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3. 오래 된 것. 오래 될 것.
아주 오래 전. 혼돈이 봉인 당하여 세계가 닫히기도 이전. 신들은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고, 그 힘을 보완하기 위해 하나의 생명체를 길렀다.
가장 단단한 육체를 가지고, 무엇보다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생명체.
설사 인간이 한계를 넘는다 하더라도, 한 번에 그 목을 따고 세상 위에 우위를 확고하게 알려 줄 존재.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은 매우 강했다.
개중 몇 몇 객체는 신에 근접 할 만큼. 하지만 신들은 인간과는 달리 이 파괴적인 생명체를 경계하지 않았다. 그들은 순종적이었고, 명령에 따르는 애완견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던 것이 일변 한 것은 혼돈이 봉인 된 이후.
닫혀 진 세계는 인간에게만 변화를 가져 온 것이 아니었다. 드래곤은 더 이상 신들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그렇게 발생 한 것이 신마전쟁.
신들과 드래곤의 싸움이었다. 봉인으로 힘이 빠져 있던 신들은 드래곤의 막강한 공세에 밀렸다. 수많은 신들이 목숨을 잃고 잘게 찢겨 지상으로 뿌려졌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강력한 개체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하그네스.
신들에 의해서 마룡이라 지칭 된 존재였다.
날개를 펴면 하늘을 덮고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지상이 울린다. 신을 초월하는 위세를 자랑했다. 전투 역시 비슷한 형국. 신은 멸망하고 드래곤이 그 위치를 차지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그 정반대였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드래곤의 수명이 극도로 짧았기 때문이다. 본디 그들은 신에 의해서 조종을 받는 애완동물. 세계가 닫힌 여파로 그 복속에서는 풀려났으나 대가로 짧은 수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드래곤들이 하나씩 죽어갔다.
파상공세로 몰아치던 전장의 흐름도 바뀌어갔다. 신들이 승기를 잡고 조금씩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하그네스의 힘이 강하다 한들 수 앞에서는 중과 부적. 그 역시 몰락을 예견 한 체 붉은 숲에서 최후의 항전을 한다.
불의 비가 내려고, 떨어지는 낙뢰가 세상을 수놓았다.
육체는 찢겨지고 영혼은 가루가 되었다. 신들은 하그네스의 죽음을 확신했다. 종전을 선언하고 긴 잠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하그네스는 그때 죽지 않았다.
신들의 눈을 피해서 움직일 수 있는 자. 세상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존재가 그를 구하고 줄어든 생명마저 수복시킨 것이다.
이것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
마룡 하그네스에 대한 이야기였다.
“페이는 어떻게 그리 잘 알고 있어요?”
“그야, 그와 직접 싸운 분에게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지.”
“……네?”
동화를 듣는 아이처럼 있던 이들이 페이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드래곤과 직접 싸운 이라니. 그런 존재가 있었을까 싶은 것이다.
“붉은 숲의 마수. 이 숲 자체를 이루시는 분이지. 포악하고 앞 뒤 사정 안 봐 주시는 분이지만 이래 봐도 나는 좀 살갑게 대하거든.”
“사, 살갑게요?”
“일단은 같은 종족이니까.”
“어? 그럼 붉은 숲의 마수가 에이션트 엔트라는 말 인가요?”
“아주 오래 됐지. 얼마나 길게 살아왔는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야.”
본디 붉은 숲은 마수가 자리를 잡고 난 뒤 형성 된 공간이다.
생각해 보면 페이나 다른 존재들은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것. 그가 흉포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쩌면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 잠깐만요. 그게 중요 한 게 아니잖아요. 하그네스가 깨어 났다면서요!”
“아차차. 늙으니 가끔 주제가 새는군. 그렇지. 마룡이 깨어났어.”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혹시 마수에게 부탁을 해서 싸워 달라고 할 수는……?”
아이들 중 하나가 물었다.
이미 한 번 싸운 경력이 있으니, 힘에서 밀리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페이가 말 했듯이 같은 종족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떻게 잘 말 하면 들어 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페이는 굵은 가지로 머리를 긁적이며 부정의 신호를 보냈다.
“용아병의 목적은 긴 잠에 빠져있던 하그네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거야. 주변에 있는 생명체를 산체로 납치하고, 때가 됐을 때 먹이는 거지. 꽤나 은밀하지. 하지만 이 숲의 주인인 마수가 그것을 모를 리 없어.”
