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Audition)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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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진사로
작품등록일 :
2020.03.15 00:30
최근연재일 :
2021.09.08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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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0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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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DUMMY

정완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마지막 말을 했다.


“모레부터 트레이닝 파트에서 너희 엄청 굴린다던데, 고기 많이 먹고 몸보신해라. 이상.”

“저어. PD님!”


정완이 수첩을 덮으려는데 유찬이 손을 번쩍 들었다.


“어. 유찬이 왜?”

“부탁이 있습니다. 나타샤 노래 들려주십시오!”

“와아!”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어휴.”


팀원들이 일제히 박수와 환호성을 울렸고, 은별은 서희의 양 어깨를 잡은 후 앞으로 슥 밀었다.

정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어서서 키보드가 있는 한쪽으로 갔고 서희도 그를 따랐다.

팀원들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유찬은 빈 의자에 제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영상 촬영을 준비했다.


정완과 서희가 나란히 선 자리에 따뜻함이 확 돋아났다.


“잠깐만.”


정완은 서희가 앉아야 할 의자에 앉아 건반을 몇 번 두드리다가 자기 자리로 가며 그녀를 앉혔다.

서희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배시시한 미소가 어렸다.


“저 앉을 자리 차가울까봐 그래요?”

“응.”

“이러면 PD님은 찬 데 두 번 앉잖아요.”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지?”


이 노래의 전주는 왼손 연주로 시작한다. 그래서 서희는 그의 오른손을 제 두 손으로 잡았다.

예린은 손바닥을 얼굴에 대고 손가락 틈새 사이로 연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하트헤르의 지혜가 은별에게 물었다.


“PD님이랑 언니, 여우비 프로듀싱 때는 어땠어요?”

“툭하면 투덕거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서로 좋아하는데 티 안 내려고 둘 다 무지하게 노력했어. 난 다 보였는데.”

“그럼 언니가 얘기하지 그랬어요.”

“PD님한테 얘기했는데 안 들은 걸로 하겠다고 했어. 저분은 우리까지만 하고 음악 그만둘 생각이셨거든.”

“그래서 저분이 캐스팅 오디션 끝나자마자 연락 끊고 잠수해서 서희 언니가 상사병이었어요?”

“응. 그래도 언니가 어떻게 찾아내가지고 속초까지 가서 잡아왔잖아.”


은별은 미소 띤 눈으로 정완과 서희 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완이 자신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회사 안에는 저들과 자신 말고는 아리 부부와 여원뿐이고, 이제 인터넷에서도 정완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서희를 말하지 자신을 말하지는 않는다.


정완은 그렇게 자신을 끝까지 지켜주고 서희에게 갔다.

어쩌면 그가 HAP라는 이름을 쓴 게 자신을 지킴과 동시에 서희를 만나기 위한 첫 준비가 아니었을까.


“두 분 정말 잘 어울리지?”

“그러니까요. 두 분 다 잘생기고 예쁘고, 그냥 그림 같아요.”


왼손 연주가 연습실에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정완은 화음의 코드를 바꿔 가며 연주하다 서희의 손을 놓고 서정적인 전주로 들어갔다.

연습실 밖을 지나던 몇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들었다.





<소녀 나타샤> 작사 : 강서희 / 작곡 : HAP / ‘두 번째 삶의 이유’ OST


(HAP's song)

스무 살의 나.

날씨가 좋아서일까. 처음 와 본 이 도시

신기하여 여기저기 다녀보다 도서관에.


(서희's song)

열여덟 살 나.

날씨가 좋아서일까. 도서관 앞 등나무

어제도 내 마음 아프게 했던 노트를 꺼내.


(HAP's song)

문 안쪽 등나무 아래 파란 원피스

노란 리본에 파란 머리띠, 긴 생머리 소녀가

단정하게 앉아 있어. 그림처럼. 참 예쁘다.


(서희's song)

내가 쓴 글씨마저도 읽지 못하니

가다듬고도 두근대는 맘 쉬이 잡지 못한 채

아직 노트를 펴지도 않았는데 또 아파 와.


