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탄생한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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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히아이스
작품등록일 :
2020.05.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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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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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1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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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폐륜의 지옥

DUMMY

진영의 일행은 계속 길을 걸었다. 언덕을 넘어 들판을 지나 숲길을 계속 걸었다.

저녁이 다 되어갈 즈음 진영의 일행은 길옆에 한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옥에서도 생명이 태어나는 건가?’


진영이 신기해할 때 가브리엘이 어깨를 툭 쳤다.


“자세히 보라구. 저 아이 죽은 애야.”


가브리엘의 말에 진영은 가던 길을 멈추고 조금 더 가까이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는 시커멓게 피부가 변해있었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저게 어떻게 된 거지?”


진영은 일행을 따라 걸으면서 강태공에게 물었다.


“저 여인은 여기 온 지 꽤 되었지. 지상에서 남자친구와 결혼을 반대하는 자기 부모를 독살했지.”

“그럼 저것이 형벌인가요?”

“저게 끝이 아닐세. 저 여인은 매년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네. 겨울에는 임신하고 가을에는 출산하지. 그런데 매번 낳을 때마다 죽은 아이뿐이라네. 그것을 본 어미는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게 되지. 그게 일만 년간 반복된다네. 끊임없는 고통이지.”


뒤따라오던 한나는 그 여인의 모습이 아무래도 걸렸다.


“혹시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요?”


한나가 안타까운 마음에 강태공에게 물었지만 강태공은 한숨을 깊게 내쉬고 한나에게 말했다.


“지옥에선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네. 자기 잘못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지.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려울 걸세.”


한나는 몇 걸음 더 걷다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서 다시 방향을 돌려 여인에게 뛰어갔다.

진영의 일행은 걸음을 멈추고 한나를 보았다.


“한나! 가면 안 돼!”


한나는 들은 척하지도 않고 여인이 마른 젖을 먹이고 있는 그늘 밑으로 갔다.


“저기요.”


입술이 말라 부르튼 여자는 한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한나는 여자의 얼굴을 보니 막상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 아기 보실래요? 귀엽죠? 이렇게 환하게 웃고 있어요.”


한나가 보기에 아기는 새카맣게 말라서 피부가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파리가 여러 마리 붙어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여긴 지옥이에요. 이 아이는 죽었다구요!”


한나의 말을 듣자 여자는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며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너도 내 아기를 탐내서 왔구나. 이 아이는 못 줘. 절대로 포기 못 해.”

“아니에요. 저도 여자라구요. 당신이 안타까워서 그러는 거예요. 아이를 놓고 자신을 찾으세요. 지금 당신의 모습을 보세요. 이렇게 지옥 속에 있는 당신 말이에요.”


여자는 몸을 돌려 아이를 감추었다.


“어서 가던 길이나 가요. 난 내 아이를 지킬 거예요.”


차갑게 말하는 여자를 보며 한나는 눈물이 났다.

그녀는 다시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부모님을 기억하세요?”


이 한마디에 여자는 갑자기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나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당신 누구죠? 왜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저도 지옥에 떨어진 사람이에요. 지나가는 길에 당신 얘기를 듣고 같이 대화해 보고 싶었어요.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이해할 수 있는 거니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당신에게 침을 뱉었겠지만 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당신을 비난하러 온 게 아니에요.”

“기억나는 게 없어요. 돌아가세요.”

“그 남자를 사랑했나요?”


계속 눈을 피하던 여자는 그제서야 한나와 눈을 맞추고 한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도 들은 얘기인가요?”

“네. 저기 계신 노신사에게 들었죠.”


한나의 말을 듣고 여자는 멀리 떨어진 진영의 일행을 보았다. 햇볕 때문에 강태공의 얼굴을 잘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한나에게 말했다.


“제 얘길 듣고 당신이라도 여기서 벗어나세요. 지옥은 악마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 곳이 아니에요. 나도 이 사실을 알고 몇 번이고 이곳을 벗어나려 했지만 이 아이를 보면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여자는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을 본 한나는 돌아서서 가려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한 가지 묻고 싶은데 당신이 그 남자를 사랑했다면 왜 굳이 부모를 죽인 거죠? 다른 곳으로 도망가거나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저희 부모님은 그냥 두고 보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아마 저나 제 남자친구가 먼저 죽었겠죠.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게 나았을지도 몰라요. 끝이 있는 고통이라면 그게 더 나은 거니까요.”

