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력자, 다시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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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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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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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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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DUMMY

박태신과 유리아는 지하로 내려가는 구멍을 통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완만한 경사를 조심히 내려와 유리아가 고개를 탁 들자,

“와.”

신비로운 광경에 그녀의 입에서 자그마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풍경이 바뀌었군.’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

공간의 왜곡, 던전은 가끔 공간이 왜곡되어 있을 때가 있다.

분명 높지 않은 곳을 내려왔는데 완전히 내려와 눈 떠 보니 천장은 아득히 먼 곳에 있고 1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사라져버렸다.

세상을 지탱하는 여러 법칙이 이곳에선 통하지 않는다.

천장은 높지만, 완전히 뻥 뚫려 있는 장소는 아니었다.

약 7M 정도의 높은 벽이 길을 만들고 있었다.

‘이런 곳은 미로처럼 얽혀 있는 법이지.’

박태신의 예상대로 이곳은 완벽한 미로.

이곳에서도 시야 확보는 역시 문제없었다.

태양은 없지만, 저 높은 천장과 벽면 곳곳에서 미량의 빛이 새어 나와 일정 수준의 가시거리는 확보되었다.

작은 탄성을 내지른 유리아지만 아까와 같이 긴장을 놓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던전이라는 것은 들어온 이에게 그 위험을 증명한다는 사실을 유리아도 알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박태신처럼 주변과 정면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

조금 나아가자 바로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시작됐군.”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 그의 말처럼 어떤 괴현상이 유리아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정면, 지면에서 스물스물 솟아오르는 검은 안개.

아지랑이처럼 지면에서 솟아 나오는 그것은 처음엔 안개처럼 흐릿하고 색도 옅어 먹구름 같은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고체로 형태를 변형해나갔다.

그 현상은 유리아의 고갤 끄덕이게 했다.

‘아까 들었던 대로야.’

이곳에 내려오기 전 유리아는 박태신에게서 적의 정보를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적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알 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적은 검은 아지랑이처럼 지면에서 피어올라 이내 누군가의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박태신에게서 들을 땐 반신반의했지만 잠시 후 완성된 모습을 보게 되자 그 말이 틀림없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은 안개의 완성된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자신을 쏙 빼닮은, 완전히 같은 모습의 자신이 또 하나 서 있었다.




1 대 1 사이즈의 초정밀 조각품, 완벽히 같은 모습의 그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완성도가 정말 높네.”

“그러게요.”

“잘생겼어.”

“...”

눈코입, 입고 있는 옷, 들고 있는 무기의 흠집까지 진짜와 완전히 같았다.

머리카락의 한 올마저 완전히 똑같이 생겼으니 사실 진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일 것이다.

이렇게 완전히 같은 모습이지만 진짜와 가짜, 둘의 분간은 너무 쉬웠다.

아지랑이에서 천천히 형체를 갖춘 그것은 단색에 가까웠다.

완전히 새카만 것은 아니고 명암으로 형체의 정밀함이 표현되어 있지만, 바탕은 검은색.

마치 데생으로 그려진 정밀한 그림이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과 유사하다.

혹은 박태신이나 유리아가 흡혈귀가 되어 피부색이 변한다면 아마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완벽한 모습의 복사품이여도 본체와의 구분이 가능하고 따라서 피아식별엔 큰 문제가 없다.

‘아마 초반 전투엔 큰 문제가 없을 거야.’

박태신이 알고 있는 그 몬스터가 맞다면 전투력은 원본에 비해선 상당히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도... 말이지.’

어디까지나 들은 정보에 의한 것이라 그 역시 진실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확인해보는 것이 좋으리라.

박태신이 별안간 뛰쳐나갔다.

손에 쥔 고려 무사의 검을 힘껏 휘두르며 앞에 있던 유리아의 분신을 칼로 가르자 깔끔하게 양단되어 버렸다.

이내 반으로 갈린 그것은 검은 연기가 되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조금도 반응하지 못하는군. 일단 정보 자체에 거짓은 없어 보여.’

“어째서 하필 제 모습의 인형을...”

소멸하듯 사라진 가짜 유리아를 보며 진짜 유리아에게서 새어 나온 작은 불만.

자신이 당한 건 아니지만 눈앞에서 자신과 완전히 같은 모습의 무언가가 정확히 절반으로 갈라진 것이 조금은 충격이리라.

모습만이 아니라 내부까지 복사되어 있어 반으로 갈라진 모습이 끔찍하긴 했다.

“가까이 있었으니까.”

‘어쨌든 방금 공격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것을 보면 초기의 복제품은 형편없음이 분명하군.’

심지어 박태신의 복제품은 다른 복제품이 당하는 동안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저것들에게 최소한의 본능조차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고블린보다 훨씬 위험도가 낮았다.

‘나와 비슷할 정도로 강하다면 그건 정말 위기지.’

만약 지금 박태신의 능력마저 완벽하게 재현된 복제품이라면 유리아가 상대하긴 쉽진 않을 것이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짜와 비슷한 수준까지 움직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 점도 진짜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리고 이 복제품은 한 사람에 하나, 즉 자신의 분신 이외엔 따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듣고 보면 그래도 할 만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파르르.

하지만 상대가 죽일 수 없는 불사의 존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남아 있던 검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다시 형체를 잡고 유리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시간은 30초 정도.

복구 시간은 박태신의 생각보다 훨씬 짧았다.

“이놈들을 생성하는 본체를 찾아야 해.”

“알았어요. 하지만 제 인형은 무조건 제가 맡을게요.”

“...그래. 그럼 흩어지자.”

“네.”

둘은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다.




박태신은 유리아에게 사전에 간단한 행동 요령을 전달해 두었다.

하나는 체력을 너무 많이 소비하지 말 것.