(HAP) 슬픈 눈으로 노트를 여는 가는 손끝이 왜 아파 보일까.

(서희) 펼쳐 읽으면 또 아플 글을 나는 자꾸만 왜 보고 싶을까.

(HAP) 저 안에 나처럼 엄마 사진이라도 끼워 있을까.

(서희) 아까 보고팠어도 차마 볼 수 없었던 글씨가 보여.

(HAP) 나도 알고 있었던

(서희) 가슴 아픈 이야기.


(HAP's narration in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간주)


(HAP's song)

가슴에 파도 소리 다가오다 소녀와 눈을 마주치니

나를 바라보는 사람은 내 마음 받아준 너.

그 얼굴에, 하얀 미소와 그림처럼 단정한 모습

그날의 소녀가, 나의 나타샤가, 오늘 내게 오다.


(서희's song)

가슴에 파도 소리 지나가고 고개를 설핏 돌려보니

내가 바라보는 사람은 내 마음속의 그대.

내 손 잡고 곤히 잠든 모습에 절로 미소 짓게 하는

어쩌면 나는 그대를 그날부터 좋아했나요.


그래요. 나 그날부터 꿈을 꿨어요.

흰 당나귀 타고 깊은 산골 가 마가리*에 사는 꿈.

그대의 사랑나무 아래 선 내가 소녀였던 것도

그날부터 내가 그대의 나타샤였기 때문이었나요.


몰랐어요. 우린 이미 오래 전에 만났네요.

그날 우리 좋았다면 지금처럼 행복할까요.


(합창)

우리 함께 하는 노래가 출출이* 울음이며

우리 함께 있는 여기가 마가리이니.

(서희) 고마워요. 너무 늦지 않아서.

(HAP) 산골이든 아니든 뭐 어떨까.

(서희) 이제 가요.

(HAP) 그래. 가자.

우리만의 흰 당나귀를 타고 세상의 마가리로.


우리 함께 하는 노래가 출출이 울음이며

우리 함께 있는 여기가 마가리이니.


* 마가리 : 오막살이

* 출출이 : 뱁새





팀원들은 <소녀 나타샤>를 들으며 얼이 턱 빠졌다.


“와아. 직접 들으니까 진짜 좋다. 장난 아니네.”

“언니가 1절이랑 2절이 달라.”

“저대로 오디션 나가면 다른 참가자들 압살하겠는데?”

“데뷔하셔야 하는 거 아냐?”

“근데 PD님은 왜 굳이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하시는 거죠? 완전 아티스트, 우리랑 비교도 안 되는 아티스트이신데.”

“PD님은 우진이 오빠가 프로듀서 하는 걸 힘들어하니까 하시는 거야. 우진이 오빠보고 순정남녀 활동하고 작곡하면서 세상에 봉사하라고.”

“그래요?”

“저분은 밴드 할 때 안 좋은 일이 많아서 마음을 크게 다치셨어. 보컬리스트로 내가 아는 분 중에 최고지만 노래는 서희 언니 파트너 말고는 안 하실 거야.”


은별의 말에 질문했던 유찬뿐 아니라 다른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가 끝나자 예린이 양 엄지를 치켜들었고, 미란이 손나팔을 입에 대고 외쳤다.


“사랑나무 불러주세요!”

“와아아!”


정완은 표정을 구기려다가 노래하고 싶다는 서희의 말을 듣고 얼굴을 펴고 연주를 시작했다.

<사랑나무 아래 소녀>까지 마치자 팀원들뿐 아니라 연습실 문 앞에서 노래를 듣던 사람들까지 박수를 쳐주었다.


“멋있습니다.”

“잘 어울려요!”

“고맙습니다. 얘들아, 고마워.”


서희는 문 앞의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팀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정완의 팔을 잡았다.


“노래 참 좋았어. 고마워.”

“저도 고마워요. 이렇게 좋은 노래 같이 불러서 좋아요.”

“이제 애들하고 쉬다가 회식하러 가.”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나 이따 빈조 만나야···.”


