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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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엘사르카
작품등록일 :
2020.05.0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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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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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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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쪽

'여왕' 18.4

DUMMY

사람 수가 너무 많아서 엘리베이터를 두 번 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팀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경계한 히어로들은 1층에든 2층에든 우리를 우리끼리 두려 하지 않았다.


나는 파리안, 리젠트, 비치, 바스타드, 벤틀리, 미스 밀리샤, 웰드, 클록블록커, 그리고 트라이엄프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고급 기술이 적용된 엘리베이터인지, 건물 곳곳의 벌레들이 아니었다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몰랐을 정도로 움직임이 부드러웠다.


우리는 3층에서 내렸다. 나는 쓰레기통이나 벽에 있는 벌레들을 이용해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파악했다. 이곳은 내가 트릭스터의 순간이동을 통해서 들어왔던 곳이었다. 책상과 칸막이, 컴퓨터와 서류가 있었다. 의자나 벤치에 누워 잠들어 있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뒷방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위의 경관들이나 평상복을 입은 PRT 대원들이 우리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부지부장님.” 미스 밀리샤가 곧게 선 채 말했다.


“체포해 왔다거나 속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너무 비관적인 사람일세.” 부지부장이 말했다. “이 빌런들이 구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눈에 띄는군.”


“체포는 아닙니다. 그리고 차라리 속임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속임수였으면 좋겠다고 했나?” 부지부장이 물었다.


“진실이라면 더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S급 위협이 출현했습니다.”


방의 모든 사람이 그 말에 반응했다. 욕설과 당황이 섞인 웅성거림이 퍼졌다.


“누구지?”


“정체불명의 인물입니다. 어쩌면 아직 성숙하지 않은 네 번째 종말초래자일 수도 있습니다. PRT 씽커들과 접촉해 검증하고 싶습니다.”


“웨이츠.” 부지부장이 소란 속에서도 말했다. “도이온. 전화를 걸도록. 연락이 닿는 대로 전화기는 나한테 넘기고.”


“사람들을 깨워야 할 겁니다.”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그녀는 근처의 시계를 힐끗 보았다. “현재 시각은 새벽 4시 24분입니다. 이 정보가 진짜라면, 주요 전력을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죠. 이번이 상대를 죽일 유일한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죽일 생각인가요?” 내가 조용히 물었다.


“아니요,”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하지만 유일한 기회이자 유일한 선택지일 가능성은 존재하죠. 할 거라면 확실히 해야 합니다.”


“캘버트 지부장에게서의 연락은 없나?” 부지부장이 물었다.


평상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말했다. “연락 두절입니다, 부지부장님.”


경관 세 명 중 한 명은 나를 힐끗 살펴보았다. 용의자로서는 우리가 1순위인 모양이었다. 사실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부지부장이 명령을 내렸다. “밀리샤, 자네는 지부장 사무실로 따라오도록. 트라이엄프는 빌런들을 분리해서 수용하게. 스키터와 리젠트는 1번과 2번 접견실에, 헬하운드는 회의실에 두면 되겠군.”


레이첼이 자세를 바꾸는 것이 느껴졌다.


“한 가지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부지부장님?” 미스 밀리샤가 끼어들었다. “스키터는 회의실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키터와 태틀테일이 저희의 주요 정보원입니다.”


“그래도 되겠지만,” 내가 말했다. “비치, 그러니까 헬하운드는 저랑 같이 있는 게 더 안정적일 것 같네요. 개들은 원래 크기로 돌아왔고, 능력을 쓴다면 눈에 보이겠죠. 제 무장은 이미 미스 밀리샤님이 해제했어요.”


“수작을 부리려고 팀원들을 배치하는 것처럼 보이네만.” 부지부장이 말했다.


“아니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있을 뿐이죠.”


“전 괜찮다고 봅니다.”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그러지. 헬하운드와 스키터를 회의실에 두고—” 브록턴 베이의 거의 모든 파라휴먼을 태운 엘리베이터의 문이 한 번 더 열리자 부지부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태틀테일도 회의실에 두게. 파리안은 법무실에, 그루와 임프는 2번 접견실에 수용하고, 2번 접견실 앞에는 테이프를 붙이고 문에 안내문을 써 놓도록. 문이 절대 열려선 안 된다는 문구와 함께 임프의 스트레인저 능력에 관해 써 두면 되겠군.”


“어이!”


“가만있어, 임프.” 그루가 말했다. “너도 괜찮은 거겠지, 스키터?”


“전투가 시작됐을 때 풀어주기만 한다면 상관없어.” 내가 말했다. “의심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렇게 하더라도 여차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이거 짜증 나네.” 임프가 말했다.


“참아.” 그루가 대답했다. “가자.”


