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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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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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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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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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DUMMY

”환자가 지금은 잠들었으니까,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환자가 의식을 찾으면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라고 하네요, 데이빗. 저도 마음이 아파요. 아저씨는 아빠의 오랜 친구였고, 저도 많이 예뻐해 주시던 분이셨답니다.“


조영이 토모코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병실 문을 열었다.

여한모가 조용히 뒤를 따랐다.


”한모야, 여기 담배 피워도 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봐다오.“


여한모가 뒤에 있는 하토리 과장에게 질문을 전달했고, 경호원 한 명이 빠르게 중앙 로비의 간호원에게 다녀오더니 엘리베이터 쪽으로 손짓을 했다.

조영과 여한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서, 경호원의 뒤를 따라서 현관을 나서 건물을 왼쪽으로 돌자 커다란 재떨이가 놓여 있는 흡연 장소가 나타났다.

여한모가 담배를 꺼내 조영에게 건네주었고, 조영이 받아들자 라이터로 불을 붙여 주었다.


”휴~~우.“


조영이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동안, 여한모도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고맙다, 한모야. 네 덕분에 외삼촌에게 인사를 드릴 수 있었어. 하늘에 계시는 어머니도 한모 너에게 고마워하실 거다. 정말 수고했어.“


”보스......“


조영이 희미하게 웃으며 여한모에게 감사를 표했고, 여한모는 씁쓸한 표정이었다.

조영은 먼 곳을 바라보며 담배를 연속으로 두 개비나 피워댔다.

조영의 시선이 향하는 먼 곳에는 나가사키 항구의 등대라도 있는지, 깜박이는 불빛이 보였다.

두 번째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끈 조영이 발걸음을 돌렸다.


”들어가서 외삼촌 가시는 마지막 길에 인사를 드려야겠다, 한모야.“


여한모는 오늘 조영의 뒷모습이 유난히 움츠려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다.

병실 앞에는 토모코가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도쿄에 전화하러 가셨어요. 아마, 며칠 더 이곳에 머물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연락을 해야겠다고 하셨어요.“


”토모코 짱은 더 예뻐졌군요.“


”데이빗도 멋있어졌어요. 저는 이제 졸업반에 올라가요. 4학년이 되는 거예요.“


”그렇군요, 토모코 짱은 멋진 사회인이 될 겁니다. 금융 쪽에 대한 안목이 워낙 출중하니까요.“


”졸업하면 뉴욕으로 유학을 하러 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요? 일본이 처한 경제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토모코 짱처럼 안목 있는 경제인들이 필요할 텐데, 일본의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고 나에게는 기쁜 일이군요.“


”데이빗에게 기쁜 일이라고요? 혹시 일본의 증시 하락에 투자를 하신 건가요?“


”오우~ 토모코 짱의 안목은 정말 대단합니다. 짧은 대화에서 그런 걸 캐치해 내다니요? 맞습니다. 토모코 짱이 예전에 얘기했던 대로, 일본 경제는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의 운을 시험해 볼 겸, 작은 투자를 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아직까지는 나의 운이 좋은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기쁘면서도 안타까운 일이군요. 불행히도 일본의 경제침체가 한동안 이어질 거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에요. 데이빗이 투자를 했다면, 한동안은 투자금 회수를 하지 않는 것이 수익률을 높이는 방법이 될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역시, 토모코 짱의 솔직함은 변하지 않았군요. 뉴욕으로 유학을 간다면, 조만간 다시 만날 수도 있겠군요. 내가 뉴욕에도 사무실을 하나 냈거든요.“


”정말요? 뉴욕 어디에요? 월가인가요?“


조영이 대답을 하려고 할 때, 토모코의 아버지인 사토 마코토가 다가왔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환자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올 때는 내가 친구의 장례를 치러 주려고 했었는데 조카가 와서 다행입니다. 안타깝지만, 친구의 장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미스터 사토의 의견은 감사합니다만, 저는 일본의 장례 문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장례 문화에도 익숙하지를 않습니다. 내 생각에는 미스터 사토가 괜찮으시다면 친구의 자격으로 외삼촌의 장례를 주관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장례에 관한 비용 일체는 내가 지급할 수 있습니다.“


”김조영 씨가 그렇게 얘기하신다면, 주제넘을 수 있지만 제가 친구의 장례를 준비하겠습니다. 사실은 도쿄에서 연락을 받고 오면서 생각을 해 놓았습니다.“


그때 병실에서 나온 간호원이 사토에게 다가와서 뭐라고 말을 건넸다.


”아저씨가 정신을 차리셨다고, 들어와서 인사를 하라고 하네요. 들어가 보세요, 데이빗.“


조영이 고개를 끄덕이고 사토 모녀와 함께 병실로 들어섰다.

조성수는 고개를 돌려 조영을 바라보았다.

조성수의 눈은 맑았고, 눈동자가 기쁨에 젖어있다고 조영은 느꼈다.