정완은 자신에게 인사한 후 눈치 빠르게 연습실을 나가는 팀원들을 보다 서희와 눈을 맞추는 순간 가슴에서 펑 하고 터지는 느낌에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아. 이게 정말 어려운 거였구나.”

“뭐가요?”

“사내, 연애.”

“네.”

“널 자주 보니까 좋긴 한데, 공과 사를 어떻게 구분하지.”

“여기 커플들 다 구분 안 해요.”

“그래도 보는 눈이 너무 많잖아···.”


정완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검지를 제 입술에 댔다가 서희의 볼에 콕 찍었다.

서희는 배시시 웃으면서도 입을 비죽였다.


“약해요.”

“어쩌지? 표현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데.”


서희는 제 입술에 대었던 자기 검지로 정완의 입술을 꾹 눌렀다.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고 따듯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조심해서 일해요. 저녁 꼭 챙겨먹고.”

“응. 여기 밥 맛있더라.”

“그리고 빈조 너무 세게 방법하지 마요.”

“그건 주말은 돼야 할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그게 약하게 될지 모르겠네.”


문득 서희는 관자놀이에서 따끔함을 느꼈다.


“노래 잘 들었어.”

“어? 선생님.”

“간질간질하니 잘했어. 좋아.”


여원이 제 팔짱을 끼고 문가에 기댄 채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너희는 좀 순수한 맛이 있네. 순정남녀 같았음 우진이 작업실로 튀어가서 문부터 걸어 잠글 텐데.”

“···.”

“형네는 이렇게 귀엽게 노는데, 동생네는 마누라라는 게 요새 입만 열었다 하면 신랑 보약 타령이야. 서른도 안 된 신혼부부가 벌써부터 보약까지 먹고 뭐하려고 그러는지 원.”


서희가 고개를 푹 숙였다.

우진은 사흘간 푹 쉬어 몸이 나았고 격리 조치도 해제되었지만 내일까지는 휴가다. 아리 역시 스케줄을 조정하고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다.

정완이 말했다.


“선생님.”

“왜?”

“선생님도 그렇고 채 교수님도 요새 일 많이 하시는데, 두 분 같이 보약 드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 인간은 보약 처먹으면 신시사이전지 키보든지 그거부터 자빠뜨릴 걸?”

“···.”

“내가 언제 날 잡아서 그거 때려 부수고 만다. 갈게.”

“예.”


서희는 여원이 사라진 후에야 벌게진 얼굴을 들었다.

정완이 무덤덤하게 말했다.


“설마 키보드한테 질투를 하시는 건가.”

“설마가 아니라 맞아요.”

“직접 보니까 선생님 캐릭터가 생각했던 거보다 더 심하네.”

“그죠?”

“제수씨가 어딘가 모르게 선생님이랑 비슷한 것 같고.”

“어딘가 모르게가 아니라 똑같아요. 차이라고 해 봐야 남편이 사랑하는 게 키보드냐 와이프냐 정도?”

“푸후후. 그거 좀 큰 거 아닌가?”

“근데요.”


서희는 정완의 볼을 쓰다듬었다.


“내 남자친구 보면 볼수록 참 예쁘네요.”

“어, 너도.”

“PD님은 항상 멋있는데 그래도 PD님일 때가 제일 멋있어요.”

“그래?”

“네. 이 얘길 할 수 있게 돼서 정말 좋아요.”


정완은 한참 고개를 끄덕였다.

서희는 자신이 어떤 일을 해도 좋다고 했지만 분명히 음악을 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정완은 미투리 밴드 때나 여우비를 프로듀싱할 때보다는 지금이 한결 편안했다. 음악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가벼워졌을 뿐 아니라,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바라고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가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즉 행복하고도 편안한 삶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고마워. 열심히 할게.”

“아니요. 열심히 안 하셔도 돼요. 힘들거나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두세요.”

“난 이게 제일 많이 버는 일이야.”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무리하지 말아요.”

“그래. 이따 집 근처 가서 전화할게.”

“힘들면 안 와도 돼요.”

“힘들수록 가고 싶지.”

“알았어요. 저 내려갈게요.”

