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토리 1부 - 흑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완결

TheZXCV
작품등록일 :
2020.02.23 12:50
최근연재일 :
2021.02.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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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2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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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끝나지 않은 일 (5)

DUMMY

<전이> 마법을 사용해 내가 이동한 곳은 어느 건물의 지붕 위였다. 저번보다는 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무래도 쓰다 보면 더 능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군.


"그나저나 이 주변에서 분명 발휘되었는데.... 그 용사의 각성이란 것이 말이야."


원래 천계에 있었을 때는 이런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냥 누구인지만 확인하면 되는데, 현장으로 나와서 보니까 정말 살벌하구먼. 이 허름하고 아무도 없을 법한 배경을 보고 확신했다.


애당초 나약한 용사를 이런 곳으로 데려온 것만 봐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아무도 모르게 처리할 만큼 조용하고 음산한 곳이다. 절대로 그녀에게 유리한 점이라고는 없겠지.


"그렇다면 아까 전의 왕은 페이크.... 결국, 진짜 목적은 용사가 될 이니였다는 말이구먼. 그럼 흑월이 이런 대규모 사건을 벌인 것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지만."


굳이 말하자면 흑월의 전력이 이 정도나 된다고 선전할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유메니티>가 흑월은 꼭 잡아야 하는 조직이라고 생각될 만큼의 위협을 가질 가능성도 크다. 작전으로서 본다면 양면의 칼날을 가진 수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서는 흑월이 알아서 할 문제고, 나로서는 지난이 이곳의 수호자인 만큼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힘들 것 같다. <전이> 마법으로 어딘가로 바로 이동한다면, 그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부터가 어려우니까.


"난 용사의 목소리가 들리면 거기가 어딘지를 찾아낼 수 있지만 지난은 그렇지 못하겠지. 그런데 나로서도 용사가 이렇게 맥 빠지게 죽는 건 좋지 않은데...."


거기에 이번 용사는 <웨포스트>에서만 용사가 생긴다는 규칙을 깨버린 이레귤러로서, 세상의 불만이 많아졌다는 내가 내려온 사건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개인적으로라도 조사해보고 싶은 자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때마침 저기 보이는군. 한 번 지켜보도록 할까."



★★★



신에게 선택받아 어느 한 사람이 용사가 된다.


그러나, 본질이 평범한 사람인 만큼 갑작스레 자신이 갖추게 된 능력을 쉽사리 사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로는 자신이 어느 능력을 갖췄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


불변의 리더인 용사가 성검을 통해 중심의 자리를 굳힌다면 나머지의 다른 동료들은 그 용사를 보조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파티의 포지션이라 생각하면 편하기 쉬울 터다.


멀리서 용사를 도와주는 궁수.

용사와 같이 앞에서 싸워주는 전위.

마법으로 여러 상황에 대처 가능한 마법사.

다친 용사를 치유해주는 힐러.


분명 그녀가 가진 직책은 이들과는 겹치지 않는 직업일 테다. 애초에 그리 규칙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제 자신의 직책을 찾는 것뿐인데 이건 스스로가 직접 찾는 수밖에 없다. 대체로 감정이 격해지거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을 때, 즉 무언가 자극을 받으면 그것을 찾을 확률이 올라가니, 나라는 가능한 범위에서 용사의 힘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목적으로, 나라는 소환 당시에 용사에게 여러 가지 무기를 제공해주며, 반응이 있을 법한 무기를 중점을 두고 용사를 훈련한다. 분명 가호를 받았다면 자신이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했을 무기도 이미 사용해봤던 것처럼 능숙히 사용 가능할 테니.


여기에 더해 위에 서술되었던 것처럼 감정이 격해지거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면 그 가호의 반응이 더욱더 증폭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물론 국가가 그런 상황을 일부러 만드는 짓은 하지 않으므로,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그 가능성을 일깨워버린 장본인. 설마 여기까지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 각성이 될 만한 상황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감정, 거기에 그 무기와의 상성까지 맞다니.... 이거 엄청난 우연이 겹쳐진 게 아닙니까."


무심코 던져버린 단검이 그녀의 각성이 될 계기를 만들어주는 무기가 되다니,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가 보고 있는 용사 후보 이니의 모습은 이런 장소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더럽혀진 하얀색의 드레스에, 들고 있는 건 위험한 단검이라니 이상한 조합의 극치였다. 그리고는 그녀의 주위에 나오는 빛을 보면, 힘을 발휘할 만한 조건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는 것은 확실할 터.


"저기요, 들리시나요? 저, 갑자기 상황을 보니까 이 목표한테 살해당할 것 같은데요?"

