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화첨창多刃花尖槍
형천발부刑天拔斧
형천은 도끼를 뽑고
오작득창烏鵲得槍
오작은 창을 얻다
구경하던 황금충 중에는 반딧불이가 적지 않았다. 형천의 손에 잡힌 도끼가 무처럼 쑥 뽑히자 반딧벌레들이 오색찬연한 빛을 밝게 뿜으며 허공에서 춤을 췄다.
그냥 기쁨의 춤이 아니라 특정 문양을 그려 천하의 황금충에게 반고부가 뽑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건 우리의 작은 성읩니다."
셋을 안내한 황금충이 갈색 갑옷 한 벌을 형천에게 줬다. 아주 대단한 법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하게 굴러다니는 싸구려도 아니었다.
갑옷을 입고 투구까지 쓰니 형천도 꽤 볼만한 모습이 되었다. 셋은 황금충의 안내를 받아 실패한 요괴들과 다른 경로로 내려왔다.
"저리로 가자."
오작이 앞장서고 치우와 형천이 뒤를 따랐다. 빠르게 달린 셋은 소오와 약속한 지점에 도착했다.
"부탁할 게 하나 있습니다."
오작의 말에 소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형천이 반고부를 뽑았습니다."
소오의 눈이 커다래졌다. 반고개천부에 얽힌 사연을 모르는 소오지만, 이런 큰일이 생기면 꼭 그에 걸맞은 사건이 벌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 다음 목적지는 북망산입니다. 소오께선 그리로 갈 수 없다고 했으니 형천과 함께 영지로 갔으면 합니다. 영지에서 지내면 필요할 때 여기 치우가 부를 수 있잖습니까."
오작의 말에 소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면 치우의 소환으로 북망산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정상적인 경로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늘 궁금했는데, 이번 기회에 호기심을 풀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되었다.
"형천. 넌 영지로 가서 열심히 수련해라. 구엽금련을 피워서 영생과를 얻고, 그 방패와 도끼를 잘 길들여라. 법보는 그냥 얻는다고 끝이 아니다. 그리고 강한 법보보다는 자신과 맞는 법보가 더 세다. 도끼만 아끼지 말고 방패도 갑옷도 똑같이 대하거라."
형천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적표노한테 복수할 길이 까마득했는데, 치우와 오작의 거듭된 도움으로 점점 목표가 가깝게 보인다.
"위험한 상황이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복수는 못 하더라도 은혜는 꼭 갚아야겠습니다."
셋은 짧은 작별을 끝으로 헤어졌다. 다행히 이번엔 형천만 울고 치우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형천과 소오를 풍령으로 떠나보낸 오작과 치우는 다시 행상촌으로 돌아갔다. 객잔에서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실감 났다.
"형천이 나보다 더 세지는 건 아니겠지?"
"네가 계속 게으름을 피우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진짜 반고가 썼던 도끼가 맞으면 등급이 어떻게 되지?"
"선천영보 중에서도 앞에 고古를 붙인 최상 등급이겠지."
등급이 낮은 법보는 오래되면 법력이 흩어지며 위력이 약화한다. 그러나 선천영보를 비롯한 요마화보 이상 등급의 법보는 대부분 오랠수록 강하다.
"내가 그냥 뽑을 걸 그랬어."
치우의 말에 오작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럼 네 인연을 놓칠 거야. 욕심을 안 부린 건 참 잘한 일이다."
칭찬을 받은 치우는 싱글벙글 기뻐하며 반고부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털어냈다.
"인간, 큰일을 했더군. 감사의 의미로 도하주 가격을 좀 깎아주지."
법보를 사고 도하주 의뢰를 받았던 황금충이 활짝 핀 얼굴로 둘을 반겼다.
"그것참 고맙군. 내게 알맞은 무기를 의뢰한다. 내가 생각한 건 대충 이런 형태야."
오작은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탁자에 그림을 그렸다.
물로 대충 그렸는데도 마치 실물을 눈앞에 두고 보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림을 뚫어지라 바라본 황금충은 더듬이를 뻗어 오작의 손을 살폈다.
"음, 대단하군. 우리 황금충과 안목이 비슷해. 조금만 바꾸면 되겠어."
"어떻게 바꿀 건데?"
"작은 창날이 여럿이잖아. 그럼 찌르기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어. 대신 밖에 날을 세우면 창날도 가볍고 저항도 줄어서 정확도가 오를 거야."
오작이 설계한 건 화첨창이었다. 일반 창처럼 창날이 하나인 게 아니라 작은 창날 여럿이 꽃을 이룬 모양이다.
관일회선창 초식에 매우 알맞은 형태로, 곡선 찌르기인 관일홍보다는 직선 찌르기인 회선창이 더 편한 오작에게 알맞다.
거기에 황금충의 제안을 받아들여 날을 세워 다인화첨창이 되었다.
"특별한 요구가 있어? 원하는 법술이라든지."
"아니. 법술은 섞지 말고 최대한 단단하게 만들면 돼."
오작은 풍괴 영지에서 얻은 재물과 황금까지 전부 내놨다.
