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전쟁(惡魔 戰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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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기씨
작품등록일 :
2020.03.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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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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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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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 세튼신의 성녀 2

DUMMY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든은 곧 두 손으로 검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이제 슬슬 검술을 가르쳐 주마.”


짐머의 말에 베일리가 코웃음을 쳤다.


“도끼장이에게 배워서 뭐 되겠나? 차라리 나한테 배우는 게 낫지.”


짐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난 그만하시고··· 이제 갈 거요. 나머지 가죽들도 팔아야 해서.”


그때였다. 거리가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한쪽으로 무리 지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뭐지?”


짐머가 가게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이 이동하는 쪽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시니스트람 궁 앞 광장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기도 시간이구만.”


짐머를 따라 나온 베일리가 말했다.


“기도요?”


“자네는 이 시간에 좀처럼 오질 않으니 몰랐겠군. 짝수 날 오전, 해가 시니스트람 궁 동쪽 첨탑 위에 걸릴 때 궁 앞 광장에서 기도를 드리지.”


“무슨 기도요?”


“바이칼이 세튼신에게 드리는 기도지. 몇 달 전부터 시작했다네.”


바이칼이라는 이름에 검을 살펴보고 있던 이든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우리도 가봐요.”

이든은 들고 있던 검을 지게 위에 올려놓은 가죽들 사이에 잘 집어넣고 지게를 들쳐 메며 말을 이었다.


“바이칼··· 얼굴을 봐 둬야겠어요.”






광장은 이미 수 천 명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벌써부터 손을 모으거나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한 이도 있었다.


이든과 짐머는 궁에서 가장 먼 쪽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짐머는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봐베일리에게 빌린 망토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잠시 후 궁의 3층 발코니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색(米色)의 로브를 입고 검은 머리칼을 어깨까지 드리운 남자였다.


“우와아”


남자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저자가···”


“그래, 저자가 바이칼이다.”


이든의 말에 짐머가 대답했다. 이든은 바이칼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찡그렸다. 거리가 너무 멀었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될까요?”


“음... 뭐 괜찮겠지. 지게는 여기 벗어두고 가거라. 단, 너무 가까이는 가지는 마.”


이든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게를 벗어 내려놨다.


“뭐든 낌새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돌아와야 한다.”


“알겠어요.”


바이칼이 두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리자 광장이 조용해졌다. 바이칼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어앉았다. 광장의 사람들도 모두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이든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사람들과 함께 무릎을 꿇어야 했다.


“세튼 신이시여.”


“세튼 신이시여!”


바이칼이 기도를 시작하자 광장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말을 따라 했다.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 때 내려와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의 마음에 악이 가득할 때 우리를 이끌어 주시옵소서. 우리의 모든 것이 세튼 신에게서 시작돼 세튼 신에게로 돌아가나이다. 이 한 몸과 이 정신을 당신에게 바치나니, 부디 저를 거두어 당신의 길을 밝히는 횃불로 삼아 주시옵소서.”


이든이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였다. 이후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것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따라 했다.


비록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수천 명이 동시에 외우는 주문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중얼중얼 외우는 주문 소리가, 온몸을 덩굴처럼 휘감아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이든을 잡아끌었다.


깊은 곳으로, 더욱 깊은 곳으로. 바닥이 없는 어두운 심연(深淵)으로.


이든은 땅이 물러졌다고 느꼈다. 땅에 몸이 젖어들어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공기가 무겁고, 숨이 막혔다. 목과 등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빙빙 돌고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이든은 아득한 의식의 한 켠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정신의 끈을 잡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 끈을 막 놓칠 뻔했을 때, 비로소 기도가 끝이 났다.


기도가 끝나자 마치 어두운 동굴에서 빛이 나는 바깥으로 순식간에 빠져나온 것처럼 의식이 맑아지고 막힌 숨이 쉬어졌다. 이든은 꿇어앉은 채로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기도를 마친 바이칼은 꿇어앉은 채 양손을 하늘로 올리며 크게 세 번 절했다. 그리고 일어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성녀님이 축복을 내리실 것이다.”


바이칼의 말에 사람들이 발코니 앞쪽으로 모여들었다.


“오오! 성녀님 저에게 축복을!”


“성녀님! 저에게 축복을 내려주세요!”


“성녀님!”


사람들은 앞다투어 저마다 자신에게 축복을 내려달라고 외쳤다. 수 천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성 쪽으로 몰려들자 부딪히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생겼다. 성 앞에서 대기하던 병사들이 개입해 사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든은 성녀가 누구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난리인 건지 궁금했다. 아직 어지러웠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발코니 쪽을 바라보았다.


“성녀를 맞이하라!”


“오오 성녀님!”


“성녀다!”