“그 말은……?”
“아무래도 마수에게. 그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 숲을 통해서 읽어보려 해도 도통 보이는 것이 없는 게……”
페이는 뒷말을 아꼈다.
사실 그는 붉은 숲의 마수가 이미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붉은 숲은 그를 중심으로 생겨 난 곳. 에이션트 트리의 감각으로 읽어내면 희미하게나마 흔적이 잡혀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껏 아무것도 읽히는 게 없었다.
수명이 다해서 죽었거나, 어떤 변고를 당한 것.
어느 쪽이든 기대 할 만 한 것은 없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죠? 기댈 곳이 없는데……”
“휴.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지. 도망가는 것.”
“도, 도망이요? 집을 버리고?”
“어쩔 수 없다. 용아병이 이렇게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건 하그네스의 완전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그가 깨어나면 도망 칠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
분위기가 축 늘어졌다.
좋아 할 리 있겠는가. 이종족의 권리를 위해서 꾸려왔던 곳이다. 일종의 집. 고향을 두고 떠남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아아악-!!”
그때. 깊게 들어간 생츄어리 거처의 상부.
바깥쪽에서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귀 밝은 레오파드가 가장 먼저 감지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적?”
“일단 위로.”
당황하는 사람들을 펜이 진정시켰다.
날카롭게 간 단검을 양 손에 꼬나 쥐고는 몸을 날렸다. 그 뒤로 긴 행렬이 뒤따랐다. 마룡과 용아병. 붉은 숲의 마수.
불길함이 마음속에서 터오고 있었다.
***
생츄어리 거처로 들어오는 초입 부근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얀 뼈와 툭 튀어 나온 입. 거대한 덩치를 지닌 용아병들이 일거에 밀고 들어와 입구를 지키던 생츄어리의 이종족들과 충돌을 한 것이다.
용아병은 언데드와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불사에 가까운 몸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형태를 유지시키는 것은 마룡의 힘. 가루가 되어 더 이상 움직 일 수 없는 형태가 되기 전 까지는 계속해서 몸을 수복시키며 움직였다.
생츄어리를 지키는 병사들이 검으로 쪼개고, 창으로 꿰뚫었지만 쉬이 막아내지 못했다. 선두는 이미 상당 부분 고혼이 되었고, 후위와 합류하여 방어를 시작한 무리도 상당히 불안하게 흔들렸다.
“네놈-!!”
조금 늦게 위로 올라온 펜이 전장에 합류했다.
불같이 분노하며 달려 나갔다. 초속으로 전진하여 용아병의 몸을 깎아내렸다. 검이 뼈를 절단하고, 이어지는 관절 부위를 끊어냈다. 텅. 소리와 함께 무거운 몸이 추락했다.
“부상당한 놈들은 뒤로 물러나라!”
“펜! 조심해라! 용아병은 쉽사리 죽지가 않는다.”
페이가 거대한 줄기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그의 말 대로, 펜에게 토막 났던 용아병이 슬금슬금 일어나고 있었다. 부서진 뼈가 맞춰지고, 떨어져 나간 관절이 기어와 조립되었다.
“흥! 흔적도 안 남게 해 주지!!”
번쩍. 펜의 몸이 새하얀 빛과 함께 사라졌다.
단검과 단검이 충돌하여, 강렬한 힘을 토해냈다. 베고, 베고, 벤 다음에 뜨겁게 달아오른 열풍으로 이를 태웠다. 내구성이 약해진 뼈가 잘게 부서지자, 응축했던 힘으로 이를 한 번에 날렸다.
펑 소리와 함께 용아병 하나가 가루가 되었다.
“쏴라! 접근을 막은 다음에 가루가 될 때 까지 부숴버려!”
“베는 것은 다리로 한정해라! 남은 건 둔기로 부숴!”
싸움이 격렬해졌다.
페이의 지시에 따라 생츄어리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활을 잘 쏘는 켄타우르스가 연신 화살을 날려 용아병을 묶었고, 힘 좋은 우르노(몸의 절반 정도가 암석으로 이루어졌다.)가 돌 망치를 휘둘러 이를 부쉈다.
레오파드와 론노는 전장을 빠르게 달리며 부상병들을 수습했다.
뒤로 간 이들은 루이와 같은 라미아들이 치료를 했다.
