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재생력 무한의 광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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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비우스
작품등록일 :
2020.05.1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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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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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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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그리고 숨겨진 진실

DUMMY

연구실 바닥엔 어느새 8병의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래서 아저씬 결국, 순례자의 길을 선택해 1티어에 도달하고, 마침내 이레이아를 만나 신살(神殺)하는 것이 목표인 거네?”


“그래.”


“더해서 내게 원하는 것은, 이레이아를 죽일 수 있는 신살 무기를 만드는 것이고? 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거대 마정석을 이용해?”


“그래.”


“...이야.”


짤막한 감탄사.

그것이 이 순간 에밀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우리야말로 이 세계의 전복을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들이야. 갖은 방법을 동원해 이 부정한 땅의 추악함을 알리고 흔들어 놓지. 허나 도합 8만의 머릿수가 넘는 우리조차... 뉴 판가이아의 신을 죽이겠단 생각은 감히 해 본 적이 없어. 그런데 당신은 참... 하하하. 이걸 용감무쌍하다고 해야될련지 아님, 광기에 사로잡혔다고 해야 할런지...”


“가능하다.”


이아노는 그 어떠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즉답에 가깝게 대답했다.


“어느 위대한 문학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틀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태어난 이유를 알아낸 날이다. 라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틀은 자신이 태어난 날과 태어난 이유를 알아낸 날’이라...”


에밀리는 이아노의 그 말을 이지적인 표정으로 곱씹었다.


“내가 이렇게 평생을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게 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내가 하는 일이 바로 그 이유가 될 것이다.”


“대단하네.”


에밀리의 그 말엔 어떠한 일말의 저의 혹은 의심조차 담겨 있지 않았다.

오로지 복수 하나만을 위해 수 백년을 달려온 방랑 전사.

그가 해준 이야기들엔 확실한 명분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총수님이 이 분을 만나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요,”


타이론이 말했다. 그는 이미 이아노를 자신보다 한참 높은 경지에 올라선 선신 취급을 하고 있었다.


“그 양반한테 뭘 기대해? 우리도 못 본지 한참이나 됐는데.”


에밀리는 그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는 듯 심술스런 표정을 지었다.


“총수는 전형적인 수련광이야. 무슨 놈의 면벽 수련을 3년을 넘도록 해? 그 양반, 무슨 성 기능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미친 수도승마냥 살 리가 없지.”


이 대목에서 이아노는 괜히 뜨끔했다.

그는 무려 그 다섯배가 되는, 15년 간의 면벽 수련에 정진한 경험이 있기에.


“마더, 그런 말은 삼가토록,”


보다 못한 쥬세프가 굳은 얼굴로 지적했다.

그는 연거푸 마신 술로 달큰해진 얼굴임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없었다.


“레드 나카마 님이 이번 면벽의 시간을 거치고 돌아오시면, 이 세계의 모든 부정을 평정하게 될 것이다. 총수님을 평가 절하하는 말 따위, 꿈에서도 꾸지 말아야 한다.”


“...쥬세프! 너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아아, 됐어.”


발끈한 타이론이 벌떡 일어나자, 에밀리가 그의 손을 붙잡아 자중시켰다.

이에 타이론은 무슨 전기총에라도 맞은 듯 몸을 옴찔거렸다.


“역시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밑 빠는 건 예술이로구만!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으면 얼마나 좋아?”


에밀리는 뾰로통한 쥬세프를 향해 꾸지람 대신 농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에밀리는 실질적인 초대 단주였다.

스컴 썬즈의 창립 기원 자체가 그녀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게릴라 부대.

하기에 권한으로만 따지자면 그녀 역시 총수못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작정하자치면 얼마든지 계급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셈.

허나 에밀리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지극한 자유방임주의자.

때문에 베일 군도에 있는 단원들은 다른 앨리완 다르게 모두 다 가족같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아저씨, 술도 다 떨어져 가지만 말야. 이번엔 우리 쪽 얘기를 좀 들어볼래? 우리가 왜 이런 조직을 꾸리고 사는지 말야.”


“별로 안 궁금한데.”


“오래 산 티라도 내겠다는 거야? 매사에 참 호기심 없는 양반이네. 그럼 이렇게 하지. 우리 애들 죽인 거, 내 이야기 듣는 걸로 퉁쳐줄게. 그럼 공정 거래 아냐? 아저씨가 저지른 일들, 단법으로 기준하면 즉결 처형인 걸 알아둬야 해.”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 할 텐데.”


“시발, 그걸 이제야 알아버렸지. 어쩐지 철갑탄을 맞아도 왜 안 죽나 싶었는데. 어쨌든 당신 시대 말로 물어보지. 딜(Deal)?”