만약 본체를 찾지 못하면 전투는 언제까지고 이어지게 된다.

그때를 대비해 너무 무리하게 움직여선 안 된다.

다행히 복사품들은 정말 약했다.

그건 박태신이나 유리아에겐 좋은 소식.

다른 하나는 공격엔 절대 맞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복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양은 같지만, 장비의 성능을 그대로 복제하진 못 한다.

녀석들이 복사한 무기는 철 정도의 강도로 실제 무기에 비해선 20~30프로 떨어지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인간은 철로 만든 검에 베일 때 가벼운 상처로 끝나지 않는다.

긁히기만 해도 가벼운 찰과상은 기본이며 잘못 맞으면 치명상, 따라서 움직일 땐 아지랑이 상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하나는 이들을 무한히 생성해내는 본체를 최대한 빠르게 찾아내는 것.

어쨌든 본체를 빠르게 찾아내지 못한다면 한정적인 체력을 가진 인간으로서 녀석에게 대항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거기에 적이 학습을 한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강해지는 적, 그건 긴 시간을 끌면 점점 불리해진다는 소리.

‘하지만 지금은 크게 와닿진 않긴 해.’

박태신의 움직임에 반응하여 그 뒤를 따라붙는 복제품.

그 복사품은 손에 쥔 칼을 휘두르며 공격해왔는데, 박태신이 보기엔 정말인지 너무 어설펐다.

‘달리는 것도 흐느적거리고, 공격도 느려.’

복사품의 어설픈 공격을 피하고 칼을 휘두르자 어떤 방어도 하지 못한 녀석의 목이 떨어졌다.

그리고 아지랑이가 되어 공기 중에 흩어진다.

재생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초.

이 30초를 이용해 주변을 살펴 암영 비석을 찾아야만 한다.

문제는,

“진짜 넓네.”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내부 넓이.

박태신을 가둔 벽의 높이는 7M.

매끄러운 벽은 잡을 곳이 없어 인간이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벽과 멀리 떨어진 천장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곳이 얼마나 넓은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하면 종이컵에 들어간 개미의 시점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주변은 완전히 흰색 벽으로 가로막힌 그곳에서 하늘만큼은 끝없이 넓게 보인다.

그 종이컵 바깥은 도대체 얼마나 넓은 것인지 개미로선 가늠하기도 힘들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야.’

아주 조금,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며 박태신은 앞으로 나아갔다.





전투 돌입 후 15분이 지났다.

7M의 벽이 시야를 가리고 벽엔 특별한 패턴 처리가 되어있어 뇌를 현혹한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 몇 번 방향을 꺾으면 방향감각이 엉망이 되어 자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지금 이곳을 걷고 있는 유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벽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다 조금 넓은 장소로 나온 것을 눈치챘다.

이곳으로 그녀가 되돌아온 것은 벌써 두 번째.

이 미로의 중심으로 보이는 이곳엔 높이 5M는 되는 커다란 바위가 박혀 있는데 이 바위를 회전 교차로 삼아 수많은 길이 있었다.

유리아가 커다란 바위 근처를 뱅 돌자 다른 길로 갔던 박태신이 이미 돌아와 자신의 복사품 목을 치고 있었다.

유리아는 박태신에게 다가가 현황 보고를 했다.

“저 길로 갔지만 또 여기로 왔어요.”

“그래. 아무래도 여기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박태신이 알고 있는 암영 비석의 공략법은 다른 몬스터와 같다.

본체를 찾아 처치하는 간단한 것.

하지만 중요한 건 암영 비석을 찾는 과정인 듯했다.

‘뭔가 있는데...’

박태신은 어떤 단서를 잡을 듯하면서도 그것이 명확하지 않은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골똘히 생각 중인 박태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유리아는 아직 가지 않았던 통로로 발을 옮겼다.

“저는 그럼 다시 저쪽 길로 가볼게요.”

그녀는 생각보단 몸이 먼저 움직이는 타입, 아니 몸을 움직이며 생각에 잠기는 타입이다.

통로를 걷고 있던 유리아의 근처에 쿨타임이 됐는지 다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본 유리아는 바로 전투 준비를 했다.

챙!

생겨난 복제품과 맞대는 검과 검.

‘인형의 움직임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어.’

조금씩 미묘하게, 하지만 확실히 그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다.

삐걱삐걱 대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고 내지른 검에 미약하게나마 힘이 실린다.

물론, 그 정도로는 유리아에게 위기감을 주진 못한다.

하지만 부담감은 계속 늘고 있었다.

복사품이 강해질수록 그녀의 체력 역시 훨씬 빠르게 소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팔이 무거워. 다리도.’

시간이 지날 때마다 몸에 납을 하나씩 언 듯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현상은 단순히 복사품이 강해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회용 펜싱과 전쟁용 검인 사이드 소드는 그 무게부터 틀렸다.

팔과 손목에 누적되는 피로감, 거기에 목숨이 걸린 실전의 긴장감에 소모되는 체력은 그녀의 압도적인 훈련량 이상이다.

챙!

다시 한번 맞댄 검, 유리아가 손목을 써 순식간에 상대의 검날을 빗겨내고 검을 앞으로 내지르자,

툭.

복사품의 머리가 땅을 뒹군다.

인간의, 자신의 모습을 한 복사품을 쳐내는 것에 아직 저항감이 있긴 했지만, 피는 튀지 않았고 생명체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라 고블린을 죽이는 것보단 죄책감이 덜했다.

약 30초의 휴식 시간, 잠깐이라도 앉아서 체력을 온존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다.

‘가만히 있으면 영영 이곳에서 나갈 수 없어.’

별다른 방법이 없는 이상 일단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과연 이 미로의 끝이 있긴 한 걸까.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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