우리는 갈라졌다. 레이첼과 태틀테일과 내가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문에서 가장 먼 쪽이었다. 트라이엄프가 우리를 감시했고, 블라인드가 열려 있는 만큼 업무를 보기 시작한 경관들이 전부 우리를 볼 수 있었다. 그들 모두가 일 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우리에게 미심쩍어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접견실의 창문을 통해 리젠트나 그루, 임프를 쳐다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완전무장한 PRT 대원도 열 명 정도 주변에 있었다. 전신 방호복과 헬멧, 그리고 거품 분사기까지 갖추고 있는 무장 병력이었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었다. 벌레들의 감각 없이 눈으로 보고 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제와서 말하는 거지만, 미안해.” 내가 트라이엄프에게 말했다.


“왜 사과하는 건데?” 레이첼이 투덜댔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탁자에 발을 올리고 있었고, 바스타드는 그녀의 무릎 위에 웅크린 채 엎드려 있었다. 한 손은 벤틀리의 머리 위에 올라가 있었다.


“내가 이 사람 집을 공격했었잖아, 기억나? 그땐 정체를 몰랐지만, 트릭스터가 가족을 위협했지. 싸움이 났고 트라이엄프는 나 때문에 죽을 뻔했어.”


“그걸 말했다고?” 트라이엄프가 물었다. “다들 내막을 아는 건가?”


“안다고 봐야지.” 내가 말했다. “비치는 알아도 신경 쓰거나 이용하려 들지 않을 거고, 태틀테일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 거야.”


태틀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트라이엄프가 말했다. “웰드 말이 맞았어.”


“어찌 됐든,” 내가 말했다. “그 일은···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거야.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처음부터 아무 의미가 없는 짓이었어.” 트라이엄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워드를 졸업했을 때부터 목숨을 걸 각오는 되어 있었어.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알고 있었지. 보안 승인을 받자마자 S급 위협들에 대한 모든 영상 기록을 열람했어. 레비아탄, 시무르그, 베히모스, 도살장의 9인방, 닐보그, 슬리퍼(Sleeper). 다 알고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거였다고. 그러니 내 목숨이 위험해졌던 던 그리 놀랍다거나 두렵지 않아. 하지만 아버지가 당한 건 다른 문제지. 강제로 그런 주장을 펼친 탓에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이 몇 년은 후퇴했을 거야. 수습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도 없는 짓이었는데.”


“재기할 수 있을 거야.” 태틀테일이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도시가 이렇게 된 시점에서 정치 인생은 이미 반쯤 끝장났다고 봐야겠지. 물론 그게 전부 시장 책임이라는 건 아니지만, 침수된 폐허를 남기고 간 시장이 주지사까지 올라가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그렇게 말할 정도로 최악은 아니잖아.” 내가 말했다.


태틀테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라면 그렇지. 하지만 브록턴 베이에 와서 사진과 영상을 찍어가는 사진가들이나 기자들은 피해가 적은 지역을 찍어가지는 않아. 해변과 남부, 호수 쪽을 찍어가겠지. 그게 팔리니까. 도시 밖의 사람들은 최악의 모습만 보는 거야. 여론에서는 진실보다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이 더 중요해.”


“그리고 지금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무섭고 강한 슈퍼빌런들이 망가진 도시를 지배하는 모습이겠지.” 트라이엄프가 말했다. “너희들이 지금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상황은 더 나빠질 일만 남았을 테고. 확실히 아버지의 이력이 좋아 보이지는 않겠네.”


“우리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어.” 내가 말했다.


“기밀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서라든가, 리젠트의 능력을 쓸 생각으로 비스타를 납치해놓고 은폐하려는 거라든가?”


“그 애가 왜 필요한데?” 레이첼이 물었다.


“강하잖아.”


“비치 말이 맞아.” 태틀테일이 말했다. “확실히 비스타는 강하지만, 왜 굳이 납치하지? 아무 이득도 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셈인데. 강한 능력자가 필요했다면 네 사촌을 계속 데리고 있었겠지. 필요한 것들이나 갖고 싶은 것 중에서 이 도시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다 구했으니, 비스타의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야. 가치가 있는 거라고는 전부 망가지거나 누군가가 가져간 지 오래니까.”


“그럼 원하는 게 뭔데?”


“안전이지. 이미 기본적인 건 전부 갖췄어. 기지, 식료품, 난방, 동료, 현금, 전부 가지고 있으니, 여기서부터는 입지를 다지는 일만 남아있지. 밖에서 오는 빌런들이 우리 동의 없이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고 싶고, 너희들이 끼어들지 않도록 질서도 유지해야겠지. 옛날 일본의 야쿠자가 그랬던 것처럼, 합법적으로 도시의 사업체들에 파고들어서 누구도 몰아낼 수 없는 기반을 다지는 것도 좋겠네.”


“두려운 미래네.” 트라이엄프가 말했다.