"....."


이렇게 분위기가 변한 이니도 그가 다른 자와 <전언>을 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자신의 지금 상태를 알아챘다. 불완전해져 있던 자신 안의 자질이 위협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실현되어가는 것이다.


"저, 용사의 각성을 해버린 그녀에게 말이죠."


그리고 가장 큰 단서인 '용사'라는 단어. 눈앞의 남성의 말을 들어본다면 이니가 현재 아까와는 다른 상태가 됐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제 어느 정도 대항할 수가 있다는 말이 되는 건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벽에 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낸다. 그러면서 저 멀리 천천히 단검을 든 손으로 다가오던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벽에 꽂혀있던 단검을 빼내어 천천히 들었지만....


(...설마 정말로 이런 힘이 존재할 줄이야.)


마치 어느 정도 능숙히 사용해본 것처럼 이 단검에 대한 숙련도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더불어 신체 능력도 조금 상승한 듯한 느낌 또한 느껴졌다. 천천히 수련해나가지 않고 갑작스럽게 주어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곧바로 체감할 수가 있다. 그녀가 확연히 강해졌다는 것을.


"아, 네. 어떻게든 하라고요? 글쎄, 저로서는 조금 어렵다니까요."


현재 지금의 그는 그녀가 각성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 그리 신경 쓰고 있다는 듯한 눈치는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마법으로 누군가와 얘기하는 데에 집중할 뿐이다.


(게다가 아까의 그 사람과는 달리, 이 사람은 그리 강하지 않은 것 같고.... 물론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적의 신체적인 특징, 무기를 잡을 때의 행동, 말하고 있는 분위기를 보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니, 예전의 추측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확신이 섰다. 이렇게 관찰력이 좋아진 것도 어쩌면 그녀의 장점이 발휘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됐든 눈앞의 적이 단검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고, 빈틈이 보인 이상 이때의 틈을 노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순간, 도약하자마자 자신의 몸이 순식간에 그와의 거리를 반 이상으로 좁혀 몇 발자국 만에 그에게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위치까지 온다. 이 경우에는 강제적으로 와버렸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까.


어떻게 될지 방금 부여받은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고 각오도 한 상태였지만, 역시 한낱 각오로는 어찌할 수 없는 동요가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것은 달라진 신체 능력보다도 이제부터 사람을 죽이겠다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대로는 나 자신조차 지킬 수가 없어!"


그녀는 이 각오 하나만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람을 향해 칼날을 들이댄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자라고 하더라도 평범하게 거부 반응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눈을 뜨고는 있지만 적어도 죽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아니, 그러니까 이건 저로서는-"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대화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에게 다가가 정확히 거리가 될 만한 곳까지 와 칼날을 남자의 몸에 쑤셔 넣었다. 무언가가 박혔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껴진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심장을 향해 칼날이 움직였고, 그녀의 몸은 떨리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의지로, 직접 자신의 손으로. 전투직이 아닌 그녀로서는 괴로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비록 범죄자라 할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 사람이 쫓아올지도 몰라.... 빨리 여기서 탈출해야 하는데...."


그러고서는 재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의 방책을 찾는다. 극한으로 몰렸다는 공포가 비현실적인 감정을 이긴 것이다. 단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뒤로 빼내어 남자로부터 눈을 돌린다.


우선 그녀의 뒤에 있는 벽을 향해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면서 눈을 뜬다. 뒤에 자신이 찔러넣은 시체에는 눈이 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노력한다.


눈앞의 벽은 강화된 신체 능력으로도 위로 높이 뛰어오르거나 할 엄두는 전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작은 단검으로는 저 벽에 흠집이라도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것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자가 이니를 놓칠 리가 없었을 테니까.


-뚜벅


"서둘러야 해. 제발 서둘러야 해. 시간을 오래 끌면 죽을지도 몰라."


다행히 저번의 그녀보다도 지금의 그녀는 더욱 침착하게 다음 행동을 파악하거나 판별한다. 이것도 용사가 되어 얻은 혜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움이 되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급함에서 나온 생존 본능.


만약 시간 내에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것은 확실한 죽음의 존재이다. 지금의 그녀가 직접 단검을 휘둘러보고, 여러 명의 모험가를 보면서 얻은 정보를 통해 확실히 알았다. 그녀는 아직 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뚜벅


"수, 숨을 데도 없고, 더 나아갈 곳도 없네.... 거기에 이곳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까지.... 정말로 어떡해...."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되는 이니. 더 이상의 시간 낭비는 위험했다.



