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급법보無量級法寶
천강마환天剛魔丸
천강마환도와
무극멸천無極滅天
무극멸천창
"허, 상상을 뛰어넘는구나."
주문을 마친 청룡이 놀라움이 가득 담긴 탄성을 질렀다. 소리에 담긴 기운이 만만치 않아 오작과 치우의 속이 폭풍우를 맞이한 바다처럼 뒤집혔다.
"미안하구나. 무량급 법보는 처음이라 내가 자제하지 못했다."
천계에서도 신으로 불리는 청룡이다. 비록 구망의 육신을 입고 있다지만, 신성과 위엄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는 절제하여 오작과 치우한테 피해를 주지 않았으나 등급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는 무량급의 법보가 탄생하자 그만 기운이 풀렸다.
"어떤 법보를 무량급이라고 합니까?"
"세 가지를 만족하면 무량급이라고 한다. 탄생이 어려운지, 능력이 강한지, 잠재력에 한계가 없는지."
치우가 자루에 손을 대자 천강도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은 천강마환도다."
태극보인과 합친 천강도는 등급 측정이 어렵다는 무량급 법보다. 그러나 치우와의 인연이 얕지 않아 주종 계약에 선뜻 동의했다.
"지금 당장은 그렇게 대단한 법보가 아니지만, 네가 하기에 따라 웬만한 선천급 영보보다 강해질 수도 있고 그저 단단하고 공격력만 강한 법보로 남을 수도 있다."
오작은 칼에 정신이 팔린 치우를 대신하여 청룡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
치우는 강해진 칼이 마음에 들어 손에서 놓질 못했다. 천강마환도라는 새 이름을 받은 칼 역시 즐거움에 겨워 윙윙거리며 치우와 의지로 대화했다.
"네게도 선물 하나 주고 싶구나."
말을 마친 청룡이 주문을 중얼중얼 외웠다. 오작은 토막토막 들리는 주문을 분석하여 소환술 계열이라고 판단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문을 마치자 익숙한 모습의 새 두 마리가 청룡 앞에 나타났다.
"제길, 누구야!"
화를 버럭 내던 현작이 청룡을 발견하고 소오 뒤로 숨었다.
"천계에 가서 청룡이 됐다더니 너도 쫓겨났어?"
소오의 질문에 청룡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채 정리하지 못한 인연을 끝내러 왔을 뿐이다."
소오와 현작은 강제 소환술에 힘을 합쳐 저항했다. 그러나 청룡의 힘과 경지에 밀려 결국 끌려왔다. 대판 싸울 준비를 했는데 소환자인 청룡이 적의를 보이지 않고 오작과 치우도 멀쩡해 보였다.
"우릴 왜 불렀지?"
"수명이 얼마 안 남은 너희한테 제안이 있다."
소오가 하얀 눈알을 또르르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이래 봤자 법보가 되게 해주겠다는 건데. 그건 네 능력으로도 어려울 거야."
소오와 현작은 까마귀와 까치로 태어났다. 법보가 되려면 육체를 둘의 경지에 알맞게 단련해야 하는데, 삼계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태산이 모두 금으로 바뀌고, 그걸 전부 먹어 성장하더라도 육체는 둘의 경지에 한참 못 미친다.
"네 창을 꺼내라."
청룡의 말에 오작은 화첨창을 꺼냈다.
"투명은에 액체금까지? 그래도 우리를 담기엔 한참 부족해."
소오의 말에 현작도 커다란 머리를 끄덕였다. 비록 싸움밖에 모르는 바보지만, 경지가 하도 높아 어느 정도 상식은 갖추고 있다.
"이것까지 합치면?"
청룡은 이마에 달린 뾰족한 뿔을 손으로 잡아 쑥 당겼다. 약 팔 척 정도 길이의 뿔이 청룡의 손에 들렸다.
"설마?"
소오가 놀라움을 참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맞아. 뇌각창雷角槍이다."
청룡은 오작의 손에 들린 창을 갖다가 뇌각창과 합쳤다. 천강도와 태극보인을 합칠 땐 열 시진(20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화첨창과 뇌각창의 결합은 일각이면 되었다.
이는 태극보인과 천강도의 수준 차이가 너무 컸고 태극보인의 귀화가 협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화첨창은 투명은과 액체금 덕분에 단단함이 부족하지 않고 훨씬 강한 뇌각창은 청룡이 자신의 뿔로 만든 법보이기에 아주 고분고분했다.
그래서 화첨창과 뇌각창의 결합은 매우 쉬웠다.
"이젠 너희 둘이 깃들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다."
"잠깐. 오작과 대화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
소오는 청룡의 동의를 기다리지 않고 결계를 쳤다. 결계는 오작과 소오의 모습은 물론이고 소리도 밖으로 퍼지지 않게 감춰줬다.
"법보가 되면 너랑 대화할 수 없다. 그래서 꼭 필요한 얘기를 전하려고 한다."
소오와 현작은 합체자폭기로 서왕모를 겁준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나 실제로 자폭할 각오로 합체를 준비했기에 기운의 손실이 심했다.