"그럼 최고로 좋은 재료로 만들게. 도하주랑 함께 주면 되겠지?"
법술을 안 섞는 거여서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치우와 오작은 이틀을 객잔에서 지냈다. 밖을 돌아다니면 가끔 형천의 일행임을 알아보고 시비를 거는 요괴가 있었다. 치우가 주먹으로 알아듣게 잘 타일렀지만, 주목받기 싫어서 외출을 자제하기로 했다.
황금충이 말한 이틀이 되어 오작과 치우는 의뢰한 물건 가지러 갔다. 도끼를 욕심내고 찾아왔던 어중이떠중이들이 떠난 행상촌은 이틀 전보다 훨씬 한적했다.
"자루는 곤륜에서 나는 흑정강黑精鋼으로 만들었고 날은 북해의 한철寒鐵로 만들었다. 그리고 투명은透明銀을 섞었어. 처음부터 하나로 녹여서 두드려 만든 거기에 접합부는 없다."
창을 받은 오작은 내심 감탄했다.
무기는 물론이고 모든 사물엔 균형점이 존재한다. 균형점과 가까울수록 해당 사물은 안정적이다.
창이나 몽둥이를 비롯한 긴 무기는 균형점보다 균형 범위가 더 중요하다. 균형 범위는 손으로 잡았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 부분을 말한다.
법보인 홍영창도 균형 범위가 그리 넓지 않다. 균형 범위를 벗어난 곳을 잡았을 때 손목과 팔 그리고 몸에 꽤 큰 부하를 준다.
그런데 황금충들이 만든 화첨창은 균형 범위가 엄청 넓었다. 심지어 창 자루의 끝을 잡아도 몸에 큰 부담이 없었다.
게다가 여러 금속을 섞어 단조 기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만드는 과정에 특정 금속을 한쪽으로 몰아버리는 건 몹시 어려운 기술이다.
황금충들만 아는 기법은 아니지만, 고작 이틀 만에 이렇게 훌륭한 창을 만들 수 있는 존재는 흔하지 않다.
"서로 상성이 좋은 금속만 골랐다. 큰 알갱이 중에서 가장 든든한 놈과 중간 알갱이 중에서 가장 질긴 놈 그리고 작은 알갱이 중에서 가장 끈적한 놈을 섞었지. 그리고 자체로 회복하는 특성이 있어. 투명은을 좀 많이 섞었거든."
법술을 심으려면 안이든 밖이든 주문을 새겨야 한다. 주문을 그리는 금속은 대부분 무르기에 무기의 단단함을 희생하게 된다.
그러나 오작의 창은 법술을 안 새겨 단단함은 최상으로 유지한 주제에 투명은 덕분에 자체로 손상을 회복하는 기능까지 있다.
비록 법술을 새긴 무기보단 한없이 느리겠지만, 그래도 자주 수리하고 손질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꽤 유용하다.
"그래, 마음에 참 들어. 도하주도 준비됐겠지?"
"그럼."
도하주는 황금색 작은 배였다. 진짜로 타고 다니는 배가 아니라 몸에 지니면 북망산을 막는 결계를 통과할 수 있다.
"근데 북망산은 어떻게 찾지?"
북망산의 위치는 오작도 모른다. 봉래도와 마찬가지로 북망산은 늘 위치를 옮기는데,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는 봉래도와 달리 북망산은 갑자기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다.
"도하주가 늘 북망산이 있는 곳을 가리킬 거야. 방향만 비슷하게 가리키고 거리는 알려주지 않으니까 자주 확인해. 도하주가 갑자기 사라지면 도둑맞았거나 북망산의 결계를 통과한 거니까 정신 차리고."
오작과 치우는 도하주를 줄로 묶어 목에 건 후 바로 행상촌을 떠났다. 그리고 밤이 어두울 때까지 도하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쉬자. 괜히 지친 상태로 북망산에 들어갔다가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오작의 말에 치우는 주변을 살펴 노숙하기 좋은 자리를 찾았다.
"형, 근데 북망산은 왜 움직여?"
"옛날에 인간은 수십 개 등급으로 나뉘었어. 자신들을 가장 존귀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북망산에 살았지. 이들은 결계를 만들어 천한 자들이 못 들어오게 했고, 북망산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쉽게 못 찾게 했어."
치우는 잠자리를 정리하다 말고 오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하늘이 벌을 내렸는지 북망산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었어. 사실 북망산뿐이 아니라 그때 수많은 인간과 요괴가 목숨을 잃었지. 글자도 없던 시절이어서 기록은 없지만, 오랜 세월을 산 술사나 요괴들 입을 통해 은밀히 전해졌어."
"사람이 다 죽었는데 북망산은 왜 계속 움직이는데?"
"그건 나도 들은 거 없어. 근거도 없이 내가 한 추측이긴 한데, 결계 때문에 죽은 자들이 삼계윤회환으로 못 들어가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죽은 지 오래되어 백은 다 흩어졌겠지만, 혼은 여전히 남을 수 있잖아. 무공을 다루는 재능은 백에서 오고 법술을 다루는 힘은 혼에서 온다고 했으니, 혼들의 힘만으로 북망산을 움직일 수 있을 거야."