“왜? 우리가 사악한 악당이라서? 으아, 무서워라.” 태틀테일이 손가락을 까닥까닥했다. “제대로만 한다면 주민들을 갈취할 일도 없어. 너희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마약 거래를 통제할 수도 있지. 그런 뒤에는 그저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서, 투자 수익과 능력의 이점을 이용해서 풍족한 삶을 보내면 그만이야. 새로운 위협이 나타났을 때만 움직이게 되겠지. 당신들과도 신뢰를 쌓는다면 새로운 파라휴먼들도 그쪽 아니면 우리 쪽으로만 가게 하거나, 그 밖의 여러 방법을 써서 통제할 수 있겠지. ‘헬하운드’ 같은 자기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한테는 나름의 안식처를 마련해줄 수도 있을 테고.”


“본인은 그래도 괜찮대?” 트라이엄프가 물었다. “어디 구석에 틀어박히게 돼도?”


“개들 있고, 귀찮은 사람 없고, 성가시게만 안 하면 상관없어.” 레이첼이 말했다. 그녀의 팔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한 박자 늦게 그녀가 바스타드를 쓰다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열흘 전보다는 훨씬 얌전해진 셈이네.” 트라이엄프가 말했다.


“몰라.” 레이첼이 대답했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


트라이엄프는 한숨을 쉬었다.


웰드와 클록블록커가 들어왔다. 클록블록커는 트라이엄프에게 콜라로 추정되는 캔 음료수를 건넸다.


“다들 얌전해?” 클록블록커가 물었다.


“대충은. 태틀테일이 다이나를 언급했지만, 자극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 저쪽의 큰 그림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 그밖에 별다른 이야기는 안 했어.”


클록블록커가 나를 보았다. “오는 길에 스키터랑 이야기를 조금 했었는데.”


“그리고 이야기는 그게 마지막이겠지.” 미스 밀리샤가 끼어들었다. 회의실 옆의 지부장 사무실에서 나온 그녀는 문을 열고 입구에 서 있었다. “우린 지금 사교활동을 하려고 모여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씽커들과 연락했다. 일레븐스 아워의 능력에 의하면 ‘8시’. 어프레이저의 능력에 의하면 ‘보라색’. 선제적 조치를 위해서는 세 건 이상의 정황 정보가 필요한데, 씽커만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세 명 이상의 씽커가 필요하지. 가장 먼저 연락이 닿았던 게 헌치였다. 네 예전 팀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웰드.”


“아직 자격이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요.” 웰드가 말했다.


“코스타-브라운 국장님이 허가하셨다. 헌치에 의하면 ‘좋지 않다’라고 해. 정보를 취합한 결과 A급 위협으로 결정이 됐다.”


“이런 미친, 언더사이더들 말이 사실이라고?” 트라이엄프가 물었다.


태틀테일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S급이라고요. A가 아니라 S.”


“PRT의 총책임자이신 국장님이 A급 위협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헛소리 말라고 해요.” 태틀테일이 말했다. “S급이에요. 어프레이저는 예전에도 종말초래자 습격을 ‘매끄러운 보라색’이라고 한 적이 있으니 그건 문제가 안 되겠죠. 일레븐의 ‘8시’는 75% 이상이고, 헌치 같은 두루뭉술한 능력의 경우 작전지침 976조 71항에 의해 정확히 75%로 간주하죠. S급 분류를 위해서 필요한 수치는 전부 맞춰졌어요.”


“이런 건 또 어떻게 전부 아는 거래?” 웰드가 물었다.


태틀테일은 손짓으로 그의 질문을 흘려넘겼다.


“국장님이 내린 결정이니 우리는 따를 뿐이에요.”


“선제적 조치 조건을 무시하더라도 S급으로 분류해야 해요. 975조 57항에 의해 고위 복제 능력자나 기하급수적인 증식을 일으키는 빌런의 경우 S급으로 분류되죠. 닐보그나 시무르그도 여기 속하고, 노엘도 마찬가지예요.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능력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거나, 능력의 효과가 팬데믹과 같은 형태의 확산을 일으킨다면···.”


“노엘은 자가 복제 능력자는 아니죠.”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그리고 능력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새로 생성되는 능력은 다른 사람의 복사본일 뿐이에요. 새로 생성된 능력이 기하급수적이나 재귀적으로 증식하지는 않죠.”


“말꼬리 잡기에요.”


“그리고,”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혼자서는 능력을 만들어낼 수 없죠. 상대와 접촉해야 하고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제한조건이 있어요. 방금 말한 조건을 만족한다고는 할 수 없죠.”


“그것도 말꼬리 잡기죠.”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런 게 가능한 사람이 붙잡히는 순간 S급으로 분류될 테니까요. 예를 들자면, 뭐, 아무 팅커라도 거기 해당하겠네요.”


