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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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Fish
작품등록일 :
2020.05.1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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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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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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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숨 (2)

DUMMY

배는 별다른 문제 없이 잘 나갔다. 한적하게 앉아서 풍경이 흘러가는 걸 보고 있자니,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병사들도 모두 흐물흐물하게 풀어져 오랜만의 평화를 즐기고 있었다.


“무슨 관광 온 것 같네.”


엘 역시 의민에게 기대 늘어져 있었다. 그녀는 의민의 부슬부슬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머릿결이 좋아서 그런가, 만지는 느낌이 좋다면서 엘은 심심하면 그의 머리에 손을 댔다. 주위에서는 그런 그녀를 조금 불안하게 봤지만 정작 의민은 별생각이 없는지 기꺼이 머리를 내주었다.


의민 역시 졸지에 쓰다듬을 받으면서 노곤하게 졸고 있었다. 루칸이 한번 손뼉을 치며 그를 깨웠다. 의민은 한번 잠들면 죽은 듯이 자는데, 요즘은 거기에 잠까지 늘어 자주 졸았다. 루칸과 엘은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수시로 그를 깨웠다.


“꽤 많이 나왔나?”


루칸이 물었다. 산소통을 체크하던 아이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군.”


한울은 한쪽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짚인형을 움직이고 있었던 듯 주위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갑자기 짜증스러운 얼굴을 하면서 눈을 확 떴다. 주위에 불던 바람 역시 잠잠해졌다.

아이몬은 그런 한울을 보고 예상했다는 듯 무심하게 물었다.


“역시 안되나?”


한울은 씩씩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물에 들어가면 거의 바로 해체 돼요.”


짚인형으로 바다 속을 수색할 수 있다면 일이 정말 쉬워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형은 물에 들어가자마자 흐물흐물하게 풀어져 버렸다


“바람으로 감싸는 건요?”


페이지가 물었다.


“물 안에서까지는 안 돼요.”

“좀 편하게 갈 수 있으려나 했는데··· 역시 직접 들어가 봐야 하는 건가.”


의민이 눈을 비비적거렸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씀드린 것처럼 별로 위험한 건 없어요. 물속에 마물들만 조심하면 될 거 같아요.”

“딱히 공격하지는 않았다고 그랬지.”

“네. 뭔가 조건이 있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일단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속도도 그렇고, 공격당하기 시작하면 어려워질 겁니다.”

“유념하지.”






아이몬은 병사들을 불러모았다. 몇 번이고 들어갔다 나오면서 수색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조를 나눠 들어가기로 했다. 모든 조에는 아이몬, 페이지 그리고 한울, 의민이 두 명씩 번갈아 가면서 들어갔다.


물 속이라 쉽게 움직이기 힘든 데다가, 수온이 낮아 체력이 쉽게 떨어지기는 했지만, 수색은 큰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중간중간 병사들이 수중 마물들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마물들은 그들을 전혀 공격하지 않고 그저 유유히 지나갔다.


푸하, 소리를 내며 병사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사무엘의 불길로 몸을 말리고 있던 의민에게 한울이 눈짓했다. 의민은 등에 고정된 검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장비를 갖춘 채 망설임 없이 입수했다.








밤이 되었다. 하늘에 별은 여전히 없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 그들의 배가 작게 빛을 내며 떠 있을 뿐이었다.


엘은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몸을 뒤척였다. 끼익, 하며 배가 움직이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 파도 소리나, 수중형 마물이 물을 첨벙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마계의 밤바다는 단 하나의 소리마저도 모두 저 물밑 속으로 밀어 넣어 버린 듯, 조용했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그리고 옆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는 의민에게 감각을 집중했다. 의민 옆에 있는 루칸 역시 그녀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몹시 조용했다.

더 이상 숨소리를 작게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작은 소리조차 그녀의 귀에는 걸리는 것이 없었다.

제 숨소리가 커 의민의 숨소리가 안 들리는 게 아니었다.


엘과 루칸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둘은 보기 드물게 당황하며 의민에게 손을 댔다. 루칸은 그를 반쯤 일으키고 호흡을 확인했고 엘은 맥박을 확인했다.