-뚜벅



하지만 그 전에, 이니는 평소보다 강화된 청력으로 아직 이 사태가 끝나지 않았음을 순식간에 깨달았다. 처음과 두 번째까지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세 번째부터는 이 소리가 우연에서 만들어진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뒤를 돌아보면, 분명 심장을 찔렀음이 분명한 남자가 오른손에 피를 흘리면서 그녀를 증오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 어떻게...? 분명히 심장을 찔렀음이 틀림없을 텐데...."

"이.... 년이-"


그녀가 있을 수 없는 일에 당황하는 동안, 남자는 천천히 바닥에 자신이 놓친 독이 발라진 단검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말하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그녀에게 접근하여 오른발을 위로 쳐들었다.


"-감히 이 나를 칼로 찔러?!"


강한 충격이 이니의 몸을 덮친다. 남자의 발이 그녀를 벽으로 거칠게 몰아세운 탓이었다. 두 팔을 교차시켜 막았는데도 불구하고 평범한 성인 남성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괴력이었다.


(이, 이 사람...!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인상을...!)


"<전언>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다짜고짜 나에게로 칼날을 들이밀다니. 너, 정말로 죽고 싶은 거냐? 크윽.... 아파 죽겠잖아!"


아까까지의 여유 있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남자는 자신의 오른손에서 나온 피를 보고는 자신의 옷자락 일부분을 떼어내 스스로 지혈한다. 더불어 여러모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독이 든 단검을 그녀의 앞으로 내민다.


"아, 그래. 굳이 적인 너한테 내가 존댓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아까까지 그 녀석한테 일부로 그런 공손한 말투를 쓰는 것도 짜증 났다고. 아무리 업무라지만, 마음에 안 들었어."


갑작스레 달라진 모습에 이니 자신도 단검을 한 손으로 들고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격할 수 있을 만한 포즈로 서기 시작한다.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알아서 포즈를 잡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신기했다.


"아아, 그 자세에, 그 속도. 결정적으로 그 무기.... 이미 알아채 버렸다고. 용사 후보로서 가진 너의 직업 말이야."

"...그런가요. 전투직으로서는 꽤 괜찮은 능력이네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던 그가 의외로 자신에게 대화를 건네자 살짝 놀란다. 하지만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그걸 얼굴 밖으로 비춰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하나 놀라운 점은 그녀조차도 알지 못하는 그녀의 직책을 앞의 남자가 알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적인 만큼 여기에 대해서는 쉽게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터-


"여유 있는 척 자세를 잡는 것도 지금뿐이다. 너의 직업은 전투직이 아니니까. 물론 그에 준하는 괜찮은 능력이기는 하지만."

"-괜찮은, 능력입니까."


적당히 대답하면서도 그의 기만 작전이 아닐까 의심한다.

이 시점에서 남자가 자신에게 이러한 정보를 알려준다는 것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서 유리한 점이 아니거나, 그에게 있어 불리한 정보가 아니라는 불길한 징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도 슬슬 알고 싶어.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계기와 내가 가진 직책.)


비록 이것을 듣게 되어 적이 유리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지금의 그녀는 듣고 싶었다. 자신의 정체에 대한 그 한 마디를.



"바로 너의 직책은.... 도적이다."

"-!"



그래서, 였었나.

이니의 몸놀림이 한층 가벼웠던 것도, 숨어있던 왕의 호위들을 찾은 것도, 이 단검을 들었을 때의 느낌도 모두.


"공교롭게도 너를 위협하는 존재들도 그와 비슷한 암살직이로군. 이거, 어떡하나. 비록 강해지기는 했다지만 전투직은 아니라고."


그 말만을 마치고서 얘기는 끝났다는 듯이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 손에는 독이 든 단검. 눈은 자신을 똑바로 응시한다. 뒤에는 거대한 벽이 있어 도망갈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상사의 지시에 따라 조금 여유 있게 진행하려고 했는데. 이젠 그러지 못하게 되어버렸어."


음영이 진 어두운 표정 속에서도 남자의 눈동자 안의 실핏줄까지 선명히 보인다. 그다지 알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변화가 이니에게 있어서 약간 오한이 들게 했다.


"나, 이거. 정말 아프다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그렇다면, 정당방위로서 이걸로 너를 찔러도 되는 거겠지, 응?"

"히익-!"


서서히 다가오던 그때, 남자는 갑작스레 가속을 붙어 이니를 찌르겠다는 의지로 점점 다리를 가속한다. 어느새 벽 끝으로 몰린 이니가 자신도 모르게 단검을 쥔 손을 덜덜 떨면서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 안돼! 비록 상황이 이렇게 되긴 했어도 나는 용사야! 아까 전처럼만 하면....)


