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조영김
작품등록일 :
2020.03.25 12:57
최근연재일 :
2022.01.30 07:00
연재수 :
256 회
조회수 :
367,557
추천수 :
3,606
글자수 :
1,293,490

작성
21.09.11 07:00
조회
506
추천
6
글자
11쪽

9-15

DUMMY

“자, 자리에 다시 앉게. 몸이 굳어서 고개를 오랫동안 올려다보고 있으면 힘들어. 나에게 눈높이를 맞춰주게나.”


천수철이 무엇에 홀린 듯, 무너져내리듯 소파에 주저앉았다.


“이....이것이 왜....왜....장로님의 손에서....?”


“거래를 하자고 하지 않았나? 이 패의 의미를 알고 있다면, 내가 제안할 거래가 무엇인지 궁금할 텐데?”


“말씀하시지요.”


천수철의 어투가 아까에 비해서 공손해졌다고 느낀, 최덕술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나는 이런 점이 좋아. 자네는 상황 판단이 빠르고, 태도 변환은 더욱더 빨라. 이런 판단력이 자네가 지금의 자리에 올라 있는 이유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지. 자, 길게 이야기하지 하지 않겠네. 흑패를 실행해주게. 그것이 나의 요청 사항일세.”


“장로님께서 교에 바칠 제물은 무엇입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앞세운 늙은이가 바칠 제물이 무에 있겠는가? 재물이라고는 입에 풀칠할 정도밖에 없는 것을. 내가 어려서부터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네. 가방끈도 짧은 것 치고는 색다른 취미였지. 일기라는 것이 그래. 그날그날의 감정의 변화를 기록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사건들을 기록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더군. 요즘은 예전 젊었을 적에 기록해두었던 일기들을 들춰보는 게 낙이라네. 이 흑패에 대한 기억도 일기 덕분에 생각날 수 있었지.”


최덕술이 새로운 담배를 하나 집어 들었지만, 이번에는 천수철이 성냥을 집어 들지는 않았다.

천수철을 힐끗 바라본 최덕술이 성냥갑을 집어 들어서 성냥개비 하나를 끄집어냈다.


치익.


잠시 후에 성냥개비 끝의 황에 불이 붙으면서 매캐한 황 냄새가 피어났다.

담배에 불을 붙인, 최덕술이 성냥개비를 흔들어서 불을 껐다.


“내 신세가 이 성냥개비 같아. 까맣게 불타버려서 손을 잘못 대면 그을음이 묻어 나온다네. 내 마음을 성냥개비처럼 까맣게 불태워버린 자가 있다네. 나는 그 자의 마음도 나처럼 새카맣게 타기를 원해. 나 혼자 타버리니까, 괜스레 억울한 생각이 들지 뭔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대상은 미국에 있네. LA에 있다는데, 듣기에 LA에는 한인타운이 형성될 만큼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니까 찾기가 어렵지는 않을게야.”


“음....미국이라는 말씀이십니까?”“왜? 미국은 총기 소지도 자유로운 나라일세. 오히려 편한 점이 많이 있을걸세.”


“그래서, 목표가 누구입니까?”


“이름을 묻는 걸 보니, 흑패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나?”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그렇다면, 흑패를 챙기시게나. 그러면 이름을 얘기해 주지.”


윗니로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은 천수철이 테이블에 놓인 흑패를 집어 들어서 앞, 뒤를 살펴보고는 안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동그란 흑패에는 한 글자의 한자가 음각되어 있었다.


[살(殺)]


“자, 흑패를 접수했으니 이제 말씀하시지요. 흑패가 접수된 이상, 이제 장로님의 입 밖으로 나오는 이름에 대한 것은 무를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물론일세. 내가 그래도 한때는 교의 장로였는데, 그런 것을 잊었겠는가? 허허허. 목표의 이름은 윤지만. 23세. 유학생일세.”


“윤지만? 윤? 좀 더 자세한 설명을......헉!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네. 윤지만, 윤근식의 아들이며 윤지원의 손자이지. 외동아들. 외동 손자.”


“....왜?”


