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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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20.03.09 00:15
최근연재일 :
2022.05.27 17:16
연재수 :
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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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5,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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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1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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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3.대륙.(2)

DUMMY

세이는 언니의 답이 이해가 갈 듯하면서도 가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유리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세이를 그저 박박 씻기기만 할 뿐이었다.


“자, 나가 있어. 언니도 씻게.”

“응.”


대강 마른 옷을 걸친 세이가 욕실로 나오자 침대에 기대있던 하셀이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이리 와.”


하셀의 말에 세이는 쪼르르 달려가 하셀의 다리 사이에 폴짝 앉았다. 집에서도 그렇듯이 하셀은 수건으로 세이의 머리와 꼬리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오빠.”

“왜?”

“노예가 뭐냐고 언니한테 물어보니까 되게 슬픈 말이래.”


하셀은 픽 웃었다. 안 그렇게 생겨서 마음 약하긴. 분명히 어린 동생이 마음 다칠까 봐 차마 제대로 설명을 못 했던 모양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

“정확히 무슨 뜻인데?”

“너랑 나같이 생긴 놈들은 우리 집 아니면 이 땅에서는 좆같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


오빠의 험한 말에 세이는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언니는 너무 돌려 말하고 오빠는 너무 세게 말한다. 하셀은 그런 세이의 반응에 수건으로 세이의 머리를 박박 문질렀다.


“네가 먹고, 자고, 일하고, 말하고 하는 것들, 모두 네가 결정할 수 없어.  누가 너를 때려도 아무런 항변도 반항도 못 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오로지 주인의 명령으로 인해서 하는 거야. 네가 움직이지 못할 만큼 아파도, 그래도 너는 맞아가면서라도 움직여야 해. 네 몸이, 네 것이 아닌 존재를 뜻하는 말이 노예야.”


거칠게 머리를 말려주는 손길과 다르게 목소리는 담담했다. 세이는 그런 오빠의 설명에 무언지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오빠와 언니가 뭔가를 시켜서 억지로 할 때도 짜증이 나고 힘들어서 매일같이 싸우고 그랬는데, 그런 상태로 평생 살아야 한다는 뜻일 테다.


“그런데······. 왜 우리 야수족이 노예여야 해?”

“약하니까?”

“오빠는 강하잖아.”


사냥도 잘하고 유배지의 섬에서 괜한 시비를 걸던 인간족 아저씨 몇 따위는 그냥 때려 넘길 수도 있는 오빠다. 자신도 아직 어려 약하지만 조금만 더 크면 웬만한 인간과 싸워 지지 않을 자신도 있다. 심지어 지금도 힘을 쓰는 일에는 언니 못지않다. 하셀은 세이의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몰라, 인마.”


그것은 자신도 정말 몰랐다. 그 시절, 왜 자신은 이렇게 고통스러워만 하는지  울분을 토해내고, 화를 내고, 결국 도망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왜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자신과 같이 생긴 사람은 왜 목에 쇠사슬을 차고 죽을 때까지 서로 싸워야 했는지, 질문을 던져 본 적 없었고, 답을 찾아본 적 없었다.


“치이.”


그저 의문에 답을 얻지 못한 게 불만이고, 고통받은 어린 시절 따위는 없는 어린 동생이 맑은 눈으로 투덜거린다. 처음 듣는 단어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지만, 겪어 보지 못한 어떤 상황에 대해 얼마큼 상상할 수 있을까. 새삼 부모님과 유리가 왜 세이를 유독 챙기고 어르고 달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좋은 것만 보렴, 너는 행복하기만 하렴, 그런 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구나.


이런 네 모습이 부러워서 배가 아픈 것은 내가 속이 꼬이고 약해서 그런 것이겠지.


하셀이 세이를 다 말려주었을 때 즈음 유리도 욕실에서 나왔다. 이제 하셀이 씻으러 갈 차례였다.


“오빠, 오빠 씻는 동안 나 밖에 가서 물가 좀 보고 올게. 살 거 있으면 사고.”

“아, 그래.”

