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판타지 속 판타지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메리카노 남자와 포토그래퍼가 동시에 들어왔다.
미소가 두 사람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좋아, 두 사람, 각각 맡은 역할 알지?’
‘이제 시작한다.’
“너! 나 무시하냐?”
남편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미소 남편은 대답 없는 미소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미소는 당황했다. 상대가 너무 강하게 나오자 페이스가 흔들렸다.
다시 집중이 필요했다.
‘나는 이미소가 아니다. 영화 속 이예림이다.’
‘예림아? 니가 미워하는 남편이 너에게 묻고 있어!’
“더이상 말할 게 없단 뜻이야. 알아들어?”
“정말 아무 사이 아니다? 그럼 둘이 그 야릇하고 찐득한 건 뭔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워서 그랬어!”
“반갑다고 그렇게 하냐!”
“당신은 친구들 만나서 끌어안고 때리고 욕설하고 난리 치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냐! 난 장난친 거고!”
“정말이에요. 저도 장난 좀 쳤어요.”
수애가 어느새 다가와 장난이란 말로 정리했다.
미소 남편은 장난이란 말을 이어받으니 딱히 말싸움할 게 떠오르지 않았다.
고작 한다는 소리가
“이봐요, 장난할 게 있지, 남에 가정 파탄 내려는 것도 아니고···”
“여자들은 가끔 그러기도 해요. 여자들 잘 모르시죠?”
“······.”
“그 정도는 이해하셔야죠.”
미소 남편은 울상이 됐다. 면도날 같은 수애 말투를 파고들지 못했다.
‘됐다.’
‘수애는 자기 페이스를 찾았어.’
‘이제 우리 페이스로 넘어간다.’
수애가 정중히 인사를 한 후 밖으로 나갔다.
미소가 따라 나가려는데,
남편이 미소의 손목을 꽉 움켜잡았다.
“여기 그냥 있어.”
“화··· 화장실 가는 거야.”
“화장실? 웃기네 이것들이, 저 여자 기어들어 오면 그때 가.”
“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착각 좀 하지 마!”
“너, 거짓말할 땐 항상 말 더듬더라? 그게 귀여워서 너랑 결혼했지만, 지금은 그냥 병신 같아.”
“······.”
‘너무 강한데?’
‘내가 자꾸 위축되고 있어.’
심지어 조연 캐릭터가 주연 캐릭터 분석까지 해 들어왔다.
거짓말할 때 말 더듬는 미소 말투까지 알아차렸으니,
또다시 미소는 페이스가 흔들렸다.
“이 손, 놔!”
“뭔 짓 하려고! 화장실에서!”
“니가 생각하는 게 뭔데!”
“바로 니가 생각하는 그것!”
“정신병 있어? 도대체 뭔 생각하는 거야!”
“씨불여줘? 더러운 똥간에서 더럽게 붕가붕가 할 거 생각한다. 남자, 여자가 아니라 여자, 여자가!”
참지 못했다. 나머지 손으로 남편의 뺨을 후려쳤다.
뺨 맞는 소리가 홀 안으로 울려 퍼졌다. 턱이 부서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눈치 보던 사람들이 대놓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니 입이 더 더러워.”
“내 입 더러운 거 모르고 결혼했냐?”
“병신 새끼.”
“이 더러운 게!”
하면서 남편은 미소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미소가 그대로 쓰러졌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
고개 드는 미소 입술에 붉은 물이 보였다.
‘됐어, 이제 시작한다.’
‘집중하자 미소야!’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뭐야!”
미소 남편이 핏발선 눈동자를 굴렸다.
포토그래퍼가 사진기에서 눈을 뗐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 좀 찍었슴다.”
“뭐?”
“여자한테 맞았다고 그렇게 때리시면 어쩝니까. 완전 풀 스윙하셨네? 그러다 죽어요.”
“내 마누라야, 넌 뭐 하는 새끼야?”
“나? 보다시피, 찍새?”
하면서 카메라를 들어 보였다.
“찍새 주제에 감히 어따 대고, 너도 맞고 싶냐?”
“와, 법 무서운 줄 모르는 분이네.”
“지금 뵈는 게 없으니까!”
“어··· 어··· 때리면 난 바로 눕는다.”
“필름 빼.”
“필름? 요새 필름을 누가 쓰냐?”
“그냥 알아 처먹어야 할 거 아냐! 사진 지워.”
“싫은데?”
“이 새끼가, 너 내가 누군지 알어?”
“음··· 폭력 남편?”
계속 약 올렸고,
미소 남편은 열 받아서 다가갔다.
포토그래퍼가 뒷걸음질 쳤다.
미소가 기회를 잡고 황급히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미소 남편의 억새는 손이 미소 손목을 부러뜨릴 듯 다시 낚아챘다.
“넌 여기 있어!”
‘상황이 계속 강하다.’
‘그럼 더 강하게 갈 수밖에’
“이 손 놔, 후회할 거야.”