“왜 여기 매달리는 건지 모르겠군요. 이미 우리 작전지침을 전부 암기한 것 같으니 당신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요.”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이건 그리 중요한 차이도 아니에요. A급 위협과 S급 위협에 대한 대응 절차에는 사소한 차이밖에 없어요. 몇 가지 사소한 규범이 바뀌고, 알렉산드리아님이나 레전드님, 아이돌른님이 온다는 보장이 없고, 위급상황 명부에 등록한 사람이 불참했을 때의 불이익이 없을 뿐이죠.”


“그러니 불참자는 당연히 나오겠죠.” 태틀테일이 말했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네요. 사람이 그걸 거슬러서 움직이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필요해요. 흔한 일이 아니죠.”


“당신은 평생을 히어로 일에 바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선량함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군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상황 설명을 듣고 자원했어요. 이미 이동해 오고 있죠.”


“히어로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면 다른 세력도 마찬가지겠죠.”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리고 A급 위협에는 확산 방지 조치도 적용되지 않아요.”


“이쪽에 팅커는 한 명뿐이에요.”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키드 윈뿐이죠. 암즈마스터는 이 건물을 떠난 지 오래예요. 복사 능력자도 없죠. 이 정도의 위험이라면 인원 선발과 조직 구성만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요. 확산 방지 조치는 불필요하겠죠.”


“탈출한 거겠죠, 암즈마스터는.”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그리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위에서 내려온 말이에요. 더 논의할 생각은 없어요, 태틀테일.”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그녀는 내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내가 밴에서 했던 말, 그러니까 손발이 권위에 묶여있다고 했던 말을 반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말했다. “몇 분 뒤에 전술 회의를 할 예정이에요. 곧 대응팀의 첫 번째 부대가 순간이동해 오겠지만, 우리 쪽의 가장 뛰어난 광역 순간이동 능력자가 레비아탄 때 사망한 탓에 이동이 느리군요. 언더사이더들도 곧 여러분과 합류하게 해 드리죠.”


“우리를 감시할 인력이 갖춰졌으니 말이죠.”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래요.” 미스 밀리샤가 짧게 말했다. 그녀는 벽에 기대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다들 얌전히 있도록 해. 저번에 불문율이 깨지는 사고가 있었을 때는 무슨 핑계를 대도 수습하기 힘들었으니까. 태틀테일에게 자극당하지 말고, 너희 쪽에서 자극하지도 말고.”


“감정적으로 나오더라도 어떻게 탓하겠어요?” 태틀테일이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걸요, 젊은 남녀가 세 쌍,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히어로와 빌런 사이의 금지된 사랑의 가능성이···.”


“방금 한 말은 당신한테도 적용되는 말이에요, 태틀테일. 이미 트라이엄프한테는 문제가 생기는 즉시 소리치라고 일러뒀어요.”


“천사처럼 있도록 하죠.”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래요. 그리고 파리안은 떠났어요. 그쪽한테 전해달라고 했죠. 영역으로 갈 거라고도 했고.”


파리안이 갔다고? 젠장.


“안 보내는 게 나았을 텐데요.” 내가 말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하지만 막을 명분이 없었죠.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번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아주 단호하게 이야기하더군요. 플레셰트가 데려다주고 있어요.”


“노엘이 비스타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파리안이나 플레셰트도 같은 방식으로 표적이 될 수 있겠네요.”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두 사람 모두 경보 전파용 장비를 갖추고 있어요. 최악의 경우라도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는 있겠죠. 그럼 이제 준비를 해야 하니 저는 가도록 하죠.”


미스 밀리샤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발걸음을 옮기며 누군가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경찰이기에는 너무 작고 어린 누군가였다.


방 건너편의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시작하기도 전에 엉망진창이네.” 태틀테일이 말했다.


“미스 밀리샤는 동요한 모양이야.” 내가 말했다. “긴장한 것처럼 보여.”


“누구라도 긴장하겠지.” 태틀테일이 대답했다. “전임자가 저번 종말초래자 전투 때 히어로 인생이 끝장났으니 더더욱 그렇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싸움에서는 우리가 힘을 쓸 수가 없어.” 태틀테일이 말했다. “네 벌레든 비치의 개들이든, 노엘이 닿자마자 흡수해 버리는 거라면 공격에 쓸 수 없지. 비치의 개들이 복제돼서 날뛰는 걸 볼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야.”


“원거리 화력이라면 히어로들 쪽에 있어.” 내가 대답했다. “키드 윈, 미스 밀리샤, 트라이엄프가 있지. 그러니 나나 비치는 지원 역할을 맡으면 돼. 개들이 주요 전력을 태우고 이동할 수도 있을 거야. 비치가 허락만 한다면 말이야.”


