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탄생한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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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히아이스
작품등록일 :
2020.05.1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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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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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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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을 지배하는 자 -3-

DUMMY

진영은 개구리 등을 찢고 나와 침을 뱉었다.


“내 생전이 이렇게 역겨운 일은 처음이군.”


진영은 갖은 힘을 짜내 밖으로 나와 바닥에 드러누웠다.


“헉. 헉.”


진영의 오른쪽 옆구리에서는 아직도 피가 나고 있었다.


“이제 끝난 건가?”


진영이 한숨 돌리기도 전에 개구리는 삼켰던 증장천왕을 다시 토해냈다.

증장천왕은 일어서려고 했지만 손과 발이 바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위층에서 진영의 발을 붙잡았던 끈끈이가 아래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쳇. 마력도 거의 상실된 것 같은데 굳이 죽일 필요는 없겠지. 너는 거기서 벗어나는 것만 해도 힘들 것이다.”


진영은 증장천왕을 뒤로하고 복도로 나오려고 문을 열었는데 거기 강태공이 서 있었다.


“강태공. 언제 왔어요?”

“오늘은 낚시가 잘 안 돼서 자네 싸우는 걸 보고 있었지. 용케 살아남았구먼.”

“미리 둔갑술을 써서 머리를 바꿔놨죠. 둔갑술 배울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머리통 바꾸기잖아요. 뱃속에 들어가서 포르토의 식욕을 자극하는 구슬을 던졌더니 지 주인인지도 모르고 잡아먹었죠.”

“그렇군.”

“어서 가시죠.”


진영이 나가려는데 강태공의 그를 막았다.


“아직 아니네. 화근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처리하게.”


강태공은 진영에게 구슬 하나를 주었다.


“이건···.”


투명한 구슬을 자세히 보니 안에 작은 불꽃이 타고 있었다.

진영은 다시 한번 끈끈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증장천왕을 보고 망설였다.


“어어··· 살려줘. 이번엔 진짜로 서국과 북국의 왕들을 물리치는 법을 알려줄게.”


진영은 이 말에 혹해서 개구리 배 속까지 들어갔다온 게 생각났다.


“웃기지 마.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속여서 배를 불렸겠지. 너하고 저 괴물 개구리까지 고통 속에서 반성해봐.”


진영은 강태공이 준 구슬을 바닥에 툭 던졌다.

구슬은 때구르르 굴러 껍질이 깨지고 안에서 순식간에 화염이 일었다.


“악! 살려줘!”

“네가 죽인 사람들도 너에게 그렇게 애원했을 거야.”


진영은 돌아섰다.


“서국의 광목천왕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넌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증장천왕의 절규와 함께 불길은 더 세게 타올랐다.


“강태공. 서국이라는 게 제3국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지. 서쪽에 있어서 서국이라고 하네. 나라로는 세 번째 있는 나라지. 자기들끼리는 서열을 매기기 싫어서 그렇게 부른다네. 어서 가지. 증장천왕이 죽었기 때문에 마력으로 유지되는 이 성도 곧 무너질걸세.”


진영은 강태공과 함께 성을 나와 다시 배로 돌아왔다.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성은 건물과 성벽이 힘없이 무너지고 폐허가 되었다.


“대역을 쓰는 놈일 줄은 몰랐네요. 하마터면 당할 뻔했어요.”

“그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없지. 그래서 높은 마력을 가진 자들이 증장천왕에게 도전했지만 실패했네. 원래 이름은 크로노스란 놈인데 저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도 다 저런 식으로 속임수를 쓴 덕분이지.”


진영과 강태공은 배 위에 올라 다시 강을 따라 내려왔다.

이번엔 서쪽으로 갈 차례이다.


***


배가 서쪽으로 향한 지도 3일이 지났다.


“강태공. 광목천왕은 어떤 놈이죠?”

“나도 자세히는 모르네. 워낙 오래전에 봤거든. 광목천왕은 주술의 달인이네. 주로 환상을 무기로 삼지. 사대천왕 중에 유일하게 심복이 없어. 그의 주술은 너무나 완벽해서 모두가 깜빡 속는다는 얘기가 있네. 조심하게.”


진영은 환상의 주술이라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기술일까 생각했다.


‘북지옥에서 보았던 거울 속 환상과 비슷한 것일까?’


진영이 생각에 잠긴 사이 두 사람이 탄 배는 어느새 제3국 광목천왕의 나라에 들어섰다.

잔잔한 강에는 물안개가 자욱했다.


“조심하게. 뭔가 나쁜 기운이 느껴지는군.”


강태공의 말에 진영은 더 주의 깊게 사방을 관찰했다.

움직이는 것은 없었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자 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강변에 누워있었다.

