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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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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루스
작품등록일 :
2020.02.2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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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0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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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코르시카인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코르시카의 분리 독립을 성공시킨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콰스콸레 파올리.

비록 제노바의 술수로 코르시카의 주권은 프랑스에게 넘어가게 되었지만 개혁적이고 고결했으며 민족의 정신을 보였던 파올리는 자신의 명성과 영향력으로 코르시카를 반독립 세력으로 만들었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은 여전히 많았고 코르시카의 주류를 차지했으며, 이 중에서는 어린 시절의 나폴레옹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어린 나이의 나폴레옹은 자신이 파올리를 열렬히 지지한다는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파올리파의 촉망 받는 젊은 피가 되었다.

그는 특별히 언변이 뛰어나거나 교우관계가 원만하지는 않았지만 타인의 호감을 얻기 쉬운 훤칠한 외모와 영리한 두뇌를 가졌다.

무엇보다 프랑스 최고의 군사교육기관인 파리 왕립군사학교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앞날을 보장받은, 육군 소위라는 배경이 존재했다.

덕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은 미래의 코르시카를 빛낼 많은 유망주들 가운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1791년은 그런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썩 나쁘지 않은 해였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가진 것을 철저하게 이용할 줄 아는 청년이었다.

명문 군사학교 출신의 육군 소위가 코르시카의 정책과 발의안건, 외교와 통치 등의 분야에서 시의원들과 뜨거운 정치적 토론을 벌이는 모습은 코르시카 내에서 퍽 흥미롭고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는 이러한 화제성을 이용하여 형 조제프를 코르시카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키고 개혁정책들을 공유하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결국 조제프를 코르시카 청년 정치인으로서 공의회에 입성하게 된다.

그가 공의회 내부에서 보나파르트 가문의 이익과 명예를 대변할 수 있기에 가족들은 기뻐했고 나폴레옹은 만족스러워했다.


이른 성공을 즐겼던 그는 1791년 4월, 장피에르 뒤테유 장군 소속의 연대로 복귀한 후 경력에 따라 중위로 승진했다.

연간 8백 리브르를 받았던 나폴레옹은 이제 1천 리브르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루치아노 신부의 정부 역할을 했던 어머니 레티치아 라몰리노 덕분에 루치아노 신부의 유산을 차지한 것은 길을 가다가 100아시냐(교회 재산을 담보로 발행한 지폐)를 주운 것 이상의 행운이었다.

두 개의 사건 덕분에 보나파르트 가문은 재정적으로 궁핍할 일은 없게 되었다.

그것은 더 이상 나폴레옹이 돈을 벌기 위해 삼류 소설 같은 것을 끄적거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였다.

나폴레옹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한심했던 자신의 사춘기적 자화상이자 불쏘시개를 조용히 접어서 태웠다.


1792년은 나폴레옹에게 있어서 변혁의 해였다.

스스로를 '의용군'이라고 칭하는 코르시카 레지옹의 정규 대대의 선출직 대대장 자리에 자원한 나폴레옹.

그는 작년 선거에서 쌓은 화제성과 인지도에 루치아노 신부의 유산을 바탕으로 코르시카 의용군 연대의 대대장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중위가 된 청년 장교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대대단위 부대의 훈련과 통솔, 전시지휘를 나폴레옹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의용군에 불과할지라도 이것이 큰 행운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도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프랑스는 현재 혁명의 불길 아래 전 국토가 신음하고 있었고 그것은 코르시카도 다르지 않았다.

새롭게 정립된 프랑스 공화국의 기치에 반기를 든 왕당파 마이야르 대령과 400명의 보병 연대는 코르시카의 남부도시인 아작시오 시를 무단으로 점령했다.

그들은 주민협의회를 만들어 집정부와 대립했으며 독립적인 지위를 요청했다.

일명 ‘마이야르 연대’는 급조된 반군답지 않게 충분한 탄약과 대포를 보유하고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들이 점령한 아작시오 시는 반공화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는 도시였다.

이를 의식한 코르시카 공의회는 나폴레옹에게 그들에 대한 진압을 맡기면서도 과잉대응을 삼가라는 지침서를 내렸다.


처음 나폴레옹은 군말 없이 그 말에 따르려고 했다.

그러나 병사들을 시켜서 아작시오의 시민들과 마이야르 연대의 동향을 살핀 후에는 생각을 바꾸었다.


"공화국의 지배를 완강토록 인정하지 않고 있는 집단이 무시할 수 없는 무력을 보유했고 광기를 채워줄 지도자와 심상치 않은 기류를 풍기는 지지자들까지 존재한다. 이미 대화로 해결할 수준은 지났으며 총구를 멈춰야할 어떠한 이유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저들은 더욱 굳건히 단결하게 될 테니까."


정치가 아닌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나폴레옹은 간파했다.

결정을 했으면 확실하게.

4월 8일, 부활절을 맞이하여 왕당파의 시민들이 성당에 예배를 올리는 사이, 나폴레옹이 이끄는 코르시카 의용군은 쏜살같이 진격하여 아작시오 시의 외곽에 위치한 전위요새를 습격했다.

그곳에서는 제대로 배분되지 못한 반군의 탄약과 식량, 대포 등이 즐비하게 놓여있었고 의용군은 이를 빠르게 수습했다.

이후 이들은 곧바로 시내 중심부를 들이쳤다.