마음을 다잡으려고 이니가 스스로에게 용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그녀의 손떨림은 계속 되면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내 목표는, 네가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거다. 도적인 네가 이것과 비슷한 활동을 하게 될 테니, 평생 잊을 수도 없게 말이다. 모든 것이 쌓여서 상처가 된다는 거지!"


그녀의 속마음은 알지 못하는, 전혀 알고 싶지도 않은 남자가 단검을 잡은 손으로 갑작스레 공격을 감행한다.


"죽어!"


칼날이 자신의 쪽으로 다가오자, 본능에 따라 이니는 자신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속함으로 그 궤도를 피한다. 비록 전투직이 아니더라도 용사라는 것만으로도 아주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또 다음 차례에 연속으로 공격이 물 밀리듯 쏟아져 나온다. 이번에는 휘두르는 것이 아닌, 일격필살의 찌르기 공격.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벽에서부터 빠져나와 통로를 확보한다.


(이 사람, 분명히 나를 죽이려고 마음먹고 한 공격들이야! 빨리 반격하지 않으면-!)


그러나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연격이 이어진다. 비록 자신이 공격하고 있지 않기에 생긴 일방적이기까지 한 공방전이기는 해도, 점차 힘에 부치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이 부정적으로 이루어서 그런지, 결국 이니의 왼쪽 부근을 노린 남자의 돌려차기를 맞고 바닥으로 나가떨어진다. 그러나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본능적으로 남자와 자신 사이의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확실히 능력은 아까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월등히 뛰어오른 건가.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심리적인 이유로 지금의 나약한 나를 죽이지 못하고 있는 거군."

"...!"


잠시 공격을 멈춘 남자가 천천히 뒤돌아 그녀를 바라본다.

그러면서 살인에 대한 망설임에,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죽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남자는 단번에 파악한다. 그곳에 승산이 있다고 파악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같은 사람을 평범한 이가 아무렇지 않게 두 번 찌르는 것은 악마나 할 짓이겠지.)


"기껏 다른 사람들이 동경하고 있었던 용사의 지위를 얻었으면서도, 그 정도밖에 못 하는 건가. 눈앞의 범죄자를 쓰러트린다는, 그런 일을 말이야. 꼴사납네."

"다, 당신이 그럴 말할 자격은 없잖아요!"

"그래, 없지. 하지만 사실이잖냐? 네가 지금 그만큼의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이야."


-넌 용사 일행의 짐이라고.


남자는 그렇게 딱 잘라 말한다. 이 이상의 단호함이 없을 정도로. 자세히 보면 어느새 다시 차가운 표정을 띠고 있다는 것을 이니는 깨달았다.


"최소한이라도 너는 이러한 사태를 대비했어야 했다. 그게 아니면 조금 전에 나를 죽일 때 일말의 망설임조차 끊어버리고서라도 찔렀어야지. 그게 실패해서 지금 네가 몰리고 있는 거다."

"하지만! 아직 저는 그럴 준비가-!"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그건 어디까지나 너의 준비 부족이다. 어떻게 말하더라도 핑계야. 애초에 그런 나약한 심성으로 어떻게 용사가 되려고 했던 거냐."

"그것은-"


남자의 마지막 말에 이니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자의 말은 제3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자가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이다. 가장 큰 오류는 이니가 원해서 용사가 되지 않았다는 것.


(용사님께 폐를 끼친다고...? 아, 안돼.... 그것만은 제발....)


그러나 아직 공포나 혼란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닌 이니에게는 마음속의 큰 비수로 박혀있는 모양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 특유의 강한 책임감이 더욱더 그녀의 머릿속을 혼란으로 메꾼다.


"만약 적어도 용사 녀석들에게 너의 유용함을 증명하고 싶다면, 네가 여기서 나를 찔러 죽이는 수밖에 없을 거다. 아니, 진짜 애당초 여기까지 잡혀 온 것만 해도 네가 짐이라는 증거가 아니냐?"

"....."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이니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잠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저자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짐 덩어리가 살아있어서 좋을 게 뭐가 있느냐 싶지만, 한 가지 유용함은 있겠군. 바로 그 짐짝을 두고 갔을 때 벌어지는 해방감! 오늘 용사 일행에게 내가 선물해줘야 할 것은 바로 그거였네. '하나의 짐'을 영원히 처리해주는 거 말이야."

"하나의, 짐...?"

"그래, 너 말이다. 이런 쓸모없는 짐을 가지고 있는 멍청한 용사들한테 말이야."


(...!)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딘가 타오르고, 그렇지만 얼음장과 같이 차가운 무언가가.