“언니, 나도, 나도.”


세이가 쪼로록 따라붙자 하셀이 목덜미를 붙들어 올렸다.


“유리 놀러 가는 거 아냐. 여기 있어.”

“그치만.”


대롱대롱 매달린 동생을 향해 하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그 단어에 놀라고 두려운 것은 잠깐인 것이다.


“너 나가서 까딱 잘못 잡혀서 노예 될래?”

“······.”


둘의 대화에 유리가 픽 웃었다. 세이가 얌전해진 걸 보니 아무래도 오빠가 제대로 설명해준 모양이다.


“세이. 여기서 언니 기다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통신으로 설명해줄 테니까, 오빠한테 잘 전달해야 해. 네 역할이 커. 알았지?”


역할이란 말에 세이의 눈이 반짝였다. 매달린 채로도 응, 하고 두 손 번쩍 들고 잘도 대답한다.


“오빠, 나갔다 온다.”

“알았어.”


세이에게 방문을 꼭 잠그라고 말하고, 유리는 여관 밖으로 나왔다. 항구 도시 특유의 복잡함과 짭짤한 바닷바람을 맡으며 유리는 시장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알고 보면 눈에 보인다고 했던가. 아니면 여관을 찾는 데만 주력해서 보이지 않았던가. 곳곳에 야수족이 보였다. 팔이나 다리에 혹은 목에 노예의 인장을 찬 채로 돌아다니는 노예들. 유리는 멍하니 그런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네들 중에는 무표정한 이도 있었고 웃고 있는 이도 있었다. 노예의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닐 텐데, 그래도 웃을 일이 살다 보면 생기는 걸까.


-나, 도망 노예 출신이잖아.


유리는 가만히 몸을 웅크리고 걸었다. 오빠는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말해준 적이 없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야 이 새끼야!”


갑작스러운 소리에 유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기, 누군가가 노예 하나에게 욕설을 하며 발길질을 했다. 노예는 굽실거리며 바닥에 뒹구는 짐을 챙겨 어깨에 올렸다. 그때까지도 주인으로 보이는 이는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유리는 주먹을 꾹 쥐었다.


오빠도 저렇게 살았을까. 처음 집에 왔을 때 오빠도 어린 소년이었는데.


유리는 그 광경을 보며 지나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할 마음도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 뿐.


“오세요! 쌉니다!”

“여기, 오늘 들어온 생선이요!”


어느덧 시장이 있는 길에 들어섰고 유리는 지금까지 생각하던 것을 지우고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물건값이 쓰인 종이를 살펴봤다. 다행히도 뭍의 물가는 섬보다 쌌다. 유배지의 섬의 경제는 한 달에 한 번 오는 배와 자급자족으로 이루어진다. 공용 화폐를 쓰긴 쓰지만, 화폐보다는 식량을 기준으로 물물 교환이 더 성행한다. 엄마의 눈물로 만든 진주를 화폐를 바꾼 것도  배와 거래를 하는 장사꾼과 한 것이다. 정확한 가격을 알 수 없어서, 그리고 바닷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진주라고 거짓말한 것이기에. 유리는 일단 뭍에서 쓸 화폐와 진주의 정확한 가치를 알기 위해 보석상부터 들리기로 했다.


“어서오십쇼?”


유리의 초라한 입성에 보석상 주인의 인사가 어쩐지 의문형으로 끝나있다. 아까 여관에서는 익숙함과 당황에 이게 어떤 반응인지 몰랐으나, 목욕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게 무슨 반응인지 이제 이해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보석상에서는 약하게 보이면 안 된다고 고레이에게 사전에 이야기를 들은바, 유리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주인 앞에 나섰다.


“뭐 팔러 오셨수?”


누가 봐도 살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주인의 말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우리는 말 없이 따로 빼두었던 엄마의 진주 하나를 내밀었다. 반짝, 유리는 순간 보석상의 눈이 빛났다가 가라앉은 것을 보았다.


“크흠, 진주 따위야 바닷가에서 흔한 것을.”