미소가 마지막이라며 경고했다.
하지만 남편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후회는 오늘 밤 침대에서 니가 하게 해 줄 게.”
“······.”
“그년보단 백배 더 해 줄 테니까!”
“야, 장택산이! 너 장택산 맞지?”
아메리카노 남자가 손가락질하면서 미소 남편에게 다가왔다.
미소 남편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 쉐키, 이기이기 아직도 주먹질하고 다니네? 나이 처먹고?”
“너··· 너···”
“그래, 나야 이 자식아, 이기철이!”
아메리카노 남자가 미소 남편 뺨을 두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가지고 놀았다.
“쌔끼 이거, 너 여자도 패고 다니냐? 쪽팔리게 자슥이.”
“다··· 단결!”
“단결은 지랄이고 마··· 너 이 쉐키야! 왜 내 전화 씹고 지랄이냐?”
“그··· 그게 아니고 바빠서···”
“나도 바빠! 이 형이 술 한 잔 사주고 회포나 풀려고··· 근데, 너 머리 빵꾸 난 건 이젠 괜찮냐?”
“아··· 이거 왜 이러십니까.”
“가만있어봐 새끼야. 왜 이러긴! 쉐키가···”
아메리카노 남자가 미소 남편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미소 남편이 거칠게 손을 잡았다.
“하, 쌔끼 이거, 엉길 줄도 아네? 똥오줌 구별 못 하던 새끼가? 가만있어봐! 너 그때 뒤지는 줄 알고 내가 인마··· 얼마나 너 죽이고 싶었는 줄 알아? 일루와 봐! 어여···”
“정말 왜 이러십니까. 사람들 있는데···”
“사람들 있는 데서 마누라 죽탱이나 갈긴 자슥이···”
“정말··· 아씨···”
둘이 엉겨 붙고 진행요원들까지 모여들면서 일이 커졌다.
‘됐어, 완벽해!’
미소는 이제 자유로워졌다. 뒤를 돌아보면서 파티 홀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텅 빈 복도를 걸었다. 수애는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이 보였다.
화장실 안에도 텅 비어 있었다. 화장실 칸마다 문이 열려있었고 수애는 보이지 않았다. 포기하고 거울에 비친 입술에 피를 봤다. 왼쪽 뺨은 금방 부어올랐다. 물을 틀고 닦으려는데 갑자기 힘이 쭉 빠지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뭐가 이렇게 서럽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 수애가 조용히 서 있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리만의 세계를 만들던 그때처럼 문 앞에 수애가 서 있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미소 남편이었다. 전화벨 소리가 화장실 벽을 두들겼다.
바로 꺼버렸다.
“야, 이예림! 빨랑 안 나와!”
미소 남편이 여자 화장실 밖에서 거칠게 소리쳤다. 여자 화장실이라 들어오지는 못했다.
이어서 수애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벨 소리가 밖으로 흘러나갔다.
“연수야! 나와! 나와서 얘기해! 둘이 거기서 뭔 짓 하는 거야!”
수애도 전화기를 꺼버렸다. 다시 조용해졌다.
지금 상황은 현철 감독이 설정한 상황보다 더 극단적이었다. 엘리베이터는 통로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통로조차 없다. 그녀들이 나아갈 수 있는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극한의 상황에 자신들을 몰아넣었다.
“우리 둘밖에 없어··· 아무도 못 들어와.”
미소가 들릴 듯 말듯 말했다.
수애가 걸어와 미소 입술에 뭉친 피를 만졌다.
미소는 수애 손끝 터치에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더 느끼고 싶어서 두 눈을 감아버렸다.
“누가이랬어? 남편?”
“괜찮아··· 이제 마음 다 풀렸어.”
“내 마음은?”
“그래서··· 내가 왔잖아.”
“옛날로 돌아갈 수 없겠지? 다 버리고?”
“넌 다 버릴 수 있어?”
“··· 아니.”
“······.”
“너무 많은 걸 잃어. 우린 이제 다신 못 돌아가.”
“난 다 버릴 수 있어.”
“······!”
“넌 버리지 않아도 돼, 나만 버려도 돼.”
“······.”
“너랑 단 하루만이라도, 그때로···”
수애 손끝이 깃발처럼 흔들렸다. 떨리는 수애는 손은 꽉 움켜쥐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미소가 수애 앞으로 한 걸은 다가섰다.
여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현철이가 대본을 들고 들어왔다.
“됐어, 잘 했어, 오디션은 여기까지야···’
현철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오 마이 갓···”
현철은 더이상 한 걸음도 다가서지 못했다.
- 작가의말
하루에 한 자라도 쓸 수 있을 때까지...
<선호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sns 로 주변 분들에게
이곳 링크 공유 부탁드립니다.
(아래주소는 카피가 되질 않습니다.)
https://blog.munpia.com/silaso01/novel/206955
.
.
.
.
.
.
.
.
.
.
Comment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