레이첼은 동의의 뜻이 담겨 있는 것처럼도 들리는 흥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 어쩌면 벌레들이 접촉하지 않아도 노엘을 묶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루라면 움직임을 늦출 수 있을 거고, 리젠트도 할 수 있을지 모르지.”


“레비아탄한테는 리젠트의 능력이 안 통했잖아. 만약 안 그랬다면 어땠을지 상상이 가? 리젠트가 레비아탄을 조종할 수 있었다면···”


“별로 상상하고 싶지는 않네.” 내가 말했다. “평판이라는 것도 적당한 지점을 찾아야지. 종말초래자를 애완동물로 데리고 다녔다간 ‘살려두기엔 너무 위험한 존재’로 분류될 거야.”


“그렇게 되면 도살장의 9인방처럼 하는 수밖에 없겠지. 상대가 손실을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운 싸움에서 계속 이겨대면 돼.”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계속 이동해야겠지. 그래야 상대가 우릴 추적하는 동안 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가상의 시나리오는 이쯤 하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태틀테일이 말했다. “임프는 어떡하지?”


“이 싸움에서 말이야? 구조를 맡겨야겠지.” 내가 말했다. “적은 임프를 노리지 않을 거고, 임프와 접촉하는 사람도 노리지 못할 수도 있어. 임프라면 쓰러진 아군이나 붙잡힌 포로를 대피시킬 수 있겠지.”


태틀테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조를 조금 바꾸며 말했다. “너희들도 언제든지 끼어들어도 되는데.”


세 사람은 자기들끼리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우리 말을 듣고 있었다.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는데.” 클록블록커가 말했다.


“조합이 있을 수 있겠지.” 내가 말했다. “널 벤틀리의 등에 태운다면 어때. 네가 건드릴 수만 있다면 노엘을 죽일 필요도 없겠지. 계속 얼려둔 다음에 그 주위로 수용 시설을 만들면 돼.”


“개에 태운다고? 나를?”


“무섭냐?” 레이첼이 물었다.


“누구라도 무서워하지 않을까. 무섭게 생겼잖아, 솔직히.”


“네 능력이라면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을 텐데.” 내가 말했다.


“팔을 물린다면 내 능력이 발휘될 때까지의 한순간만으로도 이빨이 박힐 수 있어. 물린 상태로 얼릴 수는 있겠지만, 풀릴 때마다 이빨이 조금씩 더 박혀오겠지. 사양하겠어.”


“무섭대.” 레이첼이 말했다. 그녀는 바스타드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는 그녀가 무릎 위의 늑대 새끼한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가 무섭나 봐.”


클록블록커는 코웃음을 치더니 웰드와 트라이엄프와 조용히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야기하면서 우리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무시하며 심호흡에 집중했다. 히어로들 앞에서 기침할 수는 없었다.


“괜찮아?” 태틀테일이 물었다.


“기침은 좀 줄었어. 폐나 목에 들어갔던 것들을 어느 정도는 뱉어낸 것 같아.”


“아니, 너 말이야. 지금까지 조용했잖아. 미스 밀리샤랑 이야기할 때도 평소보다 조용했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건 중요하긴 하지만,” 그녀가 말했다. “생각하느라 이렇게 된다면 곤란해. 커다란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어. 피로가 쌓였을 뿐이고—”


나는 말을 멈췄다. 옆방에 있는 모든 경관이 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나는 벌레들로 그 대상을 살펴보았다. 그는 후드를 쓰고 있었고, 옷 너머로는 뭔가가 빛나고 있는 듯한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손과 헐렁한 소매 주위로도 같은 효과가 느껴졌다. 후드 아래로는 클록블록커가 쓰는 것과 같은 유리 헬멧이 있었다. 그가 움직이자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길을 비키는 것이, 존재감만으로 치자면 사람이 아니라 코끼리쯤은 되는 것 같았다.


회의실에 들어온 아이돌른이 상석의 오른쪽에 놓인 의자를 집었다. 그는 망토를 한쪽으로 정리한 뒤에 자리에 앉았다.


“안 올 줄 알았는데요.” 태틀테일이 말했다. “고작 A급 위협이다 보니.”


“악명 높은 언더사이더들이군.” 아이돌른이 말했다. 뭔가 울리는 효과가 있는 목소리였다. 그루와도 비슷했다.


“그리고 명성 높은 아이돌른이시죠.” 태틀테일이 쏘아붙였다. “자기소개가 아니라 상대 소개네요. 그건 그렇고, 미스 밀리샤한테 싸워서 못 이길 상대는 데려오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던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말게,” 아이돌른이 말했다. “나한테는 통하지 않게 할 수 있으니.”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녀가 대답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태틀테일. 약점을 찾는 중인가?”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당신과 싸우게 된다면 모든 게 끝장날지도 모르죠. 그러니 정보를 미리 모아두는 것일 뿐.”