"형천이 소소라는 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너희가 계속 나타나지 않으니 둘이 찾으러 간다고 풍령을 떠났다. 나랑 현작은 풍령에 계속 있다가 소소의 편익조를 받고 금계산으로 갔다. 그런데 그게 함정이었다."
소소와 형천은 조공명 일행한테 잡혔다. 조공명의 협박에 소소는 치우와 오작한테 편익조를 보낸다고 거짓말하고 소오와 현작한테 보냈다.
소오와 현작은 소소의 편익조를 받고 금계산에 갔다가 조공명이 판 함정에 걸려들었다.
"다행히 현작이 조공명을 견제하는 사이에 내가 소소와 형천을 구했다. 둘이 사라진 걸 확인한 후 나와 현작도 도망쳤다. 그 과정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수명이 백 년도 안 남았다."
"저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내가 한 선택은 내가 책임진다. 나나 현작의 선택까지 네가 책임지려 하지 마라."
소오의 꾸짖음에 오작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태극구랑 대화하면서 들은 무극에 관한 깨달음이다. 맞는 건지 판단이 가진 않지만, 이건 너한테 꼭 전해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더구나."
오작이 깨달은 무극은 음양태극을 부정하는 거에서 시작했다. 태양과 태음이 되지 못한 극양과 극음을 태극이라고 부른다고 여기며, 순음과 순양이 존재하려면 음양을 서로 전환하게 하는 극이 사라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태양과 태음이 가까이 가면 어떻게 될까?"
오작은 대답을 못 하고 멍한 표정으로 소오를 바라보기만 했다.
"네가 직접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촉박하구나. 태극구가 깨달은 무극은 이러하다."
태양과 태음은 멀리 떨어져 있다. 태양은 음의 기운을 부단히 배척하는 거로 순양을 향해 전진한다. 그러나 양이 극에 달하면 음으로 변하기에 순양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
"태양과 태음이 가까워지면 둘이 서로 싸우느라 양이 음이 되고 음이 양이 될 여력이 없다. 그렇게 태양과 태음이 일정 거리를 두고 균형을 이루는 걸 태극이라고 한다."
태양은 음의 기운을 만들지 않고 태음은 양의 기운을 만들지 않는 상태를 태극이라고 한다. 둘 사이 거리는 태양과 태음의 기운 크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태양과 태음이 완전히 겹쳤을 때, 태양이 만든 음의 기운은 바로 태음의 것이 되고, 태음이 만든 양의 기운은 바로 태양의 것이 된다. 즉 태양은 순양이 되고 태음은 순음이 되는 거다. 이렇듯 음과 양이 하나가 되면서도 구분되는 상태를 무극이라고 한다."
태극구의 결론을 오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극에 다가가는 방식은 오작의 것과 완전 반대였다.
오작은 태양과 태음으로 태극을 부정하며 무극을 끌어냈지만, 태극구는 태양과 태음을 통해 무극을 이뤄냈다.
"그리고 네 진명도 알려줘야지. 자단이 조공명 손에 들어가면 넌 영원히 진명을 못 찾을지도 모른다."
"잠시만요."
오작이 소오를 제지했다.
"진명은 말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통합절대감이 지금은 진명을 모르는 게 낫다고 강하게 속삭였다.
"그래. 너도 지혜로운 아이니까 생각이 있겠지."
말을 마친 소오는 결계를 해제했다.
"그럼 우린 창에 들어간다."
현작은 호전적인 성격답게 여러 창날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작은 창날이 꽃잎처럼 일정 간격으로 배치된 게 화첨창의 이름 유래인데, 현작이 그 가운데로 가서 길고 뾰족한 창날이 되었다.
소오는 창날과 창대 사이로 가서 하얀 수술이 되었다. 오작이 창을 든 채 법술을 펼친다면 수술이 증폭 작용을 해줄 것이다. 설영의 빙령도와 비교해 증폭 능력이 어떨지 모르지만, 소오의 경지와 지혜조라는 호칭을 생각하면 넘으면 넘었지 모자라지 않을 것 같았다.
"괴재怪哉로다. 하루에 무량급 법보를 둘이나 보다니."
소오나 현작이나 삼계로 추방당해 새가 되면서 갖춘 힘은 크게 줄었지만, 경지 자체는 그대로였다. 덕분에 창과 결합하는 데 굳이 청룡의 도움이 필요치 않았다.
"천계에도 귀한가 봅니다."
"아무리 능력이 대단해도 인연이 닿지 않으면 평생 볼 수 없는 게 무량급 법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잠재력이 커서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르지만, 주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법보도 어중간해진다."
오작의 손에 닿은 창이 밝은 빛을 뿜어냈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무극멸천창이다."