”성수 이 친구. 40년 지기인 내가 온 것보다 오늘 처음 보는 조카를 더 반가워하니, 늙은 내가 주책스럽게도 질투가 느껴지지 않나, 어서 힘을 내서 일어나게. 나랑 같이 나가사키 바닷가에 산책도 나가고 해야지.“


”쿨럭쿨럭....마지막 길에 가장 친한 친구가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조카가 찾아왔으니 먼 길이 외롭지는 않을 듯하네. 고맙네, 마코토. 우리 예쁜 토모코 짱도 와줘서 고맙다. 네가 시집갈 때 줄 축의금으로 적금을 들고 있었는데, 보지 못하게 되어서 아쉽구나. 좋은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토모코 짱.“


조성수의 마지막 인사를 통역해주던 토모코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원, 녀석. 다 큰 녀석이 울기는. 조영아, 나의 조카야. 이쪽은 나의 오랜 친구와 그의 딸이다. 내가 일본에서 사는 동안 유일하게 나의 마음을 보듬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다. 내가 죽은 후에라도 가능한 상황이 된다면, 나를 생각해서 그들에게 은혜를 갚아주면 고맙겠구나. 쿨럭쿨럭.“


”외삼촌, 인연이 닿아서 토모코 짱과는 예전에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미스터 사토와도 오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어머니와 삼촌의 유지를 받아서, 그들에게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하십시오, 외삼촌.“


”조영이 네 얼굴에 네 엄마의 모습이 남아 있어서 보기에 좋구나.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한국의 산과 바다에 나누어서 뿌려주면 좋겠구나. 부탁한다.“


”외삼촌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힘이 드는구나. 이제는 말을 몇 마디 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조성수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조영이 조성수의 손을 잡아주었다.

옆에 장치된 의료장비들의 계기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기하고 있던 의사와 간호원이 기기를 들여다보았지만, 말없이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조성수가 눈을 감았고, 잠시 후에 기기가 단조로운 음을 뱉어내자 의사가 조성수의 눈을 들여다보고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돌아가셨다고 하네요, 데이빗.“


훌쩍이는 목소리의 토모코가 건네는 말이 조영의 귓가에 맴돌았다.

1990년 1월 18일 밤 11시.

일제에 강제 징용되어서 낯선 곳에 끌려와 평생을 고생만 하던 재일 한국인 한 명이 그렇게 눈을 감았다.

조영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며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아냈다.

지켜보던 하토리 과장이 여한모의 어깨를 살짝 두드려서,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의사의 확인을 거친 조성수의 시신은 요양원의 부속 건물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여한모가 조영에게 다가와 하토리 과장의 전언을 전했다.


”보스, 제이콤의 계열사 중에 장례를 도와주는 업체가 있답니다. 어차피 손이 필요하니 하토리 과장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업체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하토리 과장이 눈치가 있군. 그렇게 해. 장례주관은 미스터 사토가 하기로 했지만, 자잘한 손이 필요하기는 하겠군. 그리고, 하토리 과장에게 부탁해서, 우리가 상복으로 입을 옷을 준비해달라고 해.“


”알겠습니다, 보스.“


조영이 사토 마코토와 장례 절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여한모는 하토리 과장에게 몇 가지를 지시했고,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혼다 츠바사의 수고에 대한 계산을 마쳤다.


하토리 과장의 부하 직원이 시내를 뒤져서 조영과 여한모가 입을 검은색 양복을 준비해와서 둘은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부하 직원은 문을 닫은 양복점 몇 곳의 문을 두들겨서 간신히 옷을 구했지만, 조영과 여한모가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하토리 과장의 연락을 받은 장례 진행 업체에서 몇몇 직원들이 달려왔으며, 업체와 연결된 승려가 와서 고인의 입관식에서 불경을 읽을 준비를 마쳤다.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은 조영과 사토 마코토가 친지와 친구의 자격으로 입관식에 참여했다. 고인을 깨끗이 씻긴 다음에 가족이 손수 수의나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옷으로 갈아입히는 의식이었는데, 마코토의 조언을 받아서 한복이 준비되었다. 한복은 조영도 입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이콤의 관계사에서 나온 직원이 도와주었다.


일련의 과정을 마친 고인이 칠이 되지 않은 목재관에 눕혀지고 장례식장으로 옮겨졌다.

이어서 츠야(通夜)라고 불리는 의식이 진행되었다.

츠야는 고인의 곁에서 고인의 지인들이 밤을 지새우는 의식이었다.

밤늦은 시각이라 연락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사토 마코토와 조영이 츠야에 참석했다.

다음 날 점심때쯤 ‘고별식(告別式)’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사토 마코토의 연락을 받은 고인의 지인 몇이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마코토의 이야기로는 고인의 지인들 중에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 많아서 찾아올 사람이 적다고 했다. 고인이 세 들어 살던 주인집 노파와 나가사키 한인 사회에서 몇 명 다녀간 것이 다였다.


승려가 불경을 읽어주는 옆에서 찾아온 조문객들이 제단 앞에서 합장으로 인사를 하고, 향을 사르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고별식이 끝나고 가까운 화장터로 자리를 옮겼고, 조성수가 한 줌의 유골로 조영의 손에 쥐어진 것은 오후 5시 경이었다.


’불과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외삼촌의 장례가 끝나버리다니, 인생은 무상하구나.‘


조성수의 유골함을 받아 들은 조영이 인생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동안, 토모코와 마코토가 다가왔다.


”장례 치르느라 애쓰셨네, 친구도 자네가 와서 많이 기뻤을 것이네. 마음이 아프겠지만, 빨리 다잡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겠네. 여기 내 명함일세, 도쿄에 들를 일이 있으면 식사라도 한번 하고 싶네.“


간밤의 츠야 의식 때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조영은 사토 마코토와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일본 대장성 은행국 제2국장 사토 마코토. 대장성의 고위 공무원이셨군요. 나도 싱가포르에서 작은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찾아뵐 때 고견을 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마코토의 명함을 받아서 챙긴, 조영이 금장 명함집에서 명함을 꺼내어 마코토에게 건네주었다.

대장성은 일본 중앙행정부에서 세입과 세출, 조세, 조폐, 은행 등을 관리하는 대형 관청이었다. 일본의 재정 정책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작가의말

즐거운 연휴 보내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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