아이돌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태틀테일이 항복의 의미로 양손을 들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아이돌른은 고개를 돌려 웰드와 트라이엄프와 클록블록커가 나누고 있는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태틀테일은 팔꿈치를 탁자에 올린 채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피곤해?” 내가 물었다.


“지쳤어. 밤 내내 능력을 쓰는 바람에 머리가 지끈거려. 아직 노엘 문제는 시작도 안 했는데.”


“조금 자 둬.” 내가 제안했다.


“시간이 없어. 그리고 누굴 상대하게 될지 모르니 미리 생각해 두긴 해야 해. 노엘은 아이돌른을 노릴 거야. 싸우게 된다면 약점을 이용해야겠지.”


“태틀테일.” 아이돌른이 클록블록커의 말을 끊고 큰 소리로 말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나?”


“걱정 마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이미 아는 약점들일 테니까.”


“그런가?”


“능력이 약해지고 있잖아요.” 그녀가 말했다. “당장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눈에 띌 정도로 약해지고 있죠.”


몇 안 되는 벌레들로 아이돌른의 태도를 읽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이고 있었고, 팔뚝 쪽의 코스튬이 압박을 받고 있었다. 주먹을 쥐거나 손을 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히어로 측에 순간이동 능력자가 부족한 지금, 평상시였다면 당신이 사람들을 데리고 왔을 테니까요. 지금은 힘을 아끼고 있죠. 혹시 장기간에 걸친 걱정인가요? 평생 쓸 수 있는 능력이 한정되어 있다든지. 두 배로 밝은 촛불은 두 배로 빨리 닳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단순한 추론이군. 자원자가 적어서 나까지 나설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건가?”


“미스 밀리샤가 말했거든요. 자원자가 많다고. 그리고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죠. 전체적인 그림을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죠. 분명 알렉산드리아가—”


아이돌른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내려친 지점으로부터 퍼져 나온 포스 필드가 앉아 있던 나와 레이첼을 밀쳐서 넘어트리고 벽까지 밀어붙였다. 나는 갈빗대를 부여잡고 쓰러져 기침을 내뱉었다.


레이첼과 나는 배제하고 태틀테일만 아이돌른과 같은 공간에 두는 포스 필드였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가로막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겐 아이돌른과 태틀테일에게 붙여둔 벌레들이 있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틀테일이 말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A급 위협으로 한 이유는 조건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죠. ···알렉산드리아도 구실이 필요했을 테고··· ··· 당신이 온 이유는 무언가 증명할 게 있어서겠죠. ···한 상황에서 능력을 시험··· 위험이 있어야··· 최선··· 당신에겐 도전이···”


“···위험한 짓을 하는군.” 아이돌른이 말했다. 위협적이거나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감정 없이 차분한 목소리였다. 덕분에 알아듣기가 더 쉬웠다.


“···위험 정도야··· 재미있으니까요. 아주 재미있죠··· 알렉산드리아는 왜 오지 않는··· ···저요? ···비밀로 하죠.”


아이돌른이 뭔가를 말했지만, 말투가 바뀐 탓에 미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당신이요?” 태틀테일이 물었다. “몇 년은···”


“시발!?” 레이첼이 외쳤다. 벤틀리도 으르렁거렸다. 녀석은 이미 몸집이 부풀고 있었다.


“진정해.” 내가 기침하면서도 말했다. “싸우는 거 아니야.”


“날 밀쳤어!”


미스 밀리샤와 어썰트가 보였지만 포스 필드 때문에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미스 밀리샤가 외쳤다.


대답하려 했지만, 기침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아이돌른이 갑자기···”


“아이돌른이 우릴 공격했어!” 레이첼이 외쳤다.


“태틀테일이 도발한 건가요?” 미스 밀리샤가 물었다. 그녀는 총을 들어 올린 상태였다.


“아니요.” 나는 간신히 말했다.


포스 필드가 꺼졌다. 아이돌른은 탁자를 내려친 것 외의 움직임이 없었는지 그대로 앉아 있었지만, 태틀테일은 서 있었다.


“잠시 둘이서 대화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네.” 아이돌른이 말했다. “실례했군. 잠시 바람 좀 쐬겠네.”


그 말과 함께 그는 방에서 나갔다. 나는 그가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기침을 하면서도 다시 의자를 세우고 거기 앉았다. 레이첼은 계속 서 있었고 개들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녀는 방 건너편을 노려볼 뿐이었다.


나는 다시 손짓했지만 그러는 바람에 뭔가를 건드렸는지 가슴이 아파 왔고 나는 다시 기침하기 시작했다. 내가 다시 몸을 가누기 전에 레이첼이 쿵 소리와 함께 앉았다. 그녀는 탁자 가장자리를 세게 걷어차고는 발을 그대로 그곳에 두었다.


