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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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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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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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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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0

DUMMY

”제가 의원님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람을 풀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번 함바집 사건의 핵심 브로커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순박한 사람이라는 전언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는 와중에 여러 명 알게 된 분들이 있었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사가 터져 나오면서 당황해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 핵심 당사자의 행방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급하게 자리를 청하실만한 사안이셨군요?“


”의원님이 기뻐하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의원님께서 언질을 주시면, 당사자가 수사 기관에서 진술할 때 헷갈리지 않고 지나온 일을 정. 확. 하·게. 말할 수 있을 듯합니다만. 의원님의 뜻이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언질이라.....“


양수용 의원이 장고에 들어갔다.

정필모의 말은 양수용 의원이 언급하는 이름은 진술에 나올 것이고, 양수용 의원이 숨기고자 하는 이름은 진술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것은 이번 사건을 양수용의 입맛대로 휘두르는 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처럼 정치권과 언론이 주목하는 사건을 제 뜻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여의도에서도 큰 사건이었다.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을 해나가는 양수용 3선 국회의원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해갔다.

정필모도 침묵을 지키며 양수용이 입을 열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렸다.


”정 사장님이 생각 외로 노련하시군요. 저에게 이런 큰 선물을 주셨으니, 저도 뭔가 보답을 해드려야 할 텐데요. 도움 될 만한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꼭 뭔가 대가를 바라고 드리는 말씀은 아니었습니다만......“


”아닙니다, 제가 여의도에 몇 년 있으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주고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기만 하는 것은 언젠가는 독이 될 수가 있거든요.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제가 모든 것을 해드릴 수는 없겠지만, 제법 목소리를 낼 정도는 됩니다. 허허허. “


”의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려운 점을 하나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이번에 큰 결정을 내리시면 여당의 힘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의원님께서 법안 하나를 올려 주시면 사업하는 저와 제 친구들에게 큰 힘이 될 듯하기는 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지금 대한민국의 법률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 투자를 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뉴욕에서 사귄 친구들이 몇 있는데, 이분들이 한국의 경제에 대해 관심도 많고 기대도 크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투자를 희망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관계 법령이 까다로워서 쉽게 실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21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10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세계 경제는 하나의 시장으로 통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럴 때, 한국의 경제도 성장에 걸맞은 개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의 국내 투자에 대한 문호를 개방해 주신다면, 외국의 많은 자본이 국내로 들어와서 국내 경제 발전에 크나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의원님“


정필모가 차분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아닙니다, 정 사장님 말씀이 옳습니다. 한국 경제의 위상도 이제 예전 같지 않은데, 법규가 경제 발전의 속도를 뒤따르지 못하다 보니까 그런 면들이 있어요. 제가 당으로 돌아가서 동료 의원들과도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제가 발전해야, 국민들의 삶도 나아지는 것이고, 그런 것이 저와 같은 국회의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의원님. 제가 관련한 자료와 법안 초안 등을 마련해서 의원님 사무실로 조만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보좌관들에게 한 번 검토하도록 해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정필모가 깊이 고개 숙이며 양수용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료를 보내주시면 살펴보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당의 힘이 커지면, 법안 처리에도 탄력을 받을 테니까요. 친구분들에게도 말씀하셔서 여러 경로로 의견을 전달해 주시면 제가 일을 진행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제 뉴욕 친구들이 워싱턴에도 줄이 닿아있는 분들이 몇 있습니다. 워싱턴을 통해서도 의견을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이쿠, 워싱턴까지 움직이실 수 있다니, 정 사장님의 인맥이 부럽습니다. 하하하. 역시 미국에서 사업에 성공하신 분이라 스케일이 다르시군요, 허허허. 그런데, 함바집은 어느 정도로 말씀을 드리면 될까요?“


양수용이 상체를 앞으로 숙이면서 정필모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희 쪽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대화로 잘 풀었고, 적당한 선에서 형량을 조절해 주신다면 의원님께서 원하시는 인물들 위주의 진술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조사 과정에서 우리의 의사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변호사의 조력이나 이런 부분의 편의는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이지요, 아무리 피의자라고 해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것은 헌법에서 정한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법치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그 부분은 제가 검찰에도 미리 이야기해 놓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경찰의 중간급, 시청 쪽 공무원 몇몇과 이름이 알려진 기업체에서도 몇 명 정도면 체면치레는 가능할 듯싶습니다. 자세한 명단은 제가 여의도에 가서 의논한 다음에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양수용의 말은 이번 칼을 휘둘러서, 다른 정파의 후원 세력을 일순간 꺾고 싶다는 의사의 에두른 표현이라는 것을 정필모는 단박에 알아차렸다.


”물론입니다, 의원님. 아직 수사가 발표되지도 않았잖습니까? 대신에 피의자는 가족이 안전하게 외국으로 피하는 정도는 도와주십사 하는 부탁이 있었습니다만.....“


”그 정도야 어렵지 않습니다. 가족들이야 범죄자가 아닌 데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허허허. 수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그 정도는 해드려야지요.“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한정식집의 조용한 방안에서, 조갑수와 최정식의 운명이 결정되어지고 있었다.

