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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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rdap
작품등록일 :
2020.03.09 00:15
최근연재일 :
2022.05.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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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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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3.대륙.(3)

DUMMY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고 이 새끼야.”


유리는 바로 단검을 휘둘렀다. 단검은 보통 문자를 쓰기 위해 들고 다니는 것이지만, 파셀에게서 기본적인 사용법은 익혀둔 터였다. 수련 대상은 파셀과 하셀. 수도에서 꽤 높은 자리의 군인이었다는 파셀과 야수족인 하셀과 맞붙어 배웠던 터라 길거리의 어수룩한 범죄자 하나 정도는 가볍게 상처입힐 수 있었다.


“저, 저년 잡아!”

“웃겨.”


파앗, 이번에는 공중에서 빛이 났다. 거기에 마법까지 더하면. 범죄자가 아니라 군인 서넛도 상대할 수 있다.


“으, 으악, 뭐야!”


파앗! 다시 한번 피가 터졌다. 유리는 교묘하게 눈과 목과 같이 치명적인 부위만 파고들었다. 하나, 둘, 셋, 유리는 속으로 수를 세며 칼을 휘둘렀다. 네 번 이상 칼을 휘두를 것 같으면 도망가는 것이 낫다는 것이 파셀의 가르침이었다. 하나, 둘, 셋, 발걸음과 함께 칼질 한 번에 누군가의 눈이 날아가고, 다시 하나, 둘, 셋, 손짓 한 번에 귀가 터져나갔다.


-공격은 사실 기술과 힘보다는 다른 것을 갖추어야 한다.


오랜 예전, 가문에 갇혀있을 때도, 파셀에게서도 같은 것을 배웠다. 저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 자신만이 오로지 오롯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손끝에 자신도 모르게 묻어나는 양심과 동정으로 자신이 공격당한다.


그들은 왁왁거리는 비명을 질렀지만, 시장의 소란스러움에 비명은 파묻혔다. 아니면, 사람들의 무심함에. 유리는 버러지처럼 쓰러지는 그들을 무심하고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유리 트브, 너는 훌륭한 재원이다.


나, 그리고 가족만 아니라면, 누구도 상관없었다.


“후.”


유리는 쓰러진 그들의 등에 칼을 꽂아 다 죽일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러나 이토록 무심한 도시라 하여도, 죽이는 것은 괜한 원한과 추적자를 따라붙게 할 수 있었다.


“야.”


유리는 제일 먼저 제 입을 막았던 사내의 얼굴을 발로 밟았다. 윽윽, 그는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것을 토해냈다.


“너, 그냥 우리 다시 보지 말자, 알았지?”

“네, 네네······.”


분명히, 제 패거리들을 더 달고 오겠지. 그럼에도 죽여서 더 큰 일 만드는 것보다는 낫다 싶어서. 유리는 얼굴을 찡그렸다. 퍽, 유리는 다시 한번 사내의 얼굴을 짓이겼다. 발밑에서 느껴지는 느낌이 나쁘다. 이런 거, 나쁘게 느끼면 안 되는데.


-저런, 유리, 아프겠구나. 하지만 네가 아픈 만큼 이 토끼도 아프지 않을까?


아버지 때문일까, 아니면 아버지 덕분일까. 유리는 갑자기 머릿속에서 섬의 광경이 밀려와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뒤에 놈들에게 등을 보이지 않으며 골목은 나온 것은 훈련으로 인해 몸에 붙어있는 습관 덕이었다.


“어억.”


유리가 골목에서 나오자 시끌벅적하던 거리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리고 길을 내주며 한쪽으로 조심히 걸었고, 감히 유리의 얼굴을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아까처럼 무심하고 무감하게, 또는 무시하며 지나는 것이 아니라. 유리는 눈을 깜빡였다.


“으아아앙.”


길거리 꼬마가 울음을 터트리고 부모 되어 보이는 이들이 아이를 달래며 유리를 향해 굽신거린다.


“아.”


유리는 멍해졌던 정신이 돌아와 제 아래위를 보았다. 얼굴과 몸 여기저기 피 칠갑이 되어있고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다. 이제는, 이 골목에서 가장 잔인하고 강한 자가 되어버렸다. 그래봤자 공권력이 나서면 다시 약자로 내려설 터인데. 유리는 소매에 단검을 숙이고 손으로 대충 피를 닦아냈다. 그래봤자 피가 닦이는 것이 아니라 번져버리는 바람에 꼴은 더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유리는 몸을 웅크리고 종종걸음을 쳤다.


“아이씨, 목욕 또 해야 하잖아.”


투덜거림을 얹고서는. 유리는 사람들이 곱게 내주는 길을 파고들어 여관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자안에 마법······.”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사내들이 쓰러졌던 골목 담벼락 위에서 몸을 구기고 있던 자는 흥미롭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딱 찾는 사람 그대로가 바로 나타났더라. 거, 누가 보면 짜고 치는 줄 알겠네.”


그는 킬킬 웃으며 골목 저편으로 달아났다.





**




“야, 너 꼴이 그게 뭐야?”


유리가 피범벅이 되어 여관으로 들어오자 하셀은 당연히 벌떡 일어났다. 세이는 다행히도 침대 한쪽에서 잠들어 있어 잠잠했고.


“내가 어설프게 굴어서 그랬어.”

“어디 다쳤어?”


하셀이 심각하게 유리의 아래위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고, 유리는 징글맞다는 듯 오라비를 밀어냈다.


“아냐, 내 피 아냐.”

“아.”


킁킁, 과연 유리의 피 냄새는 아니었다. 유리는 다시 씻을 준비를 하며 말을 이었다.