“설마요. 바닷속에서 주우면 나온다고 진주가 흔한 것이면 광산에서 캐면 나오는 보석도 흔한 것일 텐데요.”

“젊은 아가씨가 뭘 몰라서 하는 소리인데, 진주는 다른 보석보다 가치가 높지는 않아요.”

“이 진주가 그렇게 가치가 없을까요? 이 명도랑 채도를 보면······.”


보석상은 이를 물었다. 이거, 후려치려고 했더니 만만치 않구나. 유리는 고레이에게 받았던 가르침을 바탕으로 보석상과 협상을 시작했다.




***



“어휴, 다행이다.”


유리는 유배지의 섬에서 팔았던 것보다 2배는 높은 가격으로 보석 하나를 팔았다. 당분간의 여비로 괜찮을 것 같았다. 이게 제대로 받았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중에 조금 더 사정을 잘 알게 되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겠지.


유리는 든든해진 지갑을 뿌듯한 마음으로 두드리며 급하게 쓸 물건 몇 개를 사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옷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가지고 온 짐에 옷은 거의 없었다. 돌아다니는데 큰 짐이 될 것이라 봐서.


“로브를 살까······.”


머리와 온몸을 가리는 옷. 하셀과 세이의 꼬리와 눈을 가릴 수 있는. 그런 옷을 입히면 사람들에게 노예라는 취급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유리는 옷가게 들어서려다가 멈칫했다.


둘의 의견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본인들이 타고나고, 또한 그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은 신체적인 특성을 가리게 할 권한이 제게 있던가. 둘의 꼬리와 귀는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그런 마음 한편, 또 현실적인 문제는 여전히 앞에 남아있다. 어디서 보내는 못난 시선이야 무시한다 치지만, 괜한 시비에 걸리면 여정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으음.”


오빠야 어떤 식이 되든 자기 한 몸 지킬 이상은 되니까 귀와 꼬리가 보여도 괜찮은데, 아직 어린 세이는 괜히 납치라도 당하거나 한다면. 작은 거라도 하나 사둘까. 유리는 옷가게 앞에서 서성이다 결국, 걸음을 옮겼다. 의논해서 결정해야지 뭐, 혼자 생각해봤자 혼자 생각이지.


“어이, 아가씨.”


여관으로 가는 골목을 지나치는 순간,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유리를 불렀고 유리는 뒤돌아보았다.


“읍, 읍.”


그때 입이 턱 막히고 좁은 뒷골목으로 바로 끌려갔다. 부지불식간 입을 가리고 끌려가는 바람에 유리는 속절없이 끌려갔다. 발을 구르며 반항을 해봤지만, 아무도 듣지 못하고 아무도 보지 못했는지 그대로 끌려갔다. 아니, 누군가 보았을 테다. 그러나 자신처럼 눈을 돌리고 제 갈길을 갔을 테다.


“거 되게 팔딱 거리네.”

“젊고 싱싱하다는 뜻이잖아.”


퍽, 사내들이 유리를 뒷골목 허름한 창고 같은 곳에 던졌다. 쿠당탕 바닥을 구른 유리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았다. 서너 명의 사내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우리, 좋은 건 나누어 가져야지.”


얼굴이 악의와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


“큭. 몸을 나누어 가져도 좋고.”


보석상에서 뿌듯한 얼굴로 나와 혼자 걷던 어리고 젊은 여자. 이게 무슨 사태인지 알겠다. 상황 파악을 끝낸 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약한 존재.


노예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언제나 우리는 그와 비슷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우리의 의지가 아닌 일을 억지로 하거나 당할 수 있는 존재는 비단 야수족만이 아닌 것이다.


“······때가 아니었네.”

“응, 아가씨? 뭐라고?”


유리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겁을 내서 살려달라는 비는 소리라고 생각하던 사내는 빈정거리며 귀를 내밀었다.

촤악!

순간 피가 흩뿌려졌다.


“으악!”


사내는 피가 흐르는 귀를 부여잡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유리의 손에는 빛이 나는 단검이 있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고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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