이아노는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 말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딜.”



*


내 이름은 에밀리 패러데이.

강림력(降臨曆) 380년 2월 17일생.

엘 타라칸군이란 부랑자 도시의 고아로 태어났다.


엘 타라칸군.

그곳은 뉴 판가이아의 밑바닥 중 밑바닥.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아득한 밑바닥으로 파고 들어갔을 때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최극빈 부랑층만이 모여사는 저주의 마을.

태어나자마자 그곳의 이름 모를 거리에 덩그러니 버려진 나.


그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신의 손길이 닿았는지, 난 그곳에서 인심 좋기로 유명한 현자의 손에 거두어져 자라나게 되었다.

부랑자들에게 있어 신생아는 아주 훌륭한 영양분이었다.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에 거두어졌더라면 아마도, 누군가의 냄비솥 안에서 펄펄 끓고 있을 것이다.


나의 양아버지이자 위대한 스승인 그분께선 내게 삶의 많은 지혜를 가르쳐주셨다.


허나 그중에서도 가장 뼈와 살이 되는 가르침은, 바로 이 세계의 추악한 실체였다.


양아버지가 뭇 에테르 교인의 복음서보다 더 귀히 여기는, 붉은색 가죽으로 장정된 빨간책.

그것은 교리와는 매우 다른 내용으로 새로이 쓰여진, 렐름 임팩트의 진실이 담긴 금서였다.


내가 열 다섯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내게 이 금서에 대한 내용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해주었다.


태초에 온 우주를 다스리는 위대한 고대존(古代存)(The Great Old One)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역사와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워왔고, 현재의 새로운 세계를 맞은 우리에겐 ‘이레이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렐름 임팩트(Realm Impact).

우리는 고대존이 이 땅에 현신했던 그 날을 그리 부르며 살았다.


그리고 그가 현신하기 이전 세계를 ‘원죄의 땅’이라 불렀다.

원죄의 땅에서 나고 자란 인간들은 교만하고, 어떠한 지혜와 교훈도 없이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재물인 마냥, 아무런 죄책감없이 낭비했다.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해질 뿐이었다.

인간들을 한계선없이 탐욕의 부피를 늘려갔고, 세계는 점점 병들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

그것은 더 이상 원죄의 땅에 적용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아무도 멈추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고대존이 움직인 것이다.


세계와 우주의 질서를 위해.


여기까지가 내가 익히 알던 에테르 복음서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난, 살면서 이 말씀이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원죄의 땅에 살던 사람들을 욕하기도 했다.

적당히 만족하고 안분지족 할 것이지, 왜 도에 넘치는 짓을 벌여서 자멸의 길을 선택했을까?

어리석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여 항상 교훈으로 삼던 이야기들.


허나 금서에 적혀있는 내용은, 어린 나의 감성에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위대한 고대존(古代存)(The Great Old One)이라 불리우는 차원 너머의 존재가 있었다.


그는 제자리를 잡은 별들을 파괴하고 차원과 물질계를 넘나들 수 있는 초차원적인 힘을 가진 전능자였다.


그는 성내지도, 난폭하지도, 잔인하지도 않았고 슬픔과 기쁨이란 것을 몰랐으며 늙지도 병들지도 않았다.


허나 불행하게도, 권태로움이라는 것을 느꼈다.


평생을 지루함에 휩싸인 채 죽지도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불멸자인 그에게 있어 끔찍한 저주와도 같았다.

이 저주만큼은 온 우주의 배후자인 그조차도 막아낼 수 없었다.


시작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시간 동안,

영겁(永劫)의 단조(單調)가 내리는 끔찍한 헝벌을 받아야만 했다.


많은 세월동안 공허의 존재로 살아오던 어느 날,

그는 문득 아주 오래 전 잊고 있었던 어느 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별의 주인들을 기억했다.

‘인류’라 불리우는 생명체.

그리고 그들만이 가진 뜨거움과 차가움, 행복과 희망, 미움과 시기질투.


그것들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그럼으로써 이 권태라는 무거운 저주의 속박에서 구원받고자 했다.


단지 그냥 바라보는 것보다 더 미쁜 해결책이 떠올랐다.


‘감정’, ‘마음’, ‘영혼’.


온 우주에서 오직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그 소중한 것들.

그것들이 어쩌면 극에 치달아버릴 정도로,

격렬하게 꿈틀거리도록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하여 기억 속에 떠오른 그 작은 행성을 조금 다른 모습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그것은 어쩌면,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공포스러운 장난의 시작이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금서를 통해 새로이 알게 된 렐름 임팩트의 실체였다.