“왜냐고? 나 혼자 지옥에서 살아가는 것이 심심해서 그렇다네. 지옥에도 친구들이 있으면 덜 외로울 것 같아서 말이지. 기한은 한 달일세. 이것도 국내가 아니라 미국이라서 오래 주는 게야. 알겠나?”


“시간이 좀 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기한을 정하시는 것은....”


“자네도 지옥에 가 보고 싶은가? 지옥에서의 하루는 이승에서의 한 달보다 길다네.”


“휴~~우”


“자, 도움이 될 걸세. 챙겨 가게.”


최덕술이 테이블의 아래에서 미리 준비해 두었던 누런색 서류봉투를 천수철의 앞으로 던져주었다.

서류봉투의 안에는 LA에 있는 윤지만에 대한 자료와 사진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천수철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났는지를 물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천수철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주머니에 있는 흑패의 존재를 상기한 천수철이 고개를 숙였다.


“한 달은 길어요. 지옥의 하루가 이승의 한 달이라고요? 나에게는 이승의 1년보다도 더 길어요. 2주. 2주 안에 소식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해요!”


언제 나왔는지, 최덕술의 아내인 손미자가 최덕술의 뒤편에 서서 천수철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수철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사....사모님?!”


“나는 내 가슴에 대못을 박은 자들에게 똑같은 하늘의 벌이 내리기를 원해요. 당신의 교에서 가르치는 교리에도 나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죽음에는 죽음을!”


“어허~ 당신은 들어가 있어. 당신이 낄 자리가 아니야!”


“흥!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지금 차디찬 땅속에 누워 있는 사람은 당신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이에요. 내 아들 최. 정·식. 이라고요. 당신이 정식이의 죽음에 대해서 할 말이 있어요? 아니, 당신은 아무 할 말이 없어요. 당신은 기억도 못 하는 흑패를 방구석 깊은 곳에서 찾아낸 것도 나였어요.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요? 당신이 깊이 숨겨놓은 것을? 정식이가, 정식이가 꿈속에 나타나서 알려줬어요. 정식이는 땅속이 너무 춥다고 했어요. 가뜩이나 추위를 많이 타고, 겨울을 싫어하던 아이였는데.......”


손미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이야기에 최덕술은 인상을 찌푸렸고, 천수철은 입을 헤 벌리고 있었다.

손미자의 눈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눈동자에는 푸른색 귀기가 일렁이고 있는 듯했다.


“지....지금 두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최정식 서장의 죽음에 왜.....윤 의원의 아들을 끌어들이시는 겁니까?”


“천 사자, 자네는 자세한 내용까지는 알 필요가 없네. 내 마누라가 흥분한 것 같으니, 자네는 이만 가 보게. 일이 완료되면 다시 오게. 내가 갖고 있는 교에 대한 기록들을 전해주겠네. 내가 불태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정 교주는 실물을 건네받기를 원할 것 같군. 어서 일어나게. 자식을 잃고 눈이 돌아간 마누라를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네.”


“......네......네......”


천수철이 더듬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테이블 위에 있던 서류봉투는 잊지 않고 챙겼다.

천수철은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손미자의 눈길을 피해서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을 신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대문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천수철이 운전석 문을 열고는, 뒷자리에 서류봉투를 집어 던지고는 운전석에 앉아서 허둥지둥 시동을 거는 모습을 지켜보던 송지희가 말을 건넸다.


“오빠,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귀신...귀신이 있어”“에? 무슨 귀신이요? 어디에요?”


“저 집에 귀신이.....어서 가야 해......”


천수철이 거칠게 기어를 변경하더니 차를 움직였고, 자동차는 빠른 속도로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최덕술은 천수철이 들고 간 서류봉투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서류는 최덕술의 요청으로 정필모가 전해준 것이었다.

최덕술은 정필모가 미국에 살다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탁한 것이었지만, 이처럼 빠르게 많은 정보가 최덕술에게로 건네진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 * *


1990년 4월 3일 화요일.

한부 그룹.

비서실에 딸린 소회의실에서 강희수 과장이 채민호 비서와 마주 앉아있었다.

강희수 과장의 앞에는 수첩이 올려져 있었고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채민호 비서의 긴 이야기를 듣는 동안, 강희수 과장은 가끔씩 커피를 마시고, 가끔씩 수첩을 열어 뭔가를 끄적였다.