“혹시 우리하고 같이 가지 않을래요?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도 그걸 찾아가는 거예요.”

“당신들. 지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죠?”

“네.”

“딱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지옥에선 희망을 갖지 말아요. 그게 가장 큰 죄이자 형벌이니까.”


한나는 여자의 슬픈 표정을 보고 있다가 아래를 보았는데 여자의 배가 살짝 불러있었다.


‘설마!’


여자는 아기를 다시 안아 가슴으로 감쌌다.

뻣뻣하게 굳은 아기는 포대기에 싸여 말 그대로 인형 같았다.

한나는 더 말하려 했지만 볼록한 배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한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빠져나왔다. 그 여자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진영과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오는 동안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떻게 됐어?”


진영은 한나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한나의 붉어진 눈을 보고 얼른 말끝을 흐렸다.

물어보지 않아도 상황은 알 것 같았다.

진영은 한나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마지막으로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한없이 행복한 얼굴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아이처럼···.


진영과 일행은 걷다가 힘들면 쉬어갔다. 금방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닌 걸 알았다.

한참을 걷는데 비가 한 방울씩 떨어졌다.

우산도 없고 비 피할 곳도 없어서 마음이 급해진 진영은 앞을 보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바위에 올라가 멀리 내다보았는데 나무가 우거진 숲에 집이 하나 보였다.

빨리 걸으면 더 비가 오기 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영은 이것을 일행들에게 알렸다.


“비가 많이 올 것 같은데 빨리 가면 20분 정도 거리에 집이 있어.”


일행들은 집이 발견되었다는 얘기에 화색을 띠었다.


“그럼 우리 빨리 가요.”


한나가 먼저 소리쳤다. 나머지 일행들도 다들 힘을 내서 같이 걸었다.

비는 점점 굵어졌고 일행들도 점점 빨리 걸었다.

강태공만이 낡은 삿갓을 쓰고 천천히 걸었다.


“빨리 걸으나 늦게 걸으나 지옥에 있다는 건 변함없다네. 뭘 그리 서두르시나.”


강태공의 이 말을 들은 가브리엘은 비웃으며 더 빨리 뛰었다.


“그럼 당신이나 비 쫄딱 맞고 오든지. 어디서 훈계야. 나도 산전수전 다 겪어본 놈이라고.”


진영은 같이 뛰다가 강태공을 그냥 두고 올 수 없어 속도를 줄였다.

나머지 세 사람은 뛰어서 내리막을 내려갔다.

앞에 낡은 초가집이 보이자 가브리엘은 제일 앞서 나갔다.

집에 먼저 도착한 가브리엘은 마당에 들어서면서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여기 아무도 없어요?”

“저기요!”

“와 이거 집이 엄청 낡았는데. 비나 피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마당에는 낡은 농기구와 싸리나무 빗자루가 널려 있었고 사람이 산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가브리엘은 방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부엌에는 먼지 쌓인 가마솥이 있었지만 먹을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나와 카뮈도 도착하고 세 사람은 비를 피해 마루에 올라왔다.


“집에 아무도 없어. 비운 지 오래됐나 봐.”


한나는 쏟아지는 비를 보며 마루 안쪽으로 들어와 벽에 기댔다.

손으로 마루를 짚고 있었는데 손에 뭔가 묻어서 보니 빨갛게 말라버린 핏자국이었다.


‘이거 핏자국 아니야?’


한나는 자세히 보았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자기가 손으로 짚었던 곳을 보니 끈적하게 말라버린 핏자국이 보였다.


“가브리엘 여기 봐. 뭔가 이상한 핏자국 같은 게 있어.”

“그래?”


가브리엘은 나뭇가지를 뜯어 핏자국을 건드려보았다.

끈적하게 말라버린 자국은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피가 맞긴 한데 사람 피인지 무슨 피인지는 모르겠네.”

“여기 정말 우리가 있어도 되는 곳일까? 그 할머니 집에서 죽을 뻔했잖아.”

“하하. 또 나타나면 또 싸워야지. 죽을 고비를 하도 넘겨서 이젠 무섭지도 않네. 지옥인데 언젠가 죽겠지. 벌써 겁내서 뭘 하겠어?”


가브리엘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나는 진영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비는 하얗게 쏟아지고 흠뻑 젖은 상태로 진영이 들어왔다.

