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까미의 세상이야기(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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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깜이
작품등록일 :
2020.04.2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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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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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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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그래서 아무도 없었다.

DUMMY

그래서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불어와 감겨있는 내 눈꺼풀을 비집어 들어올렸다. 건물 벽 모퉁이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게 보인다. 간밤에 비가 왔나보다. 난 눈에 익은 상가입구에서 그렇게 잠에서 깼다. 젖은 몸이 춥다. 죽지 못했다.


몸을 일으키며 내쉬는 숨결에서 어제 먹은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역겹게 배어난다. 담배가 피고 싶어 길거리를 멀뚱히 쳐다보지만 눈에 보이는 꽁초들은 죄다 빗물에 젖어있다. 문득 비를 뿌린 하늘을 올려보려다 그 하늘이 애처롭다 생각되어 관뒀다. 그래, 야속할 것도 없지 내가 가진 게 없는 놈일 뿐이다. 하늘은 사람을 향한 의지가 없다. 간밤에 내린 비도 인간이 한 짓이겠지. 하기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하곤 상관없는 놀음이다. 난 또 지겹게 살아났으니 내일은 제발 뒈져있길 바라며 내 할 것을 하면 그뿐이다. 괜스레 젖어있는 담배꽁초를 발로 밟아 아예 짓이겨버린다. 이놈의 세상에 무슨 억하심정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았는지 걸쭉한 가래침을 한바가지 토해내곤 이른 아침 아직 덜 깬 거리로 터덜터덜 들어간다.


새벽거리는 조용하기만 하고 내 몸뚱아리는 시끄럽기만 하다. 시궁창 냄새를 풀풀 풍겨내며 삐걱거리는 이 몸뚱아리가 과연 쓰레기다워 흡족하다. 이렇게 여기저기로 쓸려 다니다 어디엔가 쓰러지고 그렇게 버려지길, 그리고 그게 늘 내일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따라 이 오르막길이 유난히도 길고 버겁다. 숨이 가빠진다. 아무래도 내일은 확실히 그날인가 보다. 내겐 살아야 할 이유가 처음부터 없다. 하지만 자살은 사치스럽다. 쓰레기답게 버려지고 싶다. 난 태생부터 쓰레기다. 내 노친네가 날 쓰레기장에서 주워왔다.


오르막길의 꼭대기까지 올라오니 구역질이 계속 나와 내장까지 다 토해내곤 주저앉았다. 저 아래 동네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거리감이 멀다. 내게 세상은 저만치에 있고, 사람은 아득하게 있다. 노친네는 살아생전에 여길 지나칠 때마다 징그러운 것들이라며 목젖을 긁어댔었다. 폐지를 넘쳐나게 담은 리어카를 뒤에서 밀고 올라온 나또한 노친네가 참 징그럽게도 미웠다.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곤 주머니 속을 뒤적거려 손에 걸리는 물건을 꺼내 본다. 소주잔이다. 노친네가 남기고간 하잘 없는 것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은 물건이다. 그러니까 따지자면 유품쯤 되는 건데 그 하잘 없는 것들 중에서도 제일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노친네 손때가 가장 많이 묻어있는 물건이다.


노친네는 술을 달고 살았다. 소주병을 허리춤에 끼고 다니며 한 잔씩 따라 마셨다. 그러면서 혼잣말을 자주했고 사람들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을 탓할 수는 없는 세상이라는 말을 자주했다. 우리는 늘 배고팠고 항상 아팠다. 특히 노친네는 허리가 안 좋아 리어카를 끌며 버거워 했는데 젊은 시절 공사판 잡역 일을 하다 다쳐서 그렇다 했다. 그러고는 살아갈 방도가 없어 동네 뒷산 한 켠에 판잣집을 만들어 놓고 고물을 모으며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종종 불법점거라며 큰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노친네가 살아있는 동안은 나도 거기서 살았다. 그렇게 큰소리가 나거나 내가 아프거나 하는 날이면 노친네는 술잔을 기울이며 고아원에 가겠냐고 물었고 난 늘 싫다고 했다. 노친네와 사는 게 좋다고도 안했다. 영감탱이가 말하기를 바깥세상은 사람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곳이라 그랬다. 그래서 싫다고 하면 내 앞쪽으로 다가앉아 술잔을 내밀었다. 난 머리가 크면서부터 소주를 마셨다. 잔이 하나뿐이라 매일 밤을 둘이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면서 울었다. 사람을 탓할 수는 없는 세상이라며 울었다. 불쌍한 놈 아파도 병원 한 번 못 데리고 가는 게 못 내 미안하다며 울었고, 돈이 무엇보다 제일인 세상이라 의사도 장사치가 하는 짓거리를 한다는데 그걸 뭐라 할 수 있느냐며 울분했다. 그렇게 곯아떨어질 때까지 염병을 하다 마지막엔 꼭 나를 보며 말하기를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억만금이 드는 세상이라 버거워 그랬을 게니 년놈들을 탓 할 것도 원망할 것도 없으나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제 자식을 쓰레기 취급한 죄는 나중에 꼭 따져 물으라 했다. 난 노친네가 그럴 때마다 그의 그 주름 가득한 미소가 싫었다. 그 씁쓸하게 덜걱거리는 주둥이가 지랄 맞게 싫었다.



