 너무 긴장한 탓인지 어디서 본지 헷갈려해. 그래서 일단은 용의자 명의로 가입한 사이트를 먼저 추려봤는데······.”


각종 커뮤니티의 이름과 그의 접속이력이 적힌 화면이었다.


“일단은 이 정도야.”


나는 그 화면과 용의자의 진술서를 번갈아가며 훑었다.

사실 자세히 볼 것도 없었다. 나는 진술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뒤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감싸 쥐며 말했다.


“용의자가 긴장했다고?”


그랬을 리가. 그렇게 보였겠지.


“헷갈려 한다고?”


그런 놈이 저런 것만 골라서 말했다고?


“전부 아니야. 이 진술서도 전부 거짓말이라고.”

“뭐?”


나와 같은 것이 보일 리 없기에 품에서 빨간색 펜을 꺼내 친절히 새빨갛게 보이는 부분에 줄을 그어주었다.


“여기부터 여기. 또 여기부터······ 여기까지.”


그것을 받아든 성열이의 얼굴은 곧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러니까······ 그 새끼가 지금 이만큼의 구라를 치고 있다는 거지?”

“그래.”

“그러니까······ 신상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구라를 까고 있다는 말이지? 감히 나한테?”

“그래.”

“흐흐흐, 으흐흐흐흐······.”


갑자기 실성한 듯 웃음을 흘리는 녀석.

나는 저 표정이 언제 나오는지 아주 잘 안다.

매우 깊게, 그것도 극한까지 빡쳤을 때 나오는 표정.


“으흐흐······. 그랬단 말이지.”


웃음을 뚝 그치고 얼굴을 싹 굳힌 성열이는 용의자 대신 진술서를 찢어버릴 듯 노려봤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데, 하물며 그게 호랑이의 꼬리라면 어떨까.

내심 용의자의 명복을 빌어주게 된다.


하지만 그때까진 몰랐다. 우리 앞에 그보다 더 큰 위험이 닥치고 있었다는 걸.


벌컥-!


갑자기 활짝 열리는 회의실의 문.

그 너머로 보이는 모습은 흡사 도깨비와 같았다.

작지만 단단한 덩치와 짧게 자른 머리를 가진 실루엣.

그 사이로 보이는 부리부리하게 불타는 눈빛.


“바, 반장님?”


성열이가 평소에 그렇게나 존경한다고 노래를 부르던 광역1계 강력반의 반장, 홍인표인 모양이다.


“분석전문가를 모셨다고 들었는데, 이분인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온 듯한 그의 태도에 나와 성열이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곧 나에게 문제가 하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목에 매고 있는 한국방송 사원증.

경찰청에 신분 확인이 안 된 사람이 돌아다니면 곤란하기 때문에 기자들은 회사에서도 잘 걸지 않는 사원증을 꼬박꼬박 걸고 있어야만 했다.

급하게 그것이 보이지 않도록 몸을 슬쩍슬쩍 틀었지만 홍인표의 눈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저벅저벅 걸어온 그는 사원증을 훅 잡아당겨 바라보았다.


“한국방송 인턴, 박진우 기자······. 분석전문가가 아니라 기자셨구만.”


슬쩍 돌아본 성열이는 이미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하든가 아니면 변명이라도 해야겠는데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은 까닭이리라.

시련은 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오는 법이라고 했던가.

지금 성열이에겐 홍인표의 질문이 딱 그랬다.


“오성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볼래?”

“바, 반장님. 그, 그게······.”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 역시도 성열이와 공범이었으니 해결할 의무가 있었다.


“성열이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홍인표 반장님이시라고······. 지금 많이 화가 나실 수도 있는데 일단 제 얘기를······.”

“기자님은 조용히 해주시죠. 저는 제 부하한테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이 이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사실 경찰은 기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기자라는 이름으로 벌인 만행들이 얼마던가.

미처 수사가 끝나지도 않은 사건을 마치 결과가 나온 양 보도해버리기도 하고 확실한 범인이 아님에도 섣부르게 세상에 퍼뜨려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댔다.


맞으면 특종이고 아니면 말고.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목으로 기자들이 벌인 짓들.

그래서 경찰들은 기자 앞에서 말하는 것 하나에도 긴장해야 하고 매순간 행동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성열이는 거짓말을 치면서까지 기자를 회의실에 불러서는 특별수사팀의 수사현황까지 알려주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홍인표가 보내온 압도적인 눈빛은 나를 짓눌렀다가 다시 성열이에게로 향했다.

녀석은 벌벌 떨면서도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았다.

내 능력을 사실대로 털어놓더라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꺼내지 않는 편이 맞았다.


“왜 대답을 못해!”


기어이 불호령이 떨어지고 말았다.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나는 내가 띄울 수 있는 승부수는 띄워야 했다.


“홍인표 반장님, 저에 대해 말씀······.”

“기자님은 조용히 하시라니까! 지금 부하한테······!”

“저에 대해서도 들으셔야할 겁니다!”


나는 다르다.

나는 그런 쓰레기 기자들과는 다르다.


“청라지구 살인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내 물음에 처음으로 홍인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묻는 듯한 눈빛.

나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럼 자살사건으로 끝날 뻔한 걸 살인사건으로 제보한 사람도 기억하시겠죠.”


나는 이랬던 사람이다.


“그게 접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도피칸
    작성일
    20.04.25 02:59
    No. 1

    인정받아 앞으로 저 형사반에 거의 촉탁으로 관여하겠는데요. 입소문이 문젠데.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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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4. 조 변호사 +1 20.04.27 225 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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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나는 다르다. +1 20.04.24 232 11 11쪽
22 21. 경찰청 상주기자 +2 20.04.23 258 10 13쪽
21 20. 갑자기? +2 20.04.22 293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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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이상하다. +3 20.04.20 250 8 13쪽
18 17. 진심 +2 20.04.17 255 8 13쪽
17 16. 뭔가 있다. +2 20.04.16 262 9 14쪽
16 15. 회의 20.04.15 255 8 13쪽
15 14. 첫 출근 +2 20.04.14 273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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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0. 대면(1) 20.04.09 331 12 13쪽
10 9. 토론 +4 20.04.08 316 1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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