“뭘 한 거죠?”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그녀는 태틀테일을 보고 있었다. 우리 팀원들은 그녀의 뒤에 있었다.


“왜 사람들을 순간이동 시켜 오는 걸 도와주지 않냐고 물어봤죠.”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것만 말한 게 아닐 텐데.” 웰드가 지적했다.


“서로 피곤했을 뿐이야. 대화로 잘 풀었지.” 태틀테일이 말했다. 그녀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기지개를 켰다.


“믿을 수가 없군요.”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스키터, 당신은 괜찮은가요?”


“최근에 입은 부상이에요.” 내가 말했다. “곧 괜찮아지겠죠.”


미스 밀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걱정해주지는 않는 듯했지만,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럼 시작하도록 하죠. 다들 자리에 앉거나 근처에 서 있어 주세요.”


그루와 리젠트와 임프가 우리와 합류했고 그루는 내 뒤에 서서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내가 기침을 하자 장갑판이 없는 등을 한두 번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코스튬을 입은 사람의 수를 벌레들로 세어 보았다. 레비아탄 때보다 증원군이 적었다. 슈발리에와 미르딘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알아볼 수 없었다. 브록턴 베이의 워드와 보호국이 와 있었고, 외지인이 스무 명 정도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매긴 잠정적인 등급은 브루트 8, 체인저 2, 그리고 복합 등급으로 스트라이커/마스터 10입니다.”


“너무 낮아.” 태틀테일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기침을 참느라 몸을 들썩였다. 덕분에 주의를 더 끈 듯했다. 이미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주목하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옛날 코스튬을 입고 있었고, 기세에서 밀린 듯한, 노출된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평소처럼 벌레들로 뒤덮여 있지도 않았다.


“상대는 접촉한 대상을 복제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PRT 측에서는 A급 위협이라 평가하고 있지만, 태틀테일의 의견에 의하면 상대는 종말초래자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시점에서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의 위치를 모른다는 겁니다. 상대에게는 인질이 한 명 있습니다. 인질은 워드의 일원이며, 귀가 중에 습격을 당했습니다. 상대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상대에게 능력을 사용할 기회를 줘서는 안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하다요쉬를 상대할 때와 같은 교전 수칙을 적용하겠습니다. 일격 이탈과 안전거리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지속적인 공세를 유지합시다. 팀을 나눠서 행동할 텐데—”


미스 밀리샤가 말을 멈췄다. 슈발리에를 비롯한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온 경관 한 명이 미스 밀리샤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그녀는 몸을 돌려서 벽에 있는 버튼 하나를 눌렀다. 인공 목재로 된 벽면이 갈라지더니 대형 TV가 드러났다.


화면이 켜졌다.


“쟤라고?” 키드 윈이 물었다. “저게 S급 위협이야?”


“보기보다 커.” 태틀테일이 말했다.


나는 화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벌레들로 화면을 보려고 해도 사각형의 빛이 보일 뿐이었다.


“조용해.”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웹캠 화면입니다. 저희 측에서는 음성만 송신되도록 설정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노엘.”


“누구지?” 노엘이 물었다.


“말을 하잖아.” 누군가가 속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미스 밀리샤입니다.” 미스 밀리샤가 더 크게 말했다.


“총을 쏘는 여자구나. 또 누가 있지?”


“도시의 다른 히어로들이 있습니다.” 미스 밀리샤가 대답했다.


“아, 그게 다야? 언더사이더들한테 연락 안 왔어?” 노엘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어딘가 공허한, 실망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저희뿐입니다.”


“믿기가 힘드네,” 노엘이 말했다. “냄새가 나거든. 뭐, 정 그렇다면 거짓말해도 상관없어.”


“냄새가 납니까.”


“당신 말고. 하지만 상관없어.” 노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녀는 말을 멈췄다.


“계십니까?” 미스 밀리샤가 물었다.


“있어. 상관없다고 했잖아.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을 뿐이야. 그 애···. 죽였거든. 공간 능력자 말이야. 난 이름은 잘 기억 못 해. 너희 망토들은 이름이 너무 많거든. 난 언제나 능력밖에 신경 쓰지 않았어.”


“비스타를 죽였습니까,” 미스 밀리샤가 말했다. “왜죠?”


“죽일 수 있었으니까. 배가 고프기도 했고, 이미 다 써버렸거든. 보이지?”


잠깐의 정적 후에 사람들이 일제히 헉 소리를 내거나 웅성거렸다. 벌레 하나가 클록블록커가 무심코 내뱉은 신음을 감지했다.