손수레가 덜겅거리는 소리에 저 아래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침부터 폐지를 줍고 다니느라 바쁜 할머니가 수레를 끌고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게 보인다. 굽은 등이 오르막을 오르느라 가파르다. 사람에게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바퀴벌레. 세상엔 대게 바퀴벌레가 산다. 그 안에 사람이 더러 있다. 난 그저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다. 세상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기계장치처럼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끼워 맞물릴 톱니가 내겐 없다. 나기를 그렇게 태어났고 살기를 그렇게 살았다. 어느 젊은이가 할머니의 수레를 뒤에서 밀어주고 있다. 요 밑 구멍가게에 소주나 주우러 가야겠다. 젊은이의 뿌듯한 미소가 지겹도록 부질없게 느껴진다.


동네어귀로 들어서자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이 부산스럽다. 내가 어슬렁거리며 다가가면 날 보고 있지 않는데도 저만치 멀어지는 몸짓들이 바쁘다. 가방을 메고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들이 이따금씩 날 쳐다보면 난 심드렁하고 엄마들은 심통 난 얼굴이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멍가게 앞에 선 나는 가게 앞에 나와 있는 냉장고를 열어 소주 한 병을 꺼낸다. 밖에서 소리가 나자 안에 있던 주인할머니가 고개를 삐쭉 내밀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도로 접어 넣는다. 내친 김에 안에 들어가 말없이 담배 하나를 집어오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한다. 줍는 것과 안에 들어가 훔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궤변이라면 궤변이지만 난 그렇게 한다. 더구나 저 안에 들어가 괜히 쭈뼛거리기도 싫다. 잠시 망설이다 그냥 돌아서서 가는데 뒤통수에서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진다. 할머니는 나를 안다. 석훈이의 엄마다.


노친네는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물건은 뭐든지 다 주워왔다. 쓸 건 썼고 팔 건 팔았는데 책은 판잣집 뒤쪽에 모아두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고 별관심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한참의 세월이 흐르도록 책은 쌓여갔고 난 언젠가부터 게으르고 무기력해졌다. 밤이 되면 노친네와 술 마시는 게 좋았고 낮엔 요리조리 도망 다니며 담배꽁초나 주워 피기 바빴다. 그러다 정말 그냥 궁금해졌다. 책이 뭔지. 노친네와 나 말고 다른 게 어떤 건지 어느 날 그냥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책을 봤다. 까막눈이니 글씨를 그림처럼 들여다봤고 그러다 진짜 그림이라도 그려져 있으면 몇날며칠을 그것만 봤다. 석훈이를 알게 된 건 그 즈음이다. 그 녀석은 중학교 2학년이라고 했고 난 내 나이를 몰랐지만 얼핏 또래처럼 보였던 우린 그냥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아무데나 걸터앉아 책이나 뒤적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날 부러워했다. 정확히는 그런 걸 뭐라 할 사람이 없는 그곳을 좋아했다. 처음엔 담배를 뻐금거리고 있다 노친네가 나타나면 녀석은 황급히 담배를 감추며 죄지은 표정으로 쭈뼛거렸었는데 그런 녀석에게 노친네는 네놈 몸뚱아리나 걱정하면서 태우면 된다고 했었다. 담배 태운다고 눈에 쌍심지를 켜는 놈들 중에 건강 해칠까 염려되어 그러는 놈 없다며 담배가 그렇게 나쁜 거면 팔아먹질 못하게 해야지 왜 애 어른을 따지냐고 했다. 그 후로 녀석은 노친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뻐금거렸고 아무렇지 않게 노친네와 친해져갔다. 녀석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그럴수록 녀석의 엄마가 찾아오는 날이 잦아졌다. 간혹 석훈이의 아빠가 찾아오기도 했는데 그 사람은 팔을 걷어 부치고 와서는 웃옷이 다 찢어진 채로 돌아갔다. 그래도 녀석은 종종 찾아왔다. 그렇게 찾아오는 녀석의 몸엔 멍 자국이 있기도 했다. 학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왜 학교에 가느냐마느냐 때문에 얻어맞고 그래야하는지 궁금했다. 그냥 가지 그러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학교에선 배울 것이 없다고 했고, 난 그런가보다 했다. 그렇게 우린 종종 만났고 점점 뜸해져 나중엔 볼 수 없게 되었다.