바이칼의 뒤쪽에서 금발머리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성녀라 불린 아이는 자신의 머리칼만큼 찬란한 금색 로브를 입고 황금 대야를 들고 있었다. 햇빛이 머리칼과 로브, 대야에 비쳐 부서졌다. 마치 아이의 주변에만 환한 불이 켜진 것 같았다. 아이는 그 햇빛보다 더 찬란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녀가 황금 대야를 들고 발코니 끝부분으로 다가섰다. 사람들은 더욱 큰 소리로 축복을 기원하며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발코니 아래에는 병사들이 선별한 5명의 사람들이 발코니를 우러르며 양팔을 들고 서 있었다. 성녀는 그들을 향해 대야의 물을 조금씩 부었다. 대야의 물을 몸에 맞은 이들은 그 물을 마시고 온몸에 바르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이든은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금발머리 여자아이를 보았을 때 반사적으로 안젤라가 떠오르긴 했지만, 그녀가 안젤라 일리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궁궐 쪽으로 다가갔다.


성녀가 발코니 난간으로 걸어와 사람들에게 물을 붓기 시작했을 때, 이든은 광장 중앙까지 나아가 있었다.


햇빛이 눈부시게 밝은 날이었다. 성녀는 물을 붓는 일이 재미있다는 듯 활짝 웃었다. 티 없이 맑은 웃음이었다. 이든은 그 웃음을 잘 알고 있었다.


커다란 눈. 그리고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


안젤라였다.


죽은 줄만 알았던 막내 동생 안젤라가 시니스트람 궁궐 3층 발코니에 황금색 로브를 입고 나타난 것이었다.


“안젤라!”


이든은 소리치며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든에 의해 밀쳐지고 떠밀리면서도 발코니만 바라보며 ‘성녀님’과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생각만큼 빨리 접근할 수 없자 이든은 연신 안젤라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러나 그마저도 대중의 소음에 묻히고 말았다.


“안젤라!”


이든은 이성을 잃었다. 이제 그녀의 얼굴이 확실히 보였다. 안젤라가 확실했다.


안젤라가 대야의 물을 다 붓고 나자, 바이칼이 안젤라를 안아 올렸다. 안젤라는 웃으며 바이칼에게 안겨 자신을 성녀라고 부르는 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부모의 원수라고 여긴 자에게 막내가 안겨 웃고 있었다. 아니,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든은 그저 안젤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안젤라! 오빠야!”


몇몇 병사들이 이상함을 깨닫고 이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이든의 뒤쪽으로 망토를 뒤집어쓴 커다란 남자가 다가왔다. 짐머였다.


“이든! 정신 차려라!”


짐머가 이든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소리치자 이든이 뒤를 돌아보았다.


“안젤라예요! 제 동생이요!”


이든은 짐머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궁 쪽으로 돌아섰다.


다음 순간, 짐머는 이든의 뒷목을 손날로 강하게 내리쳤다. 이든은 정신을 잃고 다리가 꺾이며 쓰러졌다. 짐머는 쓰러지려는 이든을 어깨에 짊어멨다. 이미 궁 쪽의 병사들 중 몇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짐머는 서둘러 광장을 벗어났다.


광장 한 켠의 모퉁이에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헤지고 찢어진 누더기 같은 옷과 망토를 입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맑은 밤의 보름달처럼 형형했다. 짐머가 이든을 메고 광장을 떠나자, 그도 조용히 골목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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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6화 – 검은 암살자 1 20.09.09 22 0 11쪽
55 55화 – 에이럼 원정 7 20.09.06 24 0 11쪽
54 54화 – 에이럼 원정 6 20.09.01 25 0 10쪽
53 53화 – 에이럼 원정 5 20.08.26 41 0 11쪽
52 52화 – 에이럼 원정 4 20.08.23 25 0 13쪽
51 51화 – 에이럼 원정 3 20.08.19 25 0 10쪽
50 50화 – 에이럼 원정 2 20.08.16 35 0 10쪽
49 49화 – 에이럼 원정 1 20.08.12 36 1 12쪽
48 48화 – 여행에 필요한 것 3 20.08.09 38 0 10쪽
47 47화 – 여행에 필요한 것 2 20.08.05 74 0 11쪽
46 46화 – 여행에 필요한 것 1 20.08.02 38 0 10쪽
45 45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2 20.07.29 36 0 10쪽
44 44화 - 벨디무스의 파멸의 서 1 20.07.26 48 0 10쪽
43 43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3 20.07.22 41 2 10쪽
42 42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2 20.07.19 49 2 12쪽
41 41화 - 나 대신 약속을 지켜줘 1 20.07.15 45 1 10쪽
40 40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5 20.07.12 53 0 13쪽
39 39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4 20.07.08 48 1 9쪽
38 38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3 20.07.05 46 1 10쪽
37 37화 - 지옥으로부터의 습격 2 20.07.01 5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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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 세튼신의 성녀 3 20.06.10 54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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