치우는 잠자리를 고르게 정리한 후 먹거리를 사냥했다. 겨울 준비로 동물들도 분주한 덕분에 사냥감이 널려서 어렵지 않았다.
"형, 근데 왜 사람들은 북망산에 가려고 하지? 도하주 꽤 비싸잖아."
"운이 좋으면 고대의 법보를 얻을 수 있으니까. 대부분 법보는 세월의 흐름에 씻겨 사라졌겠지만, 진짜 대단한 법보는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을 거 아니야."
치우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잠들기 전까지 북망산에 관한 질문을 계속 던졌다. 오작은 자신이 들은 것과 추측을 섞어 최대한 답을 줬다.
그리고 아침에 개운한 정신으로 깨어난 오작과 치우는 험한 욕지거리를 뱉어야 했다. 어제 힘겹게 남쪽으로 하루 달렸는데, 북망산의 위치가 북쪽으로 바뀌었다.
"재수 없으면 평생 뛰어다니다가 말겠어."
"법술을 펼치는 덴 법력이 필요해. 북망산의 위치를 옮기는 법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닐 테니 그렇게 자주 이동하진 않을 거야."
북을 가리키던 둘의 발꿈치가 남쪽을 향했다. 발꿈치로 남쪽을 걷어차며 부지런히 뛴 오작과 치우는 다행히 북망산이 이동하기 전에 찾아냈다.
"치우야, 손잡아."
대부분 사람은 도하주가 가리키는 대로 가다가 엉겁결에 북망산에 들어간다. 그러나 절대감을 얻은 오작은 결계를 감지하여 정확히 경계에 멈췄다.
"형,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치우는 오작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벌이자 조금 두려웠다.
"느낌이 이상해. 이대로 들어가면 우리가 흩어질 거 같단 말이지."
오작과 치우는 손을 꼭 마주 잡고 결계를 통과했다.
"제길. 이런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더라."
오작은 손에 작은 온기만 남기고 사라진 치우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며 작게 투덜댔다.
[적.]
[적이다.]
[죽여라.]
허파에 구멍 난 놈이 낸 것 같은 음산한 소리의 주인은 검게 썩은 해골들이었다. 검게 썩은 주제에 반짝이는 갑옷과 투구에 날카롭게 벼려진 무기까지 들고 오작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왔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처음부터 주변에 있었다면 오작의 감각을 벗어나지 못했을 거다. 그러나 꾸역꾸역 몰려오는 해골들의 출처는 눈으로 보는 지금도 알 수 없었다.
'대규모 소환술이라면 법력의 움직임을 못 느꼈을 리 없는데.'
해골 전사들이 소환물이라면 대처법이 다르다. 쓸데없이 이놈들한테 힘을 빼기보단 소환한 술사를 찾아내 처치해야 한다. 법력이 마르지 않는 한 해골은 계속 나타날 거고, 오작이 먼저 지쳐 쓰러질 가능성이 크다.
'일단 힘을 아끼면서 상황부터 파악하자.'
소매에서 화첨창을 꺼낸 오작은 청각에 특히 집중했다. 치우도 비슷한 처지라면 아마 벌써 싸움을 시작했을 것이다. 치우의 성격에 조용히 싸우진 않을 테니 근처에 있다면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작은 치우에 대한 걱정은 일단 한쪽으로 접어두고 자신을 포위한 해골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좋은 선택이었어.'
관일홍은 요해가 존재하는 적을 적은 힘으로 쉽게 해결하는 초식이다. 관일회선창은 사람보다는 갑옷이나 방패 등을 부수는 데 치중했다.
오작은 공교롭게도 회선창을 펼치는 데 적합한 창을 만들었고, 관일홍보단 회선창을 더 쉽게 펼쳤다.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해골들을 처리했다. 그러나 부서진 해골도 시간이 흐르면 절로 조합되어 다시 덤볐다.
'움직이자.'
어디서 오는지 몰라도 오작을 덮치는 해골의 행렬은 늘기만 했다. 오작은 제자리에서 버티지 않고 움직이며 살길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해골을 공격하는 것보단 갑옷과 투구 그리고 무기를 부수는 데 열중했다. 곱게 가루를 내도 다시 조합되는 해골과 달리 부서진 무기와 갑옷은 복구되지 않았다.
"으하하. 오랜만에 피 끓게 하는 적수가 나타났구나."
오작은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뒤구르기를 펼쳤다. 원래 있던 자리에 거미 이빨을 닮은 창이 박히며 먼지를 풀썩 일으켰다.
오작이 있던 자리에 나타나서 창을 회수한 건 하얀 해골이었다. 다른 해골들과 달리 투구도 갑옷도 없었다. 대신 구멍이 숭숭 뚫린 붉은 장포를 입었고, 발에 가죽 신발을 신었다.
"내 창은 무명소졸을 베지 않는다. 네 이름을 대라."
- 작가의말
치우에 이어 오작도 무기를 얻었습니다. 더 큰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둘 다 슬슬 강해져야 할 타이밍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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