창이 윙윙 울며 기쁜 소리를 냈다. 오작 역시 창을 손으로 연신 쓰다듬으며 의지로 교류했다. 재능을 타고나 바로 칼과 교류하는 치우와 달리, 오작과 창은 상대의 뜻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너도 내 보상이 과했음을 알 것이다. 그 이유는 둘 있다. 하나는 내 자식을 꼭 찾아내 독에 물든 여의주를 건네주길 바라는 거고, 남은 하나는 곧 큰 위험이 너희한테 닥치기 때문이다. 남은 얘긴 이 아이한테서 들어라."
거대한 상실감이 덮쳐왔다. 강대한 존재가 삼계를 떠나면서 생긴 공백이 불러온 공허감의 여파였다.
거리가 멀면 괜찮았을 텐데, 오작은 하필 천일도에 있고 통합절대감으로 누구보다 예민했다.
다행히 구망의 쿨럭거리는 기침 소리가 오작을 괴롭히던 상실감을 쫓아냈다.
"너희 둘은 어서 도망가거라."
목청을 가다듬은 구망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할아버지. 이번엔 같이 가자."
"아니야. 난 목숨이 며칠 안 남았다. 강신 후유증으로 나흘도 버티기 힘들 것 같다. 게다가 곧 봉래도의 무리가 도착할 거다."
그제야 약해질 대로 약해진 구망의 상태를 알아차린 치우가 눈물을 흘렸다. 몸 상태가 웬만했으면 오작한테 떼라도 쓰겠는데, 지금은 청룡이 돌아와도 살리기 힘들어 보였다.
"치우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천계로 간 대단한 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내 남은 목숨 불살라 봉래도의 무리를 잡아둘 테니 어서 멀리 도망가거라."
"아니야. 이제 겨우 만났는데 이렇게 할아버지를 보낼 순 없어."
치우는 슬픈 얼굴로 구망을 바라보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어르신. 제게 진목액이 있습니다."
한 방울로 육체를 삼십 년 젊어지게 하는 절세의 영약이다. 나무의 기운을 강하게 타고난 구망한테는 효과가 훨씬 대단할 것이다.
"으흠. 왜 일찍 얘기하지 않고."
구망은 방금 너무 비장했던 게 부끄러웠다. 치우 역시 황급히 눈물을 닦으며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얼마 마셔야 할지는 어르신이 더 잘 아실 테니 모두 드리겠습니다."
구망은 오작이 건넨 진목액을 받아 입에 조심스럽게 쏟았다. 몇 모금 마신 구망은 구부정하던 허리가 펴지고 얼굴의 주름도 모두 사라졌다.
머리와 수염도 검게 물들었고 온몸에 생명의 기운이 약동했다.
"남은 건 치우 네가 먹어라. 너도 기운이 꽤 쇠약하구나."
청룡은 아주 고명한 방법으로 태극보인을 끄집어낼 때 치우의 기운 손실을 최소로 줄였다. 그러나 단전에 단단히 자리 잡은 태극보인을 꺼내는 데 치우가 마냥 멀쩡할 순 없다.
치우가 모은 기운 자체는 큰 손실이 없지만, 원기로 불리는 생명의 기운은 조금 손상되었다.
"아니야. 할아버지가 더 마셔."
"더 먹어도 소용없다. 내 그릇이 꽉 찼다."
치우는 더 사양하지 않고 남은 진목액을 입에 쏟아부었다. 열다섯을 조금 앞둔 젊은 나이에 진목액을 마신 바람에 치우의 외관은 큰 변화가 없었다.
대신 법력이 흐르는 통로들이 말랑말랑하게 변했다. 큰 기운을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느끼던 문제가 진목액 덕분에 해결되었고, 태극보인과 함께 사라진 기운도 삼 할 정도 복구되었다.
"봉래도에서 금령성모가 온다고 한다. 한 번 싸우고 떠나야겠다."
구망의 말에 오작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이대로 도망가면 봉래도 무리가 계속 쫓아올 것이다. 본때를 한 번 보여줘야 귀찮게 안 한다.
게다가 조공명 무리의 방해를 물리치고 자단을 구해야 한다. 봉래도에서 오는 자들까지 꽁무니에 달고 금계산으로 갈 순 없다.
"소양궁에서 싸우자. 빠르고 확실하게 이기면서도 우리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어차피 버리고 떠날 섬인데 아껴서 뭐 하랴."
청룡 덕분에 구망의 몸이 진화했다. 그러나 법술에 적합하게 변한 몸은 주인이 다시 구망으로 바뀌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오작이 구한 진목액을 복용하며 구망은 청룡이 진화시킨 몸을 최대한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구망의 법술 이해와 섬세한 운기 능력은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으로 얻은 것이다. 뼈를 깎는 노력을 거쳤기에 몸을 돌려받은 후 아주 빠르게 감각을 되찾았다.
게다가 법력도 청제 부럽지 않을 정도로 늘었다. 평소 싸움을 즐기지 않는 구망이건만, 청룡이 말한 봉래도의 금령성모가 빨리 왔으면 싶었다.
오작과 치우 역시 새롭게 태어난 무기를 잡고 어서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 작가의말
치우와 오작이 성장형 무기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이젠 썰어버릴 일만 남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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