“응. 저녁 맛있게 먹어.”

“네.”


서희는 정완을 향해 환히 웃어주고 연습실을 나섰고, 정완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



정완과 서희는 연인이 된 다음 날도 순정남녀의 업무용 차를 타고 결혼식장을 돌아다녔다.

이천에서 일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서희는 제가 쓴 가사를 봐달라며 정완에게 내밀었고, 정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롤 피아노를 펼치더니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소녀 나타샤>가 만들어졌다.


이 노래 역시 마지막 행사장에 도착하기 전에 완성되었지만 하객들 앞에서 연주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마지막 행사가 있을 때 <C-POP Artist season 5>가 방송되었기 때문이다.

그 프로 출연자인 서희가 방송 시간에 다른 곳에서 이슈를 만들어내는 건 좋은 모양새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행사를 마친 후 여원을 만나기 위해 뮤컬트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갔다.

여원은 프로듀서 계약 문제를 상의하며 두 사람에게 <사랑나무 아래 소녀>의 OST 수록을 부탁했다. CBC 월화드라마 <두 번째 삶의 이유> 측에서 여원에게 이 노래를 수록하고 싶다고 청했기 때문이었다.


정완과 서희는 거기에 동의하며 그 자리에서 <사랑나무 아래 소녀>뿐 아니라 <소녀 나타샤>도 녹음했고, <소녀 나타샤>를 들은 여원은 <두 번째 삶의 이유> 제작진에게 두 곡의 음원을 모두 보냈다.

그 결과 이 드라마의 월요일 방송분에 두 곡이 모두 나왔는데, 특히 <소녀 나타샤>는 엔딩에 나와 시청자들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두 번째 삶의 이유>는 여주인공의 삶을 지켜주지 못한 남주인공이 몇 년 전으로 회귀하여 미래의 상황을 바꿔 가는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극중 설정 때문에 주인공들의 나이가 어려지는 순간이 있었고, 특히 남주인공의 경우 회귀 전후의 삶의 과거와 미래를 비교하는 회상 신이 많다.

그래서 감성의 시계가 역회전하는 <사랑나무 아래 소녀>뿐 아니라 한 공간에 있던 남녀가 오랜 시간이 지나 연인이 되었다는 인연을 노래한 <소녀 나타샤>도 삽입될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새로운 노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씨팝폐인’을 자청하는 <C-POP Artist season 5>의 네티즌들은 특히 <소녀 나타샤>에 열광했다.

백석 시인의 작품에서부터 시작된 두 사람의 인연이 오랜 세월이 지나 연인으로 맺어졌다는 스토리뿐 아니라 ‘마가리’나 ‘출출이’ 등 토속적인 맛을 살린 작품 속 시어들을 차용한 가사, 몽환적인 멜로디, 혼성 듀엣의 조화까지 합쳐져 좋았을 뿐 아니라 엔딩 장면과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한편 아리는 자신의 팬카페에 글을 올려 <소녀 나타샤>의 이야기가 정완과 서희가 실제로 9년 전 대전의 도서관에서 만났던 일임을 밝혔다.


정완과 서희가 부른 두 곡에는 몽환적이라는 색깔과 소녀라는 키워드가 있었고, 사랑을 막 시작한 연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사람과 상황과 역사까지 딱 맞아 떨어져서 나온 최고의 곡’, ‘HAP에게 있어 미투리 밴드는 그저 이런 음악을 만들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을까’, ‘HAP가 좋아하는 장르가 록에서 강서희로 변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순정남녀는 <편의점 별곡>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둘이 사귀면 저런 음악 안 나오겠다’는 이야기로 출발한 데 반해, 정완과 서희의 팀은 ‘둘은 노래 때문에라도 헤어지면 안 되겠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서희에 대해서는 서브보컬보다 메인보컬일 때 제 역량을 크게 발휘하였고, 그것은 정완이 서브보컬의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공감을 이루었다.

몇몇 사람들은 서희가 정완의 인생에 메인이 된 데서 그 이유를 찾기도 했다.


