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레의 불꽃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열기구
작품등록일 :
2014.04.06 23:55
최근연재일 :
2014.06.22 18:0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9,484
추천수 :
81
글자수 :
137,227

작성
14.05.18 21:08
조회
196
추천
2
글자
11쪽

14화. 어둠, 슬픈 현실.

DUMMY

[왜 다들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지?]

[네가 서루즈 정화기사단장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



며칠 후, 위기 대처 능력에 대한 구술형 경연이 진행되었다.

공터에 임시로 설치된 천막 안에는 네 명의 경연 참가자들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볕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지만, 드문드문 걸려있는 횃불이 있어 서로를 인식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경연 방식은 간단했다.

어떠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러한 상황에 어찌하겠느냐는 질문에 각자 자신의 판단력으로 대답하고 그에 대한 채점이 진행되는 방식이었다.

족장이 물었다.


“적에게 둘러싸여 포위되었을 때, 적은 우리의 두 배일세. 자네들은 어찌 해결하겠느냐.”


자비에 전 대장의 상황이었다. 마니아코는 존경과 의리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


“적 대장과 결투를 신청하겠습니다!”

“마니아코, 자네가 자비에를 존경하는 건 알겠지만, 그 판단은 명백히 틀렸네! 상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마니아코의 맞은편에 앉은 장로가 매서운 눈초리로 질책했다. 하지만 마니아코는.


“아닙니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장로님.”

“왜인지 설명해보게.”

“네! 우선 제가 결투를 하는 동안 우리는 시간을 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전제부터 틀렸네. 자네보다 실력이 출중한 자비에도 겨우 세 합을 버티지 못했어.”

“그 방법은 틀렸네.”

“틀리지 않았습니다!”


장로들과 마니아코의 갑론을박을 보며 조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조제에 클리앙이 귓속말을 던졌다.


“조제, 마니아코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어. 마니아코는 지금 자비에 전 대장이 능욕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한심한 시선으로 제 아들을 쳐다보고 있던 족장의 시야에 조제와 클리앙이 잡혔다.


“거기, 잡담하는 두 친구! 대답해보게. 자네라면 어찌하겠는가.”


족장의 물음에 귓속말을 주고받던 조제는 자세를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협상하겠습니다!”

“협상? 우리를 라브러지만도 못하게 보는 저들과 협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족장의 눈빛에 한심하다는 빛이 일었다. 조제는 허리를 곧게 펴고 똑바로 말했다.


“협상하는 동안 도주로를 찾을 것입니다.”

“도주로?”

“네! 그렇습니다. 협상을 하는 동안 적은 비교적 긴장을 늦출 테고 그동안 퇴로를 만들어 도주할 것입니다.”

“퇴로는 어떻게 만들 것인가?”


족장의 눈빛이 빛났다.


“조용히 정예요원을 최후방에 놓고 두 번째로 허술한 쪽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첫 번째로 허술한 곳은 오히려 함정일 가능성이 높으니 일차적으로 배제합니다. 두 번째로 허술한 곳은 비교적 탄탄할 수 있겠지만 함정에 빠져 많은 대원을 잃는 것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흠, 좋아!”


족장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클리앙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저는~! 음…. 애초에 포위당할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 아닐까요~?”

“그건 당연한 이야기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어찌하겠는가.”

“어, 어.... 그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이야기해보게.”

“아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왜 일어납니까요~!”


족장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깊은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클리앙은 네 시간을 달릴 때도 잘 흘리지 않던 땀을 비 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저 멍청한 놈! 경연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로브스터의 욕지거리가 조용한 천막 안을 울렸다.

모두 말은 하지 않고 있었지만, 로브스터의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그렇다고 족장이 로브스터를 칭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크흠, 그래, 로브스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로브스터는 의기양양하게 팔짱을 끼며 뒤로 기댔다. 간이 의자가 로브스터의 체중에 의해 끼긱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로브스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 저야 뻔하지 않습니까? 강력한 힘으로 응징하지요!”

“전력에서 우리가 불리하다고 했네.”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제가 있는데! 하하!”

“좋아, 정정하겠네. 자네가 있어도 불리하다고 한다면 어떡하겠는가?”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럴 일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제기랄, 거 말이 통해야 말을 하지! 제가 있는데 어찌 불리합니까?”

“뭐, 뭣이!?”


잠시 적막만이 천막 안을 가득 채웠다. 조제는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의외네. 클리앙과 로브스터도 지원했네.’

‘참가에 의의를 두는 거겠지. 어차피 들러리야.’