배가 근처를 지나자 마을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나리. 제발 먹을 것 좀 주십시오. 빵부스러기나 고기 뼈도 괜찮습니다. 뭐든 좋으니 먹을 것을 좀···.”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절을 하며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진영은 구슬을 꺼내려고 했는데 강태공이 손을 잡았다.


“마력은 이런데 쓰는 게 아니네. 특히 자네가 배운 흑마술은 생명을 꺼트리는 주술이야. 구슬로 빵을 만든다고 해도 그건 독약이나 다름없어.”

“저렇게 굶주리는데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나요? 이 나라의 왕이라는 광목천왕은 뭘 하는 거죠?”

“그는 인간들이 어떻게 살든 관심이 없다네. 지옥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여긴 죄지은 자만 오는 곳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진영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헐벗고 있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지켜보기 힘들었다.

일부러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그들의 목소리까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저 사람들은 아마 광목천왕의 환상에 속아서 이곳에 오게 된 사람들일 걸세. 나라라는 건 어쨌든 밑바닥 계층이 있어야 성립하는 거니까 달콤하게 유혹했겠지.”


두 사람이 탄 배는 나루터에 멈추었다.

진영은 배에서 내려 쓰러진 사람들 사이로 걸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폐허가 따로 없었다.

땅바닥에 힘없이 누워있는 사람들을 지나 조금 걷자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계속 걸었더니 작은 천막이 하나 있었다.

진영은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구역질이 나왔다.

안에는 몇 사람이 누워있는데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설마.”


진영은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곳의 이불을 걷어 보았더니 시커멓게 때가 탄 아기가 죽은 엄마의 빈 젖을 빨고 있었다.

아기 엄마의 목에 손을 대 보았지만 맥박이 없었다.


응애애!


아기는 낯선 사람을 봐서인지 울음을 터뜨렸다.

진영은 딸이 있지만 어릴 때 회사 일에만 신경 썼기 때문에 크는 과정을 잘 몰랐다.


“일단 먹을 걸 좀 찾아야겠는데.”


진영은 아기를 안고 다시 배로 돌아왔다.

강태공은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그 아기는 뭔가?”

“마을에서 배고파 울고 있었어요. 엄마는 이미 죽었고. 뭔가 먹을걸 줘야 할 것 같아요.”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여기서 아이를 살리는 건 큰 의미가 없네. 그 아기는 이미 현생에서 죽은 뒤 지옥으로 온 거네. 살아있는 게 아니야.”

“어찌 됐건 지금 이 아이가 배고파하고 있으니 도와주세요.”


강태공은 무심한 듯 낚싯대를 드리우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와주시지 않으면 제가 하겠습니다.”


진영은 일어나 배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때 강태공은 낚싯대를 거두었다.


“자넨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군. 지옥에서 자비는 금물일세.”

“그래도 돕고 싶습니다.”


강태공은 일어나 강변에 내려 막대기로 모래사장 위에 그림을 그렸다.

그러자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것은 큰 사슴이었다.


“이 사슴 젖을 물리면 당분간은 괜찮을 걸세.”

“고맙습니다.”


진영은 얼른 아기를 데리고 사슴의 젖을 물려주었다.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본능처럼 젖을 먹었다.

이 아이에게 있어 이것이 얼마만의 먹을 것인지는 몰라도 무척 허기진 것만은 분명했다.

아이가 젖을 물고 있었던 것은 10분 정도.

배가 불러진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다.


“이 아이는 내가 보고 있겠네. 마을을 지나서 해가 뜬 방향으로 가면 광목천왕의 성이 나올 걸세. 어서 가보게.”

“네. 꼭 이기고 오겠습니다.”


진영은 강태공을 뒤로하고 걸었다.

잡풀이 무성한 대지를 한 시간 정도 걸으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이 나타났다.

한눈에 성의 전체 규모가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게 성이야 도시야?”


진영은 좀 더 가까이 갔는데 성벽이나 건물들이 무척 낡아 있었다.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는지 온통 덩굴들이 뒤덮고 있었다.


“광목천왕은 부하가 없다고 했는데 이런 큰 성을 가져서 뭘 하지?”


벽돌을 쌓아 만든 성은 총길이가 몇 킬로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이 넓은 성에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진영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여긴 오래 있고 싶지 않군. 마치 주인 없는 성 같아.”


성문은 열려있었고 무너진 성벽과 이끼까지 낀 건물들이 널려있었다.


“오빠!”


갑자기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동생이 없는 진영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명이었다.

그것은 진영이 죽은 아내였다.

세라를 낳고 얼마 뒤에 사망한 진영의 아내.

두 사람은 대학 선후배 관계로 4년간 연애 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었다.

진영은 귀가 번쩍 뜨였지만 분명히 환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걸었다.


“오빠.”


아내의 목소리는 울부짖는 듯 들렸다.