‘강서희가 씨밥바에서 부를 다음 노래가 궁금하다. <그대에게 옮은 감기> 집어넣고 시간 순으로 들어보면 증가함수 그래프 나올 듯’이라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으며, ‘강서희의 가사 속 세계관은 공간보다 시간이다’든가, ‘이 사람들은 단둘이 있을 때 20세랑 18세로 놀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오갔지만 서희의 표현력이 두드러지게 향상되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했다.


정완과 우진의 의형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글도 눈에 띄었다.

한 네티즌은 토요일 마지막 행사에서 정완이 도원결의에서 유관장의 맹약을 인용하여 우진과 의형제가 된 과정을 설명한 것을 보고 편지를 주고받아 의형제가 되었다고 하여 ‘서신결의’라고 정의했고, 거기에 달린 ‘이것이야말로 난형난제’라는 댓글에도 공감했다.


시청자들은 우진의 곡에 비해 정완의 곡이 더 몽환적으로 들리고 판타지 세계를 연상시키는 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서희 특유의 가사 속 세계관과 정완의 피아노 연주 스타일 때문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는 한편, ‘HAP와 강서희는 생긴 것부터가 비현실적이다.’라는 댓글에도 공감했다.

더불어 2라운드 심사에서 수휘가 언급했던 순정남녀와 여우비의 차이점을 아리와 서희의 가사 속 이야기의 차이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외에 많은 공감을 얻은 의견으로 ‘HAP와 서우진의 음악의 미래는 강서희와 매아리한테 물어야 한다’와 ‘나는 내일 HAP가 강서희를 황진이로 둔갑시켜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노래는 정말 좋지만 둘 다 비주얼이 잘나서 재수 없고, 그 와중에 잘 어울려서 짜증난다’ 등이 있었다.


드라마가 끝난 후 <사랑나무 아래 소녀>와 <소녀 나타샤>의 음원이 OST로 발매되었고, 두 곡은 밤사이에 음원 차트 1, 2위를 교대로 기록했다.

특히 아리가 두 곡의 음원 수익금이 전액 기부될 예정이라고 밝힌 후 순정남녀 팬카페에는 두 곡을 함께 구입한 인증 글이 많이 올라왔다.

그간 <C-POP Artist>에서 나온 자작곡들이 하루 만에 음원 순위가 급격히 내려갔던 반면, 두 곡은 12월 둘째 주 내내 10위권을 지켰다.


한편 올해는 정완과 서희의 팀이나 여우비뿐 아니라 하트헤르, 전민재, 솔베이지, 함윤명 등 싱어송라이터들의 자작곡이 CBC 드라마와 예능, 라디오프로 등에서 잇달아 방송되며 인기가 높아졌고, <C-POP Artist season 5> 애청자들은 일주일 내내 프로그램을 즐기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이로 인해 다른 프로그램의 시청률이나 광고 매출액도 증가했고 CBC 경영진과 예능국에서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며 방송사의 걱정을 덜 수 있었다.


특히 <C-POP Artist season 5>의 출연자도 아닌 정완이 프로그램 밖에서 이슈를 만들어내어 평일에도 프로그램에 대한 화제성이 높게 유지되고 있었다.

시즌 3에서 동생이, 시즌 5에서는 형이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고 하여 정완의 예명 HAP를 ‘하드캐리 프로듀서’로 명명한 사람도 있었다.



***



12월 15일 토요일 점심시간.

정완은 뮤컬트 엔터테인먼트 건물 앞 주차장에서 세 사람을 맞았다.


“야, 하정완! 오랜만이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 선배님.”

“여기 밥 맛있대서 빨리 왔어. 괜찮지?”

“그럼요.”

“근데 내가 한 밥보다 맛없으면 너 죽어.”

“죽을 일 없겠네.”

“야! 네가 그러고도 내 남편이야?”

“근데 아기는 어떻게 하시고···.”

“여기 애 안고 오리? 엄마 찬스 썼어.”


이 세 사람은 정완이 통인시장에서 만났던 민홍태와 여봉길, 그리고 봉길의 아내인 남소향이다.