마침내 긴 이야기를 마친 채민호가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희수 과장을 바라보았다.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알아가지고 왔네요. 그것 봐요. 나는 채 비서가 능력 있는 분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어려운 일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번 일을 맡긴 것이기도 했고요.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 보고하는 이유는 뭐죠?”


“이런 일일수록 자료로 남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자료는 다른 누군가가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러운 생각과 판단까지도 마음에 드는군요. 올해 인사 발령 때에는 좋은 소식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수고하셨어요. 그럼, 이제 다음 단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도 알겠죠?”


채민호의 귀가 쫑긋하고 눈동자가 반짝일만한 이야기였다.

마른침을 삼킨 채민호가 입을 열었다.


“저.....제가 생각하기에는 한국대의 이신애 씨를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아요, 채 비서의 출장은 아직도 기간이 남아 있어요.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한국대학교로 출, 퇴근하세요. 출장비도 넉넉히 써도 좋아요. 좋은 소식을 기대하죠.”


수첩을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난 강희수 과장이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밝은 색깔의 투피스를 입은 강희수의 뒤태를 감상하던 채민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든 채민호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제기랄, 무슨 회장님한테 보고하는 것만큼 긴장하다니. 채민호, 민호야. 정신 차리자. 이런 나약한 마음으로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


채민호가 오른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 * *


1990년 4월 4일 수요일.

미국 뉴욕의 사무실.

여한모가 조영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편하게 마주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맨해튼 트리뷴]과의 인수 협상은 무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인수금액은 2천 1백만 달러입니다. 저쪽에서도 가격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보다는 빠른 계약 체결을 우선시했던 점이 인수금액을 낮출 수 있었던 요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운이 좋았던 일입니다.”


“경영진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당분간은 현재의 체제로 가고, 가까운 시일 내에 이사회를 열어서 우리가 새로운 경영진을 선임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미스터 카얀쪽을 통해서 유능한 경영진에 대한 이력서를 받아서 검토 중에 있습니다.”


“후보자가 압축되면 알려주도록 해. 다음 사항은?”


“신애 씨의 주변에 새로운 탐색자들이 등장했습니다. 목포 고향에도 다녀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학교의 친구들에게도 묻고 다니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누구야?”


“한부 그룹 비서실입니다.”


“한부 건설이 아니고? 한부 그룹 비서실이라고?”


조영이 눈쌀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조영의 시선을 받은 여한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고를 계속했다.




※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한 것으로 허구임을 말씀드립니다. ※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힘이 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Fortuna : 그 남자의 복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 안내 22.02.04 179 0 -
공지 토,일 연재로 전환 20.05.24 2,115 0 -
256 11-6 22.01.30 226 7 11쪽
255 11-5 22.01.29 173 4 11쪽
254 11-4 22.01.23 180 7 11쪽
253 11-3 22.01.22 193 6 12쪽
252 11-2 22.01.16 203 7 11쪽
251 11-1 22.01.15 203 5 11쪽
250 10-25 22.01.09 232 7 11쪽
249 10-24 22.01.08 223 7 11쪽
248 10-23 22.01.02 222 6 11쪽
247 10-22 22.01.01 215 7 11쪽
246 10-21 21.12.26 238 6 11쪽
245 10-20 21.12.25 225 6 11쪽
244 10-19 21.12.19 266 7 11쪽
243 10-18 21.12.18 256 7 11쪽
242 10-17 21.12.12 288 8 11쪽
241 10-16 21.12.11 280 5 11쪽
240 10-15 21.12.05 294 6 11쪽
239 10-14 21.12.04 294 6 11쪽
238 10-13 21.11.28 316 7 11쪽
237 10-12 21.11.27 311 6 11쪽
236 10-11 21.11.21 331 7 11쪽
235 10-10 21.11.20 335 6 11쪽
234 10-9 +1 21.11.14 340 8 11쪽
233 10-8 21.11.13 343 6 11쪽
232 10-7 21.11.07 368 5 11쪽
231 10-6 21.11.06 365 5 11쪽
230 10-5 21.10.31 385 7 11쪽
229 10-4 21.10.30 381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