“제, 젠장! 저 뒤를 보세요!”
“무슨……”
하지만 숫자에는 중과부적.
쓰러지는 용아병 뒤쪽으로 엄청난 숫자의 무리가 더 다가오고 있었다. 숲의 한 부분이 하얗게 물들어 가는 것 같았다. 다각다각. 움직 일 때 마다 뼈마디가 부딪혀서 섬뜩한 소리를 토해냈다.
“페, 페이! 물러나야 합니다! 이걸 다 막을 수는 없어요!”
“크흐흠! 브루노, 막스! 너희가 흩어진 이들을 수습해라! 남은 이들은 물러 날 준비가 될 때까지 이곳에서 저지한다!”
“말 도 안 됩니다! 저 숫자를 우리가 무슨 수로 막아요!”
“이놈! 나를 누구라 생각하는 것이냐!?”
우르르릉.
페이가 불같이 눈을 뜨고는 줄기를 휘둘렀다. 바닥이 일어나고 사람 몸 만 한 뿌리가 솟구쳤다. 하나, 둘 수준이 아니었다. 생츄어리 앞쪽. 전면을 모두 갈아엎을 정도의 숫자였다.
“더 이상 올 수 없다!”
콰르르르릉!!
들고 일어난 뿌리들이 파도치듯이 흔들렸다.
용아병을 후려치고, 쓸고, 갈아엎었다. 강대한 힘에 버티지 못하고 뼈가 부서져서 사방으로 튀었다. 하얀색 파도 위로 갈색 염료가 부어지는 것 같았다.
“오, 오!! 이거면 이길 수도……”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당장 물러날 준비를 해!”
잠시나마 화색을 띄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페이는 대경하며 소리쳤다. 에이션트 트리의 힘은 매우 강력하나 순간적인 것. 한 번 뿌리를 들어 올린 이상 지금과 같은 위력은 또 다시 사용하기 힘들었다.
쉬잇--!!
“컥-!”
“페이!”
그리고 그 순간.
뿌옇게 자리한 공간 너머에서 새하얀 화살이 하나 날아와 페이의 몸통에 꽂혔다. 그가 신음을 토하며 크게 휘청거렸다. 파도처럼 몰아치던 뿌리도 본채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내 축 늘어졌다.
“궁수……라니. 용아병도 진화했다는 말인가?”
박살이 나 조각난 용아병들의 위로 활을 든 용아병들이 등장했다.
토막 난 동료의 뼛조각을 주워서는 시위에 먹여서 쏘아냈다. 아직 핏물이 채 마르지 않는 시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뻔히 보였다.
“네노옴! 감히 우리 동포를!!”
펜이 불같이 분노하며 달려 나갔다.
화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바닥을 딛고 몸을 흔들었다. 하나, 둘. 어마어마한 숫자의 뼛조각들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스쳐간 자리로 핏물이 솟아 하늘에 새겨졌다.
타앙. 단검이 하나의 머리를 조각냈다.
몸을 돌리며 또 다시 휘둘렀다. 둘의 몸통이 쪼개졌다. 베고, 베고. 분노한 폭풍은 작은 돛단배를 조각내듯 그렇게 휘몰아쳤다.
“허억……허억……”
하지만 망망대해에 비하면 그것은 너무나 작은 부분.
펜이 베어낸 것은 티도 나지 않는 숫자에 불과했다.
어느새 사방이 용아병.
적진 한 가운데에 들어가고 말았다.
“젠장……!”
펜이 이를 악물었다.
사방에서 하얀 공포가 밀려왔다. 겨우 이렇게 죽는 것인가. 동포들. 같은 이종족의 권리를 위해서 죽는 날까지 싸우겠다, 맹세 했는데.
쓰린 가슴에 절로 눈물이 맺혔다.
“난리도 아니군.”
“이건 또 무슨 일이지?”
“……!”
하지만 그 순간.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귀를 두드렸다. 휙. 휙. 바람 소리가 두어 번 들리고 두 사람이 그의 앞으로 안착했다.
검은 머리에 붉은 눈의 남자.
칠흑을 떼어내 빚어 낸 듯한 여자.
“대화는 나중에 하자고.”
“흥! 뼛조각이라니. 마음에 안 들어.”
운페이와 비올레가 이곳에 등장했다.
- 작가의말
드래곤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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