그루가 가까이 다가와서 귀에 속삭였다. “비스타가 다섯 명 있어. 그중 넷은 얼굴이 피부보다는 가면에 가까워. 딱딱하게 굳어 있지. 코스튬이 아니라 어디선가 가져온 옷을 입고 있어. 다섯 번째는 키가 나보다 큰 것 같고 골격이 휘어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엘 쪽의 마이크에서 잡음이 들려왔다. 카메라를 자기 쪽으로 돌린 모양이었다.


“그냥 알려주고 싶었어. 미안해. 난 원래는 안 이랬거든. 내 몸에 생겨난 이것 때문에 그래. 기억은 남아있고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이게 내 무의식을 지배하는 것 같아. 이쪽에서 뭔가를 원할 때마다 이쪽이 뿜어낸 호르몬들이 내 몸과 내 머리로 들어와서 똑같은 느낌이 들게 하지. 사고방식이 뒤틀리고 있어.”


“왜 비스타를 노렸죠?”


“혼자였으니까. 그리고 강하다는 걸 냄새로 알 수 있었으니까. 인터넷으로도 알아봤었어. 정말 오랫동안 내 곁에는 인터넷밖에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이 아이들이 있어. 말도 잘 듣고, 곁에 누가 있으니까 좋네. 누군가와 신체 접촉을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거든. 다들 안기는 걸 좋아해. 여섯 번째만 빼고.”


“여섯 번째라고요.”


“말을 안 듣더라고. 혼자 도망쳐 버렸어. 가족을 죽이겠다느니 하면서.”


미스 밀리샤가 손을 휘둘러 손가락으로 찌르듯이 문을 가리켰고, 워드들은 서둘러 계단을 향해 달려나갔다.


“협상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미스 밀리샤가 물었다. 방금 보여준 격한 몸짓과 동료 가족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는 묘하게 침착했다.


“협상은 아니지만··· 거래는 할 수 있을 것 같네.”


“무슨 거래죠?”


“언더사이더를 죽여. 아니면 괴롭히다가 죽일 수 있게 나한테 넘겨주던가. 언제든지 좋아. 기절시키던가, 상처를 입히던가, 나한테 위치를 알려줘. 당신들을 해치는 것과 언더사이더를 해치는 것 사이에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언제나 그놈들을 선택하겠어. 약속할게. 내가 인질을 잡게 된다면 죽이기 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겠지. 그러니까 기억해. 난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인질이든 언더사이더 한 명과 공평하게 교환해 줄 거야. 언더사이더만 전부 죽는다면 내가 그때까지 만든 모든 복제본은 내가 냄새로 찾아내서 없앨 거고, 그다음엔 날 죽이게 해 줄게. 아니면 생포할 생각인가? 이제는 상관없어. 조만간 나는 내가 아니게 될 테니까. 어쩌면 지금도 내가 아닐지도 모르지. 예전과는 달라··· 횡설수설하고 있구나.”


“내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를 그놈들이 빼앗아갔어. 원래대로 돌아갈 유일한 기회를 빼앗아갔다고. 그놈들한테 대가를 치르게 하기 전까지는 당신들 히어로들을 계속 괴롭힐 거야. 나는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존재고,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도 쉽지 않을걸? 나는 당신들을 찾아내서 사냥할 거고, 다 써버릴 때까지 계속 복제할 거고, 복제본들로 당신들의 인생과 평판을 전부 망가트린 다음 잡아먹을 거야. 나를 노리는 것보다 언더사이더를 넘겨주는 게 더 쉽다는 사실을 당신들이 깨달을 때까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렇게 해 줄게. 그게 싫다면 복수하게 해 줘. 그러면 끝내줄 테니까.”


작가의말

[번역자 코멘트]

1. 미스 밀리샤가 언급한 ‘하다요쉬’는 베히모스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2. PRT의 능력 분류 및 등급은 어디까지나 실전에서 현장 부대가 신속하게 상대 능력자의 특징과 위험도를 파악하고 대응 방침을 정할 수 있도록 고안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능력의 위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8등급 이상의 숫자는 보통 ‘최대한의 위협’을 뜻합니다.



* 원작 번역 지침에 따른 공지사항.

“This is purely a fan project and I/we lay no claim to the ideas, characters, or story. The real author is J.C. McCrae, aka ‘Wildbow’, and the original version can be found at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The final chapter of Worm was published on 2013. 11. 19. This is a fan translation.”


"이 번역본은 팬의 작업물이며, 번역자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 캐릭터, 스토리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자는 'Wildbow'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J.C.McCrae입니다. Worm 원작은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에서 연재되었으며 2013년 11월 19일에 완결되었습니다. 이것은 팬 번역본임을 밝힙니다."



* 표지 출처 : Ari Ibarra (ariirf.com)

팬아트 작가의 사용 허가를 받은 표지입니다.



* 이 작품의 번역은 2인 비영리 프로젝트입니다. 번역자가 번역을 맡고, 편집자가 검수와 업로드를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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