녀석이 오지 않게 됐을 무렵 난 한 번 석훈이 엄마가 주인인 구멍가게를 찾아갔었다. 석훈이는 만날 수 없었고 오지 말라는 부탁만 받았다. 돌아서려는데 아줌마가 빵 하나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래서 다음 날 또 갔다. 석훈이는 만날 수 없었고 빵을 받아 돌아왔다. 그렇게 삼년을 매일 찾아갔다. 빵을 받았다. 손에 들려 받았고, 던져 받았고, 바닥에 팽개친 걸 주워 돌아왔다. 노친네는 점점 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난 빵만 먹었고 노친네는 술만 마셨다. 난 사람 사는 세상을 몰랐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어느 때 석훈이를 길에서 만났다. 녀석은 기타를 메고 있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녀석은 인생이라는 말을 했다. 난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녀석이 들뜬 모습이 그냥 좋았다. 뭔가를 하려면 대학은 나와야하기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난 그날 석훈이를 만났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노친네는 아예 일어나질 않았다. 그즈음 길에서 남자 둘이 내게 말을 걸어왔었다. 돈을 주더니 집에 데려다 달라기에 그리했다. 집에 트럭을 타고 도착하자마자 남자 둘이 널브러져있는 고물들을 트럭에 실었다. 기력도 없는 노친네가 몸뚱이를 질질 끌고 나와 남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노친네는 바닥에 내팽개쳐졌고 트럭은 떠났다. 그날 밤 자리에 누워 소주를 달라하기에 소주잔에 따라서 머리맡으로 밀어 줬다. 도리가 어디 있느냐며 울먹였다. 못 뺏어 먹는 놈이 등신천치라 하며 가느다란 숨을 드물게 내 쉬었다. 난 어느새 잠들었다.


노친네는 아예 움직이질 않았다. 소주잔에 가득담긴 소주도 일렁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나또한 그러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기력도 없었다. 몇 번의 날이 오고 가도록 그냥 있었다. 그 사이 바깥이 소란스러워 시선만 두고 쳐다봤다. 앞전에 다녀간 트럭이 몇 번 오고가며 남아있는 고물을 전부 실어갔다. 그러도록 내버려뒀다. 다시 몇 번의 날이 오고 갔고 어느 날 일단의 무리가 울타리 안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몇 명의 사내가 집 안으로 들어와 나를 들 것에 실어냈다. 사람들 사이에서 석훈이의 엄마를 봤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사람 구경을 하고 있었고 노친네의 고물을 전부 실어 간 남자 둘이 은혜도 모르는 금수 같은 놈이라고 고함을 지르며 날 손가락질 했다. 들것에서 뛰어내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맡에 놓인 소주잔이 보였다. 그래서 이 노친네가 그 밤에 술 한 잔을 달라 했나 싶었다. 빨아 넘긴 이별주가 내 흐느낌에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노친네의 육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것으로 이별을 마쳤다. 밖에선 사람들이 숙덕거렸다.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손가락질 했고, 석훈이 엄마는 외면했다.