강태공은 밀짚모자 때문에 얼굴이 젖지는 않았지만 거적때기 같은 같은 옷은 다 젖었다.


“다들 젖어서 추울 테니까 내가 부뚜막에 불을 때 볼게.”


가브리엘은 부엌으로 가서 장작을 찾았다.

태울 만 한 게 없어서 부엌에 걸려있는 농기구와 빗자루 할 것 없이 나무로 된 것은 다 집어넣었다.

구석에 쓰다만 성냥이 있었는데 습기가 차서 불이 잘 붙지 않았다.


“오랜만에 쓰는 성냥인데 잘 안되네. 하나만 제발 붙어라.”


가브리엘은 반 통 남아있는 성냥을 거의 써버리고 겨우 불을 붙였다.

어디서든 생존 능력이 있는 가브리엘은 이런 시골 생활에도 곧잘 적응했다.

불을 피우자 나무들이 타닥거리며 타들어 갔다.


“오케이. 불은 피워놨고.”

“잘했어. 가브리엘. 마술사라 그런지 써먹을 데가 있구만.”

“보통 마술사가 아니라 일급 마술사니까 그렇지.”


모두 방에 모여 빗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점점 날이 어두워졌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집을 찾아서 다행이야. 낡은 집이긴 하지만.”


한나가 젖은 머리를 털며 말했다.


“하룻밤 잠만 자고 가면 되는데 낡으면 어때? 문제는 오늘 하룻밤을 무사히 지낼 수 있느냐지.”

“들짐승도 많을 것이고 마루에서 본 핏자국도 그렇고. 안심할 수가 없어”


가브리엘과 진영도 벽에 기댄 자세로 대화에 참여했다.


“오늘 밤엔 교대로 불침번을 서도록 하자.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니까. 강태공을 빼고 네 명이니까 두시간씩 서도록 하자.”

“강태공은 왜 빼는 거지?”


카뮈가 가브리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은 뭔가 믿을 수가 없어. 우리가 자는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아? 죽을 고비를 넘긴 우리끼리 불침번을 서는 게 맞아.”


그런데 강태공이 수염을 만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불침번을 선다고 안전할 수 있을까?”


강태공은 묘한 표정을 지었고 가브리엘이 발끈하고 나섰다.


“이 노인네는 항상 이상한 소리만 해. 우리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이려는 거 아니야?”


그때 진영과 한나가 나서서 말렸고 겨우 진정이 되었다.

강태공은 일단 제외하기로 하고 첫 번째 불침번인 진영만 깨어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잠을 청했다.

카뮈는 담을 따라 결계를 쳐놓았다.


“내가 잘 때 하는 건데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잡스러운 악귀들은 쫓아내 줄 거야.”


비가 그치고 깜깜한 밤. 멀지 않은 곳에서 난생처음 들어보는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진짜 지옥에 왔음을 실감케 했다. 지옥이라는 곳은 정확한 시대도 알 수 없었다.

정장 입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세시대처럼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신기한 건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영이 첫 번째로 불침번을 선지 한 시간 정도 흐른 후 밖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진영아. 여기오면 안 돼.”


진영은 방문을 열고 밖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바람 때문에 마당에 있는 철제 농기구들이 들썩거렸다.

문을 닫고 다시 들어오니 또 목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이것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진영아. 너는 여기 오면 안 돼. 어서 돌아가.”


진영은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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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지국천왕의 나라 -2- +1 20.07.23 123 3 12쪽
57 지국천왕의 나라 20.07.21 118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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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흑마왕과의 만남 20.07.14 131 3 12쪽
52 지옥의 라비린스 -4- +2 20.07.13 122 3 12쪽
51 지옥의 라비린스 -3- +1 20.07.10 122 3 11쪽
50 지옥의 라비린스 -2- 20.07.09 119 3 11쪽
49 지옥의 라비린스 20.07.07 125 3 12쪽
48 남지옥의 공주 카렌 -9- +2 20.07.06 120 3 12쪽
47 남지옥의 공주 카렌 -8- +2 20.07.03 122 3 12쪽
46 남지옥의 공주 카렌 -7- +2 20.07.02 124 3 12쪽
45 남지옥의 공주 카렌 -6- 20.07.01 137 2 12쪽
44 남지옥의 공주 카렌 -5- +2 20.06.30 1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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