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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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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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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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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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1. 트롤리 (3)

DUMMY

총알은 손에 쥐어져 있지 않다. 기계 장치가 그것을 날려 보내면, 그대로 끝이다. 날아간 총알이 누구를, 어떻게 상처 입힐지는 알 수 없다.

제아무리 정확하게 조준한다 하더라도, 손은 떨리기 마련이며, 아무리 노력해도 날아간 총알의 궤도는 바꿀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간 총알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의민은 조용히 총을 내려놓았다.

그가 쏜 총알이 포탈을 맞혔을지, 새카만 어둠 속에서 힘없이 떨어졌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검은색의 반질거리는 권총을 허벅지께에 차고, 다시 검을 잡았다.




짧은 휴식은 편치 못했다. 불안에 떨던 그들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눈앞의 다시 까마득하게 이어지는 산맥들에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두 번째 포탈을 발견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주위를 맴돌았다.

의민은 낮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포탈을 보았다. 그런 그를 옆에서 보던 엘이 경고했다.


“엉뚱한 생각하지 마.”


엘이 그를 노려보았다. 의민은 살짝 고개를 떨구었으나, 그 역시 알고 있었다.

그는 포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자신은 용사기에 나설 수 없었다.

우습게도, 용사이기에 나설 수 없는 일도 있는 것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 한 명이 움직였다. 시선들이 그에게 날카롭게 꽂혔다.

그는 무거운 발을 내디디고 중앙으로 나왔다.


“샘···?”


의민이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사무엘은 수척해 보였다. 이전에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잠깐 보았던 생기는 어디 갔는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퀭한 눈을 하고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발을 질질 끌며 무언가에 끌려가듯 앞으로 나섰다.


그는 한동안 호흡을 다스리려 애썼다.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제...제,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사위가 조용했다.

그 속에서 사무엘만 홀로 한가운데에 서, 울먹거리며 그 말을 반복했다.


“제, 제가 들어갈게요. 제가···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병사들의 눈빛이 한순간 변했다. 초연했던 눈 안에서 이제 무언가가 들끓었다.

사나워진 눈길 안에서 사무엘은 그저 훌쩍였고 의민은 몸을 긴장시켰다. 가슴이 크게 뛰었다. 저 눈길들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그는 알고 있었다.


아이몬은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가 움직였다. 저벅, 저벅. 들리는 발소리에 사무엘이 깜짝깜짝 놀랐다.

의민이 더 이상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 사이를 가로막았다.


“비켜라.”


“···안됩니다.”


아이몬이 이를 갈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죽지 않았나? 네 명분을 위해서는 아직도 부족한가?”

“명분 따위를 위한 게 아닙니다.”

“그가 직접, 자기 입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건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사무엘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사정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의민의 등을 바라보았다.

뒤에 있던 병사 하나가 우악스럽게 불평했다.


“지가 죽겠다잖아! 니가 뭔데 그걸 막는데!”


순식간에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병사들은 모든 분노를 둘에게 쏟아부었다.


“개자식, 너는 안 죽는다 이거야?”

“치졸한 새끼, 야! 너 빨리 들어가. 들어간다며! 니가 들어간다고 했잖아!”

“너 지금 안 들어가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버릴 거야!”


금세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한울이 다급하게 나섰다. 그는 의민에게 바짝 붙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입으로 말했잖아요. 그걸 당신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저 사람 자유에요. 자기 목숨을 어떻게 쓰든 말든 그건 저 사람 자유라고요.”

“자유? 자유라고요?”


의민이 화난 목소리로 그를 쏘아붙였다.


“지금 상황을 보십쇼. 여기 가만히 서서, 저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들어보라고요.”


한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잠깐 말을 하지 않자 그 틈 사이로 수많은 욕설과 협박들이 들려왔다.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름이 쭈뼛 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둔탁한 둔기가 되어 온몸을 때리고 있었다.


“그 자유가, 정말 자유입니까? 사무엘이 여기 온 것조차 본인이 원하는 게 아니었는데. 당장 붙잡아서 묶어두는 게 아니면, 그게 자유가 돼요?”