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당장에 루칸은 심폐소생술을 위해 자세를 바꿨고, 엘은 사람을 부르기 위해 목에 힘을 잔뜩 주었다.


절박한 목소리로 적막이 깨지기 직전, 서늘한 손이 그녀를 붙잡았다.


“너···!”


엘은 아직도 놀란 가슴을 감추지 못했다. 호흡이 거칠었다. 하지만 의민은 마치 그저 잠에서 깬 것뿐이라는 마냥 느릿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무슨 일이에요?”


그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잠에서 깨어나려 애썼다. 엘과 루칸은 얼마나 놀란 건지, 어둑한 와중에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게 보일 정도였다. 큰일이라도 일어났나 싶어 의민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루칸은 바로 그의 맥박과 호흡을 다시 확인했다. 느릿하기는 하지만 평소대로 돌아온 뒤였다.


“왜 그러세요?”

“하, 진짜, 야. 우리는 니가···”


엘은 드물게 울먹거렸다. 깜짝 놀란 의민은 확 잠에서 깬 얼굴을 했다.

루칸 역시 조금 떨리는 손을 감추고 엘을 토닥여주었다.


“지금은 괜찮다.”


루칸이 말했다. 엘이 씩씩거렸다.


“너, 자는데, 조용해서 보니까 숨도 안 쉬고.”

“네?”


의민은 황당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야! 너 뭐야 도대체! 사람 놀래키고!”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야! 우리 같은 프로가 이런 걸 헷갈렸을 거 같아? 너 낮에 물에 들어가서 뭐 한 거야!”

“엘도 같이 있었잖아요. 아무 일도···”

“근데 왜 그래!”


의민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는 엘의 눈치를 보며 얌전히 앉아있다가 물었다.


“근데 제가 그랬으면 지금쯤 죽어 있어야 맞는···”

“이게!”


엘은 폭발한 듯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엘과 루칸은 지병이 있는 게 아니냐, 뭘 잘못 먹은 게 아니냐, 관리자님이 뭔가 귀띔한 건 없냐는 둥, 뭐든 짐작 가는 걸 내놓으라고 그를 짤짤 털어댔다. 문제는 의민 역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는 거다. 워낙 사납게 구는 둘로 인해 의민은 사나래에게 전언까지 해보았지만, 사나래는 왜인지 대답을 피했다.


의민은 어떻게든 별 이상 없었으니 괜찮은 거 아니냐며 둘을 달래려 노력했다. 당장에 자고 있는 사람들을 죄다 깨우려는 걸 말리고, 둘의 감시하에 몸을 뒤척이다 보니 날은 금세 밝아버렸다.

엘과 루칸은 밤새 의민을 확인하느라, 의민은 둘의 시선 속에서 몸을 뒤척이느라. 셋은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 채 그대로 다시 조사 뺑뺑이를 돌게 되었다.


그리고 느지막한 오후. 처음으로 마물로부터 공격이 들어왔다.


“올라가! 올라가!”


아이몬이 무형의 방패를 꺼내 달려드는 수중 마물들을 막았다. 페이지 역시 급한 대로 주위를 얼리면서 마물들을 막았다.

넘실대는 파도에 몸을 숨긴 마물들은 교묘하게 틈을 파고들었다. 병사들이 혼비백산해 배에 올라가려 안간힘을 썼다. 레아가 먼저 배에 도착해 헛손질하는 병사들을 끌어올렸다.

마지막으로 아이몬까지 무사히 올라오자 내려갔던 조원들은 모두 기진맥진해 바닥에 드러누웠다. 각자의 몸에서 떨어진 바닷물들이 바닥을 흥건하게 만들었다.

배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들은 갑작스러운 긴급사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의민 역시 급하게 몸을 일으켜 다친 병사들의 상처를 정화해주었다.


한울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하고 아이몬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마물··· 마물들이 공격했다.”


아이몬은 가쁜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는 축축한 머리를 털어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도대체 왜···”


의민이 아연한 표정을 했다. 아이몬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다.”

“숨?”

“산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저분이 잠깐 호흡기를 벗었어요.”


