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밤은 생각보다 안전했다.

자고 부시시하게 일어났다. 시차가 아직은 극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 샤워기도 물이 이곳저곳으로 튀는 반 고장 난 상태였다. 겉은 웅장해도 디테일한 거는 한국이 훨씬 우수한 것 같았다. 허기야 옷도 몇 번 입고는 버린다고 하니 그렇게 수요가 많은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사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입는 디테일한 나라와는 차원이 다른 소비국이 바로 미국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니, 좋은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후배 사무실에서 세 명은 바이어 사무실로 출발했다. 어제 커피를 얻어먹어서 택시비는 미철이 냈다. 운전석과는 방어 막이 있어서 구멍을 통해 돈을 주었다.
미철은 한국도 이렇게 운전석과 칸막이를 하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해 봤다. 운전하는 친구가 매일 불안하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나서였다.
3명의 여자 디자이너가 미팅에 들어왔다. 일본 친구하고는 여러 번 만났는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세 명이 묻는 질문에 일본 친구는 100% 들리는지 꼬박꼬박 대답을 했다. 물론 거북이 기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대답을 했으나 세 명의 금발 미인 디자이너는 인내하면서 다 들어주고 있었다.
대답하는 내용이 영문법이 100% 정확했다. 미철도 많이 들어 본 문법 내용이였다. not only 이 물건 but also 저 물건 이 물건뿐 아니라 저 물건도, cannot help increasing price, 가격을 안 올릴 수 없다. 등등 귀에 모시 박히듯이 천천히 이야기했다. 말은 더럽게 못하는데 듣는 것이 100%라는 것이 신기했다.
미철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반 밖에 못 알아듣는 미철을 간파한 후배는 낮은 말로 통역을 해주었다. 마치 다 알아들은 듯 미철은 일본 친구보다는 3배 정도 빠르게 대답을 했다. 물론 미철의 영문법도 완벽했다고 미철은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데 간혹 “pardon me” "다시 이야기 해 줄래요." 하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후배가 대신 이야기 해 주었다. "선배님 R 과 L 발음이 자꾸 틀립니다." 하며 귓속말로 이야기해주었다.
여하튼 역시 영어는 듣는 게 말하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사실을 미철은 다시 느꼈다. 뭔 말인지 알아야 yes 냐 no냐를 이야기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듣지 못하면 뭔 말인지 모르면서 yes! yes! 하다가 똥바가지 쓰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가끔 듣기도 한 것이 사실로 판명되는 시간이었다.
뉴욕은 10월 말인데도 바람이 몸을 시리게 했다. street 사이로 부는 바람은 빌딩에 앞이 막힌 바람이 신경질 내듯 헤집고 나가서인지 아주 써늘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사무실에 와서 오후에 미철은 후배가 조그마하게 잘라 준 바이어가 선택한 샘플을 들고 혼자 길을 나섰다. 주소만 보면 빌딩을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첫 방문지는 일본 친구가 미철이 것도 전달한다고 해서 2차 방문지는 일본 친구 것을 미철이 전달하기로 했다.
밥을 같이 먹자는 후배에게 저녁에 약속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수년전 미국으로 무작정 떠나 불법체류를 하면서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옛날 도시락 집을 같이했던 삼정이가 미국 온지도 7~8년 되는 것 같았다.
33번가에 있는 고려당이라는 빵집이었다.
롱아일랜드에 사는데 전철을 타고 온다고 했다.
간혹 전철에서 동양인이 뒤지게 맞는다는 뉴스도 봤는데 이 친구 완전 미국 사람 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미철을 약간 놀라게 했으나, 후배의 이야기에 마음은 조금 놓였었다.
“선배님 옛날 사고 많은 뉴욕이 아닙니다. 쥴리아니 시장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서 미국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됐어요. 역시 지도자 한사람이 중요하다니까요. 밤에 호텔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돌아다녀도 되요. 친구 분 만나면 물어보세요.”하며 미철을 안심시켜주었다.
“그리고 길거리를 보세요. 경찰들이 많이 있잖아요. 어떤 경찰은 뚱뚱해서 좀 이상하지요. 뛰지도 못할 정도로 뚱뚱한 경찰이 많이 있잖아요. 여기는 공권력 자체에 힘이 있어요. 그래서 경찰 제복의 힘이 셉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기에 많은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아에 도망갈 생각을 못해요. 경찰이 작은 시비 거리에는 뛸 일이 없어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요. 대통령 차도 딱지를 뗄 정도로 경찰이 힘이 있어요. 예전에 오바마 대통령 차도 공회전 한다고 걸렸잖아요. 어 참! 살만한 나라에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고려당을 찾아가 보세요. 선배님 잡아먹을 사람 없습니다. 킬 킬 킬.” 하며 후배는 미철에게 안심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헤어졌다.
밤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시간이었다.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 동안 미철은 10명이 넘는 경찰관을 보았다. 뚱뚱한 경찰관, 흑인 경찰관, 백인 청년 경찰관을 보면서 미철은 범죄가 줄어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범죄를 예방하는 치안이었다. 그리고 치안 자에게 주어진 힘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걱정 없이 여기 저기 구경하며 귀에도 익숙한 고려당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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