의용군이 어떠한 예고도 없이 이렇게 빨리 공격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마이야르 연대는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짧은 시가전 끝에 연대장 마이야르와 장교들은 제대로 된 지시조차 내리지 못한 채 사로잡혔고 휘하 병사들은 지리멸렬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의용군은 총탄이 팔과 어깨에 꿰뚫고 지나간 두 명의 부상자를 제외하고 모두 온전한 모습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명령지침을 무시한 불복종의 죄를 저질렀음에도 시민들과 병사들은 나폴레옹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의 강단을 칭찬하며 대위로 진급시킨 육군사령부의 결정까지 알려지자 코르시카 공의회는 안면을 바꿔 나폴레옹을 칭찬해야 했다.


1792년 8월 10일.

루소의 사상에 심취한 순수한 코르시카 민족주의자였다가 혁명의 열기에 감화되어 열성적인 자코뱅의 공화주의자로 탈바꿈한 나폴레옹의 가치관을 또 한 번 바꿀만한 일이 튈르리 궁에서 터졌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침공군에 의해 라파예트 장군이 지휘하던 프랑스 국민군이 격파 당했다.

라인란트가 열리면서 파리로 향하는 가장 큰 대로가 뚫리자 프랑스 시민들은 왕정의 복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커다란 위기의식을 느꼈다.

장 폴 마라와 로베스피에로, 생쥐스트 등의 과격한 자코뱅의 혁명분자들은 이런 민중들의 위기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잔혹한 방식의 쇼를 준비한다.

수천 명의 무장 혁명가들을 소집하여 절대왕정의 상징, 부르봉 왕실이 기거하는 튈르리 궁을 습격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궁을 지키던 스위스 출신의 왕실 근위대와 분노와 광기에 취한 혁명 전사들은 톨드담 성당을 중심으로 격돌했고 참혹한 총격전과 백병전이 벌어졌다.

다만 튈르리 궁을 지키는 근위대는 천이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절반 가까이가 싸우기도 전에 도망가 버렸기에, 무장한 혁명가들과 성난 민중들까지 가세한 폭도들을 진압할 수 있을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근위대의 사격에 피를 보고 눈이 돌아간 혁명가들, 아니 민중들은 완전히 제압되어 무장해제 당한 근위대들을 산채로 때려죽이거나 눈알에 총검을 찔러 넣었고 바지를 벗겨 성기를 잘랐다.

그들은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근위병들을 고문, 살해했고 그 과정을 광장 앞에서 여과 없이 드러내며 즐겼다.

뒤테유 부대에 복귀신청을 하고 미수령 된 상여금을 지급받기 위해 파리로 왔던 나폴레옹은 우연히도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구체제에 의해 탄압받아온 민중들의 분노와 광기는, 제어되지 않은 인간의 본성을 보는 것처럼 통제 없이 풀려나기 시작했다. 이미 한 번 임계점을 뚫은 저들이다. 혁명을 일으킨 선구자들이 구체제의 잔재와 모순을 완벽히 씻겨낼 명확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번 재앙은 다시 한 번 되풀이 될 것이다.'


체제를 뒤집어엎은 혁명을 성공시킨 간부들, 그들은 또 한 번의 정치적 승리에 자축하며 샹들리에가 가득한 파티방에서 와인을 마시며 향락을 즐겼다.

온갖 기상이변과 전쟁,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등으로 민중들은 생필품이 부족하여 수도 없이 굶어 죽었다.

빈곤이 심한 지역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까지 횡행하는 흉악한 시대.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다.’, ‘앞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다.’ 선동하는 언론들, 간부들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마치 중세의 귀족처럼 무자비하게 하층민들을 때려잡는 혁명분자들, 허술해진 국고를 횡령하고 해외로 도피하고 있는 부르주아들까지.

자유, 평등, 우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과 광기의 시대였다.

민중들이 바라지 마다않던 이상, 그것은 결코 대안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나폴레옹의 시선은 승리를 자축하면서 피를 게워 마시고 있는 혁명가들, 정확히는 그들이 들고 있던 총과 칼에 닿았다.

이 혼란하고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고 투쟁할 수 있는 길, 그것은 하나의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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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툴롱 - 14 +5 20.03.27 884 49 12쪽
30 툴롱 - 13 +5 20.03.26 796 38 12쪽
29 툴롱 - 12 +5 20.03.24 883 38 12쪽
28 툴롱 - 11 +3 20.03.23 801 34 12쪽
27 툴롱 - 10 +8 20.03.22 907 41 13쪽
26 툴롱 - 9 +9 20.03.20 864 40 12쪽
25 툴롱 - 8 +7 20.03.19 900 39 13쪽
24 툴롱 - 7 +10 20.03.17 873 36 12쪽
23 툴롱 - 6 +9 20.03.16 972 48 13쪽
22 툴롱 - 5 +10 20.03.14 904 45 13쪽
21 툴롱 - 4 +6 20.03.13 921 4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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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툴롱 - 2 +4 20.03.11 923 32 13쪽
18 툴롱 - 1 +10 20.03.10 997 3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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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5 +8 20.03.08 887 37 13쪽
15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4 +10 20.03.07 900 33 13쪽
14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3 +6 20.03.06 897 32 13쪽
13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2 +6 20.03.05 904 35 14쪽
12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1 +4 20.03.04 900 30 13쪽
11 혁명과 모략의 시대 - 10 +9 20.03.03 983 37 13쪽
10 혁명과 모략의 시대 - 9 +11 20.03.02 953 36 16쪽
9 혁명과 모략의 시대 - 8 +6 20.03.01 1,099 32 15쪽
8 혁명과 모략의 시대 - 7 +6 20.02.29 1,059 39 16쪽
7 혁명과 모략의 시대 - 6 +6 20.02.28 1,062 40 16쪽
6 혁명과 모략의 시대 - 5 +4 20.02.27 1,155 39 13쪽
5 혁명과 모략의 시대 - 4 +5 20.02.26 1,319 3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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