“씨발!”


소란스러운 와중에 한 병사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잔뜩 흥분해있었고, 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다.


“포탈 못 쓰면, 너 죽여버릴 거야. 그 옆에 너도!”


병사는 의민과 사무엘을 차례로 겨누었다. 의민은 사무엘을 뒤로 보냈다.

병사는 더욱 흥분해 이제 의민의 머리를 겨누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야! 이 씨발, 너 그거 안 내려놔?”

엘이 흥분해 소리쳤다.


“닥쳐! 한 번 더 저기를 넘어가라고? 죽어도 못해! 내가 애초에 왜 여길 왔는데! 내가 여기 죽으러 온 줄 알아!!”

“총 내려놔!”

아이몬이 앞으로 나서며 고함쳤다.


“꺼져 이 미친놈아! 날 당장 돌려보내! 포탈 써서 다시 보내 달라고!”


병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총을 쐈다.

의민이 급하게 몸을 틀었고 총알이 팔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왜 여기서 죽어야 하는데! 내가 왜!”

“이 새끼가!”


의민의 팔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걸 본 루칸과 엘이 흥분해 나섰다.

그리고 그때, 옆에 있던 레아가 둘을 막았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쿠궁, 쿵···


그그그그그


주위에 있던 바위가 덜그럭, 덜그럭거리며 흔들렸다. 곧 땅이 흔들리나 싶더니,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


산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뭐···뭐야!”

“으악!”


작은 흙부스러기가 비처럼 내렸다. 그리고 그건 곧 바위들로 바뀌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땅에 병사들은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었다.


“뒤로 빠져라!”


아이몬이 소리 질렀으나 대부분 몸도 잘 못 가누고 있었다. 위협적으로 떨어지는 바윗덩어리들이 아슬아슬하게 병사들을 피해갔다.


“이, 이 씨발···!”


총을 들고 협박하던 병사도 바닥에 엎어졌다. 총도 놓쳐 멀리 날아갔다.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근처에 같이 넘어진 사무엘에게 손을 뻗었다.


“너, 너!”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다들 뒤로 빠지고 있는 와중에, 둘만이 포털 앞에 있었다. 갑작스럽게 멱살에 잡힌 사무엘은 컥컥거리며 빠져나오려 했다.

병사는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일어났다. 비처럼 내리는 흙들에 앞을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병사는 사무엘을 거칠게 휘어잡고 어떻게든 푸른 빛을 내는 저 포털로 그를 끌고 가려 노력했다.

조금 뒤에서 의민이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으나 앞으로 가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안돼!”


의민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둘은 이제 포탈 앞에 다다랐다. 병사는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는 사무엘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사무엘과 씨름을 했다.

비교적 덩치가 작은 사무엘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조금씩 끌려갔다.

의민도 둘에게로 점점 가까이 갔다.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바위들을 피해 겨우 다가갔으나, 아직도 손이 닿지 않았다.


이제 정말 코앞에, 새파란 포털이 있었다.

사무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옆의 병사는 온 힘을 끌어모아 그를 안에다 집어넣으려 했다.

의민은 어떻게든 손을 뻗으려 발악했다.

그리고 그 순간.


드드드드드!


아까의 흔들림은 장난이었다는 듯, 엄청난 흔들림이 일어났고.


“어···?”


무게 중심을 잃은 병사는,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그가 포탈에 닿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파란 소용돌이가 그를 삼켜버렸다.


“아아악!”


포탈 안에서 비명 소리가 메아리쳤다. 포탈이 소리를 키우기라도 했는지, 그 비명은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들렸다.

파란색 포탈은 한동안 번쩍거리더니 만족이라도 한 듯 점점 커졌다.

흰색으로 변하는 포탈을 보고 모두가,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사무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의민도 허망하게 포탈 속을 들여다보았다.

저쪽에 있던 레아가 이를 악물고 크게 외쳤다.


“다들 저 안으로 들어가라!”