소향이 정완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와아. 얘 얼굴 편 것 좀 봐. 예쁜 애인 만나니까 사람이 이렇게 변하네?”

“잘 됐지. 영상 잘 봤다.”

“음원 샀다.”

“감사합니다.”


정완은 세 사람을 식당에 앉히고 밥을 모두 가져다주었다.

은별이 하트헤르와 함께 식당에 들어오다 소향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앗! 아, 안녕하세요.”

“어? 나 알아?”

“성함은 모르는데 전에 클럽 공연할 때 뵀어요. 키보드 엄청났던 분으로···.”

“아네? 좋게 기억해줘서 고마워. 난 남소향이라고 해. 너 민은별이지? 나도 너 알아.”

“네?”

“전에 너 얘···.”


소향이 뭔가 말하려는데 봉길이 그녀를 쿡 찔렀고, 그래서 그녀는 말을 바꾸었다.


“너 전에도 너무 예뻐서 눈에 확 들어왔지. 그땐 완전 애기였는데 많이 컸네?”

“네? 감사합니다.”

“편히 밥 먹어. 여긴 신경 쓰지 말고.”

“네. 선배님.”


은별은 소향에게 인사하고 하트헤르와 함께 앉았다.

소향이 정완에게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야, 너 진짜 웃긴다. 어떻게 전여친이랑 현여친을 한 팀으로 만들 생각을 했어?”

“자기들끼리 팀 하겠다고 저한테 왔어요. 저도 둘이 아는 사이인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땐 그런 거 아니었고요.”

“아. 너 지금 사귄 지 일주일째지? 그럼 트레이닝하다가 전여친 앞에서 현여친이랑 썸?”

“아니요. 그땐 아니었습니다.”

“하긴. 그 뒤에 너 쟤들도 안 만났지? 너도 번호 바꾸고 음악 끊고 속초에서 운전하고 살았다며.”

“그러긴 했는데 솔직히 운전할 때마다 서희가 눈에 아른거렸어요.”

“오오. 그래? 그랬구나?”


소향은 은별 쪽을 힐끗 본 후 고개를 저으며 샐러드를 집었다.


“포장이 안 돼. 아무리 포장해도 이건 막장이야, 막장.”

“그렇게 말씀하셔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 좋으니까요.”

“그래. 그래야지. 걔한테 잘해. 네깟 게 어디서 그런 여자를 잡아.”

“예.”


소향은 국을 뜨며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여원이 언니는 지금 없어?”

“4시쯤이나 돼야 오실 겁니다. 스케줄 때문에요.”

“언닌 씨바사장이랑 잘 지낸대?”

“저도 여기 와서 알았는데, 여원 선생님은 키보드한테 질투하고 계십니다.”

“알지, 알지. 씨바사장 키보드 좋아하는 거야 내가 잘 알지. 키보드에 중독되면 답도 없어.”


하트헤르와 마주앉은 은별은 밥을 먹으면서도 정완과 세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를 연신 힐끔거렸다.

유찬과 지혜가 말했다.


“저분들 아무래도 한가락 하시는 분들 같아요.”

“포스가 장난이 아니에요. 특히 키 되게 큰 분.”

“그럴 거야. 저 키 큰 분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 근데 여자 분은 알겠어.”

“누군데요?”


은별은 소향을 유심히 보다 말했다.


“분명히 ‘백합송이’ 키보디스트야.”

“백합송이요?”

“멤버가 전부 여자였던 인디밴드인데, 미투리 밴드랑 같은 클럽에서 공연한 적이 있어서 나도 여러 번 봤어. 그 밴드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저분은 기억나. 키보드로 기타도 치고 드럼도 치고, 노래도 엄청 잘하셨거든.”

“와.”


그때 네깟 게 잡은 여자가 식당에 들어오다 소향과 눈이 마주쳤다.

소향은 서희를 보자마자 손을 덥석 잡았다.


“아, 남소향님. 안녕하세요?”

“여기 왔네, 예쁜 애인. 민은별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나도 이런 애들 손잡고 기운 받으면 조금 예뻐졌으려나?”

“그랬으면 나랑 결혼 안 했겠지.”