주워 온 소주를 반 쯤 넘겨버렸다. 이제와 세삼 처량할 것도 없어서 그랬다. 대체 뭐가 더 남았다고 마음속이 일렁이는지 참 모르겠다. 소주를 한 모금 더 넘기곤 음식물쓰레기 수거함 뚜껑을 벌컥 연다. 어느 날 뉘 집 개가 길거리에서 몰 잘 못 주워 처먹고 지랄발광을 하다 뒈졌다는 소릴 들었다. 어디에 처박혀 뒈진 건지 알 수도 없다 했다. 그 얘길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그게 가장 나다운 죽음이라 생각했다. 기왕이면 더 역한 냄새가 나는 바닥 쪽에 묻힌 쓰레기를 퍼내려고 몸을 반으로 접다시피 해서 통 안으로 기어 들어갔는데 뭔가 뾰족한 것이 등짝을 아리게 할퀴어 댄다. 몸을 빼내서 살펴보니 길에 버려진 고양이가 날을 곤두세우곤 나를 노려보고 있다. 아마도 이게 녀석의 밥그릇인가 보다. 난 나눠 먹어도 될 듯하여 이리 와 같이 먹자고 했는데 이 녀석은 날 쫒아내야만 직성이 풀릴성싶다. 미물이라도 보고 배운 게 있어 우선 제 배때지부터 채우고 봐야 함을 아는가보다. 그래도 내가 사람인데 마음씀씀이로 고양이와 싸워야하나 싶어 우선 양보를 한다. 그런데 이놈이 한 참을 먹고 나서도 비켜주질 않는다. 저리 배가 빵빵해졌는데도 말이다. 그래 두고두고 너 혼자 먹어라. 여기서 사는 법이 그렇다더라.


이 골목 저 골목을 배회하다 한 주택가 골목에 들어서선 음식물쓰레기통 앞에 멈췄다. 누구 임자 있는 밥그릇인가 살폈는데 다행히 그렇지는 않은가보다. 뚜껑을 열고 맨 밑바닥부터 끄집어내어 먹는다. 허기도 달랠 겸 허겁지겁 주워 처먹는다. 그 앞 담벼락너머에서 한 가족의 깔깔거리는 소리와 함께 티브이 소리가 들려온다.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지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 수는 있다. 사람이 저기에 살고 있다. 사람은 저기에 있는데 세상은 아득히도 먼 곳에 있다. 배에 들어갈 수 있는 만큼을 밀어 넣곤 넘어오려는 것을 소주로 눌러 막았다. 숨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숨이 돌아가니 담배 생각이 난다. 숨 쉬고 있다는 것 조차 역겨워하면서도 당장은 담배 하나가 간절하다. 사람의 나약함이 서글프다. 사람의 욕망이 이다지도 징그럽다.


소주 한 병을 더 주우러 구멍가게에 왔더니 석훈이가 와있다. 녀석과는 몇 해를 지나 한 번씩 마주치긴 했다. 이번엔 좀 길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본 게 십년은 훌쩍 지난 것 같다. 나를 알아보곤 가볍게 손만 들어 아는 체를 하는 모양이 이젠 반가운 사람도 아닌 것 같다. 소주 한 병을 꺼내 선 바로 반병을 비워버렸다. 십 수 년 만에 만난 석훈이는 여태 인생 얘길 한다. 먹고사는 게 너무 바빠서 고향 들르기도 힘들다 한다. 사는 게 그렇단다. 그럴 필요도 없는데 괜스레 미안해하며 노친네의 안부를 묻는다. 하도 허탈하여 고개만 끄덕여진다. 뭐 그리 힘들어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했나 싶다. 뭘 그리 거창하게 사느라고 소식 한 번 못 전해 들었나 싶다. 난생처음 인생이 이런 건가 한다. 입맛이 쓰디써 소주가 싱겁다.


석훈이는 이제 또 언제나 볼는지를 한탄하며 그렇게 또 훌쩍 떠나갔다. 떠나는 길에 내 손에 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쥐어주었다. 그 돈으로 담배를 한 보루 샀다. 그리고 지나는 길에 문방구에 들려 커터칼도 하나 샀다. 그리고 노친네 마지막 떠난 그 자리를 찾았다. 그곳엔 산을 깎고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다. 판잣집이 있던 자리는 울타리가 서있고 노친네 누워있던 자리에 묘비라도 되는 냥 키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나도 그 나무 아래서 잠들려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나무 아래서. 사는 게 그런 건가. 모르고 살아왔음이 차라리 잘됐다 싶다. 칼날을 손목에 대고 간단하게 그었다. 노친네가 남기고 간 소주잔에 내 피로 이별주를 담는다. 아직은 해 저물지 않아 환한 하늘을 내피로 물들여 나 여기 있소 하고 소리 내어 운다.


그러나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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