단호하게 둘을 들러리라 선포한 로랑처럼 아마도 족장 역시 지금 둘을 당장 들러리로 선포하고 싶진 않을까.

조제의 걱정이 사실이란 것을 증명하듯, 족장의 이마엔 나이를 잊은듯한 굵은 핏줄이 두서너 가닥 뻗어있었다.


이후 ‘적에게 추격당하는 상황’ 혹은 ‘먼저 적을 발견한 상황’ 등 평이한 문답이 더 오가게 되었고,

조제와 마니아코는 어느 정도 선방했지만 클리앙과 로브스터는 과연 이들이 경연을 치르러 온 사람인지 의심이 갈 정도의 어이없는 답변들만 늘어놓았다.


어찌 되었든 구술형 경연이 끝났다.

경연 참가자들이 돌아가고, 족장들은 장로들을 불러모았다.


“난 이번 경연에 불만이 많네.”


족장의 불만 어린 목소리에 다른 장로들이 크게 웃었다.


“허허,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우리 잘못을 탓해야지.”

“저 루즈 녀석들의 압박만 없었어도, 우리 아이들이 이 지경까지 되진 않았을걸세.”

“그보다, 우리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 했지 않나?”


족장 역시 한숨을 쉬면서도 그에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럼 저 녀석들 대족장 평가는 다들 어찌할 생각인가?”


한 장로의 물음에 다른 장로들이 벨포흐 족장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장로와 비교하면 족장의 위치가 높기야 하지만, 눈치를 볼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장로들이 벨포흐 족장의 눈치를 보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현재의 대족장은 대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정도로 늙었고, 서루즈의 다섯 족장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이는 7개의 촌락을 가지고 있는 벨포흐 족장이다. 사실상 서루즈의 실세. 또한 아들, 마니아코는 서루즈 전체를 보호하는 차기 정찰대장으로 유력시되지 않는가.


가장 유력한 차기 대족장. 또 가장 유력한 차기 정찰대장의 아버지. 그게 바로 벨포흐 족장의 위상이었다. 벨포흐의 선택에 따라 다른 족장들과 장로들의 선택은 바람처럼 흔들릴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크흠, 난 조제를 믿어볼 생각이네.”


족장의 말에 장로들은 깜짝 놀랐다.


“아니, 마니아코는 어찌하고 조제를 믿는단 말인가?”

“아들이라 그런 것인가?”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네.”


장로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족장의 생각을 돌려보려 하였다.


“아닐세, 내 오랜 생각이야. 마니아코 그놈은 정찰대장의 그릇이지. 그러나 마니아코가 가진 의협심은 곧이어 새 정찰대장을 뽑게 할 것일세.”

“…….”


족장의 말에 장로들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인정하네. 마니아코야 워낙 능력이 출중하니까 기사단을 휘어잡는 것도 제일 빠를 걸세. 하지만.”

“족장의 입장에선 자기 몸을 사리지 않는 정찰대장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지.”

"게다가 아들이라면."

“의협심이란 것은 적당할 때가 가장 좋은 거니까.”

"이미 자비에를 보았지 않는가."


장로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내뱉으며 미세하게나마 족장의 눈치를 살폈다.


“그렇지. 언젠가 더 여물면 그 의협심이 적당해질 날이 올걸세. 그때 정찰대장이 되어도 문제가 없어. 수비대장이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고.”


벨포흐 족장의 말에 장로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생각이 정 그러하다면, 나 역시 그를 따르겠네.”


장로들은 슬슬 이제 자신의 촌락으로 돌아간다며 몸을 일으켰다. 부족의 대소사를 결정지을 때는 장로이지만 자신의 촌락에선 촌장인 그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갈 생각으로 몸이 분주해졌다.


족장은 그들을 하나하나 배웅했고 몇몇 장로들은 ‘다른 부족에도 조제가 괜찮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 족장의 힘이 되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며 떠났다.

족장은 떠나가는 그들을 보며 조용히 읇조렸다.


“조제 역시 정찰대장의 그릇으로는 충분하지.”



***



“빌어먹을! 멍청한 놈들! 난 완전 망했어!”

“그렇게 생각하지 마~, 로브스터~! 조제 빼고는 우리 모두 뭐~”

“젠장! 장로들 대가리엔 다 뭐가 든 거야! 빌어먹을!”


네 명은 천막을 한참 벗어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해가 거의 넘어가고 있었지만, 길을 걷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빌어먹을! 내가 누구야! 난 로브스터라고!”