봉길의 말에 소향의 얼굴이 구겨졌다.


“으이그. 말하는 거 하곤. 남편이란 놈이 와이프가 안 예뻐서 결혼했다고 그러니?”

“이게 그 소리냐?”

“밥 먹자.”


홍태의 나지막한 말에 소향과 봉길이 순간 침묵했다.

그러다 소향이 서희에게 다시 말했다.


“만나서 반가워. 정완이가 너한테 이상한 짓하면 나한테 얘기해. 죽여줄게.”

“네?”

“소향아.”

“알았어요.”


홍태의 말에 소향이 은별 쪽을 가리키며 가라고 시늉했고 정완은 서희에게 눈을 찡긋했다.

서희는 세 사람에게 인사한 후 미소 띤 얼굴로 정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은별과 하트헤르에게 왔다.


“저분들은 누구예요?”

“시간 되면 1시에 녹음실로 오래. 그럼 알게 될 거라고.”


은별의 말에 서희는 이렇게 답했지만 이 말은 정완이 미리 귀띔해준 것이다.

서희는 이미 저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정완으로부터 고백받기 직전 들은 이름들이어서 검색해보았기 때문이다.


작가의말

짧아서 죄송합니다.. ㅠ

분량의 압박에 시달리는 중임을 너그럽게 봐주시길...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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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Audition) 2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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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완결에 따른 공지입니다. 21.09.08 41 0 -
54 Epilogue. 이제야 불러본다 +4 21.09.08 68 5 33쪽
53 Final. 두 사람의 마지막 경연 21.09.06 67 5 37쪽
52 Round 8.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21.09.01 66 5 26쪽
51 Welcome. 하루를 마무리할 때 21.08.28 60 5 19쪽
50 Change. 모두의 힘으로 21.08.27 65 5 20쪽
49 Round 6. 아쉬움과 미련이 없도록 21.08.23 74 5 28쪽
48 Ago. 드라마의 남녀 주인공 21.08.18 84 6 29쪽
47 Confidence. 생각할 시간 일주일 21.01.04 93 5 27쪽
46 Round 5. 어느 배우와의 이별 +2 21.01.01 88 6 28쪽
45 Relation. 꿈이 아니라는 걸 +2 20.12.04 116 6 26쪽
44 Self. 돌아선 길 위에서 +2 20.11.20 124 6 30쪽
43 Encore. 복수의 시간 +2 20.11.13 116 6 26쪽
42 Special 2. 바보가 된 천재들 +2 20.11.09 118 7 28쪽
41 Special 1. 희망을 노래하는 겨울 +2 20.11.02 132 6 28쪽
40 Preparing. 서로를 만나는 이유 +2 20.10.26 132 6 26쪽
39 Blind. 오해를 풀고 남은 자리에 +4 20.08.18 158 8 22쪽
38 Composer. 눈은 이미 맞았고 +2 20.08.13 147 7 21쪽
37 Radio. 진심으로 대하기에 더 빛나는 이들 +2 20.08.11 135 8 26쪽
36 Cooperation. 침묵의 이 순간 +2 20.08.04 152 8 26쪽
» Innocence. 꿈이라고만 여겼던 것 +2 20.07.30 169 7 23쪽
34 Producing. 입 헤벌리고 표정 관리 못하지만 +2 20.07.28 165 9 26쪽
33 Affableness. 오래 전 우리 +2 20.07.21 174 7 38쪽
32 Along. 대타로 때려낸 홈런 +4 20.07.16 171 9 30쪽
31 Beginning. 음악은 변하지 않았다 +6 20.07.12 158 8 34쪽
30 Some. 애써 외면했던 진심 +4 20.07.07 167 10 22쪽
29 Opening. 속 깊은 이야기들 +4 20.07.05 166 9 28쪽
28 Yearning. 두 사람의 두 마음 +6 20.06.30 176 9 20쪽
27 Quest. 그녀의 마지막 미션 +2 20.06.25 156 10 29쪽
26 Showdown. 또 다른 사랑이 다가오다 20.06.18 164 8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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