"그렇게 되면 그들은 나에게 감사해야 할-!"

"...러워."


그때, 남자의 앞에서 누군가의 암울한 목소리가 땅끝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보니 이니의 몸은 아까보다도 더 강하게 빛이 나오는 중이었다.



"시끄러워! 욕하려면 나만 욕해! 용사님은 건들지 마!"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 더욱 밝은 빛이 일면서 낮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어두운 이 골목길을 빛으로 채운다. 그 과정을 전부 눈으로 지켜본 남자가 감탄하면서도 문득 작은 소리로 중얼거린다.


-이제 슬슬 일어난 건가.


하지만 그 전에,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눈초리를 느끼고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어디까지나 원하던 목표 중에 하나에 성공했을 뿐, 여기는 아직 전장이다.


"나는 당신의 말대로 미숙해. 여러모로 이런 큰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렇지만, 다른 이들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신 용사님들을 모욕하지 마!"

"...아, 내가 무언가 심기를 건드려 버렸나 보군."


그녀의 위협적인 한 마디에도 남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그녀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자신을 찌르지 못할 거라는 강한 확신이 있기에 그런 것이겠지.


그러나, 지금 용사의 각오를 다진 그녀는 찌를 수 있었다. 자신의 손을 더럽혀 적을 처단하더라도, 그것이 비록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결과가 나오더라도 전부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단검을 들고 공격적으로 돌진할 수가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진짜 이러다 죽겠네요. 생각보다도 더 박력 있는 분이시네."


정작 남자는 고개를 돌려 마지막까지 입을 놀리고 있었다.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상황인데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악질의 범죄자인 이 사람만큼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날카로운 칼날이 남자에게 닿기 전, 강한 충격과 함께 이니는 다시 한번 뒤의 벽으로 밀려난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아주 강한 충격.


"-이봐, 중요한 고객님이다. 건들지는 말아라."


입술이 찢어져서 나오는 피와 벽에 맞으면서 생긴 먼지를 걷어내면서 자신을 찬 장본인을 알게 되었다. 아직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여기까지 오다니.


"그럼, 이제부터 다시 쇼를 보여주시죠."

"...맡겨만 주십시오. 너무도 큰 민폐를 끼친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죠."


이니를 강하게 날려버린 자를 남자는 겁도 없이 그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은 이미 땅바닥에 버려놓았다.


"과거에 [선혈의 광란]이라 불린, 저의 진정한 실력을 보여드리죠."


이 모든 일을 꾸민 최악의 원흉. 암살 부문장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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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토리 1부 - 흑월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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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외전 3. 모든 일의 수습 21.02.21 156 1 24쪽
74 종장 (完) 21.02.18 151 1 26쪽
73 종장 (1) 21.01.23 159 0 25쪽
72 끝나지 않은 일 (完) 21.01.08 166 1 26쪽
» 끝나지 않은 일 (5) 20.12.22 159 0 22쪽
70 끝나지 않은 일 (4) 20.12.03 157 0 19쪽
69 끝나지 않은 일 (3) 20.11.30 158 0 20쪽
68 끝나지 않은 일 (2) 20.11.28 158 0 21쪽
67 끝나지 않은 일 (1) 20.11.27 141 0 26쪽
66 광장의 전투 (完) 20.11.17 139 0 25쪽
65 광장의 전투 (5) 20.11.10 143 0 20쪽
64 광장의 전투 (4) 20.11.03 143 0 21쪽
63 광장의 전투 (3) 20.11.01 135 0 18쪽
62 광장의 전투 (2) 20.10.27 150 0 24쪽
61 광장의 전투 (1) +2 20.10.18 165 0 26쪽
60 습격 (完) 20.10.12 135 1 19쪽
59 습격 (1) 20.10.03 126 0 20쪽
58 환영식 (完) 20.09.23 120 0 23쪽
57 환영식 (4) +1 20.09.15 130 1 17쪽
56 환영식 (3) 20.09.09 126 0 17쪽
55 환영식 (2) 20.09.05 137 0 17쪽
54 환영식 (1) 20.09.03 134 0 18쪽
53 새 감각 (完) 20.08.31 112 0 17쪽
52 새 감각 (2) 20.08.22 165 0 18쪽
51 새 감각 (1) 20.08.18 131 0 18쪽
50 외전 2. 그랜드 스쿨 (Grand School) 20.08.15 144 0 12쪽
49 식전 (式前) (完) 20.08.13 140 0 15쪽
48 식전 (式前) (3) 20.08.09 144 0 16쪽
47 식전 (式前) (2) 20.08.01 154 0 20쪽
46 식전 (式前) (1) 20.07.25 152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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