조갑수와 최정식은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의 대화에 의해서였다.


”이제 식사를 들여오도록 하겠습니다.“


정필모가 문을 살짝 열고 종업원을 불러서 준비된 식사를 가져오도록 요청했다.

다시 고개를 돌린 정필모의 눈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담뱃불을 붙이는 양수용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 의원님, 조만간 책을 출간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아이고, 이거 소문이 정 사장님 귀에까지 들어간 겁니까? 부끄럽습니다만, 의정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과 제가 가진 평소의 신념에 대한 글을 쓰기는 했습니다만, 졸작이라서 어디에 내세울 만한 게 아니올습니다. 허허허.“


”무슨 말씀을요? 제가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평소에 뵈온 양 의원님의 모습을 보면 틀림없이 후대의 청소년들에게 보탬이 될 만할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 의원님의 책이 출간되는 대로 구매해서 전국의 도서관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아....도서관에 기부를요? 몇 권 정도나.....?“


”이게 알아보니까, 회사 이름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은 정치자금 지원과는 별개로 친다는 법리적 해석을 받았습니다. 전국에 도서관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이번에는 1만 권 정도 구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출판사가 결정되면, 연락처를 한 번 알려주십시오. 제가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아이고, 이거 감사합니다, 예비 독자님! 허허허.“


양수용의 탐욕스러운 웃음이 한정식집에 가득한 날 밤, 조갑수의 감옥행이 결정되었다.


* * *


1990년 1월 15일 월요일.

선조 일보와 대동 일보의 위력은 막강했다.

두 신문이 ‘함바집 비리’에 대한 후속 기사를 게재하자, 다른 언론사들에서도 뒤따라서 기사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목포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기자들이 득시글댔다.

언론에서는 공사 현장의 비리를 척결해야 한다는 논지의 기사와 사설을 계속해서 실었다.

목포 경찰서가 수사를 위해 움직이기에는 판이 커졌다.

다급해진 전라남도 경찰국에서 수사를 시작했지만, 맛있는 먹잇감을 앞에 둔 언론에게는 미흡했다.

마침내 검찰이 나섰다.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대검찰청 중앙 수사부의 중앙 수사1과에서 사건을 수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수사는 사건의 엄중함을 고려하여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와 조사로 국민이 가진 의혹을 파헤칠 것이며.....“


TV에서는 검찰 대변인의 브리핑을 보도하고 있었다.

최정식 목포 경찰 서장은 서장실의 소파에 앉아서 한쪽에 있는 TV를 보고 있었다.

최정식의 오른손에는 거의 다 타버려서 꽁초가 되어버린 담배가 들려 있었고, 테이블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했다.


따르릉. 따르릉.

테이블 위의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서장님, 아버님 전화가 와 있습니다. 연결할까요?]

”연결해.“

[나다.]


최정식의 아버지 최덕술이었다.


”예, 아버님. 잘 지내시지요?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TV 봤다. 어떻게 된 일이냐? 네가 연결되어 있는 게야?]

”그게....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어찌....“

[누구냐? 누구까지 연결된 거야? 혹시 윤근식이가 연결된 거냐?]

”.......네.“


최정식은 아버지 최덕술을 어려서부터 어려워했었다.

간첩 잡는 경찰이었던 최덕술은 바빠서 집에 자주 오지는 못했지만, 가끔 집에 들어와서는 폭군으로 집안을 이끌었다.

최정식이 경찰에 투신하게 된 것도 최덕술의 뜻이었고,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에도 많은 힘을 행사해 준 것을 최정식은 알고 있었다.


[못난 놈. 내가 그렇게 여러 번 윤가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왔건만. 쯧.쯧.쯧.]


”죄송합니다, 아버님. 제가 잘 수습할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네가 수습해야지. 윤가는 연락이 되느냐??]


”여의도가 요즘 어수선해서 그런지 전화 통화가 잘 안 됩니다. 제가 조만간 서울을 올라가서 한번 만나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흥, 신문과 방송에서 저렇게 떠들어대고 있는 데도 네 전화를 피하는 걸 보면 이미 등을 돌린 거야. 알았다. 나도 전화를 돌려 볼 테니까, 잘 수습해라. 입 조심하고.]


딸칵.

최덕술은 끊는다는 인사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통화 단절음을 들으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최정식의 팔에는 힘이 없었다.


”휴~~우“


긴 한숨을 내뱉은 최정식이 새로운 담배를 찾아서 입에 물고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아들과의 전화를 끝낸 최덕술이 소파에 등을 깊숙이 묻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공직 생활을 하는 데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갑게 대하지 못했었다.

아들이 갓난아기 시절일 때는 최덕술도 젊은 나이라 밖에서 술 마시고 노느라 몇 번 안아주지도 않았다.

이후에 격변의 시대를 거치며 공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업무 이후에 식사와 술자리의 횟수도 많아졌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 잠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니, 어느새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해져 있었다.

다른 집의 부자지간처럼 애틋한 정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아들이었다.

나이 50도 안 된 아들의 앞날이 여기에서 끝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방으로 들어간 최덕술이 자개장 서랍에서 낡은 수첩을 하나 꺼내 들고 소파로 돌아왔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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