“진주를 너무 사람 많은 데서 꺼냈었나 봐. 강도.”

“아.”


웃겼다. 죄를 지은 사람만 모아둔 유배자의 섬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을 멀쩡한 사람들이 산다는 뭍에서 겪었다. 무엇이 유죄고, 무엇이 무죄일까. 유리는 욕실에 들어가려다 말고 다시 고개를 내빼고 말했다.


“오빠, 우리 로브 좀 살래?”

“응?”

“그······.”


하셀이 답을 못했던 것은 ‘로브’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었지만 유리는 미안함에 멈칫했다. 그러나 해야 할 말은 해야 하니.


“그, 몸 대부분을 가려주는 옷인데. 나도 그게 되게 싫은데. 더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머뭇머뭇 나오는 유리의 말에 하셀은 피식 웃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들으면 한치도 못 알아듣지 못할 말, 자신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것이 약자와 강자의 차이였다.


“아예 노예의 인장까지 사도 돼.”


하셀은 목을 긁었고 유리는 오라비의 말에 칠색 팔색 짜증을 내며 욕탕으로 들어갔다. 작은 목걸이에 표식을 다는 노예의 인장을 자신도 그녀도 바로 알아들었다는 뜻일 테다. 우리는 서로가 유배자의 섬 밖의 삶을 아는 사람들. 하셀은 고롱고롱 잠이 든 세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이를 다른 가족들에 비해서 애틋하게 대한 적은 없었으나. 이럴 때는 안쓰럽다. 세상으로 나와, 유배자의 섬 밖으로 나와 첨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 너는 약하다, 너는 짓밟혀도 당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라니. 하셀은 세이에게 갖는 자신의 양가적 감정에 버석한 웃음을 흘렸다. 과거의 기억이 없는 너는 영원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딸일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덧 친부모를 찾겠다고 날뛰었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하셀은 어린 동생을 품에 끌어안고 잠시 눈을 감았다.


“여기지?”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었다. 어둑한 밤이 스며들자 창밖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민한 야수족의 귀가 인간이면 듣지 못할 소리를 잡아챘다. 하셀은 옆 침대에서 잠이 든 유리의 발끝을 쳤다. 유리 역시 눈을 번뜩 떴다. 하셀이 턱짓으로 창밖을 가리키자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과 단검을 쓸 준비를 했다. 사람의 귀에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세상. 유리와 하셀은 속으로 수를 셌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콰직-!


나무로 만든 창문이 박살 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창가 침대에 누웠던 유리가 침입자의 어깨에 칼을 꽂았다. 욕이 절로 나왔다. 하나 남았던 깨끗한 옷마저 피칠갑이 되었다. 으악, 소리와 함께 침입자 하나가 창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오빠!”


유리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침입자 하나가 하셀의 검날에 떨어져 나갔다. 우당탕, 하는 소리가 고요한 밤거리에 울린다. 하셀이 다른 침입자를 처리하는 사이에 유리는 세이를 깨워 업었다.


“이 개같은······. 노예만 믿고 날 뛰냐?”


겨우 방 안으로 들어온 침입자 하나가 비명처럼 외치자 잠에서 덜 깬 유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냥 죽여버릴걸, 낮에 만난 놈들. 저런 같잖은 소리를 오빠에게 또 듣게 하다니.


“노예는 쥐뿔, 오빠다, 이 새끼야!”


유리는 소리를 지르며 마법을 펼쳤다. 황금빛 문자가 사방에 퍼져나갔다. 콰다다당! 남은 침입자들이 창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뭐, 뭐야!”

“손님! 뭡니까?”


거리와 여관이 시끌벅적해지자 유리는 짜증을 냈다.


“아, 씨! 갈아입을 옷도 없는데!”

“유리, 가자.”


유리가 짜증을 내든 말든, 하셀은 가방을 들고 창밖으로 뛰어내렸고 유리도 뒤따라 뛰어내렸다. 하셀은 능숙하게 세이를 업은 유리를 받아냈다. 유리는 흔들림 없이 받아낸 하셀의 품에서 바로 뛰쳐 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하셀이 엄호하면 달리기 시작했다.


“낮에 그놈들?”

“아, 응, 그런 것 같아.”


하셀의 물음에 대강 답하며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바닷가를 향해 방향을 잡았다. 고요한 밤거리에 뜀박질이 내는 소란이 퍼져나간다. 불도 안 켜진 어두컴컴한 밤거리인지라 유리와 하셀은 자리를 바꾸었다. 야수족의 눈은 밤에도 빛나기에. 얼마나 달렸을까.


“어이, 거기!”

“미등록 노예잖아!”

“거기, 주인 인장 보이시오!”


성문 근처 경비병의 목소리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뒤에서는 자신을 위협한 깡패 조무래기들, 앞에서는 노예 운운하는 국가 권력. 어느 쪽이든 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거기, 거기! 노예 해방군이 있어서 쫓고 있었소!”


깡패 조무래기 하나가 경비병을 향해 외치자 조금은 느긋하던 경비병의 기색이 달라져 있었다. 창과 검을 내리고 하셀과 유리를 경계했다.


“거기, 멈추어서 주인 인장과 노예 인장을 보여라! 그렇지 않으면 사살이다!”


경비병 중 머리로 보이는 자의 외침에 유리와 하셀은 멈칫했다.


노예 해방군.


사살.


뭍을 떠나 살아왔던 동안, 뭍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작가의말

제가 자유연재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참 늦네요. 같이 달려주시는 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당분간은 이 속도 이상으로 낼 수 없어 송구할 뿐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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