로브스터는 계속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내가 있는데 어떻게 불리할 수가 있어?’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로브스터, 네 대답이 우리 중에 가장 멍청했어.”

“뭐? 이 바짝 말린 세부홀 같은 놈아! 무슨 근거로 그따위 대답을 하는 거야!”

“잘 알겠지만, 난 바짝 마르지도 않았고 내 이름이 세부홀도 아니야.”

“그게 중요하냐? 요점을 짚어! 제대로 말하라고!”


로브스터는 분풀이할 상대를 찾았다는 듯이 걸음을 멈추고서 소리를 질렀고, 나머지는 익숙하다는 듯이 로브스터를 무시하며 걸음을 이어나갔다. 심지어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조제! 말 해! 제대로 말하라고! 라브러지만도 못한 자식아!”


로브스터는 기세 좋게 조제를 뒤따르며 소리 질렀고, 라브러지란 말에 조제는 눈썹을 움찔거렸다.


“왜 다들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지?”

“뭐?”


조제의 말에 로브스터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로브스터 쪽으로 휙 하고 몸을 돌렸다.


“로브스터, 네가 서루즈 정화기사단장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깟 쓸데없는 때기 놈, 일대일이면 못 이길 것도 없지!”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자비에 대장도 이기지 못한 네가?”

“멍청아! 그건 상황이.”

“네가 자비에 대장과 박빙이라고 치자. 자비에 대장은 세 합도 전에 그 기사단장에게 목숨을 내주었어.”

“그, 그래도….”

“불가능해, 로브스터!”

“젠장!”


조제는 다시 휙 하고 몸을 돌려 길을 따라 빠르게 걸었고 로브스터는 말문이 막혀 ‘잇!’하고 소리를 치려다 말을 삼켰다. 로브스터는 몇 번을 그렇게 반복하더니 일행의 뒤를 기민하게 쫓아갔다.




*라브러지 : 마드레의 땅에 흔히 나오는 '라브'의 비속어. 뜻 자체는 먹을 수 없는 라브를 말하지만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흔히 욕설로 쓰인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매우 심한 욕설로 들리기도 하며, 친한 친구 간에는 친근감의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드레의 불꽃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주간 임시 휴재 안내 +2 14.06.26 268 0 -
공지 읽어주세요^^ 14.05.06 286 0 -
공지 ※용어 해설. +2 14.04.24 323 0 -
24 18화. 어둠, 경연의 종료. +1 14.06.22 454 3 17쪽
23 17화. 빛, 함정. +2 14.06.18 445 1 11쪽
22 16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로랑. 14.06.15 339 0 12쪽
21 15화. 빛, 딜레마. 14.06.11 392 0 15쪽
» 14화. 어둠, 슬픈 현실. 14.05.18 197 2 11쪽
19 13화. 빛, 오(汚)를 들키다.(下) +2 14.06.08 476 2 11쪽
18 12화. 어둠, 미녀 군단, 그리고 조제, 그리고 마니아코. 14.06.07 212 0 13쪽
17 11화. 빛, 오(汚)를 들키다.(上) 14.06.01 169 0 12쪽
16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2) 14.05.31 302 0 13쪽
15 10화. 어둠, 두 번째 경연.(1) 14.05.25 381 0 12쪽
14 9화. 빛, 절대 선의 부정. 14.05.24 288 0 14쪽
13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2) +2 14.05.18 397 9 13쪽
12 8화. 어둠, 첫 번째 경연.(1) 14.05.17 386 2 13쪽
11 7화. 빛, 오(汚)를 받아들이다. 14.05.11 371 1 13쪽
10 6화, 어둠, 사(四)인의 후보. 14.05.04 399 3 16쪽
9 5화. 빛, 오(汚)를 깨닫다. 14.04.30 421 2 14쪽
8 4화. 어둠, 차기 국경 정찰대장. 14.04.29 236 3 17쪽
7 3화. 빛, '오(汚)'를 느끼다.(2) 14.04.29 341 5 12쪽
6 3화. 빛, '오(汚)'를 느끼다.(1) 14.04.28 371 4 10쪽
5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2) 14.04.28 410 3 11쪽
4 2화. 어둠, 국경 정찰대장 라주르 자비에.(1) 14.04.27 326 4 9쪽
3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2) 14.04.27 341 7 12쪽
2 1화. 빛, 정화 기사단장 크리스토프 미첼.(1) 14.04.17 611 11 11쪽
1 프롤로그. +8 14.04.12 917 1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