페이지가 다친 병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사이에 공기 방울이 조금 새어나갔는데, 그 순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그전에는 치고 지나가든, 공격을 하든 아무런 반응이 없었는데, 그거에 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아이몬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의민 네 말이 맞다. 속도도 그렇고,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고. 이번에야 배가 가까워서 운 좋게 들어왔다지만, 다시는 안돼.”


한울과 의민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서로를 쳐다봤다. 생각보다,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의민은 다시 장비를 챙겼다. 등 뒤의 검까지 야무지게 확인한 뒤 제일 먼저 입수했다. 엘과 루칸은 고개를 흔들며 잠을 쫓아낸 뒤, 그를 따라 입수했다.


엘은 괜스레 잠수 장비를 툭툭 건드리며 다시 확인을 했다.

기계를 통해 나오는 건 다행히 취급을 안 하는지, 마물들은 호흡기에서 빠져나오는 공기 방울을 보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다만 육지 생물의 호흡, 아니 인간의 호흡만 취급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숨이 조금이라도 물속에서 뱉어지는 순간, 공격당한다.


그녀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내려 애쓰며 점점 멀리 가는 의민을 따라잡았다.


의민은 한울에게 수신호를 했다. 수색을 마친 구간까지 왔으니 이제 조를 나눠 이동하자는 뜻이었다.

한울은 알겠다는 신호를 보내려다가, 망설이고는 거절의 표시를 했다. 의민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곧 알겠다는 표시를 하고 조원들을 한데 묶어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한울은 그들을 지켜보다가 제일 말미에 따라붙었다. 이상한 불안감이 들었다.




앞전 조의 상황을 보고 난 뒤라, 병사들은 극도로 조심했다. 옆을 지나치는 수중 마물들이 언제 돌변해 그들을 공격할지 몰랐다. 병사들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마물들을 소름 끼쳐 했다.


바닷속은 이전과 같이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수심은 그렇게 깊지 않았으며, 유속도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주위에 장애물들이 많이 보였다. 커다란 바윗덩어리들이 삐죽삐죽 돋아나 있었다.

의민은 조심하라는 수신호를 보내고 조심스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울은 바다 위에서 조종하는 바람으로, 일정량 이상 온 것을 확인했다. 그는 수신호를 보냈고, 조원들은 다시 배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극도로 긴장했던 병사들은 그제야 조금 몸을 늘어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병사 하나가 화들짝 놀래며 몸을 휘저었다. 그를 아주 가까이 스쳐 지나간 수중 마물 때문에 놀란 탓이었다.

하지만 운 나쁘게도 그는 바로 바위 옆이었고, 세게 몸을 뒤틀면서 등에 메단 산소통이 바위에 부딪혔다. 산소통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해 쌓여 있던 바위들이 굴러 내리기 시작했다.


병사는 바위에 부딪힌 충격으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돌덩이들이 저에게 떨어지는 걸 보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는 바위에 그대로 깔리기 직전, 그는 강하게 밀쳐졌다.


아슬아슬하게 바위로부터 물러난 병사를 엘이 붙잡아 적당한 곳에 던져놨다. 그녀는 차마 공기 방울이 새어 나갈까 봐 평소처럼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의민이 있는 쪽으로 헤엄쳐갔다.

의민은 낑낑거리며 제 위를 덮친 바윗덩어리를 밀어내려 했으나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밀어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상황이 좋지 않네.


의민은 생각했다. 잠시 물속인 것을 깜빡한 탓이었다. 물속이 아니었다면 자신 역시 빠르게 물러날 수 있었을 텐데,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깔려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기운으로 몸을 감싼 덕에 그대로 짜부라지지는 않은 게 다행이었다.

다만 문제는, 산소통까지는 보호하지 못했다는 거다.



의민은 산소가 전혀 나오지 않는 호흡기를 꽉 물었다.


조금이라도 제 입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순간, 몰살이다.


작가의말

면목이 없습니다...ㅠㅠ 좀 큰일들이 있어서 글쓰기를 많이 놓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정말 느리지만 그래도 중단하지 않고 열심을 다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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