내가 처음 아버지께 이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난 도저히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심심해서.


우리에게 신이라고 떠받들여졌던 그 위한 존재는,


그냥 심심해서 세계를 멸망시킨 것이다.


이것이 내가 비로소 바로 알게 된, 신의 진정한 실체.

며칠 밤을, 공포에 떨면서 잠들지 못했다.

권태로움 때문에 인류를 말살시키는 신.

그런 신이 우리가 사는 하늘 위를 굽어본다고 생각하니 끔찍하게 공포스러웠다.


아버지는 그렇게 무서움에 떠는 나를 아랑곳도 않은 채,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것은 렐름 임팩트 이후 이 땅을 재건한 귀족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죄의 땅에서 각 나라를 지키고 있던 일말의 양심자들.

그들은 고대존의 은혜로 살아남아 하나가 된 초대륙, 뉴 판가이아의 초대 귀족이 되었다.


초대 귀족들은 고대존이 가지고 있는 무한히 광활한 지식의 편린 중 일부를 사사하여 차원을 뛰어넘는 문명을 건설케 되었고, 그리하여 지금의 뉴 판가이아의 모습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던, 복음서에 나온 귀족들의 모습이었다.


허나 금서에서는 이마저도 부정했다.


새롭게 재건된 초대륙을 다스리기 위해 세계로 내려온, 고대존의 아들들인 3왕자.


그리고 그들이 이 세계에서 자리잡기 위해, 발벗고 나서서 지구의 형세와 자원에 대해 고했던.

그리고 같이 살아 남은 동족을 말살케 했던.


밀고자들.


그것이 금서에서 그리는, 귀족들의 진정한 실체였다.


아버지의 말과 금서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신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장난을 쳤고,

살아남은 자들은 신의 자식들에게 나라와 동족을 팔아 먹었다.

이 세계, 뉴 판가이아는.

그렇게 수많은 자들의 피와 뼈로 쌓아 올려진... 진정한 ‘원죄의 땅’이었던 것이다.


*


이것이 에밀리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다 듣게 된 이아노는,

그 어떤 때보다 강렬한 살의, 그리고 격렬한 분노를 담은 눈을 부릅뜬 채, 보이지 않는 하늘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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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간계(奸計) +3 21.05.20 224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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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격동하는 천하(4) +1 21.05.14 184 7 12쪽
69 격동하는 천하(3) +2 21.05.13 194 6 16쪽
68 격동하는 천하(2) +2 21.05.11 185 8 15쪽
67 격동하는 천하(1) +3 21.05.08 190 7 14쪽
66 홍염(紅焰)의 변경백(3) +3 21.05.06 222 8 13쪽
65 홍염(紅焰)의 변경백(2) +1 21.05.04 193 7 13쪽
64 홍염(紅焰)의 변경백(1) +1 21.05.03 200 7 14쪽
63 패운의 반지 +3 21.05.02 205 8 15쪽
62 아는 사람들 +1 21.05.02 193 7 14쪽
61 정령왕의 가호 +1 21.04.29 199 8 12쪽
60 정령을 보는 눈 21.04.28 191 7 14쪽
59 전쟁의 씨앗 +1 21.04.27 200 8 11쪽
58 전사의 피 21.04.26 210 7 13쪽
57 이그제미네이터(Examinator)(5) 21.04.25 206 7 14쪽
56 이그제미네이터(Examinator)(4) 21.04.25 236 7 13쪽
55 이그제미네이터(Examinator)(3) 21.04.25 202 7 13쪽
54 이그제미네이터(Examinator)(2) +1 21.04.24 201 7 13쪽
53 이그제미네이터(Examinator)(1) +1 21.04.23 211 7 12쪽
52 크고 아름다운 괴물 +1 21.04.23 210 7 15쪽
51 난전 돌입 21.04.22 229 7 13쪽
50 드워프 21.04.22 221 7 13쪽
49 공중 잠행 21.04.21 228 7 13쪽
48 악당의 청부 21.04.21 221 5 12쪽
47 예언의 전사는 죽어야 한다 +1 21.04.20 220 6 13쪽
» 금서, 그리고 숨겨진 진실 +1 21.04.20 237 7 11쪽
45 500년의 삶 +1 21.04.20 226 6 13쪽
44 오묘한 재회(2) +1 21.04.19 213 7 12쪽
43 오묘한 재회 21.04.18 224 8 12쪽
42 큰 엄마(Big Mother) +1 21.04.18 224 7 13쪽
41 스컴 썬즈(scum sons)(6) +1 21.04.17 241 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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