진영은 아내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아예 귀를 막고 걸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머릿속에서 외치는 것처럼 귀를 막아도 들렸다.

진영은 귀를 막고 마구 뛰었다.

입구에서부터 한 참 떨어진 성 중앙까지 무심코 뛰었다.


퍽!


진영은 앞도 안 보고 뛰다가 뭔가에 부딪혀 넘어졌다.

걷는 길에 세워진 것은 석상이었다.

그런데 석상의 얼굴이 눈에 익었다.


“유진아!”


진영의 아내 유진의 얼굴이 석상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네가 왜 여기에···.”


진영은 석상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더 자세히 보았다.

기계로 만든 것처럼 세밀하게 조각된 석상은 그녀의 눈썹과 작은 눈동자까지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누가 이런 짓을.”


진영은 눈물이 흘렀다.

아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 회사일 때문에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했던 것을 계속 가슴에 담아왔던 그였다.

진영은 석상에 기대어 굵은 눈물을 흘렸다.


“오빠.”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진영은 놀라서 뒤로 넘어졌다.


“오빠. 저예요.”


석상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분명히 석상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말 유진이야?”

“네. 저예요.”


지옥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광목천왕의 환상이든 아니면 진짜 지옥에 떨어진 사람이든 이 순간이 아니라면 그녀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오빠가 오길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어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네가 지옥에 올 이유가 없잖아.”

“사실은···.”


아내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사실 오빠는 알지 못했지만 그날의 죽음은 자살이나 다름없었어요.”

“뭐야? 넌 원래 지병이 있어서 그랬던 거잖아.”

“병이 있었죠.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오빠는 늘 회사에 매달려 있었고 육아에 온통 신경 쓰다 보니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양을 조절했어야 했는데 계속되는 공허감에 그날 너무 무리한 거예요.”

“뭐?”


진영은 두 손은 석상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하듯이 말했다.


“약물중독. 어쩌면 자살과 비슷하죠. 그래서 여기 온 것 같아요.”

“그럴 리가···.”


진영은 할 말이 없었다.

지병으로 죽은 줄만 알았던 아내가 약물 중독이라니.

꿈에도 몰랐던 이야기였다.


‘아무리 광목천왕이 꾸며낸다고 해도 이렇게 내밀한 이야기까지 만들어낸단 말인가?’


“제발 저를 여기서 꺼내줘요.”

“어떻게?”

“심장을 저한테 향한 후 꼭 안아주면 돼요. 저는 심장이 없기 때문에 심장 박동을 들으면 인간이었던 기억이 살아나 이 주박을 풀 수 있을 거예요.”


진영은 잠시 망설였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광목천왕의 환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내를 죽음까지 몰고 간 것이 진영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또 모른 척 한다면 그건 너무한 일인 것 같았다.

환상이라도 이 순간만은 10년만에 그녀를 안아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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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배신의 나라 -2- 20.08.06 123 3 12쪽
67 배신의 나라 20.08.05 130 3 12쪽
66 서국의 왕 -2- +1 20.08.04 118 3 13쪽
65 서국의 왕 +1 20.08.03 115 3 12쪽
» 남방을 지배하는 자 -3- +1 20.07.31 115 3 12쪽
63 남방을 지배하는 자 -2- +1 20.07.30 116 3 12쪽
62 남방을 지배하는 자 20.07.29 129 3 11쪽
61 지국천왕의 나라 -5- 20.07.28 119 3 12쪽
60 지국천왕의 나라 -4- 20.07.27 117 3 12쪽
59 지국천왕의 나라 -3- 20.07.24 118 3 12쪽
58 지국천왕의 나라 -2- +1 20.07.23 123 3 12쪽
57 지국천왕의 나라 20.07.21 118 3 12쪽
56 흑마왕과의 만남 -4- +1 20.07.20 113 4 11쪽
55 흑마왕과의 만남 -3- 20.07.17 121 3 13쪽
54 흑마왕과의 만남 -2- 20.07.16 124 3 12쪽
53 흑마왕과의 만남 20.07.14 131 3 12쪽
52 지옥의 라비린스 -4- +2 20.07.13 122 3 12쪽
51 지옥의 라비린스 -3- +1 20.07.10 122 3 11쪽
50 지옥의 라비린스 -2- 20.07.09 119 3 11쪽
49 지옥의 라비린스 20.07.07 125 3 12쪽
48 남지옥의 공주 카렌 -9- +2 20.07.06 120 3 12쪽
47 남지옥의 공주 카렌 -8- +2 20.07.03 122 3 12쪽
46 남지옥의 공주 카렌 -7- +2 20.07.02 124 3 12쪽
45 남지옥의 공주 카렌 -6- 20.07.01 137 2 12쪽
44 남지옥의 공주 카렌 -5- +2 20.06.30 13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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