그 소리에 어림도 없다는 듯 산사태가 더 심해졌다.

비수처럼 내리는 날카로운 바위 비를 헤치고 그들은 하얀 포털 속으로 뛰어들었다.

포털 근처로 온 엘과 루칸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무엘과 의민을 끌었다. 뒤에 있던 레아도 합류해 둘을 챙겼다.

그리고 그들은 포털 안으로 몸을 던졌다.






“으음···”


레아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강렬한 빛이라도 눈에 강타했는지, 눈이 따갑고 뻑뻑했다.

그녀는 비척거리며 어떻게든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풍경은 아까와 비슷했으나 미묘하게 달랐다.

그녀는 근처에서 아이몬을 발견하고 그에게 다가갔다. 함께 포털에 뛰어든 다른 사람도 주변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둘 뿐이었다.


“윽···”


아이몬도 짧은 신음을 내며 깨어났다. 그도 숙취라도 하듯 아픈 머리를 잡고 조금 끙끙거리다가, 눈을 깜빡였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뿔뿔이 흩어진 것 같군.”


정찰을 끝내고 돌아온 레아가 말했다.

아이몬은 텁텁한 목에 몇 번 기침하다가 수통을 들었다. 그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는 걸 레아는 얌전히 기다려주었다.


물을 마신 아이몬은 잠시 몸에 힘을 빼고 가만히 앞을 보았다. 까마득하게 늘어져 있던 붉은 산맥의 끝이 저기 멀리서 어렴풋하게 보였다.


“설명서에 그런 얘기는 없었는데.”


아이몬이 중얼거렸다. 레아는 묵묵히 그 말에 동의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아이몬을 일으켰다.

그는 여전히 지친 눈으로 붉은 산맥들을 바라보고는, 옆의 그녀를 보았다.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달싹거리던 그는 결국 아무 말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보고 레아 역시 조용히 산맥을 끝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루칸은 골치 아파 보이는 표정으로 기절해 널브러져 있는 한울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포털이 무리를 다 찢어놓은 거 같은데, 어쩌다 이놈이랑 떨어졌는지.

루칸 역시 고개를 들어 붉은 산맥의 끝을 바라보았다. 저기서 다들 모이겠군.


어색한 여정이 상상된 루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그 너그러운 성품 탓인지, 껄끄럽게 지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몇 안 되는 껄끄러운 사람이 바로 한울이었다.

재벌이니 뭐니, 그런 거 때문에 딱히 차별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서로가 상극이었다.

엘은 그 다른 성격에 흥미를 느끼고 자꾸 한울을 놀렸고, 의민은 그 특유의 순수함으로 그를 자주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루칸과 한울은 서로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두 녀석은 뭐 하고 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루칸은 한울의 볼을 촵촵 때렸다.




“이쪽이 맞다니까!”

“아니라고요!”

“맞다고!”

“머리를 써서 생각을 좀 해봐요! 거기 어깨 위에 달린 건 장식인가!”

“이 땅꼬마가 뭐라는 거야!


엘과 페이지가 서로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분석 마법으로 토질을 검사한 페이지는 오른쪽을 주장하고 있었고, 엘은 그간의 경험을 기반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왼쪽을 주장하고 있었다.


“분석이 그렇다니까요!”

“맨날 실험실에 처박혀 있던 놈이! 실제로 보면 토질 같은 거보다 바람이 더 정확하거든?!”

“명확한 데이터를 가져오던가!”

“악! 짜증 나!”




의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옆에는 사무엘이 웅크리고 있었다. 왠지 휑한 느낌에 의민은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딱히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의민은 두통으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사무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를 불렀다.


“샘?”


사무엘은 대답이 없었다. 의민은 좀 더 그에게 다가갔다.


“샘?


의민이 사무엘을 다시 부르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손이 닿기 전에, 사무엘이 확 그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의민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려 했으나, 순식간에 목 근처에 느껴지는 압박감에 헛숨을 들이켰다.

사무엘은 그의 목을 양손으로 쥐고, 있는 힘껏 눌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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